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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제주도

한라산 백록담

2018년 1월 28일(일)

 

새벽에 잠을 깬 것은 바깥에서 후드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때문이었다. 방안의 보일러가 끓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다른 회원이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보고는 비가 온다고 한마디 내뱉는다. 비가 오리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고 우천에 대비는 전혀 하지 않았는데 실망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작년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 듯했다. 첫째 날 영실에서 윗세오름을 경유, 어리목으로 산행했고 둘째 날은 오늘 걷는 코스 그대로를 걸었는데 이틀 동안 눈이라고 는 눈을 씻고 봐도 없이 안개와 진눈깨비를 맞고 산행을 했으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함께 자던 3명이 3시쯤 일어나 산행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는데 처음 오른다는 회원은 자신은 어딜 가든 날씨가 좋다고 2대째 공덕을 쌓았으니 반드시 어제와 같이 좋은 날씨가 될 것이라는 낙관론으로부터 들머리인 성판악도 비는 오겠으나 진달래대피소쯤 오르면 분명 눈이 내릴 것이고 며칠째 조금씩 내린 적설량을 봐서 반드시 통제되어 다시 하산할 것이라는 나의 분석도 강하게 피력되면서 그렇게 되질 않기를 바랬다.

한라산 정상을 두번이나 올랐으나 백록담은 안개에 가려 보지도 못한 채 오늘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일정대로 움직여야 하니 5시에 출발, 성판악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니  진달래대피소에서 통제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내 분석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산악회 버스는 주차장에 가득하고 안내방송을 들은 일부 산악회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 같고 헤드랜턴을 낀 산꾼들은 벌써 출발하기 시작한다. 리딩대장은 진달래대피소에서 통제한다면 궂이 어두운 길에 출발할 이유가 없다하며 사라오름을 오르고 진달래대피소까지 갔다가 하산하여 다른 곳을 가 볼 계획으로 버스에서 한시간을 기다리기로 하고 7시에 들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 산행코스: 성판악탐방지원센터-속밭대피소-진달래대피소-백록담-용진각현수교-삼각봉대피소-관음사

 

  ▼ 1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리던 비가 그치고 흐리긴 했지만 바람이 없고 다소 포근한 날씨속에 오르니 기분은 상쾌하다. 오르면서 줄곧 통제가 풀릴 수도 있다는 기대속에 빠르게 산행할 이유도 없이 발바닥에 전해오는 부드러운 눈의 촉감에 절로 힐링이 된다.

두번이나 오른 길이지만 어둑한 밤길에 올라서  주변을 볼 수가 없었는데 이와같이 성판악에서 오르는 길은 굴거리나무가 많다는 것을 알게됐다.

  

                           ▼ 역시 눈은 상록수에 내려 앉아야 제대로 된 설경을 볼 수 있다.

 

 

                         ▼ 편백나무 숲도 눈과 함께 어우러지니 장관을 연출한다.

 

 

 

 

  ▼ 속밭대피소쯤 올라오니 통제가 풀렸다는 소식이다. 얼마나 올라오며 바랬던 일인가! 발걸음도 가벼우니 어느새 진달래대피소에 다다랐다.  이곳에서 일단 준비해간 행동식을 먹고 출발하기로 한다. 들머리에서 통제한다고 해서인지 예전보다 그리 많은 인파는 아니다.

 

 

 

                          ▼ 구상나무 고목이 많은 지점에 이르렀다. 이곳부터는 보통 칼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오늘은

                          약간 불 뿐 손이나 얼굴이 시리진 않는다.

 

 ▼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산나무 보다도 죽은나무 가지에서 더욱 풍경이 빛을 발하는 것은 살아 왔던 세월의 흔적 때문일 것이다.

 

 

 

 

 

  ▼ 백록담 정상이 가까워 질 수록 더욱 조바심이 난다. 현재 상태로라면 백록담을 볼 수 있겠지만 워낙 변화무쌍한 날씨의 정상이라 언제 구름이나 안개에 쌓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 정상으로 오르면서 상고대가 보인다. 사실 눈꽃, 상고대에 관심 보다는 오늘 만큼은 반드시 백록담을 보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 어디서 날아왔는지 까마귀 한마리가 앉았는데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과 조화를 이뤄 한결 풍경이 되살아 나는 듯 하다.

 

 

 ▼ 눈비가 온 후의 변화무쌍한 날씨다 정상에 다다라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구름층을 보니 딴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다.

 

 

 ▼ 금방 구름이 덮혔다 걷히곤 한다. 저러한 구름층의 입자가 사물에 부딪쳐 순간 얼어 붙으면 상고대가 되는 것이다.

 

 ▼ 정상 바로 밑까지 올라오면 왠만한 날씨에서는 바람이 몹시 불고 급격하게 기온이 낮아 지면서 온 몸에 엄습해 오는 추위에 당황하게 되지만 오늘만큼은 그렇게 매섭지가 않다.

 

 

 

  ▼ 드디어 한라산 정상에 올랐다. 백록담에 구름이나 안개가 끼었나 얼른 고개를 내밀고 내려다 보니 전경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왼쪽부터 파노라마로 찍어 봤다. 백록담의 남쪽방향이다.

 

  ▼ 제주도에는 평생 여덟번 와 봤고 그 중 네번째 한라산을 올랐는데 철쭉산행은 제외하고 세번만에 백록담을 처음 보는 것이니 남다른 느낌이다.  역시 북으로는 백두산의 천지, 남으로 한라산 백록담은 우리 민족의 영산임을 말해 준다. 백록담의 서쪽 방향.

 

  ▼ 백록담의 북동방향

 

 

 ▼ 주위에 나무는 전혀 없고 돌부리에 잡초만이 있으니 모진 바람은 그대로 다 맞을 수 밖에 없고 온 몸이 얼어 붙는 듯 카메라도 작동이 안되는 정상인데 오늘 같이 순한 날씨도 처음이다.

결국 새벽에 내린 비로 서로 의견을 달리했던 것이 보기 좋게 나의 분석이 틀렸다는 것이고 덕분에 이렇게 정상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 상고대는 더 많이 형성됐다. 때론 이 보다 훨씬 많은 상고대를 볼 수도 있겠지만 오늘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 산행 일행들이 모두 만족스런 표정이다.

 

 

 

 

 

 

 

 

 

 

 

 

 

  ▼ 심해의 산호수를 보는 느낌이다.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 한라산의 백록담 북벽을 바라본 풍경

 

 

  ▼ 용각대피소가 있던 자리다. 빗물에 쓸려나가 폐건물만 남아 있는 자리인데 모 단체에서 산악훈련 하느라 텐트를 친 모양이다.

 

                          ▼ 용진각현수교

 

 

 

  ▼ 용진각 건너편에서 뒤돌아 본 왕관릉

 

  ▼ 오른쪽 삼각봉이 보이니 대피소 가까이에 왔다. 진달래대피소에서 행동식을 먹고 이곳까지 왔는데 시장끼가 있다. 반드시 삼각봉대피소에서 뭐라도 먹어야 긴 계곡을 빠져나가기 수월하다.

 

  ▼ 백록담 북벽을 멀리서 조망해 본다.

 

 

  ▼ 삼각봉은 이곳 방향에서 봐야 왜 삼각봉란 명칭이 붙었는지 이해가 간다.

 

 

  ▼ 삼각봉대피소에서 행동식을 하고 계곡능선 하산길은 온 나무들이 함박눈으로 뒤집어 썼다. 진달래대피소로 부터 백록담으로 올라오는 코스와는 다른 형태의 모습이다. 말 그대로 설국이다.

 

 

 

  ▼ 삼각봉에서 관음사로 하산하는 이 등로는 바람이 적으면서 적설량이 많아 이러한 장관을 연출한 것으로 추측된다. 옆지기가 동료들과 나흘전인 목요일에 당일로 정상을 오르려 했으나 성판악탐방지원센터에서 통제하는 바람에 관음사에서 삼각봉으로 올랐다가 내려왔다는데 그 때부터 내린 눈이 쌓여 이러한 설경을 연출한 것 같다.

 

 

 

 

 

 

 

  ▼ 만물이 하나로 얼어 붙어 겨울왕국에 와 있는 기분이다.

 

 

 

 

 

 

 

 

 

 

  ▼ 이렇게 해서 고대했던 백록담을 보았고 상고대와 눈꽃을 원없이 본 행복한 하루였다. 역시 한라산의 날씨 변화를 알 수가 없다. 시내에서 보면 구름층에 가린 것 같아도 정상에서는 오히려 운해를 보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는 것이고 아무리 정상이 맑게 보인다 해도 그곳에 오르는 동안 안개에 묻혀 전혀 조망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날의 운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는 더 이상 눈꽃과 상고대를 보지 못한다해도 한라산의 이번 풍경으로  모든 것을 보상 받았다고 자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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