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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야기/고향 추억

가을 추억

 

 

 

가을의 풍경은 어느 시골이든 풍성함을 느끼게 한다.

오곡백과 무르익는 고향의 가을 역시 너른 벌판이 있기에 더욱 풍요로운지 모른다.

그러면서 논길을  걷다보면 옛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물이 빠진 논마다 갈 곳 없는 물고기들이 웅덩이에 모여 퍼득거리면 그 걸 잡는 재미도 있었고 주변에 얼쩡거리던 참게란 놈을 운 좋게 잡으면 더욱 신이 났다.

한번은 동차(달구지)가 다니는 길을 해가 지는 황혼무렵 걷다가 우연히  동차바퀴에 패인 곳에 웅크리고 있는 참게 놈을 몇마리씩 발견하고 잡아 오기를 며칠...

집에 있는 빈 장독에 넣어 두곤했는데 어느새 절반이상이 채워져 그 걸 팔아 학교 기성회비로 낸 기억이 있다.

벼 메뚜기도 커질때로 커지고 알도 통통 배어서 강아지풀 낌채에 꿰어 잡아다가 볶아 먹는 것도 별미였다. 

훗날 도심에서 맥주 안주감으로 팔리리란곤 생각조차 못했던 얘기다. 추수가 끝날 쯤이면 어김없이 학교에서는 벼이삭을 줏어 오도록 하였다. 난로 불쏘시개용 솔방울과 함께...

있는 집 애들이야 그냥 집에서 한됫박 퍼다 주면 되는 일이었지만 우린 열심히 이삭을 주었다. 혹이라도 남의 논 볏낟가리에서 벼를 뽑는 일은 없었다. 순진하기만 하고 정직하기만 했던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다가 벼이삭을 다량으로 줏을 수가 있는 요령이 생겼는데 논두렁의 쥐구멍을 찾는 일이었다. 쥐들이 겨울을 나기위해 쥐구멍안에 잔뜩 벼이삭을 잘라 쌓아 놓았는데 그 걸 도둑질(?) 하는 일이다.

긴 철사로 된 갈쿠리를 가지고 쑤셔서 나오는 양이 장난이 아니다. 여의치 않으면 직접 팔을 쥐구멍안으로 쑤셔넣어 끄집어 내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아예 삽질을 해서 쥐구멍을 드러내고 벼이삭을 채취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삼태기씩은 나왔는데 그럴때면 정말 운 좋은 일이었다. 물론 손으로 쑤시다가 냄새나는 물고기가 나오거나 쥐한테 물리는 기억도 있다.

그런 벼이삭을 잘 털어서 정성껏 학교에 제출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기만 하다. 그러나 이제 쌀이 남아 돌아 골치거리가 된  세상!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안타까운 일이다. "농자는 천하지 대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되었다.

그래도 고향의 가을 벌판에 서면 훈훈한 정을 느끼는 것은 아직도 넉넉한 마음으로 우리를 반겨주는 동네분들이 있기에 그렇지 않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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