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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전라남도

[영광] 안마도

2022년 7월 23일(토)

 

전남 영광군에는 삼형제 섬으로 불리는 낙월도, 송이도, 안마도가 있다. 송이도는 얼마전에 갔다왔고 낙월도는 공지가 되나 어쩐 일인지 성원이 되질 않는다. 이번에 안마도가 모처럼 공지에 떴다. 언젠가 안마도를 가려던 계획이 조수 간만의 차로 인한 배시간을 사전에 알지 못하고 결국에는 배시간이 맞질 않아 못가게 되는 헤프닝까지 있었는데 이번에는 계획대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송이도는 향화도항에서 출발하는데 안마도는 계마항에서 출발한다. 요즘 들어 특히 섬산행에 치중하면서 무박으로 거의 산행하게 된다. 거리가 멀지만 이젠 이력이 나서인지 무박을 부담스럽게 생각한 적이 없다. 요즘 같은 열대야가 있는밤이면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리무진 버스만큼 시원한 곳이 없는데 오히려 바람막이라도 입지 않으면 추워서 잠이 오질 않는 경우이니 달리 피서가 없다. 영광군의 두번째 섬인 안마도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 보다 큰 관심으로 야심한 시각에 가방을 매고 집을 나선다.

 

∥일정표∥

· 04:30-계마항 도착 후 자유시간

· 06:00-계마항에서 안마도(외항)로 출항

· 07:50-안마도 도착 후 산행시작

·12:00-안마도(외항)에서 계마항으로 출항

· 14:00-계마항 도착 후 법성포항으로 출발

· 14:20-법성포항 도착 후 자유시간

· 16:20-서울로 출발

 

∥산행 및 트레킹 정보∥

♣ 소재지: 전남 영광군 낙월면 월촌리

♣ 코스: 안마도항-말코바위전망대-불난잔등-막봉-성산봉-뒷산-신흥봉-신기리잔등-건산-수문-안마도항

♣ 거리: 약 11.5km(산행시작-07:50, 도착-11:40)

 

∥안마도 개요∥

안마도는 전남 영광군에 위치해 있는 섬으로서 어족자원이 풍부한 칠산앞바다에 자리하고 있다.

전체 면적은 4.35㎢이고, 해안선의 길이는 37km이며 해안선이 복잡하고 서쪽을 제외한 대부분이 암석 해안을 이루고 있다. 주변에는 횡도, 오도, 대석만도, 소석만도가 있으며 안마도를 포함하여 안마군도를 이루고 있는데 이중 가장 큰 섬이다.

최고봉은 동쪽에 솟아있는 뒷산이며 조망이 무척 우수하다. 사방으로 드넓은 칠산앞바다가 보이고 북동쪽으로는 전북 부안의 위도, 동남쪽으로는 송이도 등이 조망된다.

안마도라는 이름은 "안장 안(鞍), 말 마(馬)"로서 옛날 해안에서 발견된 중국 관리의 관(棺)에서 안장한 말의 조각이 발견되었다고 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하고, 섬의 모양이 '안장한 말과 닮았다고 하여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 안마도에는 안마도항과 외항으로 두개의 항이 있는데 애당초 예정된 도착항은 안마도항이었다. 그런데 산악회에서 잘못 알고 있었는지 물때 관계로 인하여 외항에 도착하게 되고 거기서 부터 산행 및 트레킹은 시작된다. 어느 항에 도착하든 산행코스는 비슷하고 다만 외항의 방파제 길인 300여 미터를 더 걸은 정도의 차이다.

예정된 코스의 거리는 13km정도였고 07:50에 도착하여 12:00에 출항을 하니 주어진 산행시간은 정확히 4시간 정도로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을 감안하면 충분히 걸을 시간이다.

 

▽ 역시 영광군 소재인 계마항에 도착해 보니 선착장 주변은 개인 낚시배들이 출조하느라 분주하다. 1971년 12월 21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는데 주변은 다른 지역의 항과 달리 환경이 어수선해 보이고 여객선터미널도 보이지 않는다. 매표도 배안에서 이뤄진다고 하니 일단 승선하면 된다. 아마도 이곳에서는 송이도와 안마도만 운행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계마항이 속한 계마리는 예전에 말이 해변을 향해 오는 형국이라하여 마래(馬來)라고 했으며, 기후조건이 조기를 말리기에 적당해 영광굴비의 원산지로 유명하다.

 

▽ 계마항에서는 인근의 송이도, 안마도를 운항하는 여객선이 오가고 50여척의 고깃배가 기항한다. 긴 방파제는 칠산 앞바다와 동중국해로 고기잡이 나가는 큰 배들을 접안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계마항이 사람들로 북적거릴때는 3월부터 10월 사이로, 인근의 섬들이 모두 바다낚시 하기에 좋은 곳이라 많은 낚시꾼들이 몰린다. 계마항 방파제와 계마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길은 낙조를 감상하기에 더 없이 좋다.[대한민국 구석구석]

 

계마항에서 남서쪽 방향을 바라보면 작은 섬 여섯개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 작은 섬들을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사산도, 오산도, 육산도, 그리고 육산도 앞의 아주 작은여를 합해 칠산도라고 부른다. 칠산 앞바다의 칠산은 이 일곱 섬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제 때는 여기서 잡히는 고급어종을 법성포를 통해 일본으로 실어 날랐을 만큼 황금어장이다. 법성포에서 가마미해수욕장까지의 해안길은 드라이브코스로 인기를 끈다. 계마항은 가마미 해수욕장으로 가기 전 5백m 거리에 있다. 가마미와 계마 라는 지명은 예전 이 곳에 유배왔던 선비들과 연관이 있는데 가마미의 '가'는 멍에 '가'자라고 한다.' 마'는 말을 뜻하며 '미'는 꼬리이다. 이곳 해수욕장과 포구의 배경이 되고 있는 산의 지형이 꼭 멍에를 쓴 말의 꼬리처럼 생겼다는데서 가마미라는 지명이 생겨났다.[대한민국 구석구석]

 

▽ 멀리 영광대교 주탑이 보인다. 

영광대교는 전남 영광군 백수읍과 홍농읍을 잇는 다리로 2016년 3월25일에 완공된 다리다. 주탑과 주탑 간 거리인 주경간장이 320m에 달한다. 이 다리가 개통되면서 백수읍과 홍농읍간 이동할 때 소요시간이 30분 걸리던 것이 10분 이내로 줄어 지역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인근 백수해안도로, 불교도래지 등의 관광지로 진입도 용이해져 지역관광 산업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다리이다.

 

▽ 계마항 북쪽으로  한빛원자력발전소도 보이고...

 

▽ 해무로 인해 06시 11분인 현재시각에 구름 위로 해가 떠오른다. 안마도 가는 동안에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북쪽 방향의 부안에 위도와 남쪽 방향으로 송이도 외에는 주변 경관이 없는데 그마저도 시계가 좋지 않아 볼 수 없으니 일찌감치 배안에누워 잠을 청한다.

 

▽ 꿀잠을 자고 갑판에 나와 보니 출항한지 한시간 반만인  7시 30분 현재시각에 눈에 들어오는 대석만도의 풍경이다. 안마도까지는 20분 정도 남았으니 거의 다 온 셈이다.

 

▽ 안마도 역시 한눈에 들어온다. 통신탑을 보니 최고봉인 것 같다.

 

▽ 왼쪽 철탑이 보이는 섬이 오도이고 이어져 보이지만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진 안마도 사이로 배가 우틀하게 된다.

 

▽ 오도와 안마도의 똥섬 사이로 배가 운항되고 아래의 똥섬은 아무래도 그리 보여서 붙여진 이름 같다. 사람 똥 같지는 않고 안마도 이니 말똥이라고 하자...그럼 말똥섬이라고 불렀어야 하나? 

 

▽ 똥섬치고는 유기물이 많아서인지 그런대로 볼만하다.

 

▽ 멀리 왼쪽으로 죽도가 보이고 흰등대로 보인다. 저곳에서 또 우틀하면서 외항으로 접안하게 된다. 끝쪽의 말코바위가 구멍이 뚫린 상태로 보인다.

 

▽ 안마도는 섬의 생김새가 말안장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역사에 처음 이름을 올린 것도 말과 관련된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영광)에 “안마도(安馬島)는 암·수말 아울러 33필을 방목한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말 사육이 중요한 국가정책이었으며 말의 숫자가 나라의 부강함을 결정할 만큼 전국 방방곡곡에 말 목장을 설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목장이 설치된 섬이 130여 개로 추정된다고 한다.[네이버지식백과]

왼쪽 끝 말코바위에서 가운데 볼록나온 긴독잔등을 거쳐 오른쪽 막봉과 그 뒤로 살짝 보이는 성산봉까지의 모습이 보인다.

 

 이곳은 천혜의 어장터를 가지고 있음에도 어업의존도가 낮고, 건산(145), 뒷산(177), 막봉(167) 능선을 개간해 농사를 지으며 생활해 온 ‘해변산중’의 섬이다. 안마도는 법성포 계마항에서 서쪽으로 약 36.4km 떨어져 있으며, 안마도 본섬을 중심으로 인근의 죽도와 횡도·오도·석만도·소석만도 등의 유인도과 함께 안마군도를 이룬다. [네이버지식백과]

가운데 막봉에서 오늘은 시간관계상 코스에 해당되지 않는 똥섬 못미쳐 오른쪽 봉우리에 있는 문끝전망대는 가보지 못하게 될 구간의 모습이다.

 

 죽도는 1980년대 방파제를 쌓아 안마도 본도와 연결되었으며 1973년도에 8가구 44명, 횡도 5가구 13명, 오도 16가구 136명, 대석만도 30가구 214명, 소석만도 7가구 43명, 어미섬인 안마도는 253가구 1,409명이 살았으나 현재 대석만도에 14가구, 죽도와 횡도에 1가구가 살며 소석만도와 오도는 무인도가 되었다.[네이버지식백과]

 

오도 전경

 

 횡도

 

외항의 방파제와 연결되어 있는 안마도의 말코바위가 마치 코뿔소처럼 다가 온다. 능선 위에 전망대가 보인다.

 

  배가 외항으로 들어가기 바로 전에 담은 말코바위 전면의 전경

 

반대편 측면을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구멍 뚫린 동굴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드디어 외항에 1시간 50분만에 도착...4시간 10분간 산행 및 트레킹을 마친 후 12:00시에 이곳에서 다시 계마항으로 출발하게 된다.

 

지난번 여수의 손죽도도 그랬지만 건산을 지나 배 뒤로 보이는 건산과 암봉으로 해서 하산하여 이곳까지 오려면 해안을 끼고 거의 한바퀴를 훨씬 넘게 도는 거리다.

 

방파제 보강 공사를 하는 방파제 위의 도로를 따라 트레킹은 시작되고 일부 산우들은 월촌리 안마도항으로 들어가는 트럭을 타고 이동하여 인증부터 한다고 한다. 트럭을 탈 수도 있지만 그렇게 편하게 다니려면 애초에 산행준비는 하지도 않았다.

 

말코바위에 접근하여 살펴 보려고 했지만 이쪽에서는 접근할 수 없는 것 같아 포기한다.

 

산을 오르면서 뒤를 바라 본 외항 풍경...죽도로 부터 뻗은 방파제의 흰등대와 이쪽의 빨간등대와 대비되면서 아름다운 풍경의 모습이다.

 

내항인 안마도항 방향으로 바라 본 풍경으로 해안 절경이 볼만하다.

 

당겨 본 해안절경

 

▽ 말코바위 전망대로 향하는데 도로가 붉은색으로 친환경적으로 포장이 된 느낌이다.

 

▽ 말코바위전망대에서 바라 본 오도와 횡도 사이로 우리를 태우고 왔던 카페리호가 힘차게 달려 나간다.

 

▽ 다시 한번 조망해 보는 죽도를 배경으로 한 방파제의 모습... 

 

▽ 죽도를 당겨보고...

 

죽도는 1980년대 방파제로 본도와 연결되기 전까지는 배로 오갔던 섬이다.

 

▽ 말코전망대에서 다시 뒤돌아 나와 임도길에서 갈라진 등산로입구로 접어 들면서 본격적인 산행에 돌입한다. 차로 이동한 산우들 외에 뒤따라 오는 산우들을 앞서 홀로 서두르지 않으면 아무래도 오늘 일정에 차질을 빚을 것 같아 선두로 치고 올라간다.

 

▽ 등산로는 대체로 완만한 편이며 잘 정비되어 있어 산행하기가 수월하다. 첫 번째 봉우리인 긴독잔등에 올라섰다. 잔등이란 산봉우리나 고개의 뜻을 가진 방언이다.

 

이러한 숲사이를 지나다 보면 기분도 상쾌해 질뿐만 아니라 마음이 편안해 짐은 산행을 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겠다.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산게가 산책을 나왔나 보다. 보통 모든 게들은 바닷가에서 사는데 이 넘들은 이렇게 산 봉우리까지 올라와서 사는 걸 보면 신기하다. 산란기 때마다 바닷가에서 산란하고 이곳까지 올라 오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 산행이 결코 힘들다고 할 수도 없겠다. 

 

▽ 산행시작 30여분이 되어 이곳 불난잔등에 내려섰다. 임도길이 마을로 내려가는 고개이다. 이곳에서 맞은 편 능선으로 바로 올라선다.

 

문끝전망대로 넘어가는 고개방향

 

통신탑 방향으로 이동,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파란색 리본만 따라가면 길이 헷갈릴 이유가 없다.

 

등로옆에 핀 <개곽향>이 무리를 이뤄 꽃이 만개했다.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지만 모처럼 만에 본다.

 

안마도에는 특히 꾸지뽕나무가 많은데 돌배나무 군락지도 보인다. 이쯤 어디서 동쪽을 조망하면 송이도가 보일 방향인데 전혀 조망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조망이 터진들 오늘 같은 날씨에는 시계가 좋지 않아 보기는 힘들겠다.

 

산넘어잔등에 도착, 산 전체가 거의 염소똥으로 보이는 배설물이 많고 지린내와 노린내가 진동하는 곳도 있다. 얼핏 나를 보고 놀라 도망가는 녀석을 보니 검은색이 아닌 것으로 보아 노루나 고라니라는 생각에 괜히 염소만 못마땅하게 생각을 한 내가 잘못이다.

 

직감적으로 식용 가능한 버섯으로 보이는데 이걸 채취해서 배낭에 집어 넣을 것이 엄두가 나질 않아 그냥 패싱...

 

급경사를 올라 제법 높아 보이는 봉우리라 생각하고 오른 옹막골잔등이다. 정상석은 없으나 이곳이 막봉으로 추정된다. 이곳 벤치에 앉아 잠시 목을 축이고 간식을 먹는다. 뒤로 오는 산우들은 어디쯤 오는지, 먼저 트럭을 타고 마을로 진입한 산우들은 어디를 들머리로 산을 오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예정된 코스로 홀로 이동할 뿐이다.

 

하산길에 갑자기 서로 마주친 짐승은 다름 아닌 꽃사슴이다. 예닐곱 마리가 나를 응시하더니 조금 있다가 경고소리를 내면서 다급하게 도망친다. 그동안 등로주변 곳곳이 반들반들하고 똥이 많은 것은 염소도, 고라니도, 노루도 아닌 꽃사슴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마을에서 방목하는 것인지 아니면 옹진군의 굴업도에서 처럼 우리안에서 키우다가 탈출하여 야생으로 살아가는 꽃사슴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많은 무리들이 사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화려함으로 눈에 잘 띄는 산게와는 달리 노루똥 사이로 위장이 잘 된 풀무치가 웅쿠리로 있다. 어릴 때 민둥산에서 많이 보았던 곤충으로 잡아서 놀기도 하고 구워 먹기도 했었는데 오랜만에 보니 그 때의 추억이 그새 그리움이 된다.

 

안마도 산행이 그리 힘들지는 않으나 잡목으로 인해 좌우 조망이 안되어 답답하고 지루한 감이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겨우 마을이 보이긴 하나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말코바위전망대으로 부터 불난잔등으로 이어지는 임도는  마을로 넘어 가는 첫 번째 고개이고 그곳 삼거리에서 도상에서는 표시되지 않은 안마도의 순환도로로서 이곳에서 마을로 넘어가는 두 번째 고개이다. 이곳은 왜 잔등이란 불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먼저 트럭을 타고 이동한 산우 두 명을 만났다. 마을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이곳까지 이동한 모양이다. 이분들은 산행지의 중간쯤에 올라와 있어서 왼쪽으로 가야할지 오른쪽으로 가야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다. 다른 분들은 어디로 갔냐고 물으니 나와 반대방향인 신기리잔등 쪽으로 가서 이쪽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양이다. 모두 산행지를 중간에 잘라먹고 산행하는 모양새여서 저 분들은 금일 온전하게 산행하기는 틀렸다는 판단이다.

 

지금까지 산행한 능선 동쪽으로 섬의 순환도로로 나 있는 임도로 비록 폭은 좁지만 승용차로도 드라이브 가능한 도로이다. 이곳 고개에서 문끝전망대, 말코바위전망대, 외항으로 갈 수 있는 도로이다. 물론 도상에는 표시가 되어 있질 않아 처음 산행하는 사람들은 무슨 도로인가 의아할 수밖에 없다.

 

고개에서 마을로 내려 가는 포장도로

 

고개에서 다시 가파른 능선을 오르는데 난간 로프를 설치를 해 놓을 정도로 안마도에서는 가장 험한 산인 것 같다. 잔돌들이 많다. 이렇게 돌들이 많은데서는 지네가 많이 산다. 예로부터 지네는 관절염, 오십견과 신경통 등 고질적인 통증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지네를 잡는 시기는 오뉴월로 나무뿌리와 돌 틈 사이에 숨어 지내다가  5월이면 산란기가 되어 땅 위로 올라오고 그 뒤로는 다시 숨어 들어가 잡기가 어려워 진다고 한다.

이곳 안마도는 지네가 많아 이걸 잡아 생계에 보탬이 된다고 하니 생지네, 마른지네, 지네주로 판매하는데 지네주가 인기라고 한다. 한약재로 마리당 3,000원에서 5,000원으로 팔리고 있고 50마리를 50도의 독주에 담은 1리터짜리 한병에 15만원 가량에 판매된다고 하며 인기주라고 하니 지네가 이곳에서는 중요한 수입원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곳이 뒷산의 정상인가 보니 아닌 것 같다. 해발 137m인 성산봉이다. 

 

다시 하산길에 매끈한 열매가 찢어질 듯 달려 있어서 뭔가 자세히 살펴보니 산복사나무의 열매(개복숭아)다. 보통 이 시기이면 벌레가 다 먹고 떨어졌을 텐데 아마도 과수용 복사나무의 열매가 이곳에 야생화된 무늬만 개복숭아인 듯 하다.

 

드디어 안마도에서 최고봉인 뒷산(179m)에 다다랐다.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어 오른쪽에 나 있는 우회 등로를 이용하여 통과하게 된다. 그나저나 명색이 최고봉인데 뒷산이란 이름이 참 거시기 하다. 다른 봉우리 이름은 모두 산 이름을 갖고 있는데 뒷산이라니, 만재도에 갔을 때 마을 뒷편의 산들을 모두 오르고 마을 앞쪽의 산을 올랐더니 앞산이라고 누가 적어 놓았던 기억이 새롭다.

 

당터에 도착했다. 이곳은 수령이 꽤 된 동백나무 숲으로 이뤄졌는데 벤치도 있고 그늘이 짙어 쉬고 가기에 안성맞춤이다. 이곳 당터에서 트럭을 타고 먼저 마을로 이동하여 인증부터 한 나머지 산우들을 만났다. 아마도 마을에서 신기리잔등으로 부터 오늘 코스와 반대 방향으로 산행을 하다 이곳에서 만난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은 철마를 섬기는 전통을 갖고 있었다. 또 마을마다 각각 독립된 당을 가지고 있으며 한때는 세 개의 마을이 당을 연합하여 당산제를 올리기도 했다. 안마도의 당산제는 1969년에 사라지게 되었다. 말과 연관된 섬답게 안마도의 당제에 모시는 신체는 철마였다. 안마도에서 철마를 당신(堂神)으로 모시기까지 사연이 있다.

 

곰몰(동촌)에 살던 신씨 할머니 꿈속에 한 장군이 나타나 ‘나는 중국의 장수였으나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죽어 그 유품이 바닷가로 밀려와 궤 속에 있으니 이를 건져다 산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달라’고 했다. 할머니가 마을 앞 갯가에 나갔더니 정말로 중국 돈과 철마가 든 궤짝이 밀려와 있었다. 신씨는 동네 주민들과 함께 뒷산에 철마를 모시고 섣달 그믐날 밤에 제사를 지냈다. 그 후 할머니가 돌아가자 아래 작은 당산에 모셨다고 한다. 당제를 모신 다음날(정월 초하루) 산에서 내려와 곰몰, 신기, 월촌 등 마을의 유사집(당제를 준비한 사람)을 돌며 뫼구굿을 쳤으며, 닷샛날 당산제를 지내고 보름에는 세 마을 주민들이 모여 헛배를 만들어 제물을 싣고 풍어굿을 한 다음, 액을 쓸어 담아 먼 바다로 띄워 보냈다. 이렇게 거의 한 달 동안 이어지는 마을제의는 1960년대 말 중단되었다. 당시 큰 당산에는 네 필의 철마를 신체로 모셨다고 전한다. 조선조까지 국가에서 필요한 말을 사육했던 흔적이 남이 있는 셈이다. [네이버지식백과]

 

뒷산에서 하산하니 골몰잔등이 나온다. 안마도에 안마제라는 신기저수지가 나오는데 그쪽으로 하산하는 길이기도 하다.

 

하산길에 본 누리장나무로 마치 오동나무와 같이 자란 크기는 처음으로 본다.

 

이러한 편안한 등로가 참 많다. 안마도의 산행은 이러한 곳을 걸을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걷다 보니 왠 울타리 문이 나온다. 이 울타리문을 나와 비록 홀로 걷는 길이지만 멀리 보이는 건산으로 계속 진행하기로 한다.

 

모처럼 만에 북쪽으로 보이는 대석만도, 소석만도를 조망해 본다. 시계가 별로 좋지 않지만 시원한 느낌을 받아서 좋다.

 

 신기리 잔등이 나온다. 이곳 잔등에서 마을로 내려갈까 잠시 망설이다 계속 진행하기로 한다. 트럭을 타고 왔던 산우들이 이곳에서 부터 산행을 한 것 같다. 후에 알고 보니 내 뒤로 오는 모든 산우들은 시간관계상 이곳에서 모두 마을로 하산하였다고 한다.

 

산우들과 함께 산행을 했더라면 식사도 같이 했을텐데 그리 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 제 시간에 원하는 곳까지 산행하지 못할 것이란 예상 때문이었는데 후에 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다. 녹음이 짙고 바람까지 시원하게 불어주는 이곳에서 잠시 간식을 먹고 다시 출발하기로 한다.

 

오늘의 마지막 산행지인 건산 전위봉에 올라 앞을 조망하니 지금까지 터지지 않던 조망이 여기서 터지면서 오늘 한명도 이곳을 거치지 않고 나만이 걸어서인지 눈앞의 풍경들이 특별히 다가온다.

 

장쾌하게 펼쳐진 능선 끝쪽으로 건산이 보인다. 그리고 그 왼쪽 아래로 죽도가 살짝 보인다.

 

능선의 푸른초장에서 다시 내려다 본 진행방향...암봉도 좋지만 이러한 초장을 걷는 기분은 또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북쪽으로 무인도와 함께 해안절경이 펼쳐지고...

 

안마도항이 있는 월촌리 마을전경을 당겨 봤다.

 

뒤를 돌아본 풍경으로 가운데 뒷산이 까마득히 보인다.

 

고사리밭을 이룬 건산 앞쪽으로 살짝 암봉이 보인다. 시간을 보니 10시 15분으로 앞으로 한시간 반가량 남은 시간으로 배시간인 12시까지 갈 수 있겠냐는 생각에 긴장감이 돌면서 더 서둘러 진행한다.

 

다시 한번 월촌리 마을 전경을 당겨 보고...

 

암봉에 다다랐다. 저 위에서 보는 죽도의 풍경이 못내 궁금했기에 온 것이다.

 

암봉을 오르고...

 

아래의 죽도 방향을 내려다 보니 멋진 풍경이다. 오늘 산행내내 조망을 못해서 답답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해결이 된다.

 

조금 더 당겨보고...

 

저 죽도까지 한바퀴 돌면 3킬로 정도는 더 소요되는데 그 누구도 4시간에 저곳까지 둘러보고 올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본다. 물론, 단순히 걷기만 하고자 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만한 이유도 없다.

 

저곳 외항까지 가려하면 정말 까마득히 보이는 거리다. 그래도 가야만 한다. 배시간을 놓쳐 1박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조차 싫다.

 

건물도, 사람도 없는 쓸쓸해 보이는 외항

 

암봉에서 내려서서 포장도로를 따라 이동하려고 하니 시간도 그렇고 발바닥이 고생일 것 같아 왔던 산길로 뒤돌아 부지런히 하산하여 결국 포장도로를 단축하여 내려섰다.

 

마을은 가까워 보이나 물건너 저곳은 결국 돌아가야 하는 먼 길이다.

 

발바닥은 포장도로의 열기에 더 뜨거워지고 길옆에 먹음직스럽게 익은 멍석딸기에 눈이 가 바쁜 걸음에도 한움큼 따서 입에 넣으니 새콤달콤 목이 축여진다.

 

드디어 마을부근의 수문에 도착...시간을 보니 배시간 안에 도착할 것 같아 조금은 안심이 된다.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 앞바다 풍경

 

마을 안쪽 해안가 풍경도 잔돌은 있지만 어느 해수욕장 못지 않은 멋진 풍경이다.

 

왼쪽 안마도항이 보이고 멀리 횡도가 보이는  월촌리 마을앞 풍경이다.

 

월촌리 마을에 있는 법성포초등학교 안마분교장(2022.3.1~2023.02.28 휴교) 주변을 둘러보려 했으나 패싱... 곧게 뻗은 해변길을 따라 멍때리며 걷는다. 안마도항에 있는 표지석에서 인증을 하고 바로 마을 독립가옥으로 오르는 소로길(도상에 표시되어 있지 않음)을 모르면 이곳까지 다시 와서 왼쪽으로 이어진 포장도로를 따라 외항으로 가야하니 적어도 1km이상은 더 걷게 되므로 관심을 두어야 한다.

 

반대편에서 본 마을앞 해변

 

드디어 안마도항이 있는 마을에 다다랐다. 아직 산우들이 보이질 않는다. 저 마을에서 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산행을 하고 있는 것인지, 외항에 모두 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안마도항의 마을에 도착하니 정자가 놓여 있는데 그곳에 처음에 나하고 함께 걸었던 산우들이 쉬고 있으면서 나보고 배신자라고 놀려댄다. 반갑기도 하면서 미안한 생각도 들지만 따라오지도 못하면서 성실히 걷고 온 사람한테 아무리 농담이지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아쉬운 순간이다.

 

안마 어민회관이 잘 지어져 있어 화장실이 있나 살펴보니 문이 굳게 닫혔고 사용한지도 꽤 오래된 듯 하다. 아마도 코로나 발생이후 사용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칠산 바다에서 조기가 많이 잡힐 때는 안마도에서도 파시가 열렸으나 파시가 사라진 때가 1970년대 초반이었다고 하니, 벌써 50년이 된 셈이다. 칠산 바다에서 조기가 사라지고 그 다음은 조기 사촌격인 부서가 많이 나던 시절, 현재의 여객선터미널 부근의 월촌리 낫바위(광암, 넓은바위) 근처에 20여 호 술집이 있었는데 그 중 10여 호에 색시들이 있었다고 한다. 부서와 함께 아지(전갱이)도 많이 잡혔는데 2~3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바다와 섬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온갖 인간사가 뒤엉킨 파시가 이루어졌다. 풍선을 타고 여수, 완도, 경상도 배들과 함께 일제시대에는 일본 배들도 많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주로 농사와 축산을 많이 하였고, 논이라고 해야 월촌리와 신기리 일대의 사구를 막고 석호를 개답한 작은 농지가 유일하고 겨우 10여 호만이 어업에 종사할 만큼 해변산중에 속한 동네였다고 한다. 지금도 이러한 산업 구조가 크게 변동이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황금 바다를 지척에 두고도 외지배들이 판을 친 셈이다. 칠산어장에 조기가 많이 잡혀도 너무 가난하여 배를 마련할 여건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지속된 파시 때문에 일시적으로 흥청거리기도 하였지만, 세상을 향해 본격적으로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 안마도항이 국가어항(3종 어항)으로 개발되면서부터이다. 이때 방파제, 물양장과 선착장을 만들면서 항구를 확장시켰다. 주변 해역의 선원들이 이곳에 와서 바람과 파도를 피하고 그물을 손질하며 휴식을 취하자 이곳 주민들도 배를 장만하여 고기잡이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네이버지식백과]

 

인증 장소도 다른 산우들 아니면 어디에 세워져 있는지 한참 헤멜 뻔했다. 인증이란 남들이 찍으니 한번 와 본김에 찍을 뿐,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고  말코바위 한장이면 족하다.

옛날부터 안마도에는 그 섬사람들끼리만 혼인을 했다고 한다. 같은 면인 송이도나 낙월도 사람들과는 섬이 그렇게 멀지 않지만 서로 혼인을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이었다. 그래서 다들 이 섬에 태어나서 이 섬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다가 죽어서 안마도에 묻혔다. 작은 섬에서만 혼인을 하다 보니 팔촌 간에 결혼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말은 들려도 정작 그런 경우는 없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좁은 지역에서 다들 친척이며 매형, 외삼촌, 이모, 형수이기도 했다. 이곳에는 강씨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 당시는 법보다 주먹이 우선인 세상이어서 주먹을 잘 쓰는 사람이 어른이었다. 다른 성을 가진 사람은 큰소리를 못하고 살았는데 다른 성을 가진 사람과 싸움이 나면 사촌, 육촌까지 덤벼드니 이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네이버지식백과]

 

이제 안마도항을 마을 바로 뒷편의 샛길로 해서 임도로 접어 들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바람도 별로 없어 많은 땀을 흘렸으나 안마도항 어느 집에 들러 양해를 구하고 바깥의 수도물에 등목을 하고 옷을 갈아 입어서 인지 외항으로 가는 길이 상쾌하다.

 

귀항길에  오늘 있었던 일을 되돌아 보며 술 한잔이 귀해 한방울도 아껴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니 1시간 50분이 언제 지나갔는지 금새 계마항에 다다랐다. 내가 속한 산악회에서 왼쪽 여성분이 71세로 가장 많고 오른쪽 남성분은 70세로 80세 되신 분도 있으니 명함을 내밀지는 못하지만 여하튼 이와같이 대단히 열성을 가진 분들이 있기에 모두가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아침에 출발했었던 계마항에 도착, 귀경길에 오른다. 안마도를 갔다온 분들은 대부분 볼 것이 없다고 말한다. 오늘 같이 덥고 습한 날 산행하노라면 고생이고 대충 인증장소에서 인증이나 하자고 들면 정말 볼 것이 없다는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좀 더 관심을 갖고 섬에 대한 역사나 문화, 전통, 특산물 등을 공부하면 그 섬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의 생태 등 좀 더 넓게 환경적인 요인을 살펴 보면 느끼거나 볼거리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늘 다녀 본 안마도는 나에게 만큼은 볼거리가 풍성하고 안마도에 몰랐던 지식을 알게 되어 그 어느 섬보다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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