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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야기/고향 추억

사라지는 물광

 

 

 

 

저수지가 없어서 천수답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를 지었던 교동땅에  흉년을 면하기 위해 자구책으로 만들었던 물광들!

얼마전까지만 해도 무학리, 지석리, 난정리, 양갑리에 집중적으로 있었던 물광이 난정 저수지 축조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육지에서 ‘둠벙’, ‘보’란 말은 있지만 물광(꽝)이란 말은 교동에만 전해져 오는 용어일 것이며 우리나라 어딜 찾아 봐도 없을 듯하다.

광이란 곡물을 비롯한 각종 물건을 넣어두는 방 또는 집을 말하는데 벼를 넣어 둔곳을 '볏광'이라고 불렀듯이 물을 가둬두었기에 물광이라고 불리운 것으로 생각이 되고 경음화 현상으로 '물꽝'이란 발음된 것 같다.

 

물광은 계절마다 추억이 어려 있다. 겨울이면 썰매타기 좋았고, 봄이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뚝에서 물오른 삘기를 째며 수수깡 찌에 닭장 철사를 구부려 낚시를 드리우고 우렁이와 물방개를 잡아 놀았던 곳이다.

모를 내면 물이 줄고 한여름 마른장마라도 있게 되면 물광은 어린아이들에게 물 놀이터로 안성맞춤이었다. 발가벗고 물에 풍덩! 너도 나도 한바탕 물싸움을 하고 나면 온통 흙탕물이 되고 한데 몰려있던 물고기가 숨 가쁘게 떠다니면 세숫대를 물위에 띄어 놓고 손쉽게 잡아넣으면 되었다.

 

참게란 놈은 저수지 뚝 안쪽에 풀숲 밑에 구멍에 있어서 팔뚝을 집어넣으면 큰 놈들이 손에 잡히고 그걸 꺼내면 개선장군이 된 듯했다. 운이 좋으면 팔뚝만한 메기도 나왔는데 재수없게 뱀장어인 줄 알고 잡았다가 ‘드렁허리’란 징그러운 놈이 나와 기겁을 한 적도 있다.

소를 키우는 집의 애들은 소먹이로 깔땅(갈대)을 베었고, 화방석 재료인 큰고랭이도 물광에서 구했다.

특히 붕어마름이 나오기 전 그냥 마름이란 식물이 많았는데 과거에는 그 열매를 채취해서 식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평야를 가로지르는 길가마다 한 개씩 있었던 흔했던 물광이 갈대 숲 사이로 연인들의 연애 장소였던 기억이 있는 분들은 또 얼마나 많았으랴!

물론 생각하기도 싫은 일들도 발생했다. 수영 못하는 어른, 애들의 운명을 달리하는 일이 동네마다 있을 법하다.

 

이제 그러한 추억이 깃든 물광들이 난정 저수지의 출현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

올 가을 추수가 끝나면 양갑리 들판이 경지정리 될 것이다.

수십 년 동안 고향의 풍요와 온갖 추억을 가져다주고 삶의 터전이었던 물광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물광!  추억과 함께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공허해 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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