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8일(토)
어제 금요일 저녁 24:00에 출발한 버스는 간간이 안개낀 고속도로로 인하여 예정시간 보다 좀 늦은 05:30쯤 목포 유달산 들머리에 도착했다.
유달산을 종주하고 아침식사를 한 후 금일 일정인 목포항에서 07:50분 홍도행 여객선을 탈 시간이 부족할 수 밖에 없어 노적봉 주변이나 보도록 리딩대장의 지시였지만 아침식사를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잽싸게 올라 가는데 까지 갔다가 내려오자는 생각으로 몇 명이 빠른 걸음으로 오른다.
사실 40여명 중에는 정회원을 따라 나선 관광 유람이나 즐기려는 사람이 많아서 정상은 멀지 않지만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산길을 제대로 오르내리지 못하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게되면 큰 낭패를 볼 수 밖에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조치인 것 같다.
결국 5명만 정상에 올랐고 사진촬영을 즐기고 하산하니 버스에는 우리 일행을 기다리는 회원들의 눈총에 미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분위기는 잠시 뿐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고 했던가! 이만큼의 풍경을 후에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추억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유달산∥
높이 228m. 유달동 ·대반동(大盤洞) ·온금동(溫錦洞) ·북교동(北橋洞)에 걸쳐 있고, 유달산 동쪽 기슭을 중심으로 목포시가 자리잡고 있다. 산은 비록 해발고도가 낮으나 산정은 매우 날카롭고 층층기암과 절벽이 많아 경치가 수려하다. 산정에서는 목포시와 다도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동쪽 산꼬리에는 기상관측소 ·시청 ·법원 등 관공서가 있고, 산 중턱에는 유달사 ·수도사(修道寺) ·관음사(觀音寺) 등 사찰이 많다. 서쪽 산록은 바다에 임하며, 길이 365m, 너비 20~40m 규모의 유달해수욕장(2006년 폐쇄, 2017년 재개장 예정)이 있다. [출처: 두산백과]
▼ 안개가 살짝 드리워진 시내는 동이 막 트려는 붉은 여명으로 인해 운치를 자아낸다. 멀리 왼편으로 통신탑이 있는 양을산과 오른쪽으로 입암산이 조망된다.
▼ 관운각 앞쪽 멀리 삼학도가 있는 삼학도공원이다. 바다가 끝나고 강이 시작되는 곳에 아담한 봉우리 셋을 푸른 새처럼 앉혀 놓았던 섬 삼학도는 다음과 같은 전설을 갖고 있다.
옛날 옛적에 유달산에서 한 젊은 장수가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 늠름한 모습에 반하여 마을의 세 처녀가 그 젊은이를 찾아가자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처자들을 거부했다. 세 처녀는 젊은이를 그리워하다 상사병에 걸려 식음을 거부한 채 죽게 된다. 그 처녀들의 혼이 학이 되어 유달산 주위를 날며 슬피 울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모르는 무사는 무예 수련 중 세 마리 학을 향해 활을 쏘아 명중시켰고, 세 마리의 학은 모두 유달산 앞바다에 떨어져 죽게 되었다. 그 후 학이 떨어진 자리에 세 개의 섬이 솟아오르니 사람들은 그 섬을 세 마리 학의 영혼이 어린 섬이란 뜻으로 ‘삼학도’라 부르게 되었다.
삼학도는 연인을 그리워하는 혼이 솟아난 섬인 셈이다. 소통이 안 된 젊은 여인들의 한이 섬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삼학도에 가서 사랑을 고백하고 그 내역을 적어두면 꼭 이루어진다고 한다. [출처: 네이버]
▼ 목포항과 건너편은 영암군에 속하는 대아산이다.
▼ 유달산 일등바위
▼ 일등바위 오르는 등로
▼ 남쪽으로는 길게 늘어선 고하도가 조망되고
▼ 바로 아래 신안비치호텔이 물건너 고하도와 포말을 일으키며 이동하는 똑딱선배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같다.
▼ 북쪽에 자리잡은 이등바위는 마치 달마산의 어느 암릉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멋지게 자리잡고 있다. 그 너머로 부터 이곳으로 종주를 하거나 이곳에서 저곳으로 종주를 하거나 하면 기분 좋은 트레킹이 될 것 같다.
▼ 날씨가 맑아 시내가 뚜렷이 보여 밋밋한 풍경 보다는 이렇게 적당한 해무로 연출되는 풍경이 훨씬 보기 좋은 것은 사람의 미적 감각 때문이다.
▼ 동이 트기 시작한다. 매일 보는 해 이건만 오늘 이자리에서 보는 해는 각별할 수 밖에 없다.
▼ 유달산 입석바위
▼ 하산길에 당겨 본 목포항과 건너편 영암군의 대아산.
▼ 달성사
▼ 유달산 종바위
▼ 유선각
▼ 유달산 투구바위
▼ 노적봉
전남 해남시 옥매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울둘목과 만호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장수들이 옥매산 정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왜적이 만호 바다를 거슬러 쳐들어 왔다. 이순신 장군은 옥매산에 이엉(마름)을 둘러씌워 노적가리처럼 보이게 했다. 이른 본 왜적들이 군량미가 그렇게 많은 줄로 생각하고 서둘러 도망갔다. 또한 목포시 유달산에서 내려다보면 고하도와 앞바다가 보인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서도 왜적을 많이 물리쳤다. 마침 왜적이 침입하자 유달산 능선에 있는 거석(巨石)을 짚과 섶으로 둘러싸서 군량미처럼 보이게 하였다. 또한 영산강에 백토와 횟가루를 풀어서 쌀뜨물이 떠내려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왜적들이 서남해를 거슬러 올라오다가 노적가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쌀뜨물이 바닷물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고 기겁하여 후퇴해 버렸다는 전설이다. [네이버]
▼ 이난영 (1916~1965)
본명 이옥례(李玉禮). 전라남도 목포 출생.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오빠 이봉룡(李鳳龍)과 함께 불우하게 자랐다. 16세 무렵 태양극단의 순회공연 중 막간무대에서 노래를 인정받아 순회극단을 따라 나섰다.
단체가 일본에서 순회공연을 할 때 오케레코드사 사장 이철(李哲)에게 발탁되어, 1933년에 염석정 작곡의 「향수」를 취입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 앞서 태평레코드에서 발매된 「시드는 청춘」, 「지나간 옛 꿈」이 이난영의 데뷔곡이다.
1935년 가사모집에서 입선된 문일석(文一石)의 작품에 손목인이 곡을 붙인「목포의 눈물」을 불러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가요계의 새별로 등장하였다. 1936년 20세가 되던 해에 가요작곡가 김해송(金海松)과 혼인하였다.
뒤이어 이봉룡 작곡의「목포는 항구다」, 김해송 작곡의「다방의 푸른 꿈」등으로 당대 최고의 유명 가수가 되었다. 광복 후에도 무대가수로 활약하였는데, 6·25동란 때 김해송이 납북된 이후 K.P.K악단을 손수 운영하였다.
자식들도 미국에서 김씨스터스·김보이스라는 이름으로 연예활동을 하였고, 1963년 한때 자식들을 따라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귀국하여 별세하였다.
▼ 연리지
▼ 이순신 장군 동상
▼ 여객터미널에서 당겨 본 유달산의 이모저모 (유선각)
▼ 대학루(待鶴樓)
▼ 달선각
▼ 노적봉
▼ 유달산 정상의 일등바위와 관운각
▼ 홍도행 여객선을 타기 위해 터미널에 들어서기 전 바라본 유달산, 목포 태생인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노래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날이었으니 내 어릴 때 라디오에서나 접할 수 있는 좋아했던 노래였고 일찍 세상을 타계한 아쉬움이 너무 컸던 그 시절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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