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7일(토)
모처럼만에 육산을 오르게 됐다. 진작부터 별러 오던 포암산과 만수봉이다. 월악산국립공원 주변의 산은 거의 올랐는데 이곳저곳에서 바라보기만 한 포암산이 늘 궁금하던차에 이번에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날씨가 부쩍 무더워져 체력적으로 조금은 부담이 되는 산이지만 반드시 올라봐야 할 산이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길을 떠난다.
∥산행 정보∥
♣ 소재지: 들머리-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203, 만수봉정상-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산 15-2, 날머리-수안보면 미륵리 141-1
♣ 코스: 미륵대원지주차장-하늘재-포암산-마골재-만수봉-용암봉-만수휴게소
♣ 거리: 12.2km(출발:09:47, 도착:16:40)
▽ 도착예정시간 09:30에서 약 20분이 지난 시각에 주차장에 도착, 12km거리에 주어진 시간은 7시간으로 17:00까지가 산행마감시간이다. 업다운이 얼마나 있을지, 날씨와 체력관계를 감안하고 점심시간까지 포함하면그리 넉넉한 시간은 아닌 것 같다.
▽ 산악회버스는 딱 한대이고 넓은 주차장에는 주차된 차가 별로 없이 한가하다.
▽ 미륵대원지와 하늘재, 포암산, 문수봉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있어서인지 식당, 카페 등이 즐비하여 산골 느낌이 없다.
▽ 등로 옆으로 미륵세계사라는 사찰이 있으니 들러 보기로 한다.
▽ 세계사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조부인 작제건(作帝建)이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麻衣太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던 중 이곳에 절을 창건하여 머물다가 갔다고도 전하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주변에 산재한 덕주사(德周寺)·덕주골 등 마의태자 일행과 관련된 명칭으로 보아, 이 절의 창건이 마의태자와 관련된 것이 분명하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과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은 마의태자가 일행과 함께 건립한 것이라 전한다. 현재 사지(寺址)에 산재되어 있는 석불·석탑·석등·귀부(龜趺) 등의 문화재로 보아 당시에는 규모가 매우 큰 가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192년(명종 22) 원명(元明) 등이 금당(金堂)을 중수하였고, 1254년(고종 41) 몽고병란으로 소실된 뒤 고려 말 조선 초에 중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18세기경에 중건하였으나, 1936년의 폭우로 산사태를 만나 사찰이 매몰됨에 따라 폐사가 되었다가, 6·25 이후에 조그만 요사만을 지어 세계사라고 불렀다.[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 충주 미륵리 원터
충주 미륵대원지(사적 제317호) 창건과 더불어 지리적 중요성이 큰 이 곳에 원(院)을 별도로 세우고 운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원터는 고려초기 충주와 문경을 잇는 계립령로(鷄立嶺路 지금의 하늘재)에 위치하며 충주를 넘어가면 문경 관음리에 절터가 있는데 이 또한 원(院)의 기능을 갖추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조령(鳥嶺 새재)이 개통되면서 미륵리의 원은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해 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지에 대한 조사결과 두 차례 중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으며 건물의 형태는 '回'자 구조로 가운데에 말을 묶어 두는 마방을 두고 주변에 여행자와 관리인이 기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개길이며 남북을 잇는 요충지인 계립령로에 자리했던 이 원터는 미륵대원지와 더불어 사원과 역원의 기능을 두루 갖춘 중요한 유적지이다. [안내문]
▽ 충주 미륵대원지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깃발(당(幢))을 매다는 장대(간(竿))을 고정하기 위한 장치로 보통 사찰의 입구에 세워 신성한 지역임을 나타낸다. 현재 지주와 간대(竿臺)로 보이는 석재가 남아있는데 간대 윗 면에는 2층의 원각선을 양각하였다.
지주는 아랫부분이 결실되어 전체크기를 알 수 없으나 윗부분 바깥면에 6열 연화문을 양각한 것은 희귀한 예이다. 통일신라시대보다 상대적으로 폭이 넓고 높이가 낮은 고려시대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안내문]
▽ 충주 미륵대원지 석조귀부(石造龜趺)
사찰의 남북 종축선에서 약간 좌측에 위치하여 북향하고 있으며 길이 605cm, 높이 180cm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거북모양 받침이다 귀갑문은 생략하였으며, 좌측 어깨 부분에 작은 거북 두 마리가 이어 올라가는 형태를 양각하였고, 앞쪽의 발은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나 형식화 되었다. 귀부의 등 가운데에 비좌가 있으나 비를 세울 수 있는 정도는 아니며 수차례 발굴조사에서 비석 조각조차 찾지 못했음을 볼 때 원래 비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안내문]
▽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높이 6m의 오층석탑으로, 그 자리에 있던 바위로 받침돌과 기단을 만든 후 초층탑신석을 올려 놓았다. 바위 안쪽을 파내어 만든 기단 면석 한 면이 직각을 이루지 못하고 일그러져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일반적인 탑의 모습과 비교할 때, 옥개석의 너비가 탑신석에 비해 아주 좁고 낙수면의 기울기가 심하며 각 층의 체감률(遞減率)도 고르지 못해 투박하고 둔중한 느낌을 주고 있다. [안내문]
▽ 충주 미륵대원지 석등
전형적인 8각석등으로 균형이 잘 잡힌 우수한 석등이다. 하대석은 4각형이며 윗부분에 연꽃을 새겼다. 간주석은 아무런 무늬가 없는 8각형의 돌기둥으로 상대석에는 앙련(仰蓮)을 조각하였다.
그 위에 등을 설치했던 8각형의 화사석(火舍石)이 있는데 4면에 화창(火窓)이 있고, 화사석 위에는 8각의 옥새석을 두고 그 위에 꽃봉오리 모양의 보주를 조각하였다. [안내문]
▽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미륵대원지 석굴의 본존불(으뜸가는 부처, 석가모니불)이다. 높이가 10.6m에 이르는 큰 불상으로 석굴은 '∏'형이며 벽면에는 석굴암과 같이 조각상이 화려하게 장식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화재로 인해 부조상의 일부만 남아 있어 원형을 확인하기 어렵다. 여래사의 얼굴과 손은 비교적 공을 들여 조각하였으나 다른 부위는 간략하게 조각하여 돌기둥을 보는 듯하다.
얼굴은 상대적으로 입체적인 편인데 눈은 감고 있는 듯하며 눈썹은 반원형을 그리면서 코로 이어진다. 머리는 나발(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부처이 머리털)과 팔각형의 보개(머리 위에 덮개 모양을 하고 있는 부분)로 표현되어 있으며, 보개 모서리에는 풍경을 고정하기 위해 철심을 박았다.
양손은 가슴 앞에 두었는데 왼손에는 보주(寶珠)로 보이는 원형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하반신은 거의 돌기둥처럼 보이며 발은 반쯤 표현되었고 대좌는 복련좌(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의 무늬를 새긴 대좌)이다. 보개에서 대좌에 이르기가지 사용된 돌을 총 6매이다.
절터를 발굴할 다이 출토된 기와 중에 '미륵(彌勒)'이 다수 찍혀 있는 것으로 볼 때 부처의 명칭은 미륵으로 생각되나 왼손에 보주를 들고 있는 미륵상은 전례가 없어 단정하기 어렵다. 이 석불은 10m가 넘는 불상이지만 얼굴이나 손 부분만 강조하고 나머지는 간략하게 표현하는 등 고려 전기 거대불상에서 보이는 특징을 보여 준다. [안내문]
▽ 충주 미륵대원지 석등 과 사각석등(오른쪽)
사각석등은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특이한 겨구 수법을 보여주는 석등으로 특히 석주형 화사석은 고려시대에 건립된 일부 석등에서만 채용된 기법으로 고려수도인 개성 일대에서 확인되고 있다. 개석에서 멀리 떨어진 충주지역에 4각석등이 세워졌다는 것은 석등양식이 지방으로 전파되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고려시대 절터에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팔각석등과 고려시대의 사각석등이 함께 세워져 있음은 통일신라문화와 고려문화가 공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안내문]
▽ 진행방향인 대광사 쪽으로 오르면서 오른쪽은 모두 미륵리 원터이다.
▽ 미륵리 원터 발굴지...
▽ 곧바로 진행하면 대광사쪽으로 이어지고 왼쪽으로 접어 들어야 하늘재로 가는 등로이다.
▽ 하늘재로 이어지는 등로는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산책하기 좋은 오솔길이다.
▽ 길옆에 꿀풀도 보이고...
▽ 연아 닮은 소나무라고 해서 잠시 데크에 올라서 봤더니...
▽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의 멋진 포즈가 연상되는 소나무가지 모습이다.
▽ 이 포즈의 뒷 모습 같다.
▽ 하늘재에 올라섰다.
하늘재는 고개가 하늘에 맞닿을 듯 높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천치(天峙)라 표기하기도 하고, 우리말로는 하니재·하닛재 등으로 발음을 달리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높은 고개라는 뜻에서 한치라고 했다고도 한다.
하늘재 고갯길은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옛길로, 계립령 중 미륵대원지(彌勒大院址)에서 문경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지금도 충청북도 충주시 구간은 비포장도로로 남아있어 옛길의 정취가 잘 보존되어 있어 2008년에 명승 제49호로 지정되었다.
▽ 충주 계립령로 하늘재는 충청도 충주와 경상도 문경 사이의 가장 낮은 고갯길로서 156년(신라 아달라이사금 3)에 개척되었다. 고구려와 백제의 영토 분쟁 역사가 전해오는 2천년의 오랜 역사의 옛길로서,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통행로가 된 길이다.
삼국시대에는 계립령, 고려시대에는 대원령, 조선시대에는 한훤령으로 불리며 조선 태종 때 새재길이 열리면서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 오른쪽으로 오르면 탄항산으로 오르게 되고 왼쪽으로 올라야 포함산 진행방향이다.
▽산성의 흔적으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이어진다. 한훤령산성은 480m에 이르는 석성으로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성벽 주위에서 신라계의 연질 토기와 경질 토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신라에서 축조한 성으로 보고 있다.
▽ 급경사를 오르다보니 기암들이 나오고...
▽ 상어를 연상케 하는 바위를 지나...
▽ 이런 바위군도 오르면서...
▽ 제법 운치있는 바위를 지나다 보면...
▽ 조망이 트이는 구간에 서게 된다. 왼쪽 대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부터 국수봉, 거르목산, 운달산, 성주봉, 단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다.
▽ 바로 앞은 탄항산, 그 뒤로 주흘산영봉과 주봉이 좋은 날씨로 가까이 보인다
▽ 멋진 소나무를 만나고...
▽ 탁 트인 조망처에서 다시 한번 남동쪽 방향의 풍경을 담아보고...
▽ 철계단을 올라...
▽ 서쪽 방향으로 조령산으로 부터 신선봉까지의 풍경을 담아 본다.
▽ 당겨 본 왼쪽 멀리 조령산과 가까이의 부봉(1~6봉)
▽ 가운데 멀리 군자산, 깃대봉, 오른쪽 마패봉
▽ 마패봉과 신선봉
▽ 북서 방향의 풍경
▽ 당겨 본 앞쪽 박쥐봉과 가운데 뒷편 북바위산
▽ 앞쪽 용마산(말뫼산)과 오른쪽 멀리 충주의 계명산
▽ 북쪽으로 멀리 월악산이 가야할 오른쪽 만수봉 뒤로 보인다.
▽ 멀리 월악산 영봉, 중봉이 보이고 마애봉과 덕주봉, 앞쪽으로 용암봉이 겹쳐 보이고 오른쪽으로 만수봉이 보인다.
▽ 당겨 본 월악산 영봉
▽ 남쪽 방향의 왼쪽 주흘산 주봉과 오른쪽 영봉
▽ 계단을 오르며 뒤돌아 본 풍경
▽ 좀조팝나무꽃을 오랜만에 본다.
▽포암산(布巖山)
인근의 월악산, 주흘산, 조령산 등과 함께 조령5악으로 손꼽히는 포암산(962m)은 월악산국립공원 내 충주시 상모면과 경북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또한 백두대간의 주능선 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늘재(525m)를 경계로 월항삼봉(탄항산)과 연결된다. 소백산의 중심부로 월악산(1,094m), 주흘산(1,108m), 백화산(1,064m)과 더불어 묘한 산세를 이루고 있다.
▽ 포암산 정상에서 바라 본 북쪽 방향의 만수봉과 멀리 월악산 영봉
▽ 남동 방향으로 다시 한번 조망해 본 풍경
▽ 마골재에 도착, 직진하면 백두대간 길로 대미산 방향으로 가게 되고 왼쪽을 가야 만수봉에 이른다.
▽ 만수봉쪽으로 가면서 유일하게 조망해 본 북쪽 방향의 풍경...
▽ 과거에 있었던 헬기장인 듯한 장소를 지나고...
▽ 엄청나게 군락을 이룬 조릿대 숲을 지나...
▽ 안전 난간봉이 세워진 길게 이어진 암릉에 이르자 앞쪽으로 만수봉이 마치 평지로 보인다.
▽ 만수봉삼거리인 이 지점에서 왼쪽으로 하산하면 만수골로 내려가게 되어 날머리인 만수교에 이른다.
▽ 평지처럼 난간을 따라 가다보면...
▽ 한 사람 누워 쉬기 좋은 평바위가 나오고 만수봉 정상이다.
▽ 만수봉
만수(萬壽)는 이름 그대로 산천에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며 자연의 혜택을 두루 입으며 천수를 누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정상에서는 월악산이 아름답게 조망되고 또한 만수봉에서 월악산에 이르는 만수암능을 이어갈수 있으나 몇 군데 위험지역이 있어 비지정탐방로로 지정되어 있으며 만수계곡에는 기암괴석과 넓은 반석들이 즐비하며 요즘은 단풍과 어우러져 운치있다.
▽ 만수봉 정상 풍경
▽ 만수봉 정상에 있는 앉아 쉬기에 좋은 바위
▽ 북쪽방향 조망...멀리 충주호 일부가 보인다.
▽ 왼쪽 북바위산과 박쥐봉, 오른쪽 용마산...
▽ 용마산(말뫼산)
▽ 앞쪽 덕주봉과 왼쪽 멀리 충주의 계명산, 충주호가 그림같이 다가온다.
▽ 월악산 영봉과 앞쪽 마애봉, 만수암릉구간의 풍경으로 이 구간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 만수봉 정상에서 동쪽으로 바라 본 풍경
▽ 본격적인 하산길에 접어든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다 보면...
▽ 다시 용암봉을 오르면서 뒤돌아 본 만수봉
▽ 용암봉으로 오르는 계단
▽ 누가 눈물겹게도 짱돌에 글을 써서 정상석 표시를 해 놓았다.
▽ 데크전망대에서 잠시 이곳까지 걸었던 능선을 짚어 본다.
▽ 뒤돌아 본 만수봉
▽ 만수봉에서 포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뒤로 산행하면서 내내 보이던 산군들이 조망된다.
▽ 당겨 본 포암산과 오른쪽 주흘산
▽ 제법 운치있는 소나무들이 시선을 끈다.
▽ 아직은 꼬리진달래의 절정시기가 아닌 듯, 딱 한개체 핀 것을 발견했다.
▽ 구들장과 같이 반듯하게 쪼개진 바위가 종종 보이는 구간을 지나...
▽ 또 하나의 명품송을 보며...
▽ 송유를 채취하기 위해 수난을 당한 소나무가 여러 곳에 눈에 띈다.
▽ 기암이 군집한 곳을 지나고...
▽ 계단을 내려서게 되면 만수계곡이다.
▽ 오전에는 바람이 불어 그런대로 시원한 산행이었는데 오후가 되면서 더워진 날씨는 모두 물가로 내려서서 몸을 씻게 만든다. 만수봉을 올랐다가 다시 만수봉삼거리로 하산해서 이 골짜기로 내려오면 훨씬 시원한 트레킹이 되겠다.
▽ 일제강점기시 항공기 원료인 송유를 추출했는데 고무공장의 고무반죽시 필요한 첨가제로도 송유를 채취, 현재 월악산국립공원 일원에 분포되어 있는 송유채취가마는 1960년대에 조성된 것이라 한다.
▽ 월악산국립공원 자원봉사센터를 지나고...
▽ 만수탐방지원센터에 도착...
▽ 지방도로가 나오고...
▽ 만수골휴게소에 도착하면서 산행을 마친다. 단순히 정상에 오르는 산행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미륵대원지 원터 및 하늘재에 대한 역사를 이해하게 되니 큰 소득이고 뜻 깊은 산행이 되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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