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6일(토)
이번 주에도 섬 트레킹에 나선다. 7년 전에 회사 직원끼리 야유회를 갔었던 대청도다. 가봤던 곳이기에 트레킹 신청을 망설이기는 했으나 바다낚시와 숙소 주변만 맴돌다 왔기에 대청도에 대한 것을 안다고 할 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사탄동(모래울)에 숙소가 있었는데 저녁에 사탄동 해변가에서 노을을 촬영 한것과 배낚시하면서 찍은 사진 몇 장이 전부다. 하룻밤을 지내고도 산행 한번 못한 아쉬움이 있었기에 이참에 잘 됐다는 생각으로 참석했다.
대청도는 그냥 차로 한 바퀴 돌아 보는 것으로는 대청도의 진면모를 알 수가 없다. 트레킹을 하면서 이곳저곳 둘러봐야 숨겨진 비경들을 볼 수가 있다. 그 당시 전혀 생각지 못했던 풍경들에 놀라웠다.
또 한 가지는 태안군 신두리 해안사구는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곳의 사구는 한국의 사하라로 불린다. 길이 약 1.6km, 폭 약 600m에 이르는 사막은 해안에서 해발 40m까지 분포 된 국내 최대 사구이면서도 그리 알려지지 않은 채로 방풍림을 조성하여 사막화되는 것을 막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옹진군에서는 모래 높이를 측정해 이후 변화하는 모습을 체크해나가겠다며 "옥죽포 사구를 매입해 관광자원화할 수 있도록 원소유주와 협의할 계획"이라니 지켜봐야 할 일이다.
복잡한 도심을 떠나 탁 트인 바다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하룻밤을 보낸다면 분명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으며 힐링할 수 있는 좋은 곳이라 여겨진다. '삼서'라 함은 삼각산~서풍받이까지의 트레킹을 앞글자를 따서 부른 것이다.
∥트레킹 정보∥
♣ 코스: 매바위 전망대(사탄동 고개)- 삼각산 정상- 광난두정자각-서풍받이-마당바위-갈대원-광난두정자각
♣ 거리: 약 6.5km(들머리-13:30, 날머리: 17:30)
▼ 카페리호를 탔으나 밖에 나갈 수 없도록 문은 굳게 잠겼고 3시간은 가야 하는 거리에 그냥 잠을 청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너울성 파도가 없어 멀미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 08시에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한 카페리호는 10시 40분쯤 소청도에 도착했다.
▼ 소청도에서 20분 정도면 대청도에 도착한다. 대청도 전경.
▼ 대청도의 선진포선착장
▼ 선착장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팬션에서 운영하는 25인승 버스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고 점심식사를 한 후 들머리로 이동, 산행을 시작한다.
▼ 들머리는 매바위전망대이다. 매의 조형물이 그럴 듯하게 세워져 있는데 왜 매바위라고 했을까...의문이 날 수 밖에 없다. 매가 서식하고 있는 바위가 많다는 뜻인지, 그렇다면 바위가 있어야 하는데 이곳 사탄동고개에는 바위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 예로부터 대청도는 송골매의 일종인 '해동청'의 채집 지였다고 한다. 대청도 서내동[대청1리]에는 '매막골'이라는 지명이 남아있어 예부터 매를 기르고 훈련시기는 매막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 시대 귀족층에서는 매사냥이 성행하였는데 고려 충렬왕은 매사육 및 매사냥을 담당하는 응방이라는 관청을 두기까지 하였다.[안내문 발췌]
▼ 멀리 보니 능선허리에 까진 부분이 광난두정자각인데 매의 등에 가깝고 좌우로 펼쳐진 매가 날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삼각산 정상을 찍고나서 저쪽 광난두정자각으로 하산하고 매의 왼쪽 날개부분에 해당하는 서풍받이로 산행할 코스인 것이다.
▼ 사탄동고개의 산행을 연결해 주는 다리로 보이는데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다리로 "러브 브릿지"라 부른다. 다리를 건너 산행하는 것은 아닌데 궁금하여 다리까지 한번 들러본다.
▼ 산행 내내 안내문에는 사랑의 기(氣) 표시를 많이 해놨다. 젊은 연인들이 삼각산을 오르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고 사랑이 식은 나이 든 사람들이 이 기를 받도록 한 것일까...
▼ 조금더 오르니 멀리 백령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북한땅이 조망된다. 중고등학교가 있는 마을과 농여해변의 풀등 일부가 보인다.
▼ 30여분쯤 올라오니 삼각산1봉인 통신탑이 눈에 들어온다. 이번 트레킹 명칭은 "삼서트레킹"이라 통상 부른다.
삼각산~서풍받이까지의 앞 글자만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 정상을 오르면 바로 저 능선으로 하산하게 된다. 능선 넘어로 소청도가 조망된다.
▼ 뒤돌아 본 모습
▼ 삼각산1봉은 통제구역으로 갈 수 없고 정상석이 있는 3봉으로 이동한다. 이곳을 중국 관광객들을 배려해서일까 한자까지 표기해 놨다. 거기다 매바위전망대에서 삼각산으로 오르는 길은 대청도명품로드 중 ‘사랑氣로드’이다. 옹진군에서 길을 정비하면서 로맨틱한 이름을 붙였다.
참고로 동쪽 선진포선착장에서 삼각산으로 오르는 길은 ‘성공氣로드’이다.
▼ 중국풍이 있는 표지목은 이유가 있는 듯...중국과 백령도의 뱃길이 조성되면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배려하기 위한 것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고려~조선시대에 백령도와 대청도에 유배 온 원나라 사람은 모두 8명이다.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 타환첩목이(妥帖睦爾)는 황태자 시절(1330~1331년) 대청도에 머물렀으며, 원 세조 쿠빌라이의 여섯째 아들인 황세자 애아적(愛牙赤·1280~1281), 황족인 활활알(闊闊·1288~1297)과 아목가(阿木哥·1317~1323), 발라(八剌·1324~1329) 등도 대청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적(賊)의 일당인 탑야속(塔也速·1292)은 백령도 유배 길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대청도 유배 길에 오른 이들은 상당수가 원의 황태자, 세자, 황족의 일원이었다. 인천시와 옹진군은 백령도와 대청도 일대 당시 유배지로 활용한 유적이 일부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경기일보 발췌]
▼ 삼각산 2봉은 정상석이 없다. 정상석이 있는 곳까지 칼바위 능선이다.
▼ 대청도는 위도상으로 보면 북쪽과 서쪽이 모두 북한땅이다. 남동쪽은 아무것도 없고 보이는 것은 북한땅이니 북한에 포위되어 있는 느낌이다.
▼ 남서쪽으로 위치한 사탄동(모래울) 마을과 멀리 대갑죽도. 왼쪽이 마치 섬으로 보이는 듯 하나 그쪽으로 하산할 서풍받이이다.
▼ 대갑죽도
▼ 사탄동(沙灘洞)마을과 사탄동 해변의 모습. 이제는 모래울 해변으로 명칭을 바꿨다. 모래沙, 여울灘으로 순수한 우리말로 풀이를 한 것인데 사탄(Satan)이란 반대자, 적, 악마를 뜻하는 말로 인식이 별로 안좋아 명칭을 바꾼 것이다.
기린소나무로도 유명한 소나무 군락지로서 고운 모래와 함께 적송의 멋진 모습이 우리나라 10대 해변에 속한단다.
※ 기린송: 원나라 순제가 이곳 대청도에 유배를 와서 소나무림과 모래울 해변이 보이는 곳에서 사색 하던 중 이곳의 소나무들에게 "아들을 가져다 주는 기린송이로구나!" 라고 하였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기린송이 아들을 가져온다고 믿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안내문 발췌]
▼ 삼각산2봉에서 바라본 1봉
▼ 정상의 전망대에 바라본 소청도 전경
▼ 삼각산(343m)은 인천에서 계양산(395m)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산이다.
▼ 북쪽 방향의 백령도 전경과 그 뒤로 아득히보이는 북한땅.
옥죽동 해변의 맨 오른쪽 하얗게 보이는 부분이 모래사막이다.
▼ 들머리로 부터 살방 살방 1시간 20분만에 도착한 삼각산 정상의 전망대...
함께 한 룸메이트 네명이 선두로 도착했다.
▼ 다른 회원들 뒤쳐져 막걸리 마시고 있는 동안 잽싸게 서풍받이로 가기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 이제 하산하여 저 아래 조망되는 서풍받이를 트레킹 할 것이다. 여기서 보니 별 볼일 없어 보이는데...
▼ 구멍이 숭숭 뚫린 거대한 바위가 버티고 있는데 무슨 힘으로 버티나 했더만 부지깽이 같은 나무로 수도 없이 받쳐 놨다.
▼ 7년전인 2010년에도 선착장에서 차로 사탄동에 있는 숙소로 이동 중 이곳 광난두정자각에서 사진을 촬영했었다. 그러나 어디가 어딘지 지형을 전혀 모르는 가운데 모래울 해변만 둘러 보고 바다 낚시만 즐겼기에 이곳 아래쪽에 그 유명한 서풍받이가 있었다는 것 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지금까지 설렁설렁 세상 구경 뭘 보고 다녔나 모르겠다.
▼ 정자각에서 바라본 모래울 해변의 모습
▼ 2010년 6월 6일 촬영했었던 모래울 해변...모래가 곱고 경치가 아름답다. 삼서(삼각산~서풍받이)트레킹을 마치고 이곳으로 오려했으나 한 회원의 예기치 않은 작은 사고로 버스를 타고 보건지소로 향하는 바람에 그 당시의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두개의 하트를 그린 것인데 멀리서 담으니 동그라미로 변했다.
▼ 원나라 순제가 사색을 했다는 기린소나무 군락지로 해변과 함께 운치를 자아낸다.
▼ 트레킹 할 코스를 미리 당겨봤다. 서풍받이 풍경이다.
▼ 다시한번 살펴 본 소청도 전경...바닷물 빛과 하늘빛이 너무 좋다.
▼ 이곳에서 보는 서풍받이는 별로 감흥이 없다. 그러나 실제 저곳을 가보게 되면 그 절경이 이해가 된다.
▼ 정자각에서 서풍받이 가는 길목에 해병할머니란 비석이 묘앞에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분명 장병들이 세운 것인데 어떤 사연일까...
- 평생을 해병대 장병들의 어머니와 할머니로 살아온 이선비 할머니 -
해병대가 대청도에 위치하기 시작한 1951년부터 지금까지 60여 년 동안 대청도 해병들과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받으며 ‘해병 할머니’라는 별명과 함께 한 평생을 보낸 이가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선비(향년 87세, ’12. 11. 22.(목) 별세) 할머니로, 대청도 뿐 아니라 백령도에 근무한 적이 있는 해병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로 오랜 시간 수많은 해병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왔다.
1926년생인 이선비 할머니는 5살의 나이에 황해도 해주에서 월남한 후 14살 때 대청도로 시집와 줄곧 그곳에서 해병들과 함께 살아왔었다.
해병대가 대청도에 주둔하기 시작한 1951년경, 낮에는 엿장수와 고물장수를 하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하며 어렵게 생활해 오던 할머니는 어느 해병의 군복을 바느질해 준 것이 해병대와의 첫 인연이 되었다. 그대부터 할머니는 보이는 해병들 마다 손수 밥을 지어 먹였고, 찢어진 군복을 수선해 주었다. 심지어 전 부대원에게 똑같은 속옷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해병 할머니가 대청도 해변의 작은 마을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갈 당시에는 손자 같은 장병들의 편지를 대신 부쳐주거나 고민을 들어주었다. 또한 부대 지휘관들은 실무 적응이 미숙한 해병들을 할머니에게 보내 상담을 받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면서 해병대 장병들은 자연스럽게 ‘해병 할머니’라고 부르게 되었다.
팔순이 넘어 기력이 없을 때에는 훈련이나 외출 등으로 집앞을 지나가는 해병들이 눈에 보이면 버선발로 나와, 과자 하나라도 꼭 쥐어주며 격려하고 다독거려 주었다. 이 할머니의 해병대 장병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극진했던지 지난 1981년 할머니가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가 됐을 때에는 육지에 사는 아들이 함께 살 것을 간곡히 원했지만 할머니는 “해병대 장병들과 떨어져서는 하루도 못살 것 같다”라며 아들의 권유를 뿌리치기도 했다. 이러한 할머니의 극진한 해병대 사랑에 영향을 받아 아들 김형진씨도 해병 546기로 복무했다.
해병대 장병들은 이와 같은 할머니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할머니가 하기 힘든 도배나 페인트칠 등을 통해 할머니를 도왔고 ‘해병 할머니 집’이라는 간판을 직접 만들어 달아 주기도 했다. 또한 부대장으로부터 사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전출이나 전역으로 대청도를 떠나게 되면 부대에서 신고를 마친 뒤에는 꼭 ‘해병 할머니’집을 방문해 감사의 마음을 드렸다.
이처럼 해병들과 할머니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지내던 중, 할머니가 고령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지자 장병들은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하루에 한 번씩 할머니를 찾아뵙고 안부를 확인하고 집안 청소와 땔감마련 등 아들과 손자 노릇을 해줬다.
하지만 이런 해병대 장병들의 극진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노환이 깊어져 2010년부터 인천의 한 요양원에서 지내다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해병들을 두고 지난 11월 22일 작고하였다. 소식을 들은 해병대 장병들은 해병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 눈물 지었으며 “내가 죽거든 손자 같은 해병들의 손에 의해 묻히고 싶다.”는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평생을 함께해 온 해병대원들의 배웅 속에 안식의 잠에 들었다.
백령도 6여단에서 정보참모(1992년 2월 ~ 1993년 4월)와 작전참모(1998년 12월 ~ 2000년 12월) 그리고 여단장(2007년 5월 ~ 2008년 4월) 직책을 수행하며 해병 할머니와 인연이 깊었던 이호연 해병대사령관은 할머니의 별세 소식에 가슴 아파하며 “해병 할머니가 베풀어주신 사랑은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 의해서 성장하고 전파되어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며, 베품과 섬김의 성숙된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재산목록 1호는 해병대 장병들과 찍은 사진이다.”라며 “남은 여생도 해병과 함께하는 영원한 해병이 되겠다.”라고 늘 웃음지어 주셨던 ‘해병 할머니’는 해병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또한 해병대는 할머니가 해병대로부터 받은 기념품과 표창장, 장병들과 찍은 사진 등 유품을 여단 역사관에 전시하여 할머니와 해병대 장병과의 사랑이야기를 길이 전하고 어른공경에 대한 장병 정신교육에 활용할 예정이다 [출처:해병닷컴]
▼ 광난두해변과 기름항아리(아가리), 멀리 독바위가 자리잡고 있는 해변의 모습.
▼ 오른쪽에 홀로 떨어진 작은 바위가 독바위다.
▼ 새(매)의 머리형상인 부분이다. 거대한 새가 날개짓을 하는 모습.
▼ 당겨본 모래울 해변
▼ 서풍을 모두 받아 낼 듯 버티고 있는 거대한 암릉 절벽!!
▼ 앞뒤를 돌아봐도 해안 절벽이다.
▼ 모래울 해변 오른쪽으로 자리잡은 암릉이다. 해식동굴이 눈에 들어온다.
▼ 당겨본 해식동굴
▼ 지질학자라면 한마디 읊었을 풍경이다. 지층을 보면 영겁의 세월동안 변하고 변했던 지구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 햇살에 비친 대갑죽도
▼ 2010년 6월 6일... 대갑죽도에서 이곳을 배경으로 찍은 실루엣 사진. 거대한 괴물로 보인다.
멀리 오른쪽으로는 소청도.
▼ 그 당시 가까이서 본 대갑죽도
▼ 사자웃음바위라는 안내문이 있다. 주변을 아무리 찾아봐도 이 바위 밖에 없어 게재한다.
사자가 웃는 모습 맞나? 두꺼비가 혓바닥 내민 모습인데...
▼ 조각바위 정상의 모습
▼ 모두 서풍받이에 속하나 조각바위언덕 전망대가 있으니 이것이 조각바위로 본다.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 당할만 하다.
▼ 조각바위와 전망대
▼ 삼각산 정상과 광난두해변, 갈대원(저 아래 갈대가 많다하여 붙여진 이름...갈대가 아니라 억새가 조금 있었음)
▼ 서풍받이
▼ 좀 더 가까이서 본 서풍받이 일대 풍경
▼ 하늘을 찌를 듯 첨단을 이뤄 고개를 쳐들고 그 위용을 뽐내는 암릉의 모습은 신을 조롱하듯 한다.
▼조각바위...
수만년을 풍파로 조각된 모습인가? 이 암릉앞에 서는 순간 내 가슴은 쪼르라들기만 한다.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륙으로부터 몰아쳐 오는 북서풍의 강한 바람과 그 바람이
일으키는 큰 파도들이 조각을 이어와 이와 같은 조각바위 언덕의 절경이 탄생하였다.
조각바위 언덕은 100m가 넘는 금빛병풍 바위가 햇빛을 받아 사방으로 반사되면서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빛이 나며 천혜의 절경을 담아 갈 수 있는 곳으로 약 700년 전
중국 원나라 마지막 임금 순제가 유배를 와서 사색했던 장소 중 단연 으뜸으로 전해 내려
오고 있는 곳이다.
▼ 조각바위 암릉 정상에서 뒤돌아 본 모습...대청도 최고의절경이라 할 수 있겠다.
▼ 삼각산과 광난두해변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 기름항아리(아가리)
▼ 가운데 하얗게 벗겨진 능선이 광난두정자각, 저곳으로 부터 이곳까지 트레킹한 것...
내가 오른 이곳은 등로에서 좀 벗어난 암릉 정상이다.
▼ 두번째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절벽이다. 역시 서풍받이를 닮았다.
▼ 다시 한번 뒤돌아 본 모습.
▼ 두번째 하늘전망대에서 내리막길로 500여 미터를 가면 이와 같은 마당바위가 나타난다.
일행은 먼저 갔는지 아무도 안 보인다.
▼ 멀리 소청도와 함께 담아 봤다. 이곳이 더 갈 수 없는 트레킹 코스 끝 지점이다.
▼ 다시 왔던 코스 그대로 뒤돌아 가는 것이 아니라 왔던 길로 오르다 보면 갈대원이라는 표지목이 나오고 그곳으로 향하면 아랫길로 접어 들면서 광난두해변과 기름항아리가 나오는 코스로 가게 되는데 아주 편한 길이다.
▼ 다시 한번 당겨 본 기름항아리
▼ 갈대원쪽에서 바라본 조각바위전망대
▼ 붉나무 군락지
▼ 지금까지 만난 대청도의 야생화...<등골나물>
▼ <애기실부추> 지금까지 처음 보는 꽃이다.
▼ 딱지꽃
▼ 까실쑥부쟁이
▼ 조밥나물
▼ 금불초
▼ 금방망이
▼ 잔대 종류인데 정확한 것은 더 알아봐야겠다.
▼ 고추나물
▼ 산꼬리풀
▼ 선진포선착장에 있는 어부상
▼ 대청보건지소...삼각산에서 광난두정자각에 모두 모였다가 서풍받이로 트레킹을 하기로 하고 정상에서 출발했는데 중간의 인원들이 결국 모래울 해변쪽으로 알바하는 바람에 그 일행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선두는 결국 먼저 출발하게 되고 후에 정자각으로 돌아와 다 같이 일몰을 보러 모래울해변으로 갈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뒤쳐져 모래울해변으로 알바한 인원들 중 여성분이 그곳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다가 바위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사고로 얼굴에 찰과상을 입고 팔에 타박상을 입어 이곳 보건지소로 버스를 타고 모두 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크게 다치지 않은게 천만다행이지만 여러 사람이 행동할 때에는 리딩대장의 말에 순응을 하고 또 관심있게 얘기도 들어야 하는데 결국 개인행동으로 해 많은 이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여울해변의 소나무 군락지에서의 멋진 장면들을 포착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내일 일정에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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