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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야기/고향 추억

남산포에서 바라본 노을

 

 

 

과거 교동의 관문이었던  남산포!

사람이 북적대고 길 양쪽으로 빼곡히 건물들이 있었던 곳은 대룡리 재래시장과 남산포 입구였다.

고깃배가 수시로 드나들고 외부로 부터 들어 오는 물류의 운반은 먼 발치서 바라만 봐도 즐거운 일이었다.

이웃집 아저씨는 그 배터에서 지게로 물류를 운반하여 논농사와 함께 생계 수단으로 삼았다. 교동에서 부업이랄 것이 고작 화방석 만드는 일이라고나 할까 하는 시대에...

 

그 때는 어부도 꽤 많았고  밴댕이, 새우, 꽃게, 조기 등이 주어종으로 밥상위에 늘 올라 왔었는데 지금은 밴댕이 회도 먹을 거리가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남산포구 어귀에는 일명 '굴아탕'이라는 곳이 있어서 그 곳에서 굴도 줍고 낚시도 즐겼다. 지금은 굴 줍는 이가 있는지...

포구엔 숭어 낚시하느라 물이 좀 맑은 조금부터 2뭇날 까지 그 좁은 포구에 낚시 드리운 사람이 바글 바글 진풍경이다. 

그 옛날 무엇보다 배를 타려고 하는 이들의 애간장을 태운 장소였다.

서한리, 난정리, 동산리 사람들은 죽산포를 이용해 배를 타면 됐었지만 무학리, 지석리, 삼선리, 양갑리, 고구리, 봉소리의 그 먼 동네에서 새벽같이 준비해 남산포로 걸어 나오려면 상상만 하여도 땀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죽산포서 출발한 배가 남산포로 오는 동안 뻔히 보면서 걸음을 재촉하는데 그 배가 왜 그렇게 빠른지 뛰다가 걷다가 숨이 턱에 차 오르는데 남산 끝자락으로 사라지며 울리는 뱃고동 소리...

으흐~ 배 떨어지는가 보다~ 가슴이 두근 두근, 콩딱 콩딱...

젓먹는 힘까지 다해 뛰어보지만한 발 늦어 이미 떠난 배를 돌이킬 수는 없는일... 주저 앉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마중과 배웅의 과정에서 육지의 기차역과 견줄만한 많은 사연을 간직한 남산포!조선 인조 11년(1633년)에는 한성(서울)방어를 위해 남양 화량진에 설치되어 있던 경기수영을 이 곳으로 옮겨 삼도수군통어영지로 경기, 충청, 황해도의 수군을 훈련시켰던 장소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그 전 부터 중국사신들이 왕래한 교통 요충지로의 역할 다했던 옛 시절의 영화는 간데 없고 이제 갈매기 조차 보기 힘든 포구에서 석양을 바라보니 더욱 쓸쓸함만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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