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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및 기타

[월미도] 월미문학관 & 한국전통정원

2025년 9월 14일(일)

등잔밑이 어둡다고 인천에 거주하면서도 이곳저곳 그리 다녀보질 않아서 속속들이 아는 곳이 많지 않다. 그러나 역사, 문화적으로 

어느 도시 못지 않게 유명한 곳이 많다.

이제껏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관심 밖이었던 고향이나 다름없는 인천에 대해 앞으로는 좀 더 깊이 아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오늘은 많이 달라져 있을 월미도를 모처럼 찾아 옛 정취도 느껴보고 추억도 쌓을 겸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선다.

∥월미도 개요∥ 

월미도가 역사사에 처음 등장한 때는 1695년 숙종 비변사등록에 처음 나왔다.  어을미도(魚乙未島, 於乙味島), 어미도(於味島),  제물도(濟物島), 돌도(突島), 월성(月星), 돌미도(突尾島) 등으로 불렸다.

흔히 '달꼬리'를 닮았다 하여 월(月尾島)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얼다(어르다)'의 '얼'과 물(水)을 뜻하는 '미'가 합쳐져 '물이 섞이는 (어르는, 휘감아 도는)섬' 이라는 '얼미도'라는 이름이 붙었고, 한자로 음차하면서 '월미도'가 되었다. 즉, 육지와 거의 맞닿는 곳에 있고, 바닷물이 이 섬을 타고 돌면서 섞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됐다.

 

▽ 전철을 이용하면 접근성이 좋고 월미도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들러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전철을 이용, 인천역에 도착했다.

옛날에는 동인천역을 상인천역이라 했고 이곳 인천역을 하인천역으로 불렀다.

인천역은 1899년 9월 18일, 경인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한 역으로, 한국 최초로 생긴 8개 철도역 중 한 역이다. 수도권 전철 1호선 경인선과 수도권 전철 수인˙ 분당선의 시종착역이며 1호선의 경우 대한민국에는 드문 두단식 승강장을 사용하고 있는 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철도역 중에서 가장 오래된 종점역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그리고 서울 지하철 최초의 노선 수도권 전철 1호서 둘 다 최초의 종점역이며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도 종점역이다.

인천역에서 1번 출구로 나오면서 오른쪽 편에 월미공원역으로 직접가는 월미바다열차 탑승장이 있고, 왼쪽으로는 월미공원역까지 가는 2, 10, 45번 시내버스가 있는데 일단 버스를 타기로 한다

인천역에서 버스 네 번째 정류장인 월미바다열차역인 월미공원역에서 하차하면 이와 같은 풍경이 나오게 된다.

한국전통정원은 왼쪽 편에 있는데 일단 오른쪽에 있는 성벽처럼 보이는 저 곳을 올라 보기로 한다. 

대나무숲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

대나무 숲이 있는 계단을 올라서고...

성벽을 따라 이동하니 정자가 나온다. 이 성벽은 이곳에 주둔하던 해군제2함대사령부가 1999년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축성되고 월미문학관 건물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월미문학관에는 인천의 역사, 특히 월미도에 대해 역사적 자료, 영상과 함께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각종 교육, 문화, 궁중에 대한 내용들과 함께 의미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특히, 병자호란 때 미처 강화도로 피난할 틈도 없이 몽골 기마병이 길목을 막아 남한산성으로 피신해야만 했던 뼈아픈 경험을 겪은 조정은 임금 제2의 피난길로 서울~영등포~인천도호부~월미도~영종도~강화도월미도를 경유하는 개척 경로를 만들고 월미행궁까지 지어졌었는데 후에 그 기능이 상실되어 조선말 고종 때 헐어버렸다는 사실은 이곳 문학관에서 처음 아는 얘기이기도 하다.

 

해군제2함대사령부 주둔 기념탑

이곳은 1999년 11월 제2함대사령부가 평택으로 이전하기까지 53년간 해군이 주둔해 있었던 자리로 해군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월미문학관 앞쪽으로 내려서면 군함 한 척이 전시되어 있어 내려서서 보니...

퇴역함정공원에는 2001년에 퇴역한 200톤급 206경비함정이다.

그 한 쪽에는 불법조업 중국어선을 단속하다 순직한 이청호 경사와 응급환자 구조를 위해 긴급출항하여 항해 중 불의의 충돌사고로 순직한 오진석 경감 두 분의 해양경찰관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다시 월미공원역 방향으로 이동하여 한국전통정원을 둘러 보기로 한다. 

한국전통정원 정문

 

한국전통정원은 조선시대의 궁굴 정원, 별서 정원, 민가 정원을 구분하여 재현하였다.

궁궐 정원으로는 부용지, 애련지, 화계, 아미산 굴뚝을, 별서 정원으로는 소쇄원, 국담원, 서석지를, 민가 정원으로는 양진당, 전통 민가 등을 재현하였다. 입장료 없이 무료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정자가 놓여 있는데 창덕궁에 있는 부용정을 재현해놨다.

부용지(芙蓉池)는 창덕궁 후원에 위치한 연못으로 조선 정조원년(1777년) 열무지(閱武池)를 부용지로 개칭했고 정조16년(1792년) 택수재를 재건하여 부용정이라고 하였다. 임금과 왕비가 되어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겠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났다는 천원지방의 음양오행사상 영향으로 장방형의 방지속에 원형의 섬이 배치되어 있는데 부용지, 중도, 부용정, 화계, 석물, 괴석 등을 재현하였다. 

부용정(芙蓉亭)의 아름다운 모습

부용정의 내부의 모습

격자문양이 고풍스럽고, 사방으로 낸 창은  연못의 풍경이 그대로 반영되어 평온함을 준다.

국담원(菊潭園)

국담원은 관군이 주재성의 공을 기리기 위해 18세기 초 경남 함안군 칠언면 무기리에 조성한 별서 정원으로 풍욕루, 하환정, 충효사, 영정각, 국담, 영귀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담은 장방형의 연못으로 중앙에 당주라고 불리는 방도가 있으며 물에 근접할 수 있는 계단과 좁은 단이 조성되어 있다. 이 중에 국담, 하환정, 중도를 재현해놨다. 

민가 정원에는 초가집에 우물과 생활 도구인 지게, 절구, 마루에는 다듬이돌, 맷돌 등이 놓여 있어 옛 시골풍경을 그대로 재현해놨다. 

 

▽ 가마솥이 걸려 있는 부엌에는 지게, 키, 조리, 체, 되 등이 비치되어 그 옛날 시골생활의 추억을 되살려 준다.

쟁기로 밭을 가는 농부의 조형물도 있어 흥미롭고...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의 벼와 초가집과 감나무 등으로 시골풍경을 그대로 재현해 놔서 도심 한가운데서도 허수아비와 새 쫓는 소리가 물씬 나고 벼메뚜기나 방아깨비가 금방이라도 훨훨 날아다닐 것만 같은 시골의 정치를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습지정원에는 억새, 부들, 부처꽃 등 수생식물들이 나무데크길 사이로 자라고 물가에는 비단잉어들이 노닐고 있어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습지정원 위에 정자가 놓여있어 올라 본다. 

월휴정(月休亭)은 그리 높지 않아서 시야가 트이지는 않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 잠시 쉬었다 가기에 안성맞춤이다.

월휴정에서 바라 본 (주)한국티비티(TBT)의 원통형의 곡물저장고인 사일로(Silo)...

1918. 9. 20일 영국 기네스월드레코즈사에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벽화(The lagest outdoor mural)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월휴정에서 내려와 길가을 걷노라면 이러한 폭포(월미폭포)도 만나게 되고...

전통정원 반환점인 끝자락에 도착하면 민가정원인 양진당이 나온다. 과거 시골에서 이러한 기와집을 본 적이 없다. 

양진당(养真堂)은 북촌을 대표하는 종가집으로 서애 류성룡의 친형인 겸암 류운룡이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조성한 17세기 건물이다. 'ㅁ'자형의 안채를 중심으로 앞면 동쪽에는 문간채가, 뒷면으로는 사랑채가 연결되어 3개의 건물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보이며 후원의 동북쪽에는 2채의 사당이 있다. 양진당의 대부분 건물과 담장, 삼문, 협문을 재현하였다. 

집의 규모만큼이나 앞 마당의 넓이도 크겠다. 어린 시절 시골집 마당은 놀이터였다. 놀이기구가 마땅히 없었던 시절, 동무들과 어울려서 재미있게 노는 방법이 따로 있었으니 그것이 지금은 민속놀이로 되어 버렸다. 

이곳에 비치해 놓은 어릴 적 놀이 물건들이 있어서 각종 놀이를 해 보니 마음은 그 시절인데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안채로 들어가봤다. 그곳에는 인천 중구청 소속의 안내원들이 상주하고 있어 원하면 안내원이 친절하게 의상도 입혀 주는 등 전통의상체험을 무료로 할 수가 있다. 

옷걸이에는 궁중의상, 혼례의상, 전통의상 등이 비치되어 있으니...

이왕이면 궁중의상으로 임금행세를 이참에 해 본다. 

솥단지가 걸려있는 부엌에는 각종 음식재료와 함께 절구통, 키, 쑤세미등 주방용품도 볼 수가 있다. 

뒷 담장을 끼고 장독대에는 무수히 많은 항아리가 놓여있어 이 정도의 규모면 얼마나 많은 식솔들을 거닐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안채에서 나와 북쪽 사랑채의 안마당에는 또다른 놀이도구가 있어 옛 생각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링던지기 놀이도 있고 특히 투호놀이가 있어 투호통에 화살을 던져보니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마음 같지가 않다. 

▽ 어릴적에 많이 굴리던 굴렁쇠다. 88서울올림픽 개막식 때 전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파란 잔디 위를  윤태웅이란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며 가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짠해 온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던 이어령이 한국의 미학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인데  전 세계인의 화합과 희망을 담기도 한 감동스런 장면이었다.

굴렁쇠만큼은  실력이 아직은 녹슬지 않아서인지 잘 굴러 간다. 

이곳 사랑채와 딸린 넓은 마루는 사용 용도가 뭔지, 마치 후학을 가르치는 서당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 쪽문으로 나와 뒷마당의 사당쪽에서 바라 본 양진당 모습

서석지의 경정(敬亭)터 

경정은 광해군 5년(1613)에 정영방(鄭榮邦, 1577~1650)이 조성한 6칸의 대청과 2칸의 온돌방이 있는 큰 정자로 연못을 내려다보며 인품을 수양하던 곳이라고 한다. 왼쪽 위가 경정터이고 그 아래 연못을 재현해 놓았다.

전통정원의 모습을 선보인 곳에 이러한 현대의 하트모양 포토죤이 좀 쌩뚱맞긴 하다.

올해의 폭우와 폭염에 시달렸는지 아치형 식물지지대의 각종 화초호박도 덩굴이 없고 시들시들 볼 품이 없어 아쉽다.

애련지(愛蓮池)

애련지는 조선 숙종18년(1692년) 창덕궁(서울 종로구 와룡동 소재) 후원에 조성된 연못으로 애련이란 이름은 송나라의 주렴계가 연꽃을 사랑하여 쓴 애련설에서 따온 말이다.

애련지 남쪽에는 불로문, 북쪽에는 방형의 정자인 애련정이 위치하며, 정자(애련정)의 서측으로 입수구가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애련정과 애련지, 불로문, 입수구 등을 재현해 놓았다.

 궁궐마당

경복궁의 조성은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부터 도읍을 한양성으로 옮겨 신도(新都) 경영을 착수함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1394년(태조3) 9월 신궐조성도감(新闕造成都監)을 두고 수도 건설에 박차를 가해, 12월 3일에 궁궐과 종묘를 짓겠다고 산천신(山川神)에게 고사하고, 이튿날 터를 닦기 시작하여 1395년 9월에 완공하였다. 궁의 명칭은 <시경>에서 글귀를 따 경복궁이라 하였고 궁내에 조성된 전각은 총 390여 칸이었다. 이 곳에 궁궐마당은 경복궁의 입지, 건물배치 등 전통궁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조성해 놓았다.

한국전통정원에서 나오면 월미공원역버스정류장에서 2번, 10번 45번을 타고 월미문화의거리로 갈 것인지, 아니면 월미바다열차를 타고 문화의거리역까지 갈 것인지, 월미공원물범카(편도:1,000원, 운행시간: 10:00~17:00(20분 간격))를 이용, 월미전망대와 정상을 찍고 문화의거리로 갈 것인지 판단하여 이동하면 된다.

일단, 체력이 되니 트레킹 겸 월미산 전망대와 정상을 둘러보고 문화의거리로 가보기로 한다. 

※ 월미도 (월미산 정상 & 월미전망대) 이어서 보기: https://openwindow.tistory.com/7154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