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7일(토)
지난주에 비탐 지역인 점봉산에 이어 이번에는 남설악 가리봉을 오른다. 이번 역시 들머리, 날머리 공지가 없어 어디로 오를 것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버스에서 대략 설명을 듣고 04:20쯤 한계령 못미처에 하차하여 군사 작전에 돌입하듯 잽싸게 능선을 오른다.
한계령으로부터 오르는 코스를 가로질러 중간에 잘라먹는 코스로 등로도 아닌 듯한 가파른 능선을 정신없이 오른다. 20여분쯤 올랐을까 드디어 한계령으로부터 오르는 등로를 만나 좀 수월한 육산을 계속 이어가게 된다. 5시가 좀 넘으니 날이 밝아 오고 첫 조망터에서 조망되는 북쪽 방향의 서북능선을 보니 날씨도 괜찮아 보이고 주변 풍경에 대한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무숲은 우거져 고령의 신갈나무가 주종인데 조망터가 없어 답답한 가운데 한참을 걷다 잠시 트인 바위에 올라서서 주변을 바라보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숲속에서는 전혀 없는 희뿌연 안개가 서북능선에 끼여 공제선만 보일 뿐 도대체 가시거리가 제로이다.
지난 주에 점봉산을 오를 때에는 전날 비가 온다 하여 습도가 높으면 시계가 안 좋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너무 맑고 깨끗한 날씨인데 오늘은 정반대다. 전역 곳곳에 폭염주의보를 내릴 정도로 기온은 올라 있는 데다 습도가 높아 급격히 수증기가 주변을 덮는 모양이다. 차라리 지상에 깔려 있는 운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역시 자연현상이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미세먼지가 아닌 듯 하여 다행이다. 가리봉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풍경은 그래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니 장쾌하게 펼쳐진 서북능선을 담지는 못했어도 산행 기록을 남기는 데는 별 무리가 없어 위안을 삼는다.
약 9km밖에 안 되는 거리를 다리에 쥐가 난 회원이 있어 12:00까지 마치도록 되어 있는 산행이 한 시간이나 지체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주걱봉을 경유한 산행은 엄두도 못 내고 국공의 눈을 피해 중간에 하산하게 되었으니 주변 사진 담을 풍경이 빈약하여 야생화만 이것저것 담아오는 산행이 되었다.
♣ 산행코스: 한계령-가리능선-가리봉- 가리산리
♣ 거리: 약 9km(들머리-04:20, 날머리-13:00)
▼ 25분쯤 올랐을까, 첫 조망터에서 바라본 서북능선...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여명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서북능선의 날카로운 봉우리들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 나무숲이 우거져 주변을 볼 수 없는 육산을 이어가면서 일출을 보게 된다. 첫 들머리부터 등로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가파른 능선을 올라와서인지 모두가 지친 기색이다.
아침식사를 휴게소에서 하도록 시간을 주지만 대부분 이른 새벽에 식사하기를 꺼려하여 그냥 산을 오르게 되는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에너지가 부족하니 더 힘들 수 밖에 없다. 나의 경우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밥힘으로 걸으니 그럴 일은 없다.
▼ 점봉산을 걸으면서 어느 부분에는 조릿대가 마치 제초제라도 뿌린 듯 몽땅 고사한 것을 보면서
참으로 인간으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것이 생태라는 것을 느낀다. 이곳에도 군데 군데 조릿대가
죽은 곳도 있고 이쯤에서 조릿대 군락이 이뤄졌음도 볼 수 있다. 한라산의 조릿대도 스스로 고사
되어 생태계가 다양한 종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 두번째 조망터에서 바라본 서북능선...
마치 미세먼지가 뒤덮힌 것 같이 뿌연 안개에 가려 산 능선과 하늘이 맞닿는 공제선만 그려져 있다.
▼ 주변 조망이 되질 않으니 주변에 띄는 야생화에만 눈길이 간다. 고산지대에 주로 많이 서식하는 <금마타리>다. 그냥 <마타리>는 전국 야산에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돌마타리>도 고산지대에 지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 큰앵초도 5월 중순쯤에 만개되는 야생화인데 이곳에서는 지금도 볼 수 있으나 이제 끝물이다.
▼ 나래박쥐나물...
그냥 박쥐나물과 달리 기부가 귀처럼 넓은 것이 특징이다.
▼ 큰꼭두서니
▼ 산앵도나무...
앵두나무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으나 산에 사는 앵두나무라면 산앵두나무라고 불리워야 하나 앵도라는 이름이 왜 붙었는지 모른다.
▼ 인가목...
이걸 해당화로 보는 이들이 있으니 이해가 간다. 꽃도, 잎도 비슷하니 말이다. 그런데 바다에 있어야 해당화지 산에 있는 꽃이 어찌 해당화가 될 수 있을까...누구는 또 산해당화라고 부른다.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이름인가! 산당화라고 불러야지 산해당화는 무쉰...
인가목과 가장 흡사한 꽃이 생열귀나무이다. 꽃받침이 인가목은 위와 같이 꽃옆으로 삐져 나올 만큼 큰데 비해 생열귀나무는 꽃에 가려 보이질 않고 열매도 인가목은 길쭉한 편이지만 생열귀나무는 둥근편이다.
▼ 얼마를 걸었을까 드디어 진행방향에 뾰족한 봉우리가 보이면서 그 우측 아래 능선으로 12연봉이라는 암봉이 보이고 장수대 방향으로 뻗어 내린 능선이 조망된다.
▼ 12연봉이 숲사이로 살짝 보인다.
▼ 뒤를 돌아보니 왼쪽 멀리 희미하나마 점봉산이 보인다.
▼ 물참대...
어느 식물의 꽃이든 비슷한 꽃들이 있다. 역시 말발도리와 흡사하다.
▼ 눈개승마
▼ 진행할 산이 앞에 떡 버티고 있는 그 우측으로 12연봉과 함께 멋진 능선이 뻗어 내려 시원한 조망을 내 준다.
▼ 꽃개회나무...
정향나무, 털개회나무와 흡사한 꽃이다. 당연히 우리가 흔히 라일락이라고 부르는 수수꽃다리와 같은 속이기에 향기도 같다.
▼ 끝물인 두루미꽃
▼ 이미 열매를 맺고 있는 나도옥잠화
▼ 조팝나무 종류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것은 설악조팝나무
▼ 마가목도 한창 만개했다.
▼ 뒤돌아 본 능선
▼ 아주 멀리 귀때기청봉에 이어 중, 대청봉이 보인다.
▼ 가리봉에서 본 소가리봉이다. 소가리봉으로 바로 하산하는 길이 있고 그 방향으로 하산하다가 우측으로 가야 주걱봉으로 향하는 등로이다.
▼ 하산하다가 오른쪽으로 하산하면 아래의 뾰족한 능선을 타고 주걱봉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 마치 철모와도 같이 생겼고 가마솥을 엎어 놓은 것과 같다는 표현을 한다. 저 주걱봉의 정상을 밟는 이들도 블로그의 정보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왕 산행을 한다면 주걱봉까지 올라봐야 하는데 많은 인원을 리딩하는 책임자 입장에서는 부담일 수 밖에 없으니 적은 인원으로 팀을 이뤄 오른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산행일 것이란 생각에 입맛만 다셔본다.
▼ 당겨 본 주걱봉
▼ 주걱봉 뒤로 삼형제봉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보는 봉우리는 하나로 보인다. 이곳으로부터 저곳으로 하산코스가 있다고는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이 된다.
삼형제봉으로 부터 이곳 가리봉으로 오르는 코스도 있겠지만 비탐구역으로 통제되어 있고 안전에도 문제가 있어 무리한 산행은 자제해야 할 것 같다.
▼ 우리나라 특산종인 구상나무...어느 고산의 유명산도 이제는 구상나무가 기온이 점차 높아짐에 따라 생태의 변화가 생겨 고사되어 가고 있는 것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 마가목...
울릉도에 갔더니 성인봉 아래 나래분지 부근의 마을에는 마가목을 밭에 약재용으로 식재하여 키우는 것을 볼 정도로 꾼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 삿갓나물...
우산나물과 헷갈리는 식물이기도 하다.
▼ 바람꽃...
바람꽃 종류도 많은데 이것이 바로 그냥 바람꽃이다.
아직 덜 핀 상태인데 이 한개체가 피어 마치 나를 반겨주는 듯 기쁘다.
▼ 저렇듯 죽어가는 고사목은 거의 구상나무 또는 주목이다.
▼ 주걱봉으로 가는 능선에 가리봉에서 뻗어내린 능선이 이채롭다.
▼ 좀더 가까이서 바라본 주걱봉
▼ 이곳까지 오는 능선도 칼날과 같아 오른쪽 아래를 보자면 까마득한 절벽이다.
자연앞에 인간은 한낱 티끌에 불과함을 수도 없이 느끼는 바다.
▼ 10:30분 이쯤에서 본격적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안개도 많이 걷혔다. 왼쪽 안산으로 부터 대승령, 귀때기청봉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이 확연히 드러났다.
▼ 은대난초...
꽃보다 잎이 위로 올라오면 은대난초, 꽃 봉오리가 잎보다 위에 있으면 은난초로
통상 알기 쉽게 구분한다.
▼ 함박꽃나무의 꽃을 산목련이라고도 하는데 속을 들여다 보면 정말 예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우산나물...
위에서 설명했듯 삿갓나물과 헷갈리는 식물이다. 꽃망울이 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이제 거의 다 하산했다. 계곡의 물이라고는 볼 수 없다.
▼ 꿀풀...
어려서 외래종인 사루비아꽃을 따서 꿀을 빨아 먹기도 했는데 그런 꽃을 알기전 이 꽃에서 꿀을 빨아 먹곤 했으니 꿀풀이라 불릴만 하다.
▼ 딸기 종류 중 제일 먼저 먹는 것이 줄딸기 아닌가 한다. 이번 산행중 하산해서도 제법 많은 딸기, 오디를 공복에 아주 맛있게 먹었다.
▼ 우산이끼...
한낱 이끼에 불과하지만 관심있게 보면 아주 재미있다. 우산과 같이 생겼기에 우산이끼라 부른다.
▼ 다래...
아직도 피어 있는 것을 보니 다른 곳과 늦어도 한참 늦다.
▼ 가리산리 일대의 밭을 하산하면서 보니 역시 가뭄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있다. 밭에 심어 놓은 야콘, 참깨, 고추, 양배추...
모든 것이 심어 놓은 그대로 자라지 않거나 시들 시들 말라 죽어간다. 애타게 골짜기의 물을 퍼다 부어 대지만 그때 뿐이다. 이래저래 서민만 삶이 고달픈 세상이다. 하루빨리 해갈될 만한 비소식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마지막 날머리 부분의 몇백 킬로미터의 그늘도 없이 볕에 달군 아스팔트 걷는 것도 맥빠지게 한다.
이렇게 해서 좀 싱겁긴 하지만 오늘의 비탐구역인 가리봉의 산행을 마친다.
▼ 계곡에 물이 흐른다. 참 신기하다. 역시 깊은 산중임을 수량이 말해준다. 흡족한 수량은 아니지만 알탕을 하기엔 충분했다. 이제 평일의 5일간은 비가 와 주었으면 한다. 산행 후 시원한 알탕을 위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