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4일(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평창에 있는 백석산을 올랐다. 백덕산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며 가리왕산의 맞은편에 있는 산이기도 하다. 주어진 연휴에 마땅히 겨울 산행을 할 만한 공지도 없고 검색을 하던 중 전혀 알지 못하는 백석산이 다른 산악회에서 떳길래 이왕 나선김에 강원도에서 이틀 연속 몰빵하다 보면 눈꽃이든 상고대든 겨울다운 산행 한번은 할 수 있겠다 싶어 신청을 한 것인데 출발 당일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힐 수 밖에 없고 눈이라도 내리겠지 하
는 기대는 결국 아침에 내리는 비를 보고 무참히 깨지고 만다.
산행을 해야되나 말아야 되나 그렇게 순간적으로 갈등을 해 본적 없다. 그러나 일단 길을 나서고 보자는 생각에 내리는 비가 믿겨지지 않아 우의는 챙기지 않고 급하게 작은 우산을 챙겨들고 겨우 버스에 올라탔다.
평창휴게소에 들렀는데도 날은 잔뜩 찌푸리고 조망도 없는 날씨에 비를 맞고 산행할 생각을 하니 하품만 나온다. 그런데 들머리가 가까워오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어와 둥둥~ 이대로라면 오늘 눈꽃산행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싶어 내심 폭설이라도 내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산을 오른다.
∥산행정보∥
♣ 행정구역: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신리 2-2 (모릿재터널, 들머리),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화의리(백덕산 정상), 평창군 대화면 대화리 (던지3교, 날머리)
♣ 산행코스: 모릿재터널- 사자산-백석산-대화리 던지3교(대화4리 버스종점)
♣ 거리: 약 10.7km(들머리-09:20, 날머리-17:30)
∥백석산 개요∥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과 진부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365m이다. 산꼭대기에 흰 돌이 있어 백석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태백산맥의 줄기인 중앙산맥(中央山脈)에 속하는 산으로 북쪽에 잠두산(蠶頭山, 1,243m)ㆍ백적산(白積山, 1,141m), 서쪽에 금당산(錦塘山, 1,173m)ㆍ거문산(巨文山, 1,171m), 남쪽에 중왕산(中旺山, 1,377m)ㆍ가리왕산(加里旺山, 1,560m) 등이 솟아 있다.
▼ 수도권은 흰눈 하나 볼 수 없는 다소 포근한 날씨에 비가 오는데 이곳에 도착하니 적설을 보고 역시 강원도임을 실감하게 된다.
▼ 이곳 백석산은 산객들이 그리 많이 찾지 않는 곳임은 등로를 보고 알았다. 첫 들머리 부터 길을 잘못 들어섰나 의심이 갈 정도로 아무런 이정표도 없는 가운데 등로도 눈에 덮혀 보이질 않으니 오로지 리딩대장의 발걸음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는 산행이다.
▼ 계속해서 이어지는 오르막은 발목 이상으로 빠지는 앞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걷게 되는데 오를 수록 적설량이 많아짐을 느낄 수 있다.
▼ 개인적으로 평창은 와 보질 못한 곳이다. 사실 어제에 이어 산행으로 처음 와 보는 곳이지만 겨울에 만난 평창은 동계올림픽을 치룰만큼 눈이 많이 내리는 곳 임을 알 수 있었다.
▼ 눈이 점점 많이 내린다. 워낙 땀이 많은 나는 왠만한 겨울 산행에서도 두꺼운 티샤쓰 하나 입고 점퍼나 고어등은 입지를 않는다. 속은 땀으로 젖어들고 겉은 카메라 때문에 우산을 받쳐들고 오르고 있으나 역시 축축히 젖어든다.
▼ 이젠 발목이 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잘못 디디면 무릎까지 빠지는 곳이 있어 덜 쌓인 곳으로 지그 재그로 이동해야 하니 예상보다 산행 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다.
▼ 산행한지 두시간이 좀 넘었는데 벌써 힘들어 하는 모습들이다. 간식을 먹으려 잠시 쉬어 보지만 깊숙히 들어간 간식도 꺼내기 귀찮고 퍼붓는 눈에 차가운 음식들이 입에 썩 내키지 않으니 다들 시큰둥, 그냥 걷기로 한다.
▼ 다른 때는 늘 여성회원들의 숫자가 많은데 이번에는 몇 명이 참석을 안하고 거의 남성회원들이다. 아마도 오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라 인기가 없어서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참석한 여성회원들 몇 명이 걸음도 느리고 힘들어하니 속도는 점점 느려져 간다.
▼ 이곳까지 오면서 방향을 유지하느라 리딩대장이 애를 썼다. 등로도 눈에 덮혀 전혀
안 보이고 방향을 잃는다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는데 작은 돌탑도 있고 다행히
산객이 다닌 흔적이 보인다.
▼ 드디어 첫번째 목표지점인 잠두산(1,243.2m)에 다다랐다. 비록 표지판은 두동강 나 있지만 나무에 걸려있는 띠지와 함께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 잠두산 정상에서 부터 백석산을 오르는 구간부터는 이제 눈길을 걷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 선두에서 방향유지 하는 것도 신경써야 하지만 무릎이상 빠지는 눈을 러셀하는 것도 보통 문제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눈이 없는 그냥 육산을 걷는 일이라면 지금쯤 백석산 정상 가까이에 올랐을 수도 있지만 아직도 얼마를 더 가야할지, 과연 이대로 진행할 수 있을런지 속으로는 염려가 앞선다.
▼ 점심을 먹는데 우산을 받쳐들고 뜨거운 물에 밥을 말아 대충 먹고 나니 점퍼를 두개 입어도 추위가 엄습해 온다. 빨리 출발했으면 좋으련만 오후 1시가 훌쩍 넘은 시간임에도 비닐텐트 안에서 버너에 지지고, 복고, 끓이고 마냥 앉아 있는 회원들을 밖에서 보자니 속이 부글 부글 끓는다. 결국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할 수 없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몇 명은 우선 출발하기로 한다.
▼ 눈은 벌써 엄청 내렸고 나무가지가 온통 새하얗다. 선두에 러셀하는 회원이 힘들어 교대하자고 해서 이번에는 내가 나서기로 한다.
▼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집고 가파른 능선을 오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발자국만 따라 오는 회원들은 내 보폭이 커서 가랑이가 찢어 질 것 같다는 등 별소리가 다 나온다.
▼ 남는 것은 사진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힘들고 위험에 처해 있어도 종군기자의 정신을 발휘하여 목에 둘러 맨 카메라로 연신 상하 좌우를 둘러보며 눈꽃의 아름다움을 담아 본다.
▼ 우여곡절 끝에 오늘의 목표지점인 백석산 정상에 올랐다. 헬기가 이착륙할 만한 공간으로 주변에 나무도 없어 눈이 내린 후의 화창한 날이라면 건너편 가리왕산을 비롯, 멋진 조망을 할 수가 있었을텐데 아마도 내일 정도면 그런 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백석산을 올랐으니 이제 부지런히 내려가면 애당초 5시간 주어진 산행으로 오후 3시에는 귀가 차량에 오르지는 못해도 얼추 4시 정도면 츨발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하산길에도 등로가 분명치 않아 겨우 어쩌다 걸린 띠지를 보며 선두가 방향을 유지하고 있는데 결국 알바를 하고 말았다. 다른 능선을 타고 하산하다가 결국 나중에야 방향이 잘못 된 것임을 알고 제대로 가기까지 20분을 넘게 지체한 것 같다.
▼ 겨우 나무가지에 걸린 대화리 이정표를 보고 방향을 잡아 하산하는데 시간은 이미 3시 가까이 되었고 버스가 있는 대화리 마을까지 가려면 두시간은 넘게 가야하니 해가 짧은 철에 자칫 어두움이 깔리면 안전산행에 문제가 있을 수 있기에 서둘러야만 하는데 하산길이 너무 위험하여 속도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다행인 것은 기온이 떨어지지 않고 포근하여 체온유지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 백석산을 오르면서 보아온 눈꽃은 하산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카메라 렌즈로 표현이 안될만큼 정말 환상적인 눈꽃이니 다소 어둑해진 날씨지만
이곳저곳 눈을 뗄 수가 없다.
▼ 이곳 산악회는 내가 어쩌다 원정 산행으로 참석하는 곳이기에 거의 모르는 회원들이다. 주로 몸 담고 있는 산악회 회원들 같으면 너도 나도 사진 좀 찍어 달라고 아우성일 텐데 그런 것 없이 조용히 한컷씩 담으니 여유로와서 좋긴 하다.
▼ 겨울산행은 웬만하면 최소 오후 4시 이전에 끝내는 것으로 해야 한다. 자칫 다른 길로 접어 들어 길을 잃게 되어 일몰이 되면 기온이 떨어지게 되고 땀에 젖은 몸은 급격하게 체온이 떨어지게 되고 저체온증으로 위험에 처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겨울 산행하면서 유명을 달리했다는 산객들을 보게 되면 과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생각되지만 안전 사고란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것임을 오늘 같은 날 특히 깨닫게 된다.
▼ 4시가 넘으니 날이 벌써 어둑해져 온다. 대화리 마을쯤에 도착하니 어두움에 카메라는 가방안에 넣어두고 부지런히 버스있는 지점으로 이동한다. 5시간으로 예상했던 산행시간은 8시간이 넘어 버렸다. 생각지 못한 적설량으로 러셀하면서 진행해야하고 길을 잘못들거나 하산길이 심한 급경사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지체가 된 때문이다.
오늘 산행은 그야말로 눈을 지겹도록 본 날이다. 어제부터 고대했던 때문일까 정말 제대로 본 눈꽃 산행이다. 올 겨울 들어 첫 눈꽃산행인 셈이다. 이러한 눈꽃은 그 다음날 화창한 날씨속에 눈이 부시도록 조망이 좋은 날이면 금상첨화겠다.
앞으로의 겨울 산행에서 꼭 그런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러한 설레임 속에 이 겨울도 짧게 느껴질 것이고 추위도 잊을 것이며 어느 계절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이 한해도 며칠 안 남았다. 나이 먹음을 한탄하지 말고 내 인생의 봄날은 바로 오늘인 것임을 늘 잊지 않으려 한다. 이번에 참석한 산악회는 하산식을 꼭 하기에 평창에서는 빠질 수 없는 별미인 송어회를 먹기로 하는데 역시 공복에 꿀맛이다. 얼마 남지 않은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평창을 연이어 두번이나 찾은 나름대로의 의미있는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