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8(월)
오전에는 고구려 졸본성(오녀산성)을 탐방 및 트레킹하고
오후에 단동시(丹東市) 콴톈만족자치현(宽甸满族自治县)의 히어카우춘(하구촌 河口村)에서
평안북도 청수 방향으로 강변을 따라 삭주군 마을의 생활상을 잠시나마 살펴 본 다음 단둥시로 출발한다.
압록강 너머로 북한 신의주의 이런저런 모습을 보고 느끼게 된 풍경들을 담아봤다.
※압록강에서 쾌속 보트로 본 북한: https://openwindow.tistory.com/7154875
♣ 금일의 일정 ♣
-오전 고구려 졸본성 탐방 및 트레킹
-오후 단동시(丹東市)의 히어카우춘(하구촌 河口村)에서 압록강 보트관광
-17:30~18:37 단동으로 이동 및 도착
-18:45~19:22 저녁식사(평양냉면)
-19:28~19:37 호텔로 이동 및 도착
-20:00 취침
▽ 압록강에서의 쾌속 보트로 북한을 살펴 본 후 다시 단동으로 향하면서 삼각주의 섬형태인 하구마을과 육지로 연결된 도로를 건넌다.

▽ 밭이고 산이고 복숭아 천지를 이룬 마을을 지나는데 지나가는 개도 물고 다닐 정도로 복숭아가 주렁주렁 많이 달려있다.
어제 하구마을로 진입하면서 관전하구(寬甸河口)라는 큰 글씨 밑에는 재방도화성개적지방(在邦桃花盛开的地方)라고 쓰여진 입간판을 보고 콴뎬히어카우(관전하구 寬甸河口 )는 복숭아꽃이 만발한 지방으로 소개되어 이곳이 복숭아로 유명한 지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가에는 사람의 발길은 없지만 채적원(采摘園)이란 입간판에 천막을 치고 노점을 차린 곳도 있으니 복숭아를 따서 판매하는 과수원이란 뜻일게다.

▽ 수풍댐 아래로 거대한 댐이 보이고 그 호수를 지나다 보니 마치 우리나라 호반의 도시 춘천의 의암호를 드라이브 하는 기분 같다.
압록강 본류의 댐은 상류부터 운봉댐, 위원댐, 수풍댐, 태평만댐이 있는데 저 댐은 맨 아래에 위치한 태평만(太平灣)댐이다.
참고로 북한측 지류에는 장진댐, 장자강댐, 송원댐이 있다.

▽ 태평만댐 호수에 양식장이 있어서 무엇을 키우는 것인가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게 양식장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민물에 사는 참게 양식장 같다.

▽ 그리 폭이 넓지 않은 이곳 압록강변으로는 지나는데 왼쪽 편 신의주 방향으로 많은 인원이 강뚝에서 안전모를 쓰고 작업하는
광경이 목격됐다.
알고보니 2024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엄청난 폭우로 압록강에 홍수로 인해 신의주 일대가 물바다가 된 적이 있었는데 60년 만의 최대 홍수로 인해 평안북도 (신의주 등), 자강도, 양강도가 피해를 입었다. 평안북도에서 1,100명 ~ 1,500명, 자강도에서 2,50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북한이 밝힌 공식 수치로만 이재민 15,400명이 발생하였다.
신의주에서 무려 4,100세대가 침수되었고 최소한 1,100명 ~ 1,500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공사를 인력을 동원하고 있는 있는데 경계병이 있고 군복차림인 것으로 봐서 군대를 동원한 것 같다.
그 당시 국경 경비가 느슨해진 틈을 타 복구 인력이 탈북할까 봐 하루에 다섯번이나 인원 점검을 하고 했다고 한다. 홍수 복구 작업을 하는데 중장비도 보이지 않고 맨손으로 흙을 퍼 복구하는 모습이 보인다.

▽ 위에서 공사하는 위치는 바로 아래 지도인 구리도의 굽어진 제방위에서 공사하는 장면이다.

▽ 김정은은 러시아나 중국의 지원에 나서려 했으나 거절했고, 지원의사 용의를 밝힌 남한에 대해서도 맹비난 하는 등 유니세프와 FAO에도 원조 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김정은은 스스로의 힘만으로 복구를 해서 '리더십'이 건재하다는 것을 인민들에게 과시하고 싶었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청년 30만명이 피해 복구를 위해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로 자원했다느니 하지만 실제로는 강제로 끌고 간 것이며,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도둑질을 일삼았다니 선전선동에 민초들만 죽어난 꼴인 셈이다.

▽ 직진 도로가 갑자기 90도로 좌틀하면서 호산장성(虎山長城) 표지석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 호산산성이 중국이 고구려에 대한 역사왜곡의 한 현장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 인류 최대 토목공사라 불리우는 만리장성은 무려 길이는 6,300km로 유테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2009년9월 25일, 중국이 명나라 때 만리장성을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KBS 2010.05.15 방송캡쳐)

▽ 만리장성은 동쪽의 허베이성(하북성 河北省) 산해관(山海关) 노룡두를 시작으로 서쪽 간쑤성(감숙성 甘肃省) 자위관시(가욕관시 嘉峪关市) 가욕관 제1돈이다.

▽ 그런데 산해관에서 2551.8km나 떨어진 압록강변의 단동시 호산성까지 만리장성을 늘린다는 것이고 바로 이곳에 버젓이 동단기점이라고 거대한 표지석을 세워 놨으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억지이며 역사를 자신들 입맛대로 왜곡하고 있는지 기막힌 일이다.

▽ 기존 6,300km였던 만리장성 길이가 8,852km까지 늘어나게 됐고 이는 결국 고구려성을 바꾸어가지고 중국식성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그 결과 고구려는 물론이고 만주지역의 우리 문화는 사라지게 되며, 고구려사 빼앗기와 관련있어 이것은 중국의 동북공정과도 관련이 되는 일이라고 국내 학계에서는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 압록강과 애하가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호산, 호랑이가 누워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호산이라고 부른다. 호산에서는 1990년 중국 역사상 보기 힘든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호산의 성벽 아래쪽에서 고구려성에서 보이는 품자 쌓기 구조로 직경 4.4미터, 깊이는 6미터에 이르는 대형 우물이었다.
병사들과 성에 거주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필수 시설이었는데 인근에 위치한 고구려 성산산성에도 유사한 시설인 집수정(폭 5m, 높이 6m, 길이 60m)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호산에서 고구려의 흔적을 지웠다.
고구려에 대한 단 한마디 언급도 없는 안내문에는 박작성(泊灼城)이란 말이 등장한다. 구당서 설만철전에 나오는데 박작성은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고구려의 성이었다.

▽ 648년 3만여 명의 당나라군이 산동반도의 내지를 출발, 바다를 건너 압록강으로 쳐들어왔다.
당은 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퍼부었지만, 함락이 쉽지 않았다.
가파른 절벽은 능선을 이루며 마치 성벽처럼 자연요새를 구축하고 있다. 산 아래로 흐르는 압록강과 애하, 그것은 천혜의 방어막이었다.
고구려가 압록강 하류에 있는 박작성(泊灼城)을 취하게 되면 이 압록강을 통해서 서해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해상교통로를 확보할 수가 있으며, 요동지방으로 진출할 수 있는 중요한 거점을 확보 할 수 있기 때문에 고구려의 대외진출과정에 있어서, 박작성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박작성은 고구려 천리장성의 일부이기도 했고, 고구려 멸망 후 봉황성이라고 불리었으며 안시성으로 비정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박작성이 오늘날 호산성이 되어 중국이 성을 제멋대로 복원하고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으로 삼았으니 이렇게 우리 민족의 기상 넘치는 고구려 역사는 과연 사라지고 마는 것인가!

▽ 호산산성을 뒤로하고 왼쪽 압록강과 합류하는 애하강(愛河江)의 애하대교(愛河大桥)를 버스가 시원하게 달린다.

▽ 한참을 가다보니 왼쪽으로 건축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번듯한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데 바로 북한의 신의주의 위화도 (威化島)이다.
2024년 압록강 유역 여름 대홍수로 인해 섬 전체가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고 김정은의 지시에 의해 대대적인 수해 복구 공사를 아직도 하고 있는 실정인데 현재 전시행정을 일삼는 북한답게 섬 외곽에만 건물이 있고 그 뒤로 보이지 않는 나머지 지역은 거의 허허벌판임을 알 수 있다.

▽ 압록강의 작은 하중도(河中島)가 옹기종기 나무숲을 이루고 왼쪽 멀리는 위화도의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학창시절 국사 내용에서 많이 들어왔던 이성계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지역이라고 생각하니 유심히 살피게 되고 자꾸 눈길이 간다.
위화도는 압록강 하류에 있는 하중도 (河中島)로, 면적은 11.2㎢이다. 이 섬은 압록강의 충적도(沖積土)로 되어 있어 비옥하며, 농사에 적합하고 섬 전체가 낮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용비어천가에는 이름이 울헤셤으로 되어 있다.

▽ 고려 말기인 제32대 우왕 14년인 1388년 음력 5월 22일 요동정벌을 위해 출정한 이성계와 조민수 등이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폐위시키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으로 훗날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명나라 태조 홍무제 주원장은 이북의 철령에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해 관할하려고 하자 최영은 우왕과 함께 요동정벌에 계획을 세우는데 이성계는 사불가론(四不可論)으로 반대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요동정벌군을 이끌고 있었던 이성계(李成桂), 조민수 등의 무신들은 서경에서 국경 지대 압록강의 섬인 위화도까지 19일에 걸쳐 북상했다.
그러나 압록강에서 큰 비를 만나게 되면서 5만명으로의 군사적 열세, 여름 장마철에 전투력 저하, 큰 나라를 쳐서는 안된다는 논리 등 과거 많은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웠던 이성계의 판단은 결국 회군이었으며, 우왕에게 회군 상소를 두 번이나 올렸으나 거절당해 그대로 군대를 돌려 9일만에 회군(回軍)해 개경의 수도 방위군과 최영을 제압, 우왕은 폐위하고 강화도로 추방하여 조정을 장악했다.
이 사건을 무진년 회군이라고도 불리며 또한 제31대 공민왕 때 추진한 제1차 요동정벌에 이은 두번째 요동 침공 작전이라는 점에서 제2차 요동정벌이라고도 불린다.
왕명을 어기고 군 총지휘관이 독단으로 주력군을 움직인 쿠데타로, 이성계에 의한 역성혁명의 시발점이었다. 이후 회군의 수장이었던 이성계는 무인 세력인 신흥무인세력 그리고 조준, 남은, 남재, 정도전, 윤소종 등 신진사대부의 지지를 받아 마침내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여 직접 왕위에 오르게 된다. [나무위키 인용]

▽ 멀리 단동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 도착지에 거의 다 와 가는가 보다.

▽ 오늘 묵을 호텔은 진주도강반주점(珍珠島江畔酒店)이다. 저녁식사를 위해 압록강 단교 방향으로 가면서 북한 위화도쪽의 풍경을 담아봤다.
수해복구 뿐만이 아니라 번듯한 신축건물이 단둥시내와 엇비슷해 보이지만 아직 둑방에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며 입주도 안된 것 같고 밤이면 전력 사정이 안 좋아서인지 캄캄하여 단둥시내와는 확연히 차이가 남을 알 수가 있다.

▽ 현재 시각 18:28으로 날이 어두어져 간다. 작년 수해 이후에 이러한 건물이 들어섰다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 둑방에는 많은 정치적 선전선동 문구의 간판이 길게 보인다. 그리고 아직도 공사를 하는 인부들이 둑방에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다.

▽ 북한 경비정도 눈에 띄이고...

▽ 경비정을 당겨보니 뒷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를 하는 중 같다.

▽ 이쯤에서는 공사를 하는 중장비를 처음본다. 조명용 전기는 켜져 있으나 건물층에 켜져 있는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어쨋든 이렇게 나마 북한지역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니 어쩌다가 이 민족이 이렇게 남북으로 갈라져 다른 나라에서 쳐다만 봐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너무나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 위화도 건너편 굴뚝이 높이 솟아 있는 곳은 신의주 시내이다.
원래 신의주라는 지명은 없던 지명이다. 일본이 1904년에 러시아와 러일전쟁을 하기 위해 경의선을 급조하면서 1905년에 '새로운(新) 의주'라는 뜻에서 만든 곳이다.
이 당시 행정구역은 의주군(의주부) 광성면 신의주동이었다. 신의주는 20세기 초만 해도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저지대로, 농사도 포기한 버려진 갈대밭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일제가 대륙 침략 기지로 개발하면서 시가지 주위에 수차례에 걸쳐 이중으로 제방을 쌓아 시가지를 이루게 되었다. 1914년에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의주군에서 분리해 신의주부로 승격시켰는데 1945년에 8.15 광복을 맞으면서 신의주부는 신의주시로 개칭되었다.

▽ 압록강 철교가 보인다. 여행 첫날 저녁에 관광계획이 있었으나 시간관계상 보질 못했는데 내일 공항으로 가기 전 아침에 보고 간다니 다행이다.

▽ 가이드가 버스로 이동 중에 저녁식사는 유명한 평양냉면 식당이 있다면서 평양냉면을 먹으면 어떻겠냐는 제의에 모두 흔쾌히 찬성, 금컵평양랭면이라는 작은 식당에 들렀다. 식당안이 좁아 좌석이 부족하여 보도블록에 천막을 사전에 쳐 놓고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


▽ 양념을 섞기 전에 육수를 마셔보니 맛이 좋다. 그런데 양념을 섞고 나니 오히려 맛이 반감이 된 것 같다. 나만 그런가? 오랜만에 반찬이 멸치볶음에 조개살무침, 무엇보다 김치를 먹으니 살 것 같다.

▽ 버스 주차된 곳까지 걸어가면서 시내를 보니 노점상에서 파는 과일이 한국의 정겨운 모습 그대로다.

▽ 단동시내만 해도 한글 간판이 많아 정겹다. 조선족이 그만큼 많이 살고 있다는 얘기이다.

▽ 진주도강반주점(珍珠島江畔酒店)호텔에 도착, 오늘 하루 일정을 마무리 한다.

※ 백두산 여행(압록강 단교) 이어서 보기: https://openwindow.tistory.com/7154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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