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30일(일)
오늘은 5남매 부부가 어머님을 모시고 야유회를 가는 날이다. 애초에 원주쪽으로 가려다가 비예보가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고 가까운 양평으로 장소를 바꿨다. 혹시 비가 오지 않는다면 잠시 외출도 할 수 있는 소나기마을 주변으로 막내가 정했다.
중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상기시켜 줄 소나기마을 주변이라고 하니 더욱 관심이 쏠린다.
예약 일주일 전인데도 마침, 팬션의 2층이 비어 있어서 예약을 할 수가 있었다는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 팬션에 도착, 발코니에서 전경을 보니 그림같은 풍경이다.
▽ 소나기마을 안내도
▽ 오늘도 비가 왔고, 내일도 비가 온다고 하니 잠시 비가 안 오는 틈을 타서 여장을 풀고 황순원 문학관을 가 보기로 한다. 정문 주차장이 아닌 후문 주차장 쪽이어서 개울의 다리를 건너 목넘이 고개를 넘어야 문학관에 도착할 수가 있다.
▽ 소나기에 나오는 징검다리라고 소개되었는데 보수예정이란다. 개울 폭도 좁아 보이고 징검다리가 영 시원치 않다. 물론, 이곳이 소나기에 나오는 진짜 징검다리는 아닐테다.
▽ 이 날은 소녀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세수를 하고 있었다. 분홍 스웨터 소매를 걷어올린 목덜미가 마냥 희었다.
한참 세수를 하고 나더니, 이번에는 물 속을 빤히 들여다 본다. 얼굴이라도 비추어 보는 것이리라. 갑자기 물을 움켜 낸다.
고기 새끼라도 지나가는 듯.
소녀는 소년이 개울둑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만 움켜 낸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다.
그대로 재미있는 양, 자꾸 물만 움킨다. 어제처럼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야 길을 비킬 모양이다. <소나기 본문 일부>
▽ 도랑 있는 곳까지와 보니, 엄청나게 물이 불어 있었다.
빛마저 제법 붉은 흙탕물이었다. 뛰어 건널 수가 없었다. 소년이 등을 돌려 댔다. 소녀가 순순히 업히었다.
걷어올린 소년의 잠방이까지 물이 올라왔다. 소녀는 '어머나' 소리를 지르며 소년의 목을 끌어안았다. <소나기 본문 일부>
▽ 목넘이 고개로 넘어가는 계단...
▽ 목넘이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서 생뚱맞게 돌로 된 개 조각작품이 있어서 이건 뭔가 싶었는데 앞쪽에 안내문이 있어서 살펴 보니...
어디를 가려도 산목을 넘어야만 했다. 그래 이름지어 목넘이 마을이라 불렀다. (중략)
어느 해 봄철이었다 이 목넘이마을 서쪽 산및 간난이네 집 옆 방앗간에 웬 개 한 마리가 언제 방아를 찧어 보았는지 모르게 겨 아니 뽀얀 먼지만이 앉은 풍구 밑을 혓바닥으로 핥고 있었다. 작지 않은 중암캐였다. <황순원 소설 (목넘이 마을의 개) 본문 일부>
소나기와 관계없는, 고개이름을 짓기 위해 황순원 소설의 제목을 이곳에 붙여 놓은 것 같다.
▽ 입장료가 있다. 성인 2,000원, 단체 (20인 이상) 1,500원, 어린이 1,000원, 어린이단체(20인 이상) 500원
관람시간: 3월~10월 09:30~18:00, 11월~2월 09:30~17:00, ( 휴관: 매주 월요일(월요일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관),1월 1일, 설/추석 )
▽ 황순원 문학관 전경
▽ 황순원 작가의 모습
▽ 작가의 서재
▽ 작가의 모든 것을 이 문학관을 통해 읽혀질 수가 있다.
▽ 실감콘텐츠 영상체험관으로 디지털 소나기 산책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소나기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가 하면 발걸음을 뗄 때 마다 물방울 자욱으로 신비감을 더한다.
▽ 그러고도 곧 소녀보다 더 많은 꽃을 꺾었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 …… 그런데, 이 양산 같이 생긴 노란 꽃이 뭐지?" "마타리꽃."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 받듯이 해 보인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며. <소나기 본문 일부>
▽ 영상은 갈꽃과 원두막을 배경으로 꽃이 피고 물고기가 노니는 개울이 흘러 마치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 비록 소나기에 나오는 꽃 이름과는 상관없는 꽃들이지만 그 화려함이 매혹적이다.
▽ 모두 둘러보고 실외의 소나기광장에 나와보니 물가에서 미끄럼을 타는 아이들의 동상이 금방이라도 동심으로 돌아간 듯 하다.
▽ 굵은 빗방울이었다. 목덜미가 선뜻 선뜻했다. 그러자, 대번에 눈앞을 가로막는 빗줄기. 비안개 속에 원두막이 보였다.
그리로 가 비를 그을 수밖에. 그러나, 원두막은 기둥이 기울고 지붕도 갈래갈래 찢어져 있었다.
그런 대로 비가 덜 새는 곳을 가려 소녀를 들어서게 했다. 소녀의 입술이 파아랗게 질렸다. 어깨를 자꾸 떨었다.
무명 겹저고리를 벗어 소녀의 어깨를 싸 주었다. 소녀는 비에 젖은 눈을 들어 한 번 쳐다보았을 뿐, 소년이 하는 대로 잠자코 있었다.
(중략)
밖을 내다보던 소년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수수밭 쪽으로 달려간다. 세워 놓은 수숫단 속을 비집어 보더니, 옆의 수숫단을 날라다 덧세운다. 다시 속을 비집어 본다. 그리고는 이쪽을 향해 손짓을 한다.
수숫단 속은 비는 안 새었다. 그저 어둡고 좁은 게 안 됐다. 앞에 나앉은 소년은 그냥 비를 맞아야만 했다.
그런 소년의 어깨에서 김이 올랐다. 소녀가 속삭이듯이, 이리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소녀가 다시,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 바람에, 소녀가 안고 있는 꽃 묶음이 망그러졌다. 그러나, 소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비에 젖은 소년의 몸 내음새가 확 코에 끼얹혀졌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도리어 소년의 몸기운으로 해서 떨리던 몸이 적이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소나기 본문 일부>
▽ 소나기광장에는 원두막과 수숫단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다.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풍경을 재현해 놨다.
▽ 갑자기 우뢰와 같은 소리와 함께 위로 솟구치는 물줄기는 옷이 흠뻑 젖을 만큼 흘러내리는데 소나기를 연출한 것이다. 비를 피하려면 수숫단이나 원두막 밖에 없다. 애들은 신이나서 일부러 소나기를 맞고 있으니 더위를 식혀 주기에 좋고, 소나기 체험으로 좋은 추억을 가질 수 있기에 어른들도 말리지 않는다. 잠시 해가 떠서 무지개도 뜨니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소나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며, 한 손으로는 수없이 갈꽃을 휘어 꺾고 있었다.
그 날 밤, 소년은 자리에 누워서도 같은 생각뿐이었다.(중략)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가 하는데,"허, 참 세상일도…."
마을 갔던 아버지가 언제 돌아왔는지, (중략)
"어쩌면 그렇게 자식 복이 없을까."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도 변변히 못써 봤다더군.
지금 같아서 윤 초시네도 대가 끊긴 셈이지.…
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황순원 소나기 본문 일부>
어린시절이지만 이 소나기를 읽으며 " 죽거든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하는 마지막 귀절에서 가슴이 먹먹하고 많은 여운을 남기게 했던 마음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 황순원 문학관을 둘러보며 잠시 동심으로 돌아갔던 시간을 보내고 오랜만에 5남매 부부가 만나 저녁식사를 한 곳이다.
▽ 각종 약재를 넣은 닭백숙
▽ 숙소에서 생각지도 않게 웬만큼 다룰 줄을 아는 아우들이 키타, 하모니커를 갖고 와서 그 옛날의 통키타 노래로 밤 늦도록 여흥을 즐기니 이런 기회를 통해서 더욱 돈독한 형제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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