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산!
그 당시에는 송충이도 많았다. 정말 크기도 컸다. 숭숭 나있는 흰털이 피부에 박히면 퉁퉁 부으면서 알레르기가 발생하고 뜨끔뜨끔 아팠다.
벌거숭이와 같은 산에 별로 크지도 않은 소나무가 그나마 송충이로 말라죽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산림녹화라는 정부의 정책에 의해 학생들까지 총 동원하여 송충이 잡이에 나섰다. 송충이 잡이의 준비물은 나무젓가락이나 직접 만든 나무집게와 깡통이었다.
쓰물 쓰물 기어가는 큰 놈을 집게로 집으면 이거 놓으라는 듯 지랄 발광을 하는데 마치 털 달린 미꾸라지가 꿈틀대는 것 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고향에서 송충이를 본 이래로 지금까지 그렇게 큰 송충이를 본 기억이 없다.
초여름이면 아카시아 꽃 향기가 온산을 감싸 돈다. 약간 비릿하면서도 달콤한 그 꽃은 또 얼마나 먹어댔던가! 뻐꾹새가 울고 각종 텃새와 철새가 어우러져 새 둥지를 틀 때면 새둥지를 찾아 나섰다. 본능적인 영양 섭취도 있었겠지만 호기심이 더 컸을 것이다.
새총은 어린아이들이 갖고 사냥을 실감나게 할 수 있는 좋은 놀이 기구였다. 어떤 친구는 새총도 잘 만들고 가끔 새도 잘 잡았는데 손재주 없는 나는 한 번도 새를 잡아 본 기억이 없다.
가을이 되면 워낙 먹거리가 풍족해지는 계절이라 산에 오르는 일은 보리수 열매와 으름 열매등 고급 측에 드는 산과일을 따 먹기 위해서였다. 역시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생리적 욕구에서 식욕의 욕구는 인간의 기본욕구라고 했던가!
또한 상수리 열매를 따기 위해서 돌이나 해머 등으로 나무를 때리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린다. 화개산의 웬만한 상수리나무는 밑 부분이 상처가 나고 꺾이고 골병들어 있는데 성한 것이 없음에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잘도 커왔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상수리나무가 수난을 겪는 계절이기도 하다.
참으로 산은 무한한 것을 우리에게 베푼다. 다만 그것을 우리가 잘 모르고 살아갈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마을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한 삶의 터전이요, 안식처임에 틀림없다.
산 정상에는 산불예방 감시용 초소가 있다.
지킴이가 쌍안경과 무전기를 들고 홀로 망을 보고 있다. 참 자랑스러워 보인다.
과거에는 땔감채취와 더불어 삼년이 멀다하고 산불이 나서 민둥산을 벗어나기란 애시 당초 글렀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이젠 몰라보게 우거진 숲이 아무 때고 이 곳(특히 절에서 대룡리 소로길)을 산책하며 사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임은 그 분들과 함께 고향 분들 모두가 노력한 결과라 생각되어 감사할 뿐이다.
그 시절의 나보다 더 커버린 자식과 옛 추억의 길을 걷고 있다.
물 밀듯 다가오는 추억을 더듬어 옛 얘기를 해 보지만 나 혼자만의 독백일 뿐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본다. 아마 옛 전설 얘기로 듣고 있을 것이다.
이젠 수풀이 우거져 그 많던 나물 종류들이 있을 법 하지도 않고 옛 흔적을 찾기 쉽지 않아서 좀 서운한 마음도 있었으나 이렇게 생태계가 보존된 고향의 산을 보니 바로 앞에 펼쳐진북녘 땅 민둥산을 보면서 우리가 이 만큼 잘 살 수 있음을 신께 감사한다.
그리고 유구한 역사가 숨 쉬는 이곳을 우리 모두가 사랑하며 지켜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
이제 그 어린 시절의 서글픈 추억이기도 하지만 소중한 추억을 묻어두고 넓은 들을 향해 외쳐본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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