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8일(수)
두무진 해상유람관광을 하고 곧 이어 도보코스로 두무진의 풍경을 감상하기로 한다. 이곳 역시 날이 보통 더운 것이 아니다. 그런 더위를 식혀 보고자 손풍기를 두대 사서 갖고 왔는데 장난감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다.
차 안에서 에어컨과 더불어 손풍기 바람이 효과가 더 있고 밖에 나와서도 진가를 발휘할 때가 종종 있다. 무엇보다 옆지기가 좋아하니 그걸로 만족이다. 도보로 코스를 도는데 30분간의 여유를 준다. 산이 높지 않아 5분이면 정상에 오를 수가 있는데 우리 외에 할매들은 올라갈 생각이 없는가 보다.
관광도 역시 체력이 있을 때 다녀야겠다는 생각은 젊어서 부터 해 왔기에 그 분들의 모습은 그냥 남 얘기일 뿐이다. 사람도 그리 붐비지 않는 가운데 둘만이 오붓이 풍경을 즐길 수가 있어서 더욱 좋았고 풍경사진 담는 것도 사람에 둘러 싸이지 않아 깔끔하게 담을 수가 있어서 좋았다.
역시 산악회에서 사진 봉사 하느라 수고를 해야 하는 생각을 하면 이곳에서는 시간도 많고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많아 좋은 하루였다.
▼ 해상유람선 관광보다 도보로 두무진을 감상하는 것이 훨씬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곳을 귀찮다고 하거나 혹시 몰라서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면 크게 후회하게 된다.
여행이나 등산을 하다가 남들 다 가 보고 즐기는 자리를 등한시 해서 모르다 후에 알게되어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말이다. 두무진의 최고의 풍경이라 할만 하다. 해상관광에서 보다 더 디테일한 모습이 보기 좋다.
▼ 두무진 도보코스 정상까지 가는 길은 나무데크를 비롯,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쉽게 오를 수가 있다.
▼ 두무진 포구...검은 건물들이 재건축으로 횟집이 들어선 모습이다.
▼ 두무진의 트레킹코스 정상에서 바라본 두무진포구의 전경 모습...길게 건축된 횟집들이 해상관광과 함께 많은
식객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 통일기원비...
서해 최북단에서 기원하는 통일은 그 어느 곳의 기원비보다 간절함이 묻어 있는 듯 하다.
▼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낄 뿐, 풍경이 말해 주듯 말을 해 무엇하랴!
▼ 사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면 되지 사진은 무슨 사진이냐는 논리를 갖고 있는 분들이 있다. 분명 이러한 풍경들은 실제 보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진으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도 보고 느낀 것을 훗날까지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뒤돌아서면 기억에서 가물대고 잊어 버리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그러기에 부족하지만 사진으로 남기고 훗날 다시 추억하고자 함이니 이렇게 또 감상하며 즐길 수가 있어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 두무진의 바위들은 이름이 붙여져 있는 것으로 아는데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것이 없다. 장군바위가 있다는데 정확히 어떤 것이 장군바위인지는
모르겠으나 장군들이 회의하는 모습같아 두무진이라고 불리웠다는 것을
추정하면 왼쪽의 가장 높은 바위일 것 같다.
▼ 도보코스가 잘 나있다. 유람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선했으나 잽싸게 빨리 올라 둘러
보기에 호젓한 모습의 풍경을 담게 됐다. 이 바위 이름도 있을 법 한데 정보가 없다.
▼ 우측으로 보이는 바위가 <선대암>인가 추정해 본다.
▼ 형제바위
▼ 협곡에라도 들어와 있는 느낌이면서 엄청난 규모의 바위에 하늘만 빼꼼히 보이는 곳에 있자니 순간 압도되어 숨이 막힐 듯 하다.
▼ 땅채송화가 앙증맞은 모습으로 군락을 이뤄 꽃 필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 도라지도 바위틈의 무더위 속에서도 자신의 주어진 일을 다하며 꽃을 피웠다.
▼ 장군바위, 선대암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포효하듯 서있다.
▼ 마치 거대한 괴물이 나를 향해 다가 오고 있는 느낌이다.
▼ 지질학을 전공한 분들이 공부하고 연구할 살아있는 좋은 자연학습장일 수도 있겠다.
▼ 액자에서 가장 많이 보는 백령도의 두무진 풍경이다.
▼ 두무진에서 천안함추모공원으로 이동했다. 가게에서 팔고 있는 국화송이를 사서 공원을 오른다.
▼ 천암함46인의 위령탑에 잠시 헌화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 천안함 피격사건 개요
2010년 3월 26일 (금) 21:22경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정상적인 임무수행 중이던 해군2함대 소속 천안함(초계함)이 북한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되었으며 승조원 총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은 생존하였다.
- 민군합동조사단 활동
3월 31일 국방부는 최초 민.군 합동조사단을 82명(현역59명, 관17명, 민6명)으로 편성하였으며, 4월 12일 73명(한국49명, 외국24명)으로 재편성하여 6월 30일까지 약92일간 조사활동을 실시하였다.
- 조사결과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되어 침몰되었고, 폭발위치는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수심 6~9m 정도이며,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 사용중인 고성능폭약 250kg 규모의 CHT-02D 어뢰로 확인되었다." [안내문 발췌]
▼ 위령탑에서 오른쪽으로 바라본 풍경...
이곳으로 부터 바닷쪽으로 2.5km지점에서 폭침사건이 발생하였으니 그 영혼들이 이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듯 하다.
▼ 위령탑에서 왼쪽으로 바라본 풍경
▼ 이번에는 연화리에 있는 중화동교회[中和洞敎會]로 이동, 교회를 답사하고 그 역사관을 잠시 들러 본다.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이며, 백령도에 있는 모든 교회의 모교회(母敎會)이다. 가장 빠른 개혁의 길을 그리스도교를 수용하는 것이라고 믿은 개화파 정치인 허득(許得)이 황해도 소래교회의 도움을 받아 1898년 10월 9일 설립하였다.
백령도에는 1832년 칼 귀츨라프(Karl Gutzlaff)가 그리스도교 선교사로는 처음 들어와 선교활동을 하였다. 1898년 6월 전도와 교회 설립 등의 모든 제한이 풀리자, 서경조 형제가 1898년 한학서당에서 이루어진 중화동교회 설립 예배를 인도하였고, 1899년 소래교회에서 건축자재를 공급받아 초가 6칸(39.6㎡) 규모로 최초의 중화동교회를 세웠다.
이 교회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가 급속하게 발전하였으며, 당시 황해도 지역의 선교를 지휘하던 언더우드 목사가 중화동교회의 초대 당회장이 되었다. 교회 바로 옆에 초기 그리스도교 선교 역사 박물관인 백령기독교역사관이 있다.[출처: 두산백과]
▼ 개방되어 있는 교회 안에 들어가 보니 청결한 상태로 깔끔한 모습이다. 현재에도 주민들이 예배드리고 있는가 보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관광객은 이곳을 왜 방문해야 하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가 깊은 교회로 백령도에서는 홍보차원에서 관광화되었는지 모르겠다.
▼ 이번에는 중화동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용트림바위로 이동, 주의 풍경과 어우러진 독특한 모양을 한 바위에 시선이 쏠린다.
▼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용트림바위라고 불리웠다는데 바위가
나선형으로 꼬여 하늘로 향한 모습이 신비롭기만 하다.
▼ 백령도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대청도...가운데 통신탑이 보이는 산이 삼각산이다. 작년 8월 27일 트레킹을 했으니 1년이 됐다. 백령도는 곳곳에 군사 시설 등으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트레킹 코스 보다는 관광코스로 차량으로 이동하며 관람할 수밖에 없다. 대청도 트레킹은 지금 생각해도 멋진 추억으로 가끔 생각이 난다.
▼ 숙소로 돌아오니 저녁 7시가 거의 다 됐다. 저녁식사는 자유식이다. 면사무소소재지인 진촌리 번화가에는 식당, 노래방, 커피숍, 소주방, 호프집 등 먹고 마시고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관광객들이 많아서 음식을 좀 잘한다는 곳은 복잡하여 자리잡기도 어렵다. 관광기사가 소개해 준 초밥을 비롯 손수 갈아 만든 순두부를 하는 식당으로 가서 옆지기와 오붓이 식사를 하고 하루 일정을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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