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1일(토)
2주전에 올랐던 철원의 광덕산, 상해봉에서 주변을 조망하며 인상이 깊었던 곳이 역시 철원의 금학산(金鶴山)이었다. 한북정맥(漢北正脈)의 12지맥(支脈) 중에 보개지맥(寶蓋枝脈)에 속하는 금학산은 그 일대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철원평야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음을 알게 되고나니 오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고, 바로 옆에는 고대산이 자리하고 있어서 연계하여 올라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도권 근방의 산들은 산악회의 산행공지가 별로 없어 대중교통수단이나 자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자차로 2시간 남짓 거리 밖에 되지 않으니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산행개요∥
♣ 소재지: 들머리- 강원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 866-1(금학체육공원)' 날머리- 경기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169-2(신탄리역)
♣ 코스: 철원여고-금학체육공원-금학산-보개봉-고대산-삼각봉-대광봉-칼바위능선-육각정자-고대산자연휴양림-신탄리역
♣ 거리: 13.8km (출발: 09:50, 도착: 17:00 이평리버스정류장부터 철원여고까지 0.9km포함)

보개지맥(寶蓋枝脈)
보개지맥은 왕재지맥의 소이산(362.3m)에서 남쪽으로 분기해서 수정봉(498.8m), 숙향봉(473.2m), 금학산(947.3m), 보개봉(752m), 보개산(지장산 877.2m), 화인봉(805m), 북대(710m), 성산(520m), 난봉고개, 전곡읍내를 거친 뒤,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 차탄천이 한탄강에 합수되는 지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7km의 산줄기이다.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차탄천의 우측 산줄기라 하여 차탄지맥이라 부른다.


▽ 동송읍 부근에다 주차를 하고 고대산을 넘은 후 이곳 신탄리역에서 13번 버스를 타고 차량을 회수할 것이냐, 아니면 신탄리역 근방에 주차를 하고 13번 버스를 타고 동송읍으로 가서 산행을 시작하고 산행 후 차량을 회수해서 갈 것이냐 망설이다 버스시간에 맞춰 하산하는 부담을 피하기 위해 후자를 택하기로 한다.

▽ 신탄리역 바로 오른쪽으로 버스 정류장이 있다. 전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에 익숙치 않았는데 이번 참에 많이 알게됐다.
이용객이 별로 많지 않은 시골에 신탄리역은 경기도이고 동송읍은 강원지역이라 환승도 안되고 지자체에서 양쪽 노선을 오가는 운행을 꺼려해서인지 유일하게 철원에서 운행하는 13번 농촌버스가 다닌다.
신탄리에서 동송읍까지는 25분 걸리는데 09:15분 차를 기다리니 09:20분에 도착했다. 다른 시간대 배차시간과 5분이 빠른 것으로 되어 있어서 오기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 버스에서 내려 철원여고 방향으로 가는 길에 올려다 본 금학산의 위용...
얼핏 앞에 보이는 능선이 정상같이 보이지만 그 뒤로 더 먼거리가 정상임을 알게 된다.

▽ 철원여고 정문 왼쪽으로 직진...

▽ 얼마 안 가서 금학약수터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직진...

▽ 카페건물 옆 도로를 따라 계속 오르다보면,

▽ 금학체육공원에 이르게 된다. 이곳까지 올라오면서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어 아침부터 금학산을 올랐던 사람들이 벌써 하산하고 있나 의아했는데 이곳 공원에 숲길이 조성되어 있어 운동삼아 오르는 분들이었음을 알게 됐다.
금학산정(亭)에 올라 겨울산행에서도 어지간하면 점퍼를 입지 않기에 배낭에 넣고, 아이젠을 착용하고 스틱을 챙기는 등 산행 준비 끝!

▽ 금학산체육공원 금학산정으로부터 치고 올라가야 하는 계단의 경사로를 보니 오늘 산행이 녹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 계단이 끝나고 눈으로 덮힌 등로가 시작된다.

▽ 두 번째 벙커를 지나고,

▽ 평지가 거의 없이 이어지는 된비알 경사로에 눈은 살짝 녹어 빙판이 되어 아이젠을 착용했어도 조심스럽게 오르다 보니 아무래도 산행 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다.

▽ 철원소방서에서 긴급구조를 위해 정해 놓은 금학산 2지점은 매바위가 있는 곳이다.

▽ 매바위
금학산(947m)은 철원의 대표 명산으로 학이 막 내려앉는 산형을 하고 있다.
매바위는 금학사 등산로에 위치한 가장 대표적인 바위이며, 매의 부리와 몸체가 선명하게 보이고,
반대편 바위는 웅크린 암컷에 비유하기도 한다. 매바위에서도 철원 시내와 황금 평야을 감상할 수 있다[안내문]
나중에 알았지만 이렇게 보면 매형상으로 보기가 어렵고, 안내문에 있는 그림으로 본다면 오른쪽으로 더 이동해서 촬영했어야 했다. 아무튼, 독특하게 솟아 오른 바위임엔 틀림없고 마음속으로는 개바위라고 불렀다.

▽ 하늘이 보이는 공제선이 나올 정도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보니,

▽ 철원의 동송읍과 평야지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아쉽게도 맑은 날씨이긴 하나 먼 거리는 깨스층이 두터워서 시정거리가 좋지 않다. 북쪽 방향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계방향으로 주변을 조망해 보기로 한다.

▽ 멀리 북한의 오성산 방향.

▽ 멀리 왼쪽 대성산과 오른쪽 광덕산 방향.

▽ 동송읍으로 가운데 바로 아래 들머리이기도 한 철원여고의 운동장이 보인다.

▽ 철원여고에서 오른쪽 방향의 동송읍 풍경

▽ 금학산 3지점에 오르니 숨 돌릴 수 있는 평탄하고 경사로가 반복되는 등로를 걷게 된다.

▽ 기암 바위들이 나타나고,


▽ 정승바위
궁예의 책사였던 종간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는데 옆에서 보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 앞에서 작은 탑들이 있고, 여기서 궁예가 재기를 기원했다고 전해진다.[안내문]

▽ 능선에 올라서니 서쪽 방향으로 금학산을 하산하면 다시 올라야할 고대산이 바라 보인다.

▽ 2024년 2월 11일 가평의 몽가북계를 종주하면서 엄청난 면적의 나무숲이 이와 같이 초토화된 모습을 볼 수가 있었는데 폭설에 나무가지에 쌓인 눈이 빙화되면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러지거나 찢기게 된 것이다. 이곳도 같은 피해를 입은 것 같다.

▽ 빙판길에 조심조심 올라오길 두어시간 걸렸나 보다. 오른쪽으로 금학산 방향으로 내려가는 모노레일과 등로가 합쳐지는 지점에 이르렀다.

▽ 넓다란 헬기장에 올라서니 정상부위의 돌출부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시야가 트이는 곳으로 전국의 어느 산을 올라도 이만한 공간의 정상은 보기 쉽지 않다.

▽ 정상에는 사람이 없어서 셀카로 인증을 남기고,

▽ 철원지방의 각종 축제장소마다 등장하는 안대를 한 사람조형물이 이곳에도 자리를 하고 있어 눈길이 간다.
철원군의 캐릭터인 '철궁이'다. 신비로운 힘을 가진 철궁이의 지팡이를 내려치면 생동감이 일어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단다.
궁예는 901년 후고구려를 세우고, 904년에 국호를 마진으로, 911년에 태봉으로 바꾸는 등 918년 왕건의 세력에 의해 추출될 때까지 18년간 송악과 철원을 중심으로 군림하던 왕이었다. 왕권통치의 수단이었던 '관심법'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왕이다.

▽ 철궁이에게 힘이 있어서인지 인증사진 담기가 쉽지 않았을 무렵, 마침 몇몇 사람들이 올라와서 부탁을 하여 어렵지 않게 정상석 인증을 남기게 됐다.

▽ 산행 취미를 갖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정상에서 주변 조망을 하는 즐거움 때문이다. 남쪽 방향으로 부터 오른쪽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주변을 둘러 보기로 한다. 앞쪽의 포천의 종자산과 오른쪽 지장산, 그리고 멀리 가평의 축령산이 보인다.

▽ 지장산 오른쪽 멀리 파주의 감악산이 아스라이 보이고,

▽ 서쪽방향으로 오늘 가야할 고대산이 바로 앞으로 보이고 멀리 북한지역은 깨스층에 가려졌다.

▽ 북쪽 방향으로 철원역사문화공원에서 모노레일을 이용하여 오를 수 있는 소이산이 보이고, 왼쪽 멀리 6.25 전쟁당시 치열한 격전지였던 백마고지가 보인다. 오른쪽 멀리 검게 보이는 지역은 DMZ 비무장지대이고 그 너머로는 북한의 평강군이다.

▽ 올라온 능선 앞쪽으로 학저수지, 그 뒤 오른쪽 멀리 토교저수지 윗쪽으로는 제2땅굴이 발견된 지역이다.

▽ 너른 철원평야에 자리한 동송읍, 앞쪽으로 대득지맥이 가로놓여 자리하고 왼쪽 멀리는 북한의 오성산, 오른쪽으로 남한의 대성산이 마주하고 있어 마치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을 말해 주는 듯 하다.

▽ 평야의 건너편으로 한탄강이 흐르고, 왼쪽 멀리 복계산으로부터 오른쪽 화악산 방향으로 한북정맥이 가로지르고, 바로 앞쪽으로 대득지맥이 각흘산까지 이어지고 있다.

▽ 다시 한번 렌즈를 당겨 정상에서의 멋진 풍경과 함께 시계방향으로 지형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 남쪽 방향

▽ 남쪽 방향

▽ 남쪽 방향

▽ 남서방향

▽ 서쪽 방향

▽ 서쪽 방향

▽ 서쪽 방향

▽ 북서 방향

▽ 북쪽 방향

▽ 백마고지, 공작새능선, 화살머리고지의 명칭과 지형의 모양
화살머리고지(281m)는 화살촉 모양으로 남쪽으로 돌출된 형태를 띠고 있어서 불린 이름이며, 철원 평야를 사수해야하는 중요한 요충지로 이곳의 전투는 6.25 전쟁 당시 1차로 1952년 10월 6일부터 10월 10일까지 1952년 미 2사단 23연대에 예속된 프랑스 육군 대대가 중공군 제113사단 제338연대와 빼앗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으로 프랑스대대가 전사 47명, 144명이 부상당했으며, 중공군은 전사 약 5400명, 부상자가 약 7200명으로 결국 고지를 지켜냈다.
2차로 휴전협정이 한창 진행 중인 1953년 6월 29일부터 7월 11일까지 국군 제2사단이 중공군 제23군 예하 제73사단을 상대로 벌인 고지전으로 아군 180명 전사, 770명 부상을 입었으며, 중공군은 약1300명이 전사한 치열한 전투 현장이었다. [나무위키 인용]

▽ 렌즈로 당겨 본 백마고지(앞쪽)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국군 제9보병사단이 중공군 38군 소속 3개 사단을 395고지(백마고지)에서 격파한 전투로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벌인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철원 북방에 있는 395고지는 남동쪽으로 펼쳐진 철원평야를 훤히 감제할 수 있어 철원 일대의 국군과 유엔군 기지와 보급선을 전부 위협할 수 있었기에 사수하지 않으면 안될 중요한 고지였다.
북쪽으로 효성산과 고암산(일명 김일성고지)등 백마고지 보다 높은 산들이 있어 감제당한 채 싸워야 하는 불리함에도 제9사단장인 김종오 장군 휘하에 치룬 10일 동안 빼앗기고 뺏는 전투에서 고지의 주인이 무려 12번이나 바뀔 정도로 전투가 치열했다.
결국 아군의 우세한 화력과 전투력으로 중공군이 공격의 교두보로 삼았던 백마고지의 북쪽 능선을 탈환해 중공군 전체를 백마고지 일대에서 격퇴함으로써 비로소 전투가 끝이 났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사상자 숫자는 중공군이 1만 4천여 명, 한국군이 3,396명이었다. 백마고지라는 명칭은 치열한 공방전으로 인한 엄청난 포격으로 인해 나무가 모두 쓰러지고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백마가 누워 있는 것처럼 보여 백마고지라는 명칭이 생겼다는 설이있다. [나무위키 인용]

▽ 뒷편 가운데 북한의 고암산, 일명 김일성고지

▽ 북쪽 방향

▽ 북쪽 방향
1975년 3월 19일, 육군 제보병6사단 담당 구역에서 경계근무를 하던 병사가 지하에서 들려오는 폭발음을 들으면서 발견된 제2땅굴이 있는 곳이 보인다.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이 땅굴은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킬 수 있는 광장까지 갖추어 놓았고, 남쪽 출구는 세 갈래로 나뉘어 있다.
1시간에 1만 명의 무장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으며, 차량ㆍ야포 등과 함께 전차까지 통과할 수 있는 규모이다. 너비와 높이 2m, 길이 3.5km, 지하 50~160m라고 한다.

▽ 북쪽 방향

▽ 당겨 본 북한의 오성산(五聖山 1,062m )
철원평야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오성산을 차지하면 철원평야 전체를 감제할 수 있으며, 특히 6.25전쟁 당시 북한 입장에서 오성산을 뺏기면 검불랑 인근까지는 방어선을 구축할만한 지형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오성산을 잃는 순간 평강을 비롯해 철원평야 전체를 통째로 내주어야 했다. 그래서 중공군 총사령관 펑더화이는 "오성산을 내주면 조선(북한) 역사에 큰 책임을 진다"고 반드시 사수할 것을 지시했으며 김일성은 "괴뢰군(한국군) 장교 한 트럭을 가져다 줘도 오성산과는 못바꾼다"고 말하며 집착했다고 한다.

▽ 북동 방향
왼쪽으로 대득지맥이 끝나는 덕령산 줄기끝을 따라 갈말읍 토성리의 한탄강과 김화남대천의 합수점이 있는 곳이며 오른쪽 아래로 한탄강얼음트레킹을 하면 남쪽 순담계곡으로 부터 직탕폭포에서 마치는 경우가 많다.

▽ 동쪽 방향으로 멀리 뒷쪽으로 한북정맥 줄기가 가로 놓여 있고, 그 앞으로 대득지맥, 한탄강을 낀 관광지대가 눈에 들어온다.
특히 순담매표소로부터 태봉대교까지 이어지는 한탄강얼음트레킹(물윗길)은 주상절리와 함께 기암괴석들을 보며 한겨울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봄, 여름, 가을에는 엄청난 규모의 고석정꽃밭을 구경하고 고석정과 함께 대교천협곡의 현무대교까지 산책해 보는 것도 좋겠다.

▽ 횃불전망대 일대 풍경
한탄강 물윗길을 걷다보면 만나는 횃불전망대는 은하수교도 있어 운치있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 동쪽 방향으로 역시 한북정맥의 풍경과 대득지맥과 함께 순담매표소에서 드르니매표소까지 한탄강의 주상절리 잔도를 걸어 볼 수 있는 구간이 조망된다.

▽ 남동 방향으로는 거의 올라 본 산들로 눈에 익다. 오른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산군들은 더 이상 조망을 하기가 어렵고 금학산만 오른다면 마애불상이 있다는 B코스로 하산할 때 조망이 되면 가능할 것 같다.

▽ 가야할 길이 아직 멀기에 바로 하산하기로 한다.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 헬기장 쪽을 바라본 풍경.

▽ 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모노레일은 대소라치라는 고개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임도가 있기 전까지는 모노레일을 따라 등산로가 나 있는 것으로 아는데 대로가 생기면서 많이 훼손되어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정보가 있어 그렇지 않아도 눈길에 안전상 문제가 있을 것 같아 좀 멀더라도 임도를 따라 하산하기로 한다.

▽ 지그재그로 난 도로는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특히 땡볕이 내리 쬐는 계절에는 땀을 좀 흘릴 수 밖에 없겠다.

▽ 하산하면서 바라 본 왼쪽 보개봉과 고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보기와는 달리 생각보다 먼 거리였음을 나중에 실감하게 된다.

▽ 임도의 차단기가 나오면서 금학산 산행은 사실상 마무리한 셈이다.

▽ 오른쪽에 고대산 이정표가 나오고 철망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고대산 산행이 시작된다. 금학산행 시간은 놀멍쉬멍 걸어서 4시간이 다된 것 같다. 금학산은 전방지역의 고봉(高峰)이어서 남북의 분단 현실을 눈으로 확인하기 좋은 산행지이다.
특히 6.25 당시 철원평야를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희생이 따라야 했던 치열한 격전지로, 백마고지 일대를 눈여겨 보며 그 당시를 상상으로 그려 볼 수 있다.
숭고한 그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이렇게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호국 영령들에 감사한 마음 뿐이며, 그 옛날 군생활했던 지역을 더듬어 보며 그 시절을 회상해 봤던, 어느 산행지보다 산행의 보람을 느꼈던 금학산이다.
금학산과 연계하여 진행하는 고대산은 별도로 후기를 작성하도록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