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8일(수)
여름 휴가를 맞았다. 남들보다 좀 늦게 일정을 잡았는데 날이 너무 더워 선뜻 휴가장소를 물색하기가 쉽질 않다. 며칠간 계곡에 틀어 박혀있기도 그렇고 작렬하는 때양볕에 해수욕장 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쉬엄 쉬엄 여행하면서 먹거리나 찾을 곳이 어딘가 물색하다 결국 언젠가는 꼭 가봐야 할 곳인 백령도를 가기로 한다. 관광여객선이 다니는 인천의 섬들은 거의 다 가봤지만 백령도만 기회가 없어 못 가봤기에 옆지기와 사전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잡는데 개인이 추진하려니 표예매로 부터 숙식등 예약도 생각보다 쉽질않다. 왠만한 섬들은 트레킹을 하면 1박2일로 거의 모든 곳을 돌아 볼 수 있는데 이 무더위에 걷는다는 것은 무리이고 더구나 백령도는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으로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시간 낭비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여행사에 맡기니 이것 저것 신경쓸 일이 없어서 좋다. 어차피 개인이 추진하더라도 그곳에서 랜터카을 이용할 수 밖에 없고 관광코스도 잘 모르기에 불편할 것은 뻔한 일이고 숙식등 여행경비는 별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기에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떠나는 길이다.
여행사에서는 2박3일로 대청도에서 1박 하고 이튿날 12:00경 백령도로 출발해서 그곳에서 1박을 하고 3일째 되는 날 13:30경 귀가길에 오르게 되는 코스를 정해 놨는데 나는 대청도를 두번씩이나 갔다왔기에 백령도에서 2박하려 했지만 1박만으로도 충분하고 2박을 하는 코스는 없다기에 결국 1박 2일의 짧은 여행 코스로 백령도행 관광유람선에 올랐다.
∥백령도 개요∥
1895년 황해도 장연군에 속하였으나 광복 후 옹진군에 편입되었으며, 섬의 본래 이름은 ‘곡도(鵠島)’인데,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모습처럼 생겼다하여 ‘백령도(白翎島)’라 붙여졌다. 북한과 가장 가깝게 있는 넓이 50.98㎢으로, 화동과 사곶 사이를 막는 간석지 매립으로 면적이 크게 늘어나 8번째로 큰섬이 되었다. 이곳은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들어가려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가 보이며 해삼, 전복 등 어종도 풍부하다. 또 섬 서쪽 두무진 아래 선대바위는 고려 충신 이대기가 <백령지>에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표현했을 만큼 기기묘묘함을 자랑한다. 더욱이 지상 2층 규모의 심청각을 건립하였으며 사곶천연비행장, 두무진 등과 연결되는 백령도 일대를 관광코스로 조성하였다.
그리고 진촌리 북쪽 해안에는 국내 유일의 물범 서식지인 물개바위가, 용기 포구 옆에는 세계에서 두 곳밖에 없는 규조토 해변(일명 사곶해안)이 있다. 길이가 자그마치 3km, 썰물 때에는 3백m 이상의 단단한 도로가 생겨 차도로 사용되고 군수송기의 이/착륙이 가능하다.[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 여행코스 (1일차): 용기포선착장-심청각-고봉포구(사자바위)-두무진포구(해상관광)-천안함추모공원-중화동교회-용트림바위-숙소
▼ 여객선 운항시간
▼ 여객선 운임
▼ 여객선 운임(하모니플라워호)
▼ 백령도 하면 사진에서 많이 보듯 두무진의 비경을 연상하게 되지만 북한지역의 장산곶과 백령도 사이를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인 심청전을 연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려서부터 이 소설을 접하면서 효심을 절로 갖게 했던 그 교훈은 그 어느 것 보다 크다고 보기에 첫 화면으로 탑재했다.
▼ 연안여객선 터미널은 자주 이용하다 보니 낯설지가 않다. 좀 이르게 도착하여 여행사 직원과 만나 표를 건네 받기로 한다.
▼ 하모니플라워호는 승용차등을 실을 수 있는 여객선으로 다른 여객선에 비해 크다. 40분을 먼저 출발하는데 백령도에서 우리와 만날 팀들이 누구인지도 궁금하다.
▼ 내가 타고 갈 코리아킹호다. 하루 한차례 소청도와 대청도를 경유, 백령도까지 운항하는 여객선이다.
세월호 사고때 청해진해운이 면허가 취소되면서 2014.11.11일 첫 취항을 하게 되었다. 최대 속력 40노트로 총 449명의 인원을 태울 수 있고 7.36톤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다고 한다.
▼ 정확히 4시간만인 12:30분에 백령도 용기포항에 도착했다.
여행사 직원과 통화하니 하모니플라워호를 타고 먼저 온 팀 8명을 식당으로 안내하고 이쪽으로 오는 중이라 한다.
짬을 이용하여 여객선 터미널 주변을 둘러 보니...
▼ 점박이 물범조형물과 함께 앉아 있는 여인상은 누굴까? 안내문은 없지만 심청이 일것이란 생각은 절로 든다.
▼ 여객선터미널 뒷편에 풍경만 봐도 백령도의 멋진 풍경들이 연상되어 지면서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여행사 버스기사가 나를 찾는 전화가 온다.
뭔 대형버스를 몰고 와서는 옆지기와 둘만을 태우고 숙소방향으로 이동하는데 우선 그곳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먼저 온 팀들은 식사를 벌써 마치고 숙소에서 잠시 대기중인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13:30 미니관광버스를 타고 본격적인 관광에 나선다. 먼저 온 팀들을 처음 대면하는데... 헐~ 모두 65세 넘어 보이는 할매들이다.
▼ 심청각에 도착하면 북쪽으로 도상에서 보면 황해도에서도 서쪽으로 가장 길게 뻗은 장산곶이 눈에 들어 온다. 마치 섬같이 보이지만 육지인데 오른쪽으로 작게 보이는 섬이 북한지역인 월내도이다.
심청이가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印堂水)는 장산곶과 멀지 않은 곳으로 백령도와 중간쯤 된다하니 물살 세기로 유명하다는 이곳 배경이 현실감을 더해 준다. 장산곶과 백령도 사이의 해로는 과거에는 나라에 곡물을 공납하고 중국 무역선의 왕래가 있었던 곳으로 장산곶의 돌출된 지형으로 인해 해류의 소용돌이가 심해 해난 사고가 잦은 곳이 인당수라 한다.
▼ 북한지역의 월내도를 당겨봤다. 바닷물은 도도히 말없이 흐르는 가운데 마치 효심 지극한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긴장감과 현재 북한과 대처하고 있는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백령도의 현재 상황의 긴장감이 교차되는 곳이기도 한다.
실제 2013.03.11 김정은이 해안고사포로 무장된 이곳을 시찰한 적이 있어 남북간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기도 했다. 북한땅을 자세히 보려면 망원경도 설치되어 있어서 장산곶일대를 세밀히 볼 수가 있다.
▼ 심청각
고전소설 심청전의 배경 무대인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두무진 앞바다 인당수, 심청이의 연꽃을 타고 살아났다는 연봉바위, 심청이 부활한 연꽃이 밀려와 번식한데서 유래한 연화리 마을 등 심청전과 관련된 지명이 산재되어 있다.
옹진군에서는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인 효를 관광상품화하고 젊은 세대들에게 효 의식을 고취하려는 뜻에서 인당수와 연봉바위가 보이는 이곳에 시군비 29억원을 들여 심청각을 건립하고 1999년 10월 20일 준공, 개관하였다.[안내문 인용]
2층으로 된 건물로 1층은 심청이의 전설과 이야기를 담았고 2층은 백령도에 관한 자료 및 전시관으로 운용되고 있다.
▼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던진 인당수와 심청이 환생했다는 연봉바위 등 백령도가 심청전의 무대였던 사실을 기리기 위해 인당수와 연봉바위가 동시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심청각을 건립하여 전통문화를 발굴, 계승함과 아울러 "효(孝)" 사상을 함양하고 망향의 아픔을 가진 실향민에게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달래주며, 심청이 환생장면 등을 전시했을 뿐만 아니라 심청전에 관련된 판소리, 영화, 고서 등과 심청전의 내용을 극화한 모형물도 전시하고 있다. [안내문 인용]
▼ "여기 오지 않고 나의 시대를 말하지 말라, 여기 오지 않고 나의 조국 절반도 말하지 말라, 여기 오지 않고 너의 애타는 사랑을 말하지 말라" 시비에 서는 순간 그냥 뭔가 뭉클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벼르고 별렀던 이곳에 왔나 보다.
북한땅은 이곳 보다 훨씬 가까워 보이는 곳에서 태어났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곳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북한땅에 속한 것이나 다름없는 위치에 있다.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곳이기에 해병대는 물론 주민들 모두가 정신무장을 안 할 수가 없는 곳이므로 효(孝)와 호국(護國) 정신을 함께 느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 효녀 심청상
그 시절의 효(孝) 사상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지만 현 시대에 비춰보면 법적으로 엄연한 인신매매요, 살인방조행위다. 공양미 삼백석에 어린 소녀를 사는 어부들도 그렇고 당연히 배에서 뛰어 내리도록 방조한 혐의도 엄벌에 처할 일이지만 그 시절에 그냥 묵인 되었으니 그렇다 치고 다시 살아나 부녀가 더 행복한 삶을 살았다니 그걸 따져 무엇하리...
▼ 고봉포구
사자바위를 보기 위해 고봉포구에 도착했다. 포구의 주차장에서 그리 멀지 않으므로 방파제까지 걸으면 된다.
▼ 사자바위 왼쪽의 풍경에는 역시 곳곳에 위치한 군사시설로 렌즈에 노출되어 부담스럽다.
▼ 사자바위
파도나 해일을 막기 위해 방파제에 사용하는 콘크리트 블록인 테트라포드(Tetrapode)로 인해 자연미가 크게 훼손되어 볼 품이 없다. 사자바위 역시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할 뿐이란 생각에 바다를 향해 포효하는 사자의 상이 초라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느낌이다. 바위가 더 길었다면 사자보다는 공룡이라 표현했으면 더 어울렸을 것이란 생각이다.
▼ 사자바위 오른쪽으로 펼쳐진 풍경을 당겨봤다. 이곳의 풍경이 더 멋지다.
▼ 드디어 두무진포구에 도착, 유람선을 탈 시간이다. 우리 팀은 10명인데 15:00시에 유람선을 타기위한 행렬은 다른 팀들이 합류하면서 수십명이 됐다. 관광코스가 다르기 때문에 이곳 저곳에서 관광하던 팀들이 사전 예약된 유람선 뱃시간에 맞춰 한꺼번에 몰려 들기 때문이다.
▼ 잠시 뱃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두무진포구 좌우의 풍경을 담아봤다. 이곳부터 풍경이 예사롭지 않음을 감지할 수가 있다.
▼ 저 모퉁이를 돌아서면 그동안 사진등을 통해서만 보아왔던 비경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출항시간이 더뎌지는 것 같다.
▼ 두무진포구의 오른쪽 풍경
▼ 괭이갈매기와 함께 가마우지가 한가로이 날개를 말리고 있다.
▼ 모두가 승선하고 출항을 한다. 관광버스기사는 출발전 살짝 뱃머리 왼쪽방향으로 좌석을 잡으라고 귀띰해 준다. 반대쪽에 있으면 비경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인데 반대로 돌아오는 길에 볼 수 있으므로 별 문제는 없다. 나는 사진 촬영이 취미이므로 유람선안에 있는 경우가 없기에 밖에서 관광하기로 한다.
▼ 두무진포구는 현재 대 단위 횟집을 개장하기 위해 한창 건축중에 있다. 이번 관광에서 회를 먹으려 해도 면사무소 소재지에 두군데 밖에 없다는데 이곳에 15곳 정도는 횟집이 생길 예정이니 앞으로는 이곳에서 회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백령도는 1999년 간척사업으로 농경지 75만평이 조성되어 어업에 종사하는 세대는 별로 없고 거의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 두문진포구를 떠나 기암의 절경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감탄사가 연발이다. 어떻게 저런 모양의 기암들이 형성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인천시는 옹진군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를 하나로 묶어 내년 3월 정부에 국가지질공원 인증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10일 밝혔다.
시는 백령ㆍ대청ㆍ소청도의 11개 지질유산을 활용해 이 일대 66.86㎢를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 받기 위한 전문학술연구용역에 최근 착수했다. 지질공원 인증을 받기 위한 이 연구용역은 8,000만원을 투입해 올해 말까지 진행된다. 백령ㆍ대청ㆍ소청도는 2014년 타당성조사 용역, 지난해 기초학술조사 용역 결과 지질유산과 문화유산이 다양해 지질공원 적격지로 평가됐다.
시는 올 하반기 탐방로와 지질명소 안내센터 등을 설치하고 지질해설사 4명을 배치하는 등 여건을 갖춘 뒤 내년 3월 환경부에 지질공원 인증을 신청할 계획이다. 지질공원 인증을 받으면 외국어 안내판 설치 등 기반시설을 추가한 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도 2020년을 목표로 추진한다.
현재 제주도와 울릉도ㆍ독도, 청송, 부산, 강원 평화지역, 무등산, 한탄ㆍ임진강 등 8곳이 국가지질공원으로 등록돼 있다. 제주도는 세계지질공원으로도 지정된 상태다.
백령도 두무진(명승 제3호)과 대청도 농여해변 나이테바위 등도 학술적ㆍ경관적 가치가 높은 국제급 지질로써 10억년 전후 대륙판의 이동 역사를 규명할 수 있는 핵심지역으로 꼽힌다. [한국일보 2017.04.10 기사 발췌]
▼ 백령도의 최북단 해안에 위치하는 두무진은 인천에서 북서 방향으로 228.8km, 황해도의 서쪽 끝인장산곶과 불과 12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장군머리와 같은 형상이라 두무진이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두무진은 수억년 동안 파도에 의해 이루어진 병풍같이 깍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과 가지각색의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동해의 금강산 만물상과 비슷하여 일명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고 있다.
▼ 얼마만한 세월이 흘러 이러한 모습이 됐을까...인류가 세상에 나타난 것은 250만년 전으로 추정하지만 이러한 지질이 형성된 것은 10억년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말 그대로 영겁의 세월이 흘렀다는 얘기다.
우리네 인생 100살로 봐야 그 세월은 찰나에 불과 한 것을...
▼ 대청도의 서풍받이가 이러한 모습인데 그곳과 비교할 수 없는 장엄한 풍경이다.
▼ 두무진의 지명은 동국여지승람(1486년)에는 두모포(頭毛浦), 백령진지(1802년)에는 두모(頭毛)라 기록되어 있다. 모(毛)의 의미는 털의 뜻과 풀(草)의 뜻이 있는데 길게 늘어선 바위들이 마치 무성하게 자란 풀처럼 보여 ‘바위들이 풀같이 솟아있다’는 의미로 두모진(頭毛鎭)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백령도의 관문이라는 의미로 두문진(頭門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예전부터 이곳은 서해안 교통의 요충지로 해적의 출입이 많았던 곳이었는데 구전에 의하면 1816년 기독교 최초의 한문성경이 영국해군 함선 Alcester호와 Lyra호에 의해서 백령도에 전해졌고 1832년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키슬라프 목사와 1865년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가 두문진을 통해 상륙했다고 한다.
따라서 두문진이라 불린 것은 백령도의 북서쪽 꼭대기(頭)에 있는 문호라는 의미였다. 이후 러일전쟁 때 일본군의 병참기지가 이곳에 생기고 나서 용맹한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모양이라는 뜻의 두무진(頭武津) 명칭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네이버 백과]
▼ 배 위에 올라 절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각양각색의 기암절벽이 그 오랜 시간 동안 바다의 거센 파도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의 지질은 약 12억 년 전 원생대에 형성된 매우 단단한 규암이 주된 성분인데 사이사이에 규암보다는 약한 지질의 이질암, 실트암 등이 있어 풍화작용에 차별침식 되면서 바위에 여러 무늬를 새겨 놓았고 규암이 풍화작용에 의해 붉은 색을 띠게 되어 기암절벽의 무늬와 함께 더욱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게 되었다고 한다.
▼ 고려 충신 이대기가 <백령지>에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표현했을 만큼 기기묘묘한 풍경이다.
▼ 해상관광도 보기 좋지만 제주도의 외돌개와 같은 입석이 많음에도 절벽에 붙어 보여 입체적으로 나타나질 않아 비경이 반감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사진에서 보듯 도보코스가 있기에 실제 저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더 아름답다. 물론, 해상에서와 같이 골고루 볼 수 없는 단점이 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코끼리바위
▼ 반대편에서 본 코끼리바위도 생김새가 비슷하다. 유람선을 보면 그 크기를 가늠할 수가 있다.
▼ 작년 여름 흑산도 해상관광유람 중 하죽도의 도승바위, 어머니바위 등을 연상케 하는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이름 하나 지어 줄 만한 바위인데 애를 업고 있는 어미바위라고 불러 주고 싶다.
▼ 잠수함바위...이쯤이면 점박이물범이 나와서 놀아줘야 하는데 한마리도 보이질 않는다.
점박이물범은 과거 황해에만 8,000마리 정도가 서식했다는데 현재는 백령도에 200~300여마리만 서식하고 있다니 자연환경파괴가 원인일 것이란 생각이다.
▼ 이쯤에서 유람선은 두무진 포구로 다시 회항한다. 천안함46인의 위령탑이 보이는 곳 근방이다. 이곳에서 불과 2.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북한 잠수함에서 발사된 어뢰로 인하여 폭침을 당해 46명이 졸지에 순국을 하게 되었으니 남북분단 상황의 비극을 맞은 곳이기도 하다.
▼ 오늘 찾아 보게 될 천안함추모공원의 위령탑을 당겨봤다.
▼ 회항하는 길에 다시 담아 본 두무진의 풍경...이제 도보코스로 두무진의 풍경을 살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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