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일(일)
예년에는 7월에 장마가 끝나도 8월 초에 더 비가 오는 경우가 많아 한 여름의 더위를 식혀줬는데 올해는 장마기간도 짧고 별로 비도 오지 않아 더욱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연이어 34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지난 2주간은 무리하지 않기 위해 산행을 접었는데 오늘은 꼭 가보고 싶은 산행지가 공지되어 답답함도 풀겸 폭염의 부담을 안고 떠나기로 한다.
2019년도 봄에 광양의 매화마을 뒷편의 쫓비산을 올랐다가 섬진강을 경계로 한 건너편 북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하동의 성제봉이란 것에 관심을 두고 기회가 되면 올라보겠노라 한 것이 3년이 훌쩍 넘었다. 역시 쫓비산과 함께 한국의 산하 인기 300대 명산에 포함되는 산으로 최근에는 구름다리까지 멋지게 설치되어 더욱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계곡의 물줄기는 기대할 수 없는 산으로 얼마나 폭염을 이겨내며 산행할 수 있을까 다소 염려되는 가운데 전국이 비가 온다는 소식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배낭을 멨다.
∥산행정보∥
♣ 소재지: 들,날머리- 경남 하동군 악양면 매계리 159-1, 정상-경남 하동군 화개면 부춘리 산 1
♣ 산행코스: 매계리-청학사-수리봉-성제봉-수리봉-청학사-매계리
♣ 산행거리: 10km(출발: 11:08, 도착: 17:30)
∥성제봉 개요∥
성제봉은 경남 하동군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서,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남쪽으로 뻗은 남부능선 맨끝에 우뚝 솟아 있다.
전체적인 산세는 능선이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으며, 산세가 웅장하고 신선대, 통천문 등 각종 기암괴석과 암릉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정상부 능선에는 철쭉이 근락을 이루고 있어서 매년 5춸 중순이 되면 온산이 빨갛게 물든다.
또한 해발 900m인 신선대에는 총길이 137m, 폭 1.6m인 '구름다리'가 건설되었는데 기존의 출렁다리를 철거하고 21년 5월 20일에 개통한 무주탑 현수교이다.
더불어 주능선 남쪽 끝자락 해발 300m에는 사적151호로 지정된 고소산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악양면 평사리 일대가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오는데, 이곳에는 소설 속 이야기를 재현해 놓은 최참판댁이 자리하고 있다.
조망도 무척 우수하여 서쪽으로 영호남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아름다운 섬진강이 보이고, 그 위로 우뚝 솟은 광양의 백운산이 조망된다. 동남쪽으로는 하동군 악양면 일대의 평야와 구재봉 뒤로 멀리 남해바다가 보인다.
성제봉이라는 이름은 '성스러울 성(聖), 임금 제(帝)'자인데, '성스러운 임금'이라는 뜻과은 상관없이 '우뚝 솟은 몇 개의 봉우리가 우애가 깊은 형제처럼 보인다'고 하여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참고로 '성제'는 형제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 28명이 만차가 된 리무진 버스로 들머리에 도착한 시간은 11시가 조금 넘어서다. 산행거리는 11km로 산행마감 시간은 17:20분까지 주어졌으니 6시간 20분이 주어진 셈이다. A코스와 B코스로 구분하였으나 B코스를 타는 회원은 단 1명 뿐이다.
▼ 버스로 이곳까지 오면서 대부분 지방이 비가 왔으나 이곳에 도착하니 구름 사이로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습도가 높아 역시 폭염이라 할만 하다. 나무 그늘도 없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2km지점인 청학사까지 가야한다니 첫 들머리부터 더위와 싸워야 한다.
▼ 노전마을에 접어들고...
▼ 앞으로 보이는 구름다리와 오른쪽 성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오늘 산행이 보통 고행길이 아님을 직감하게 된다.
▼ 600m정도를 10여분 만에 올라오니 노전마을 회관이 나오고...
▼ 포장도로는 계속 이어지고 왼쪽 멀리 보이는 구름다리 오른쪽으로 가운데에 위치한 성제봉은 구름에 가려서 보이질 않는다.
▼ 당겨 본 신선대와 구름다리...
▼ 약재로 쓰이는 음나무(=엄나무)를 밭에 재배하는 것은 처음 본다.
▼ 뒤 돌아 본 풍경으로 왼쪽은 칠성봉(905.8m), 오른쪽은 구재봉(773.7m)이다.
이쯤에서 한 여성 회원이 얼굴이 창백해지고 어지러움증을 호소하여 바로 하산하도록 리딩대장이 조치하는 일이 벌어져 오늘 산행이 순탄치 않겠다는 생각에 다소 긴장감이 들기도 한다.
▼ 버스 하차 지점에서 2km 거리에 있는 청학사를 38분만에 도착,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샘물을 목에 축이고 경내에서 이어지는 산행로를 따라 계속 오른다.
▼ 청학사 밖에는 삼보굴이란 작은 바위굴 속에 손바닥만한 부처가 모셔져 있다.
▼ 후에 알고보니 이곳에서 안내 이정표 대로 오르면 수리봉으로 오르는 능선길이고 왼쪽으로 오르면 계곡길인데 오늘 코스는 도상으로 분명히 계곡길이었으나 모두가 이곳 능선길로 알았는지 이곳으로 오르고 나도 아무 생각없이 뒤따라 오른다.
▼ 육산인 줄만 알았더니 청학사에서 500여 미터 오르니 바위가 나오고 본격적인 능선으로 접어든다. 온 몸은 벌써 땀으로 젖어들고 식염을 복용했음에도 이어지는 갈증으로 0.5리터 생수 4개를 휴대했는데 벌써 한개 반을 비웠으니 전체 산행시간을 계산해 보면 경험상으로 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시계를 보니 3.2km를 왔을 뿐인데 13시 34분이다. 공복이면 더 힘이 들기에 이곳 바위에 앉아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그런데 너무 덥고 갈증 때문에 그런지 음식이 먹히질 않는다. 결국 과일만 좀 먹고 다시 출발한다. 선두는 언제 갔는지 보이질 않고 내 뒤로 몇 명이 역시 힘들어 하며 기를 쓰고 올라 온다.
▼ 첫 조망터에서 바라 본 남쪽 풍경으로 왼쪽 칠성봉과 오른쪽 구제봉이다. 그 아래로 하동군 악양면에 속한 마을들이다.
▼ 간간히 먹구름이 다가오며 시원한 바람이 불기는 하지만 열이 오른 몸을 식히기에는 역부족이다. 성제봉을 오르면 저 능선을 따라 마을 끝쪽인 곳으로 하산하게 되니 지금까지 11km라는 거리가 이렇게 멀게 느껴 보기는 처음이다.
▼ 갑자기 트랭글에서 배지를 획득한 벨이 울린다. 이곳이 성제봉 정상일리는 없는데 배낭에 넣어 둔 핸드폰을 꺼내 보기도 귀찮아서 살펴보지 않고 뭔가 잘못 됐는가 싶었다.
▼ 다시 조망하며 당겨 본 남쪽 방향의 칠성봉
▼ 칠성봉 오른쪽의 구제봉
▼ 칠성봉과 구제봉, 내가 오르는 성제봉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악양면의 마을풍경...
1개 면(面)에 이렇게 14개리가 한 계곡에 자리하고 있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악양은 청동기시대인 BC 5000년경 이미 촌락이 형성되었고, 섬진강변의 중요한 목이었던 미점도 이 시기에 성립된 것이다. 국가가 형성된 변한 시대인 BC 108년엔 미점은 대외 연락의 중요한 지점이 되었다.
신라시대는 범포로 섬진강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군사상 중요한 요지가 되어 방어기지로도 큰 몫을 차지하기도 했다. 조선후기 사창(司倉)이 있었고, 유명한 범포시장은 신라시대부터 이름났던 곳이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악양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 몸에 받은 땅이다. 평사리가 위치한 지명인 악양은 중국의 악양(岳陽, 현재의 중국 후난성 웨양시)과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중국에 있는 지명을 따와서 평사리 강변 모래밭을 ‘금당’이라 하고 모래밭 안에 있는 호수를 ‘동정호’라 했다. 악양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 중에 소상팔경이 있으며, 평사리들에 위치한 ‘동정호’와 악양의 ‘소상팔경’은 이곳 사람들의 자랑거리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가득 담긴 풍경을 자아낸다. [위키백과]
▼ 2019년 봄, 매화를 보기 위해 연계한 산행을 관동마을을 들머리로 하여 갈미봉~쫓비산~매화마을로 하산한 추억이 있다. 섬진강 건너는 전남 광양시에 속한다.
▼ 쫓비산에서 조망했던 성제봉 풍경
▼ 당겨 본 섬진강
▼ 오른쪽 광양의 백운산에서 왼쪽 억불봉으로 이어진 능선도 당겨 봤다.
▼ 소나기 구름이 덮힌 창공을 힘차게 나르는 패러글라이딩... 성제봉 북쪽 1.5km지점에 활공장이 있다.
전국적으로 소나기가 내린다는 오늘인데 이곳에는 패러글라이딩이 활공하고 있고,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는 가운데서도 활공을 하는 것을 보면 같은 취미라도 이렇게 분위기가 다를 수가 없다.
▼ 들머리로부터 3.8km 지점인 수리봉에 도착한 시간이 14시가 다 됐다는 것도 모른 채 뒤쳐져 있는 회원이 있어 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쉬엄쉬엄 오르는데 아직도 정상까지는 1.2km(이정표는 오류)나 남았으니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 조릿대 군락을 이룬 등로를 지나...
▼ 겨우 조망을 할 수 있는 바위에 서서 동쪽 방향을 담아 보고...
▼ 통천문이 있는 암릉 하나를 또 넘게 된다. 은근히 업다운이 많고 몇 번의 로프가 있을 만큼 바위를 타야하는 체력 부담으로 몸은 지쳐만 간다. 심한 갈증 때문에 물을 마음껏 마시려해도 물이 부족하여 일부러 한모금씩 목만 축이고, 있는 힘을 다해 오른다. 이럴 때는 차라리 소나기라도 한 차례 내려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 통천문이라고 하는데 나에겐 몸 싸이즈 재는 바위로 보인다. 가방에 흠집날 정도로 겨우
통과하고...
▼ 드디어 성제봉 정상의 바위가 눈에 들어와 망원렌즈로 당겨봤다.
▼ 이렇게 스텐레스로 만든 난간도 지나고...
▼ 다시 한번 동쪽 방향을 조망해 보고...
▼ 앞에 지나온 수리봉도 보이고 칠성봉과 구제봉 아래로 악양면의 마을 모두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다.
▼ 모처럼 눈에 띈 하늘말나리
▼ 정상을 불과 300여미터 앞에 두고 리딩대장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시간이 지체되었으니 이곳에서 더 진행하지 말고 오던 길로 다시 하산해야 된다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사실 내가 300대 명산을 오르기 위해 온 것은 아니고 구름다리 보러 온 것인데 이곳에서 내려간다해도 정상코스 보다 1km 차이 밖에 나질 않는데 뒤쳐져 오던 회원도 이 사실을 알고 불만이 터져 나온다.
시간을 보니 15: 20이다. 2시간만에 6km를 내려가야 하는데 구름다리 까지는 작은 봉우리 3개를 넘어야 하고, 하산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귀가에 문제가 있다며 바로 내려갈 것을 독촉한다. 그러면 정상석은 인증해야 할 것 아니냐며 일단 정상까지는 가기로 한다. 에효~
▼ 정상 부근의 바위
▼ 뒤쳐졌던 인원들 10명이 모두 도착, 이곳에서 인증을 하고 리딩대장의 말에 따르기로 한다. 아! 이곳까지 올라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던가! 전국 300대 명산에서 200여개를 등정하고 섬 산행 40개를 답사했지만 오늘같이 마감시간 안에 하산 못할 것 같아 제지를 당해 도중에 하산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내 자존심에도 흠집이 났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 실수이기도 한 건 어쩔 수 없다. 첫째, 트랭글을 살펴보지 못한 잘못이다. 오늘 코스는 후에 안 일이지만 한 여름 폭염에 이렇게 능선을 타지 않는 코스였고 계곡으로 올라 오는 코스였는데 중간에 수리봉에서 트랭글의 배지가 울렸을 때는 이미 때는 늦었다. 청학사에서 왼쪽으로 올랐어야 하는데 리딩대장도 첫 리딩이라 모르고 능선으로 올라 오는 바람에 체력소모가 너무 컸다. 진작에 트랭글 GPS를 확인했어야 했다.
두번째, 뒤쳐져 오는 회원들이 많았기에 시간 안배를 하지 않고 그들과 쉬멍놀멍 가자는 생각으로 방심했던 것도 잘못이다. 앞서간 선두 그룹을 따라 진행했더라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일이다.
세번째, 식수를 충분히 휴대하지 않은 잘못이다. 0.5L짜리 4병을 휴대했는데 타계절에는 충분했던 식수지만 이런 폭염에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땀이 많은 나에게는 6병을 휴대했어야 했다. 준비는 했었지만 무게를 줄이려고 차량에 놓고 간 것이 실수였다. 이렇게 해서 정상을 찍고 북쪽 방향의 지리산 천왕봉 등 주능선 조망은 해보지도 못하고 부지런히 하산길에 오른다.
▼ 정상에서 구름다리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하나 올라갔던 5km를 다시 되돌아 하산하는 이런 산행은 정말 싫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 이런 구름다리를 건너며 산행의 피로도 풀고 멋진 풍경도 담아 보려 했는데 아쉽게 됐다. (카페에서 모셔온 사진)
▼ 정신없이 내달려 하산하니 다른 회원들 보다 30분을 빨리 내려 온 듯하다. 잽싸게 계곡 흐르는 물에서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으니 언제 힘들었냐는 듯 날아갈 듯 하다. 결국 모두 차량에 탑승한 시간은 18시이고 겨우 막차인 전철을 타고 귀가한 시간은 밤 12시가 훌쩍 넘었다.
성제봉에 다시 가겠냐고 한다면 갈 생각이 없다. 조망도 그리 좋은 편도 아니고 구름다리가 그런대로 관심이 있어서 연계하는 산행인데 구름다리만 보러 가면 몰라도 특히 한 여름에 굳이 1,112m 정상을 오른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는 오늘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더 철저히 산행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