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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야기/교동약사·마을명칭

양갑리(兩甲里) ▼ 1906년에 남갑리(南甲里)와 북갑리(北甲里)로 되어 서면에 속하였던 것이 1911년부터 남갑과 북갑이 합쳐져서 양갑리로 되었다. ■ 남갑리(南甲里): 남갑 이 마을에는 상읍동(上邑洞)과 중읍동(中邑洞), 하읍동(下邑洞))이 있었으며 그 시기는 고려시대라고 한다. ⊙ 곡촌(谷村): 곡말 하읍동이었던 곳. 곡촌(골말), 곤멀이라고 하는데 중세기에는 이곳에 조수가 드나들어 지반이 패어져 골이 생긴 마을이라고 하여 곡촌이라 했는데 이것을 골말로 부르다가 다시 와전되어 곤멀로 전해진다. ⊙ 장골(개장골) 이곳은 중읍동이었던 곳으로 장골이라고 하는데, 옛날 장이 섰던 마을이라 하여 장골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 북갑리(北甲里): 북갑 이 마을에는 음지동(陰地洞)과 후읍동(後邑洞)이 있었다 한다. 그 시기는 역.. 더보기
동산리(東山里) 원래 서면에 속해 있던 마을로 동장리(東場里)와 두산리 일부가 합쳐져서 동산리로 개칭되었다. ■ 동장리(東場里) 동장리에는 동역동(東域洞)과 구려동(舊閭洞), 죽산동(竹山洞), 금정동(金井洞)이 있었다. ⊙ 동역동(東域洞): 동녘에 동장리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동역동이라 하였는데 지금 구려마을에 포함되며 오늘날까지도 동녘에라고 전해지고 있다. ⊙ 구려동(舊閭洞): 구레 구려동 동쪽을 동녘에, 서쪽은 서녘에로 부르고 있다. 구려는 동장리에서 맨 먼저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구려라고 했고 또는 오래전 부터 백성의 집이 많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구려하고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구려가 와전되어 구레라 한다. ⊙ 죽산동(竹山洞): 죽산포, 테메 죽산동은 포구이다. 옛날에는 이 포구에 배가 많이 정박하여 배의.. 더보기
서한리(西漢里) 서한리는 서장리(西場里)와 말탄리(末灘里)로 되어 있었으나 1911년 면 리 통합시에 서한리로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 서장리 서장리에는 장성동(長城洞), 당후동(堂後洞), 거미동(居美洞)이 있다. ▼ 장성동(長城洞): 막개 이 마을은 해변에 접해 있는데 제방뚝이 자연적 모래성으로 되어 있어서 장성동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일명 막개라고도 하는데 바다 갯골이 남쪽 서쪽 두군데에서 파여들어가 두 갯골의 끝이 맞닿았다고 하여 맞개하고 부르던 것이 와전되어 막개로 불리고 있다. ▼ 당후동(堂後洞): 당뒤 이 마을 산에는 산신께 제사지내는 당(당집)이 있었다 하여 당산이라고 하였고 당뒤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당후동이라고 하였는데 당후란 당뒤라는 뜻이기에 당뒤로 전해지고 있다. ▼ 거미동(居美洞): 계미동(鷄尾.. 더보기
난정리(蘭井里) 1906년까지는 서면에 속해 있었으나 난곳리와 동장리 일부, 두산리 일부를 합쳐서 난정리라 이름하였다. 이 마을은 옛날에 우물안에서 난초꽃이 피었다는 기적이 있어 난정리라고 하였다는 전설이다. 이곳 지방 유지 방한관, 나세영, 방광근등이 1923년에 주선하여 육영의숙을 창설하여 훈육하였으나 세류에 부응하여 1929년에 부득이 폐교되었다. ■ 난곶리(蘭串里): 난구니 난곳리에는 후정동(後井洞), 간정동(間井東), 구석동(九石洞)이 있었다. 그리고 난곳리가 난구니로 와전된 것이다. ⊙ 후정동(後井洞): 뒤물이 난곳리 서쪽 맨 끝에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에 큰 우물이 있어서 뒷마을 우물이라 하여 후정동이라 한 것을 뒤우물로 부르다가 뒷물이로 와전되어 전해지고 있다. ⊙ 간정동(間井東): 샛물이, 샛멀 이 마을.. 더보기
무학리(舞鶴里) ■ 무학리(舞鶴里): 무서산리(舞鼠山里) 무서산리를 1911년 면 리 통페합 때에 무학리로 개칭하였다 한다. 무서산리 쥐들이 춤을 춘다고 하였으나 개칭 당시에 지형지세를 학으로 보고 쥐가 춤을 추는데 학은 더 잘 출 것이라 하여 무학리라고 개칭하였다 한다. ▼ 무학리 남쪽전경 ■ 무서산리 이 마을은 작은 산 넷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네개의 작은 산들을 무서산이라고 한다. 이 산들은 멀리서 보면 쥐 네마리가 움직이는 모양이다. 당두동산과 전동산은 새끼쥐이고 마파동산과 구룡동산은 어미쥐 같이 보인다. 마치 두 새끼쥐가 어미를 따라 가는 형국이다.그리고 서월산은 노적이고 묘산(고양이산)인 농장산은 고양이이다. 쥐(무서산)가 노적(서월산)으로 가고 있는데 고양이(묘산, 농장산)가 쥐를 보고도 바닷물 때문에 오지 .. 더보기
지석리(芝石里) 돌곶리(乭串里)와 건지암리(巾之岩里) 일부를 합쳐서 지석리라고 하였는데 1911년 면 리의 통폐합으로 개칭된 것이다. 之자에++를 더하여 芝자를 만들고 乭자에서 乙자를 빼고 石자로 하여 지석리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건지암리 일부는 삼선리로 편입하였다. ■ 돌곳리(乭串리): 돌구니 이 마을은 곶(串)으로 된 곳이 많아서 돌곳리라 전해지고 있다. 돌곳리에는 화양동(華陽洞), 선양동(仙陽洞), 오미동(鰲尾洞), 소현동(蕭峴洞)이 있다. ⊙ 화양동 화양동에는 절편(건너편이라고도 함), 절너머, 당메, 뚜무리, 발아테 등 5개 마을이 있다. ▼ 당메 ⊙ 절편: 절너머 화양동 절병산에 화양사가 있었는데 이 절이 있는 쪽의 마을을 절편 건너편이라고 했고 산등성이 너머쪽을 절너머로 불렀다고 한다. 절터에는 절우물이 남.. 더보기
인사리(仁士里) 인현리(仁峴里)와 비살곳리 일부를 합쳐서 인사리로 개칭하였다(1911년). 이곳은 옛부터 서재로 저명했고 직원 황인명 선생은 문예(작시)로 명성이 높았다. 당해 군수와 해사 임승익 선생도 소객을 방문하여 작시하였다 하며 어진 선비들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인사리로 개칭하였다고 전해진다. ■ 인현리에는 동편동(東便洞)과 서편동(西便洞), 초목동(草木洞)이 있다. ▼ 민재 재를 사이에 두고 동편동과 서편동이 있는데 어진 선비가 산다고 하여 민재라 하였다 한다. 이 동편동과 서편동을 합쳐서 민재라고 한다. 민재나루를 이조때는 북진나루라 하였는데 북진나루는 교동의 북쪽 관문이었다. ▼ 초목동(草木洞): 풀목이, 풀미기 풀과 나무가 우거진 곳이라 해서 풀목이라 하였는데 와전되어 풀미기라 전해지고 있다. ⊙ 해나지 .. 더보기
삼선리(三仙里) 독지리(禿旨里), 비살곶리(斐山串里) 일부, 건지암리(巾之岩里) 일부를 합쳐서 삼선리가 되었다. 1911년 통합 당시 3개리의 명칭 중 마땅한 것이 없어서 삼선리라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 독지리에는 독지리(무지니), 강촌(姜村), 안골(安谷), 외곡동(外谷洞)이 있다. ▼ 독지리: 무지니 이 마을 앞에 5개의 바위가 서 있었는데 바위가 서 있는 위치가 다섯손가락처럼 생기고 바위끝에 손톱처럼 생긴 모양새가 무지러진 모양새같다 하여 무지니라 전해지고 있다. ▼ 안골 이 마을은 무지니 북쪽 구릉 안에 있는 마을로 외진 곳이었는데, 옛날 나라 안에서 분란이 일어나도 바람잔 곳이며 또 동네 앞까지 조수(潮水)가 차서 더욱 인적이 드문 곳이라 안골이라 전해지는데 이 마을어귀에는 지금도 굴깍지가 붙은 바위가 박..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