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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충청북도

[충주] 장미산 & 탄금대

2022년 3월 5일(토)

 

불과 한달도 안된 지난 2월 20일 충주의 천등산과 인등산을 올랐었다. 천등산에서 남한강과 장미산을 조망하면서 산 이름이 특이하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곳을 산행한다는 공지가 산악회 카페에 올라왔다. 산은 낮고 산성이 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산행 후 탄금대를 둘러 본다는 것에 눈이 번쩍 띄었다. 학창시절에 역사공부를 하면서 신립장군하면 탄금대 얘기가 나왔는데 탄금대가 어디쯤에 있는지 듣긴 들었어도 실제 가보지 않았으니 모를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어 기회가 왔으니 이곳만큼은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신청을 하게 됐다. 신립장군은 과연 어떠한 지형에서 어떻게 싸우다가 어떻게 죽었을까, 8천의 군사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멸했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었다. 그 현장을 답사하여 그날의 비극을 상상력으로 체험해 보고자 한다. 신립장군은 과연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남한강을 낀 대문산을  배수진으로 하여 결사항전으로 적과 싸워 이기려고 했던 것이었는지, 조령의 협곡과 같은 지형의 잇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을텐데 어떤 판단으로 이곳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는지, 비록 지나간 역사지만 궁금증에 다른 산행지를 뒤로 하고 이곳에 방점을 찍었다.

 

산행정보

♣ 소재지: 들머리-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 1041-5 (장미산버스정류장), 정상-장천리 산 73-1, 날머리-중앙탑면 용전리 280-11(충주고구려비전시관 주차장)

♣ 산행코스: 장미산버스정류장-봉학사-장미산성-삼거리-충주고구려비전시관 주차장

♣ 거리: 5km(들머리-09:00, 날머리-11:00)

 

▽ 들머리에 도착한 시각은 09:00로 역시 수도권에서 가까우니까 좋다. 산행코스도 A코스는 충주고구려비전시관까지 5km밖에 안되는데 시간은 2시간 30분을 주어 11:30이 마감시간이니 산행이라기 보다는 트레킹에 가깝다고 해야할 것 같다. B코스는 청색선으로 장미산을 넘어 남한강을 따라 12:00까지 중앙탑까지 걷는 코스로,  충주고구려전시관에서 A코스 인원들을 태우고 버스로 중앙탑에서 합류하게 된다.

코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점선은 애당초 계획된 산행코스인데 웬일인지 리딩대장은 코스대로 걷질 않아 봉학사도 탐방을 못하고 산성도 제대로 보지 못한 가운데 그냥 지나치게 되어 또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 충주 천등산에서 바라 본 장미산 일대 풍경

 

▽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트랭글을 작동시키니 이상하게 예전같지 않은 처음 보는 프로그램이 뜬다. 산행 준비는 해야겠는데 트랭글 작동을 어떻게 해야되는지 몰라 허둥대다가 28명의 인원이 감쪽같이 사라진 뒤를 부지런히 따라간다.

 

▽ 분명 이쪽 길로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고 부지런히 올라가니 뒷 사람 모습이 보인다. 알바는 높은 산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낮은 산에서 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거나 방향을 잃으면 꼼짝없이 코스에서 벗어 날 수밖에 없다. 트랭글에 신경쓰느라 들머리부터 헤맬 뻔 했다. 

 

▽ 생각지도 않은 학교건물이 나타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2009.02.28 폐교된 충주중앙중학교가금분교장으로, 학교 뒷편으로 돌아서 산으로 올라가는데 길이 없어서 일단 산 능선으로 치고 올라간다.

 

▽ 어찌어찌 하여 능선에 오르니 벌목을 하여 횡한 모습이다. 무슨 나무를 식재하였는가 살펴보니 낙엽송같다. 좀 더 가치있는 수종들도 있는데 왜 하필 낙엽송을 심었는지 모르겠다.

 

후에 알고 보니 왼쪽 골짜기로 임도가 있는 듯 한데 원래 코스는 저 길로 올라 봉학사로 오르는 길이었으나 임도를 타기가 싫어 리딩대장이 능선을 택했는지 아무 생각없이 트랭글 작동에만 신경썼던 나로서는 산우들 맨 뒤에서 따라만 가는 입장이어서 알 수가 없다.

 

잠시 뒤를 돌아보니 미세먼지가 끼어 조망이 뿌옇다. 평택제천간고속도로인 40번 국도가 보인다.

 

전국적으로 대규모 벌목작업을 벌인 곳을 종종 볼 수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침엽수 30살, 활엽수 20살의 나무들을 벌목하고 30억 그루를 심겠다고 했다. 특히 산림청은 벌목한 나무를 가구 등의 목재로 사용함으로써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내 50살 된 나무도 가구나 고급 목재로 사용되기엔 너무 작다. 30억 그루 심기 위해 전국의 산림을 침엽수 30살, 활엽수 20살로 베어 낼 경우 가구용 목재는 불가능하고, 저급한 용도의 목재와 쭉정이만 생산되고 땔감이 되어 탄소 배출을 가속할 것이 자명하다.

문재인 정부의 30억 그루 심기가 본격화 된다면 산림조합의 돈벌이 사업장을 늘려주는 것에 불과하며, 숲을 파괴하여 기후위기를 부를 것이다. 수십조의 예산을 퍼부어 목조주택 시장에 사용도 하지 못하는 저급한 나무만 생산하는 걸 왜 해야 하는가? [출처: 오마이뉴스 일부 https://news.v.daum.net/v/20210602115400832?x_trkm=t]

 

▽  산이 높지 않길 망정이지 등로가 뚜렷지 않은 거의 오지 산행 느낌마저 든다.

 

드디어 장미산성에 이르렀다. 

장미산성은 충주시의 남한강 인근 장미산의 능선을 따라 둘러 쌓은 둘레 삼국시대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대동지지』에 산성이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92년 조사결과 성 안에서 발견된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들을 통해 백제, 고구려, 신라가 치열한 영토분쟁을 벌인 지역으로 할 수 있다.

봉학사 지역 일부를 빼고는 성벽이 원래 모습대로 남아 있다. 성벽은 돌을 다듬어 직사각형으로 쌓았다. 북쪽 정상부분의 성벽을 따라 있는 좁고 긴 군사용 참호는 주변 성벽의 재료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장미산성 위에서는 남한강 물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근처에 중원고구려비와 누암리 고분군 등 충주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장미산성은 사적4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쪽 방향으로 보련산(764.4m)와 왼쪽 뒷편으로 국망봉(769.6m)이 보인다. 

 

북쪽으로 남한강이 왼쪽 방향인 여주, 양평을 거쳐 팔당호로 흐르고 바로 앞 응주산과 뒷편으로 알려지지 않은 꾀꼬리봉(328.9m) 과 왼쪽 청계산(401.5m)등 야산이 즐비하다.

 

▽ 뒤돌아 본 장미산성...

예정된 코스로 올라서 봉학사 방향으로 올랐다면 비록 개축된 산성이지만 좀 더 제대로 봤을텐데 리딩대장도 초행길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지도를 확인하지 않고 트랭글 작동법도 제대로 몰라 그냥 지나쳤기 때문이다.

 

▽ 장미산이란 이름은 "장미 장(薔), 고비 미(薇)"자로서, '장미꽃 산'이라는 뜻인데, '산세가 꼬리처럼 길다'고 하여 장미산(長尾山)으로도 불린다.

 

정상에서 바라 본 남서 방향의 풍경... 오른쪽으로 평풍산(395.5m), 가운데  충주시티자이아파트가 보인다.

 

바로 앞쪽 능선에 마치 계단처럼 가지런히 조성된 산림에 대해 산불감시초소의 감시원에게 여쭤보니 호두나무 과수원이라고 한다.

 

장미산성의 무너진 본래 모습의 산성이다. 삼국시대에 온전히 인력에 의해 쌓았을 산성과 현대에 건설장비를 이용하여 거의 신축하다시피한 산성을 비교하면 그 규모나 견고함에 있어서는 비교할 수 없기에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남쪽 방향의 남한강 풍경으로 이 줄기는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구간이다. 충주댐에서 흘러 왼쪽으로 돌아 여주, 양평을 거쳐 팔당호로 유입되게 된다. 이렇게 많이 담수되어 있는 것은 왼쪽 500여미터 거리의 산아래 조정지댐이 있기 때문이다.

이 댐으로 하류지역의 용수공급을 원활하게 하고, 6,000kW의 수차발전기 2대로 연간 7,950만kWh의 전력을 생산한다니 수자원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남한강을 끼고 임페리얼레이크CC가 자리하고 있다. 국내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호반골프장인 임페리얼 레이크CC은 18홀 규모로 1990년 10월 개장하였다고 하는데  골프에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이곳에 골프장이 있다는 것도 처음으로 안 사실이다.

 

중앙탑면사무소 소재지인 탑평리 마을 풍경

 

주변 조망을 한 뒤 가파른 통나무 계단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서게 되고...

 

거의 하산했다고 생각한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온다.

 

앞 사람들 따라 오느라 진행 방향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이쪽 길은 A코스가 아니라 강변을 따라 걷는 B코스 길이다. 장미산 정상에서 내려오다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접어 들어야했는데 거의 모두가 이쪽 길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할 수 없이 다시 능선으로 치고 올라가기로 하여 공사판을 지나 산길로 접어든다.

 

능선을 넘고서 임도가 나오는데 임도 좌우로 어느 능선을 타야할지 몰라 동행하던 몇 사람이 우왕좌왕하다가 다른 사람의 트랭글을 살펴보고 제대로 방향을 잡아 결국 날머리에 도착한다. 이곳은 깊은 산속도 아니고 대충 주변만 살펴봐도 방향을 알 수가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지만 산행코스대로 움직이려다 보니 신경을 쓰게 된 것이다.

 

▽ 충주고구려비전시관이 있는 도로 건너편의 낚시터에서 젊은 시절 낚시광이 되어 전국을 누볐던 추억을 더듬어 보기도 하고...

 

충주고구려비전시관 주변을 둘러 보기로 한다.

 

▽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三足烏]를 형상화한 전시물

 

▽ 개마무사((鎧馬武士)

개마무사란 말과 병사 모두 갑옷을 입은 중장기병(重裝騎兵)을 말하는데 고구려에는 3세기부터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의 개마무사는 현대의 탱크와 그 역할과 위용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일반 기병이나 보병에 비해 전투능력이 월등히 높았다. 고구려가 동북아 최강국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개마무사의 역할이 컸다. [안내문]

 

실내 전시관 외곽에는 지그재그로 이동하면서 관람 할 수 있도록 고구려 시대의 왕계보와 생활상들을 타일벽화로 표현해 놨다.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 

 

모든 역사유물 전시관이 그렇듯 이곳도 고구려시대의 문화, 역사, 생활상 등을 전시해 놨다. 그 중에 단연 으뜸인 것은 국보 제205호로 지정된 충주 고구려비이다. 

이러한 비석이 왜 국보가 되었을까...

첫째, 우리나라의 유일한 고구려 비석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둘째, 5세기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셋째, 3국 간의 정치적 관계 뿐만 아니라 문화적 교류와 영향을 알 수 있다.

넷째, 고구려와 관등조직이나 인명표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다섯째, 고구려에서도 아두식 표기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안내문]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의 중앙탑으로 이동한다. 30분 자유시간이 주어졌으니 바쁘게 주변을 둘러 보기로 하는데 이곳 충주박물관을 관람할 시간은 없을 것 같다.

 

이곳 중앙탑사적공원은 중앙탑 뿐만이 아니라 탄금호(조정지댐으로 인해 충주댐에서 흐른 물이 이곳에 호수를 이루고 탄금대가 있어 붙여진 명칭으로 알고 있으며, 2013년 세계 조정 선수권 대회가 열리기도 했음) 공원 및 호수 강변을 따라 각종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볼거리도 있고  풍경도 좋아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중앙탑)

통일신라시대의 7층석탑으로 탑이 세워진 중원의 위치가 우리나라 중앙부이므로 속칭 중앙탑이라고도 한다.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7층석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탑이다. 낙수면은 완만하게 하고 추녀는 수평으로 만들어 웅장하면서도 날렵한 균형미를 이루고 있다. 탑 주변에서 기와편이 발견되고, 석탑 앞에는 석등의 하대석으로 추정되는 8각연화대석이 있어 이 일대를 사지로 추정하고 있으나 기록이 없어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음 백과]

 

중앙탑에서 다시 버스로 탄금대에 도착, 2시간 30분 자유시간을 주어 이곳을 둘러보며 점심식사를 하도록 한다. 오늘 산행 신청을 한 목적은 산행보다도 사실 이곳 탄금대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현장을 둘러 보기 위한 목적이 컸으므로 세세히 살펴 보기로 한다. 

 

▽ 탄금대는 대문산(106.9m)에 위치해 있으며 입구에는 탄금대 유래가 설명되어 있는 간판석이 세워져 있다.

 

도로를 따라 위로 올라오니 넓은 공간과 주차장이 자리하고 있고...

 

탄금대 공원 안내 조감도의 시설물들을 살펴보면...(사진 위 클릭)

 

▽ 먼저 탄금대사연노래비가 눈에 띄는데 '탄금대사연'은 충주mbc PD였던 이병환이 노랫말을 쓰고 향토작가 백봉이 곡을 붙여  68년 충주출신 가수 백진주에 의해 처음 불리어졌가 이후 가수 주현미에 의해 리바이벌 발표된 노래로 2005년 6월 29일, 노래비가 건립되었다.

 

1956년 건립된 탄금대 충혼탑에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와 6·25전쟁 전사자 등 1932위의 영령이 봉안돼 있다.

팔천고혼위령탑은 1592년 4월 28일 도순변사 신립이 휘하장졸 8천여 명과 함께 이곳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왜적을 맞아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전적지임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이다.

탑 상단에 형상화 횐 혼불은 산화한 영령들을 추모하는 모습으로 조국을 지키는 수호신을 의미하고, 아래부분의 신립장군과 4인의 군상은 죽음으로써 국토를 지키는 불굴의 충정을 나타내고 있다. 또, 바위와 바닥부분의 원반모양은 탄금대를 싸고 도는 남한강과 달천의 물결모양을 살려 구성한 것이며, 탑 뒷부분의 부조는 당시의 탄금대 전투를 생생하게 느낄수 있도록 표현하였다. [안내문]

충주시가 지난 2003년 3억7천500여만원을 들여 높이 15m, 기단부 지름 18m 규모로 건립했다.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고 강을 따라 숲길도 좋아서 운동삼아 관광객은 물론 일반 시민이 즐겨 찾는 장소일 것 같다.

신립장군은 달천평야에서 조총과 긴칼을 무장한 왜군이  좌, 우 협공작전으로 기마병이 수세에 몰리고 결국 이곳 대문산으로 밀려 이곳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을 것으로 생각하면 선혈이 낭자한 장소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동천 권태응(洞泉 權泰應)

본관은 안동이며 호는 동천(洞泉), 충주시 칠금동에서 태어났다. 1932년 충주공립보통학교, 1937년 서울 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와세다대학 문학과에 입학하였다. 평소 일본인들의 부당행위에 불만을 가지다가 항일운동에 나서게 되었는데 일본경찰에 입건되어 1학년도 마치지 못하고 퇴학당하였다. 그 후 제일유학생들을 모아 독서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하다 1939년 스가모 형무소에 투옥되었다. 형무소에서 폐결핵을 얻어 1940년 6월 출옥하여 귀국하여 치료를 받다 병세가 악화되어 고향인 충주에 내려와 야학과 소인극(素人劇)을 통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광복후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전쟁중에 약을 구하지 못해 1951년 별세하였다.

권태응이 남긴 대부분의 시가 애국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감자꽃」도 일제의 창씨개병에 맞선 작품이라는 평이 있는데 동시(童詩)인 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윤석중선생 등의 후원으로 1968년 5월 5일 현위치에 감자꽃 노래비를 세웠으며 정부에서는 권태응선생의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하여 2005년 8월 15일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안내문]

 

남한강을 따라 잘 조성된 자전거길로 라이딩해 봄도 좋을 듯 하다.

 

고풍스러운 탄금정도 비극의 날과는 달리 멋져 보이는 것은 옛 조상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현시대에 살면서 우리가 누리는 복(福)일 것이다.

 

왼쪽으로 탄금대교, 가운데 19번 지방국도의 우륵대교가 보이고 왼쪽 멀리 장미산에서 조망했던 보련산이 보인다. 북쪽 방향으로 흐르는 물은 이곳에서 왼쪽의 달천과 만나 팔당호를 지나 북한강과 합류된다.

 

오른쪽 동쪽 방향의 충주댐에서 서쪽으로 흐른 남한강은 이곳에서 휘돌아 북서쪽으로 흘러 여주, 양평을 거쳐 북한강과 합류하게 된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이 왜군의 손에 넘어 갔다면 한양과의 거리가 멀지 않아 조정은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1592년(선조 25) 4월 14일부터 일본군이 조선침략을 감행해, 부산·동래 등을 함락하며 북상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신립(申砬)을 도순변사로 임명해 이를 방어하도록 했다. 신립은 충청도의 군현 병력 약 8,000명을 단월역(丹月驛)에 주둔시키고, 4월 24일 종사관 김여물(金汝岉) 등을 이끌고 조령(鳥嶺)으로 진출했다. 이때 김여물은 조선군의 수가 일본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인 만큼 조령의 협곡을 이용하여 기습작전을 할 것을 신립에게 권했다. 그러나 신립은 일본군이 보병인 데 반해 아군은 기병이므로 기병력을 이용할 수 있는 평지에서 공격할 것을 주장했다. 그날 상주(尙州)에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휘하의 일본군에게 패배한 장수 이일(李鎰)이 단신으로 탈출해왔다. 신립은 이일에게 전공을 세우라고 당부했다. 4월 26일 이른 아침에 군사를 거느리고 충주성과 5리 정도 떨어진 탄금대로 가서 낮은 저습지에 배수진을 치고 적이 진출하기를 기다렸다.

한편 상주전투에서 승리를 한 고니시의 일본군대는 4월 28일 충주에 도착하여 정오경부터 한 부대는 산을 따라 동으로 침입해오고, 다른 부대는 강을 끼고 내려오면서 공격해왔다. 이에 신립은 기병을 출동시켜 치열한 접전을 벌였으나 대패했다. 상주에서 패주했던 이일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다시 도망쳐 패전사실을 조정에 보고했고, 이에 왕은 급히 한성을 떠났다. 이 싸움에서 승리한 일본군은 충주성에 들어갔으며, 이튿날 뒤따라 북진하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휘하의 일본군과 합세하여 한성방면으로 30일부터 북진하기 시작했다. [다음 백과]

신립장군은 이곳 열두대에서 투신하여 순국했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열두대 아래의 절벽... 투신하여 순직하였다면 바로 이곳으로 추정된다.

 

▽ 신립장군순국지지(申砬將軍殉國之址)

선조25년(1592년) 4월28일 팔도도순변사 신립장군이 종사관 김여물과 더불어 조총포대의 십수만 왜적을 창 검 궁시의 팔천군사로 맞아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하자 김공과 함께 적진에 돌입 수십적을 격살한뒤 탄금대 이곳 열두대에서 향년 47세를 일기로 애석하게 위국 순절하시다.  [신립:1546 (명종 1) - 1592 (선조 25)]

 

▽ 충주댐 방향의 남한강 풍경

 

▽ 렌즈를 좀 더 당겨 보니 왼쪽으로 얼마전에 갔었던 천등산과 오른쪽 인등산이 보이고...

 

▽ 오른쪽으로 못 올라 본 지등산까지 조망된다.

 

▽ 우륵(于勒)선생의 탄금대(彈琴臺)

이곳 탄금대는 신라 진흥왕(551) 때 당대의 악성(樂聖)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탄주(彈奏)하면서 음악을 연마하던 곳이다. 선생은 원래 가야국(加倻國) 사람으로 가야금을 만들고 12곡을 지었으며 신라에 귀화(歸化)하여 왕의 배려로 국원충주(國原忠州)에 살면서 계고(階古)에게는 가야금을, 법지(法知)에게는 노래를, 만덕(萬德)에게는 춤을 가르쳤으며 이때 가야금곡이 궁중악으로 되었다. [안내문]

 

▽ 충장공신립장군순절비각(忠壯公申砬將軍殉節碑閣)

 

▽ 대흥사(大興寺)

이 대흥사가 자리 잡은 산을 대문산이라고 불러왔으나, 당시 가야국의 악성 우륵이 이곳에 와서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 하여 이후로부터는 탄금대라 불렀다. 

본 대흥사는 전설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 때의 창건주 미상의 용흥사가 있었던 곳으로 거란족의 난을 당하여 사찰이 소실되었던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용흥사가 폐허 된 곳으로 근 천년의 세월이 흐름에 있어서 뜻있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해 오던 바, 법우 큰 스님께서 이에 뜻하는 바가 있어 1956년 3월 이 터에다 대흥사를 재건하게 되었고, 관음도량으로써 많은 분들을 교화하셨다. 하지만, 1968년 10월에 불의에 화재로 인하여 대웅전이 소실됨으로 1969년 5월 법우 큰 스님께서 다시 뜻을 세워 대웅전을 중창하게 되었다. 후에 2대 주지 지정 큰 스님께서 1994년 6월 미륵부처님을 모시고 2003년부터 대웅전 불사를 시작으로 약사전, 산신각, 종각, 법고각, 요사체불사를 마무리하셔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안내문]

 

▽ 탄금대를 다 돌아 본 후 원점회귀로 오늘의 일정을 마친다. 충주시내와 왼쪽으로 계명산, 오른쪽으로 남산이 보인다. 

이 시내 오른쪽이 달천평야지대로 보인다. 신립장군이 이곳 대문산에서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이 배수진을 치고 습지인 달천평야에서 기마병으로 전투를 벌여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8천의 군사가 전멸했다는 부분에 대해서 조령의 협곡을 이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작전의 실패로 수많은 군사를 잃고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느 위치에서든 수장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준다. 작금의 나라 상황도 마찬가지다. 대선이 가까워왔다. 모두가 생각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현명한 판단으로 이 나라의 국군통수권자이기도한  일꾼을  제대로 선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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