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일(금)
인천 강화군에는 유인도(有人島)로서는 강화도 본섬을 포함해 모두 10개다. 물론 연육교로 섬아닌 섬이 강화 본섬을 포함, 4개(교동도, 석모도, 동검도)이고 섬다운 섬이 6개(미법도,서검도, 볼음도, 아차도, 주문도, 말도)며 무인도가 또한 1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안다.
내 고향인 교동도 화개산(259.6m)에 오르면 올망졸망 섬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어려서 부터 앞에 펼쳐진 섬들을 바라보면서도 이제껏 가보지 못한 섬들이 있었으니 미법도와 볼음도와 말도다.
이제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간 가보고 싶었던 미법도를 가보고자 한다. 볼음도는 많이 알려진 섬임에도 가 볼 기회가 없었다. 이제 강화나들길13코스로 볼음도 길로 알려져 있으니 그곳도 당일 코스로 다녀와야 할 코스다.
3일간 주어진 휴일에 행사가 있는 날을 제외하면 3.1절인 오늘이 제격이다. 특별히 볼거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못 가본 곳을 가본다는 의미이고 시간이 된다면 가본지가 20여년도 더 됐을 서검도도 갔다올 계획으로 옆지기와 함께 떠난다.
▼ 교동도 화개산에서 바라 본 섬들...
▼ 미법도와 서검도 트레킹코스
-미법도: 선착장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섬전체 한바퀴 트레킹(거리: 5km 출발:08:40, 도착:11:10)
-서검도: 선착장에서 시계방향으로 마을진입~야산등로~저수지~들판길~선착장(거리:5.5km, 출발:13:20, 도착:15:10)
▼ 석모도 하리선착장까지는 8시까지는 여유있게 도착해야 한다. 8시30분에 정확히 출항하기에 민간인 통제선(민통선)으로 군부대에서 검문을 하기 때문에 주민등록증(필히 지참)을 제시하고 인적사항 기재하고 표를 예매해야 하므로 조금은 서두르는게 좋다.
사실, 배운항이 삼보해운인 줄을 몰라 사전 뱃시간을 어디에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블로그 정보를 통해 대충 시간을 알고 온 것인데 다행히 시간이 맞았다. 미법도만 갔다와야겠다는 생각이 이곳에서 정확한 시간을 알고 서검도까지 갔다 오기로 계획한다.
하리선착장에서 미법도까지는 10분 거리며 요금은 1,700원, 미법도에서 서검도까지는 15분 거리에 역시 1,700원으로 하리에서 서검도까지 총 3,400원이지만 하리선착장에서 직접 서검도까지의 요금은 2,500원으로 같은 거리지만 웬일인지 900원 차이가 난다.
왕복요금이 아닌 편도요금이다. 하리선착장에서만 표를 끊고 미법도나 서검도에서는 돈으로 직접 받는다.
강화군 서해에 위치한 미법도(彌法島)의 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다. 본래 이 섬은 서도의 독도로서 그곳에 주거하고 있는 사람은 심리가 양순하여 법을 모르고 법이 없어도 산다는 뜻에서 미법이라 칭하였다고 하며 고대 중국의 송, 한, 금, 명조 때 사신과 상인들이 해상으로 우리나라에 입국을 시도하였을 때 서검도에서 검문을 하고 도심지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미법도에서 마지막으로 검문을 하였다 하여 미법도라고도 했으며 속칭 민법이라 한다.
대부분의 지역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은 노르뫼기, 그물골 마을이 있다. 노르뫼기 마을은 당산 북쪽에 있는 마을로,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물골 마을은 당산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남북 분단의 뼈아픈 역사현장의 마을이기도 한데 1965년 10월 29일 갯벌에서 조개를 잡던 마을주민 수십명이 집단으로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되었었다.
이후 11월 20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게 되고 경찰의 조사도 받고 모두 풀려나게 되었는데 10년 후에 1976년부터 미법도에서 연달아 다섯차례의 고정간첩 사건이 터졌다.
섬은 공안의 공포 분위기에 휩쓸렸고 억울하게 고정간첩 누명을 쓴 분들도 있는 등 평화롭던 마을은 따가운 외부의 시선과 상처를 입은 마을이기도 한데 지금은 10여 가구에 얼마되지 않은 주민만 거주하고 있다.
▼ 승용차는 선착장이 아닌 선착장 진입로 부근의 수로를 낀 농로의 공간에 세우면 된다. 하리선착장에서 출항하면서 담아 본 미법도. 반영이 되어 이색적인 모습이다.
▼ 교동도 화개산에서 렌즈로 당겨 본 미법도. 그 뒤 왼쪽으로 아차도, 오른쪽 멀리 볼음도 일부가 보인다. 이곳에서 보이는 주택은 섬 가운데 한채 뿐이다.
▼ 정확히 08:30 이면 출항한다. 미법도까지는 10분 거리이니 섬 한바퀴를 도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고 또한 섬을 둘러볼 수 있는 길은 제대로 나 있는지 전혀 모르는 가운데 일단 13:00 에 두번째 배가 이곳에서 미법도로 가니 13:10경 그 배를 타고 서검도로 가야한다. 08:40 부터 트레킹을 시작한다면 4시간 30분의 시간이 있으니 시간은 넉넉할 것 같다.
▼ 하리선착장의 어선이 잔잔한 호수에 비친 한폭의 그림같다.
▼ 출항하면서 담은 하리선착장...과거에 석모도가 배를 타고 다닐 때는 이곳을 가고 싶어도 1박을 해야하는 부담 때문에 못갔지만 석모도에 연육교가 생기면서 앞으로는 이쪽 부근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관광객 수도 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기장섬의 모습이다. 교동도에서는 가장 가까운 섬으로 어릴 적 두 가구가 이곳에서 살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교동도의 우리 마을로 이사오면서 무인도가 됐다. 뒷편으로 교동도의 화개산 모습이 보인다.
▼ 왼쪽 섬이 기장섬, 오른쪽으로는 석모도 상주산에서 부터 뻗은 능선군이다.
▼ 바다가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여 반영된 미법도 모습이 너무도 평화스러워 보인다.
▼ 미법도에서 하선하는 인원은 겨우 1명이다. 10여 가구 밖에 안되는 동네에서 나들이를 하거나 방문객을 볼 수 있는 것도 쉽지 않을 일로 보여진다.
▼ 08:40 미법도에 우리를 내려주고 서검도로 떠나는 카페리호, 저 배가 서검도에 닿으면 08:50쯤 될 것이고 그곳에서 09:00 다시 미법도를 거쳐 석모도 하리선착장으로 출발할 것이다.
물론, 미법도에 하선할 사람이 없으면 바로 하리선착장으로 향할 것이다. 그 후 13:00가 되면 하리선착장에서 오전과 같이 미법도에 잠시 들를 것이고 13:10 에 서검도행 배를 타게 되는 것이다.
▼ 어떤 섬이든 항구나 선착장에 들어서면 섬을 반기는 문구가 각종 장식물에 표기되어 있으나 이곳은 선착장 산자락에 작은 나룻배 모형에 강화 특유의 지방 사투리인 "어서 오시겨"로 반긴다. 자세히 봐야 눈에 띄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주변에 펼쳐진 풍경...바람 한점 없는 잔잔한 바닷물에 완연한 봄날씨다.
▼ 마을 진입로...카페리호에서 내린 주민에게 혹시 산등성이로 길이 나 있는지 물으니 없다고 한다. 혹시 하는 생각에 마을로 진입하지 않고 저 앞의 제방으로 해서 앞쪽에 보이는 산을 올라 보기로 한다.
▼ 마을로 접어 들면 무의미할 것 같아 우측의 제방으로 섬을 돌아 보기로 한다. 제방을 지나니 길은 없고 갯바위로 해서 능선을 우회해야 하는데 일단 산길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길없는 산을 오르니 잡목들만 무성하고 놀란 고라니만 이리 뛰고 저리 뛴다.
▼ 다시 하산하여 논두렁을 지나 미법사를 둘러 보기로 한다. 미법사에 대한 안내문이 없어 아쉽다.
미법사(彌法寺)
미법도는 중국사람들이 한강 나루터를 오르 내리면서 잠시 쉬었다 가기도하고 조선시대에는 선비들 귀양하던곳이며 임진왜란때는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여 미법사를 세워 그영혼을 달래 주었는데 그후 소실되어 9년에 홍제사 석용스님과 배정웅님이 과거 업보에따라 미법사를 창건하여 현재 배정웅님이 절을 지키고 있다. 배정웅님은 12세때 출가하여 용주사(경기 화성에 소재,사도세자 능으로 유명)에서 석용스님과 수련하여 예불과 민속 문화에 해박하다. [출처: 2013년 강화도팔각집]
▼ 왼쪽 야산을 넘어 논두렁으로 걸어서 미법사를 둘러본 후 뒤를 돌아 본 풍경. 선착장에서 마을길로 걸어 저 고개를 넘으면 이곳으로 올 수 있고 제방길로 해서 바다 갯바위로 산모퉁이를 돌아 이곳으로 와도 된다.
▼ 어느 섬이든 간척사업으로 농토를 확장했다. 이곳도 6.25전쟁 이전에는 어업에 종사를 많이 했을 것으로 보이나 섬주변 곳곳에 갯벌을 메운 농토로 이젠 논농사가 주업이 되었다.
▼ 북쪽 방향의 교동도 일부 서쪽편 풍경
▼ 오른쪽 교동도 화개산
▼ 과거에는 강화 본섬 외포리에서 교동도 죽산포(가운데 흰 건물이 보이는 부분)를 경유, 서검도를 거쳐 볼음도, 주문도로 왕래한 여객선이 있었다.
▼ 교동도의 빈장산
▼ 화개산과 왼쪽 교동중고등학교가 있는 대룡2리 (대명부락, 매바지)와 오른쪽 화개사 아랫마을 읍내리(절아래 마을)
▼ 미법도 북쪽끝을 돌아서니 서쪽방향의 서검도가 일부 보인다. 스치로폼 한개 보이지 않는 깨끗한 갯벌이다.
▼ 제방길을 지나 임도인 산길로 접어들 수도 있으나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있을 것 같아 갯바위로 섬을 한바퀴 돌기로 한다.
▼ 광맥은 아니고 뭔 생물이 이렇게 그림을 그려 놓았는지 모르겠다.
▼ 산행하면서 많은 육산도, 된비알도 걸어 봤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갯바위를 걷는 일도 밋밋한 오솔길을 걷는 것보다 재미가 있다.
▼ 오후에 가 볼 서검도 전경. 이곳도 왼쪽 서검도와 오른쪽 솔책도(松柵島)로 별개의 섬이었으나 두 섬을 이은 간척사업으로 15만평의 육지가 되고 20여년 전만해도 염전이 있었지만 현재는 농토로 바뀌었다.
교동도 역시 3개의 섬(화개산, 수정산, 율두산)이었으나 조선후기부터 간척사업이 시작되어 현재의 교동도가 되었고 석모도 역시 석모도와 상주산이 별개의 섬이었으나 두섬을 이어 간척하여 현재의 석모도가 된 것이다.
섬 모두가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극히 일부고 모두 농사가 주업이다.
▼ 통상 바닷가에 사는 소나무는 해송(곰솔)이 많다. 옹진군의 섬인 승봉도쪽만 하더라도 거의 해송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바닷물과 맞닿는 곳에서도 조선솔(적송)이다. 자유분망하게 자랐으나 모진 풍파에 시달린 듯한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 소사나무는 영흥도의 십리포해수욕장에 있는 150년 전에 조성된 소사나무군락지가 유명한데 그에 못지 않은 수령이 꽤 되어 보이는 한그루가 모진 세월 견딘 그대로를 표현하고 있어 애처로워 보인다.
▼ 해변 갯바위로 섬 한바퀴를 도는데는 불과 2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은 11:10분이니 서검도로 향하는 13:10분 배를 타려니 아직도 두시간이나 남아 난감하다. 선착장에서 다시 마을로 들어가 주변을 둘러 보기로 한다.
▼ 마을에는 건물을 짓기 위해 포크레인 기사와 인부 두명만 일을 할 뿐, 마을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고 마을회관 옆의 팔각정자에서 한동안 쉬다가 들판길을 걸으며 노닥인다. 제법 번듯한 주택이 들어서 있어 일부 외지인이 들어와 사는지는 모르겠다.
▼ 마을 가구수로 보아서는 꽤 너른 논이 경제적으로 살만한 동네란 생각이 든다. 석모도에 다리가 놓였고 하리선착장에서 이곳까지는 10분거리고 하루에도 세차례 여객선이 왕래하고 있으니 이곳에 들어와 별장을 짓겠다고 땅 보러 다니는 사람도 늘겠단 생각이다.
▼ 아직도 한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무료하기만 하다. 가게라도 있으면 막걸리라도 한잔 하며 기다릴텐데...
▼ 오전에 탔던 배를 타고 서검도로 향하면서 바라본 미법도. 갯바위를 따라 섬 한바퀴를 돌았으니 참으로 두발이 대세다.
▼ 교동도 화개산에서 바라본 서검도 모습이다. 왼쪽으로 미법도 일부가 보이고 가운데가 서검도, 그 뒤로 볼음도이며 오른쪽 끝으로 말도 일부가 보인다.
서검도(西檢島)-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서검리
강화도는 옛날 한양길의 관문이었다. 모든 배들이 한강을 거슬러 들어가기 위해서 강화도를 거쳐야만 했다. 서구 세력이 밀려올 때도 그들은 강화도로 몰려들었다.
이보다 오랜 시절에도 그랬었다. 그 흔적이 지금도 강화도 남단에 남아 있다. 동검도와 서검도라는 이름의 두 섬이니 동검도는 동쪽에, 서검도는 서쪽에 있는 검문소라는 뜻이다.
옛날 중국 사신이나 상선이 한양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강화도의 염하나 조강을 통해야 했다. 교동도와조강을 지나는 강화도의 서쪽 뱃길은 서검도에서 그리고 동쪽 초지와 갑곶나루를 통하는 염하 항로는 동검도에서 검문을 받은 후 한강으로 들어섰다. 그런가 하면 조선조말 기독교 선교사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검문소가 있었다는 설도 있으나 신빙성은 희박하다.
동검도는 본섬 동남단의 가천의과대학이 위치한 "택이" 나루에서 불과 200m거리요, 간조 때 펄로 건널 수 있었는데 지금은 석축 제방이 연결되어 있다. 이에 비해 서검도는 이름 그대로 낙도 중의 낙도이다. 본섬 외포리에서도 8km 떨어져 있다.
주위에 교동, 석모, 볼음, 주문도와 같은 섬들로 둘러싸여 해상 교통의 중심지요, 어업 전진기지였으며 지금은 북한의 연백이 지척에 있다.
그러니 한때 접적지역이라고 해서 출입에 제한을 받았다. 육지와의 연락이 빈번할 리 없어 슈퍼도 없고 식당도 없다고 한다. 주민수도 적어 40여가구에 80명 정도라고 하니 짐작컨데 한 집에 두 사람이 사는 노인 가정들일 듯하다. 연근해에 병어, 숭어, 새우, 꽃게가 잡힌다고 하는데 주민의 절반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근래 낚시터가 있어 육지 손님들이 더러 찾는다. [출처: 2008 인천일보]
▼ 서검도 선착장. 돌출된 부분이 서검도와 간척사업으로 이어지기 전까지는 솔책도였다.
▼ 서검도에서 바라 본 미법도. 미세먼지가 오후면 좀 걷힐 것으로 예상했지만 전혀 걷힐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 이곳에 망둥어 낚시를 하러 1박 2일 일정으로 왔었던 때가 20년은 넘은 것 같다. 민박시설도 없었던 그 때 먼 친척뻘 되는 분이 사셔서 그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지낸 적이 있는데 기억조차 없으니 가물 가물하다.
이곳의 교통편은 그 당시로는 배웅의 수단으로 경운기였다. 지금은 경운기가 사라져 차를 몰고 나오거나 모두 마을 분들이기에 하선한 차에 함께 탑승하여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우린 막배인 17: 10분 배를 타야 하므로 13: 30분에 시작된 트레킹이 주어진 3시간 30분에 마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걸어야 할 거리를 정확히 몰라 부지런히 움직이기로 한다. 이 선착장 주변은 과거에 염전이 성행할 때만 해도 번성했던 마을일 것인데 이제는 폐가가 많아 흉물스럽다.
▼ 마을까지 가는 거리가 까마득해 보인다. 1.5km는 걸어야 할 듯 싶다. 어차피 걷는 것이 목적이니 굳이 멀다고 느낄 필요도 없다.
▼ 이곳 주변은 염전자리이다. 아직 염분이 남아서인지 농토가 되지 못하고 갈대숲만 무성한 들판이 됐다. 가을이면 분위기 좋은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 저곳으로 부터 이곳까지 간척사업으로 염전이 이뤄지고 지금은 농토가 되었으니 주업이 농사다. 나이 많은 노인네들로 인해 논농사도 제대로 이뤄질지는 모른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염전자리가 방치되어 갈대숲을 이루고 있겠다는 추측이다. 선착장에서 만났던 교동분을 만났다. 이렇게 저렇게 대화를 하다보니 아는 형님뻘 되는 분인데 교동에서 원정으로 14,000평이나 되는 자신의 논을 18년째 경작을 하고 있다며 봄이 되어 논을 둘러보기 위해 왔다니 이곳도 외지인 소유의 땅이 꽤 있는 듯 보인다.
▼ 드디어 마을길로 접어 들었다. 40여 가구가 살던 것이 현재는 30여가구나 될까 싶은데 어느 시골이든 인구가 줄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 시계 반대방향으로 마을 어귀에서 저수지 방향으로 해서 군부대 왼편의 산을 돌아 이곳 마을로 트레킹을 해도 되고 마을로 접어 들어 시계방향으로 산을 올라 군부대 방향으로 가서 오른쪽으로 돌아 저수지 방향으로 트레킹을 해도 된다.
마을 야산 등로가 트럭이 한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어서 왠일인가 싶었는데 한참을 가다보니 독립가옥을 수리하고 있는 분의 트럭이 다닌 길이고 이어 좁은 오솔길로 이어진다.
▼ 서쪽편 산모퉁이를 반환점으로 돌아 나오니 서검도 선착장이 있는 솔책도(松柵島)가 보인다.
▼ 서검도의 북쪽편 야산은 칡으로 덮혔다. 울창한 숲도 칡덩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칡 장수라도 있었다면 문제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 서검도 저수지... 좌대가 있는 것으로 봐서 낚시인들이 이 저수지를 찾는가 보다. 이곳까지 와서 민물낚시를 하는 분들의 열정으로 말한다면 젊은 시절의 나와 같겠다.
▼ 평야지대를 꿰 뚫은 수로 와 이어진 갈대
▼ 이제 기러기들도 봄과 함께 북쪽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그동안 미세먼지로 고생을 했으니 가슴이 탁 트이고 코가
뻥 뚫리는 곳으로 가거라.
▼ 멀리 보이는 내 고향 교동도를 보면서 귀가길의 배에 올랐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찾게 될런지는 모르지만 늘 고향에서 바라만 봤던 남쪽의 섬들을 답사해 봤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고 그렇다. 뭐 그리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옛 조상들로 부터 현 세대에 이어져 내려오는 그 동네와 지역의 전통과 문화가 있을테고 거기에 맞춰 지금도 살아 가고 있을 터이다.
다만, 이곳 강화 북단의 섬들이 남북이 분단되면서 어업으로 부를 누렸던 것이 농사로 한정되고 자식들은 꿈을 향해 모두 떠나고 세월과 함께 고령이 된 노인들만 고향을 지키는 현실이 안타깝다. 앞으로 살기 좋은 농촌이 되어 젊은이들이 애를 키우며 도심과 같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그런 시대는 과연 올 수 있을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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