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8일(월)
지난 3일은 백두산 북파, 남파, 서파의 천지를 올랐고 오늘은 단동(丹东)에 있는 봉황산(凤凰山)을 오르는 날이다.
봉황산은 백두산 여행에서 그냥 옵션으로 넣은 것으로 알았는데 봉황산만 따로 오르려고 중국을 가는 등산객들이 있을만큼
알려진 산임을 알게되어 나름 많이 공부도 하고 기대하였던 곳이었다.
그런데 어제 단동의 날씨가 폭우로 인하여 도심이 물난리를 겪고 봉황산에서는 사고도 발생하여 통제를 했다는 등 오늘도 9시나
되어야 그곳 사정을 알 수가 있다고 한다. 그제 남파 외에는 날씨가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마지막이나 다름없는 오늘 기대했던
봉화산을 못 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실망감이 앞선다.
※ 어제 본 백두산 서파의 천지: https://openwindow.tistory.com/7154873
♣ 금일의 일정 ♣
-06:00~07:00 기상 및 아침식사
-07:00~07:30 보석백화점으로 버스출발 및 도착
-07:00~08:30 보석 설명 청취
-08:45~10:03 졸본성 박물관 이동 및 도착
-10:27~10:43 박물관 관람 및 졸본성 셔틀버스 탑승이동, 서문계단 주차장 도착
-10:43~12:48 트레킹 시작 및 남문 셔틀버스 주차장 도착
-12:50~13:03 졸본성 박물관 셔틀버스 탑승장 이동 및 도착
-13:12~13:19 여행버스 환승 이동 및 음식점 도착
-13:25~13:50 점심식사
▽ 식사를 마치고 일찍 호텔앞을 나오니 날씨는 좀 흐렸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날씨다. 그러나 단동의 봉화산까지는 4시간이 걸리는 거리여서 그곳의 날씨는 어떤지 모르겠고, 앞으로 2시간 후인 9시나 되어야 그곳 상황을 알 수가 있다니 기다려 봐야겠다.

▽ 풍접초가 만개하여 호텔 분위기를 돋구어 준다.

▽ 버스에서 이동하는 동안 결국 단동에 갔다가 봉화산을 못 오르는 경우 대체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통화시(通化市)를 약간 벗어나면 번시시(본계시 本溪市)에 있는 고구려 졸본성(卒本城)을 애초 가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것에 의견이 일치되어 그곳으로 가게 됐다.
봉화산 입장료보다 졸본성이 더 비싸긴 하지만 가이드 본인이 다 부담하겠다고 하니 성의를 봐서라도 입장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어쨋든 이참에 고구려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구나 싶었다.
졸본성은 중국에서는 오녀산성(五女山城)으로 부르고 있으며 그곳에 도착하니 박물관이 근사하게 자리잡고 있다.

▽ 박물관내에 전시된 졸본성 전경이다.
고구려 졸본성(高龜麗 卒本城)은 고구려 왕조의 첫 번째 수도로 오녀산성이 위치한 지금의 중국 랴오닝성 번시시 환런 만족 자치구(요녕성 본계시 환인 만족 자치구 辽宁省 本溪市 桓仁 滿族 自治区)에 있다. 시조 동명성왕 고주몽이 북부여에서 남하해 졸본 땅에 고구려를 세운 수도였다. 40여 년 후 제2대 유리명왕 대에 이곳에서 지금의 지린성(길림성 吉林省) 지안시(집안시 集安市)에 위치한 국내성과 환도성으로 수도를 옮겼다.
고구려 초기의 수도에 대하여 광개토왕릉비문에는 홀본(忽本),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졸본’이라고 하였으며, 《위서 魏書》 고구려전에는 ‘흘승골성(紇升骨城)’으로 되어 있다. 훗날 고려시대에는 오로산성(五老山城) 또는 우라산성(于羅山城)이라 불리게 된다.

▽ 고려 공민왕의 제1차 요동정벌 때 요동성을 공략하기 이전의 선발작업으로 이성계가 병력 1만 5천 명(기병 5천, 보병 1만)을 이끌고 이 성을 공략하여 함락하고는 요동정벌의 중간기지로 활용했다.
세종 시대에 압록강 유역으로는 평안도 도절제사 최윤덕이 여진족의 소굴이었던 파저강 일대를 토벌하고, 이어서 평안도 도절제사가 된 이천(李蕆)이 다시 파저강 일대를 토벌하며, 오녀산성 인근까지 진출하여 여진족을 정벌하면서 최윤덕, 이천이 4군을 개척했다. 두만강 유역으로는 김종서, 이징옥, 황보인이 여진족을 정벌하며 6진을 개척했다.
일제강점기(동북윤함시기)에는 만주사변에 항거하여 조직된 의용군이 오녀산성을 거점으로 삼아 활약하기도 하였다. [나무위키]

▽ 오녀산성은 탁자 모양의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직사각형 모양에 남북 1.5 km, 동서 0.3 km, 전체 약 8 km의 규모에 주변에는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과 동가강이 흐르고, 200 m 높이 절벽 위에 산성이 있어서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라 할 수 있다.
산성 정상에 오르면 환룡호(桓龙湖)와 환인천연태극지모(桓仁天然太極地貌)라고 하여 태극지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오녀산성에서 출토된 토기류인데 오녀산성은 5개의 문화층으로 구분되는데 오녀산성 3기와 4기는 각기 고구려 초기(기원전 1~3세기), 중기(4~5세기)로 구분된다. 오녀산성 3기에서 출토된 토기는 아가리와 몸통이 만나는 지점에 원형띠의 손잡이를 두는 것이 특징이며, 이런 토기에서 중기로 갈수록 점차 분화되어 간다.

▽ 한 때는 이 일대 모두가 우리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땅인데 이젠 중국이 동북공정 (東北工程)의 일환으로 중국의 역사와 문화로 왜곡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더 이상 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


▽ 박물관 뒷편으로 나와 졸본성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한다.

▽ 셔틀버스 환승장

▽ 고구려란 단어만 보아도 왠지 친근감이 든다. 이러한 시조비도 언제 없어질런지 모른다.

▽ 졸본성 아래 999계단이 있는 곳까지 20분 정도 올라 하차...

▽ 이곳에서 검표하고 입장.

▽ 졸본성은 오녀산산성으로 200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 동방제일의 아크로폴리스란 표현?
오녀산성은 주몽(朱蒙)이 부하를 인솔하여 서력 기원전에 오녀산 정상 평대에서 지어진 고구려의 첫 도성, 역사에 흘승골성 (紇升骨城)으로 불린다.
산성은 불규칙한 직사각형이며 너비는 약 300~500m이고 길이는 약 1,500m 정도다. 산성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주로 궁전, 곡창, 병영, 초소, 전망대, 수원지, 성문, 성벽 등 유적이 남아 있다.
2004년 세계문화유적으로 선정되었다. 국내외 전문가는 '동방제일위성' 이라고 불린다.[안내문]

▽ 서문의 계단으로 올라 성안의 흔적들을 둘러본 다음 남문쪽으로 해서 원점회귀하는 탐방 또는 트레킹 코스를 표기해 봤다.

▽ 가이드 말로는 999계단이라는데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날 보고 세어 볼거냐고 물어봐서 할 일 없이 계단이나 세어보랴? 속으로 말하면서 이 급경사(사진으로 보는 것 보다 훨씬 급경사임)에 오늘은 허벅지, 장딴지에 근육살은 확실히 붙겠단 생각이 든다.

▽ 어제 서파에서 1,442 계단을 올랐었지만 거기에 비해 훨씬 체력의 소모가 크다. 얼마나 올라왔는지, 숨은 턱에 차고 상의는 땀으로 젖었다.

▽ 거대한 바위 사이로 계단이 놓였는데 이 부분을 텐창먼(태창문 天昌門)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 이쯤에서는 모두 기력이 빠져 고개를 들지 못하고 올라오는 모습이다. 높이는 804m이니 국내의 산과 비교하더라도 녹록지 않은 코스이다. 그래도 건강하게 이렇게 다닐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 운해송도(雲海松濤)...'구름바다에 물결치는 소나무' 네 글자로 너무나 멋진 표현 아닐 수 없다.
중국이니까 가능한 얘기 아닐까... 우리나라 어느 산을 가봐도 이런 표현은 못봤다.
정상석 외에 돌에 글씨를 써 놓아 자연훼손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니 쓸 수가 없을 것이다.

▽ 무슨 멋진 괴목을 저리 진열해 놨을까 살펴보니 조형물이다. 중국은 어느 산을 가나 난간을 비롯 구조물은 친환경적인 조형물로 이뤄져 있어 자연훼손이더라도 덜 이질감을 느낀다.

▽ 저 자매교 아래쪽은 반대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이므로 여기까지 진행하고 발걸음을 돌려 서문쪽으로 다시 되돌아 간다.

▽ 방금 전 칭찬을 좀 했더만 이 조형물은 좀 과하지 않나? 과유불급(過猶不及)?

▽ 구름에 잔뜩 가려진 풍경이 갑자기 걷히면서 조망이 트인다. 저 앞에 보이는 것이 바로 S자 형태의 태극모양의 지형이다.
이 전망대에서 8그루의 소나무가 우뚝 솟아 있고, 근처 3개 전망대에서 각각 한 무더기의 푸른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사방을 둘러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임해(林海), 하나씩 자리 잡은 마을, 굽어지는 산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넘실대는 구름에 소나무가 물결치어 이에 '운해송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고 안내문에 소개한다.

▽ 이곳에도 한국의 어딜가나 피어 있는 꽃며느리밥풀이 이곳에도 피어있어 반갑게 보인다.

▽ 서문이 있었던 성을 담아봤다. 서문은 산성의 중요한 문 유적지 중의 하나이며 넓이는 약 3m이다. 건축은 석벽이고 문이 약간 내측으로 들어갔으며 옹문의 기세를 나타낸다. 현재는 문 계단, 문 경첩과 기초석, 경비실 등 유적지가 아직 남아 있다. [안내문]

▽ 고구려 시조(始祖)인 주몽(朱蒙) 동상(銅像)

▽ 태극정(太極亭)인 이곳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압록강으로 흐르는 물줄기인 훈쟝(혼강 渾江)과 함께 환인만족자치현(桓仁满族自治县)의 도심을 잘 볼 수 있을텐데 조망 제로이니 아쉽다.

▽ 기복대(祈福帶)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복을 비는 장소인 모양이다. 안에 옛 동전 조형화폐가 있고 그곳에 동전을 던지며 기원하는 모양이다. 동전으로 환전(換硬幣)까지 해 준다고 되어 있으니 이것도 상술인가 중국은 알다가도 모를 나라이다.

▽ 백두산 천지는 볼만큼 봤는데 이곳에도 천지가 있다. <이 저수지는 산성내 중요한 수원지로 암석을 둘러 연못을 만들었다. 평면은 장방형으로 길이가 12m, 너비는 5m ,수심이 제일 깊은 곳이 2m로 "천지"라고도 부른다.>고 안내문에 기재되어 있다.

▽ 오솔길에는 나무 줄기에 오색띠로 총총 감아 놓기도 하고 여러가지 모양을 달아 놓아 예쁜 어린이집 주변 숲길 같다는 느낌도 있지만 굿당 주변 같이 산만하고 천박스러워 보여 성내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 대형건축기지로 평면에는 <장방형으로 길이는 22m, 너비는 16m이다. 중부는 비교적 평탄한 주춧돌이 있다. 동쪽은 토감이 있고 남쪽, 서쪽, 북쪽 3면에는 6m 높이로 쌓은 대기가 있다. 대기 중간쯤에는 너미 40cm되는 하수구가 있다.>고 안내문에는 기록되어 있는데 보존을 위해 지붕을 씌어 놓았다.

▽ 거주건축군지(居住建築群址)
20여개의 건축물로 구성되었으며 밀접하게 분포되어 주로 반지혈(半地穴) 건축이 많다. 평면은 정방형이나 장방형이다. 안에는 직각으로 된 온돌이 설치되어 있다. 출토 유물은 쇠화살촉과 갑편(甲片)이 많으므로 병영유적지로 추정이 된다고 안내문에 소개되어 있다.

▽ 점장대(點將䑓)가 있는 전망대이다. 점장대는 장군이 지휘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아래를 조망하면 멋진 풍경일텐데 아무리 기다려도 구름층이 걷히질 않는다.

▽ 산성의 최고 높이는 804m로 이곳 점장대(點將䑓)가 정상석을 대신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이정표 안내문에는 "아재오녀산상등운기 등원야등니(我在五女山上等云起 等云也等你)"라, 해석하면 '난 오녀산성 위에서 운기를 기다리니 구름인 네가 일어나길 기다리겠다'는 글 같은데, 난 제발 구름인 네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되뇌이지만 끝내 종쳤다.

▽ 잠시 걷히는 듯 하더니 금방 곰탕이 된다. 아래 지도와 같이 점장대에서 조망이 된다면 왼쪽으로 들어간 호수는 지도에서는 윗쪽으로 뾰족하게 들어간 부분이다. 환런댐(환인수고 桓仁水庫)은 반대쪽으로 이쪽에서는 볼 수 없는 위치다. 아무튼, 이곳에서 시원하게 조망이라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가시질 않는다.

▽ 졸본성의 위치 및 트레킹 코스

▽ 점장대에서 아래를 보니 수백미터의 절벽이다.

▽ 절벽에 식생하고 있는 야생화가 신기하다. 노랑부추가 군락을 이룬 모습이다.

▽ 하늘을 바라보며 위를 향해 피어 있어야 할 큰꿩의비름은 수직 바위에 붙어
옆으로 자란 모습이 마치 사진을 옆으로 게재한 듯 피어있다.

▽ 진행할 방향에 있는 저곳 전망대도 절경이어서 눈길이 간다.

▽ 위의 사진은 바로 관운정(觀雲停)이란 정자에서 더 진행해야 하는 전망대인데 등로에서 좀 벗어나서 조망이 없는 상태라
그냥 패스...관운이란 말처럼 산성 아래로 깔린 구름을 감상할 수 있는 정자면 좋았을 텐데 오늘 같이 조망이 제로인 날 볼 것이 무엇이랴...

▽ 안개낀 숲사이를 걷는 것도 힐링이 된다.

▽ 가던 중 오른쪽으로 갑자기 꺾여 거대한 바위틈 사이로 급경사에 계단이 놓여있고
중국의 산에서 볼 수 있는 일선천(一線天)이란 글이 이곳에도 쓰여있다.
한 줄로 하늘을 오른다는 뜻인가?
암튼 바위틈에 두 줄로는 갈 수 없는 곳으로 하늘만 쳐다보고 가야하는 말 같다.

▽ 조금 내려서 밑을 보니 끝이 보이질 않는다. 산성을 내려서는 이와같은 곳이 있을 줄이야,
처음에도 급경사 계단을 올랐는데 내려갈 때도 순탄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약간의
스릴도 느낄 수 있어서 오히려 좋다.

▽ 아래서 위를 쳐다 본 모습

▽ 다시 평지 데크가 나오고...

▽ 본격적인 하산길에 접어 들면서 이와 같은 천연 장애물로 되어 있는 산성은 천혜의 요새임에 틀림없다.

▽ 오녀천(五女泉)쯤에 내려오면 이곳부터 남문쪽의 셔틀버스정류장까지는 거의 평탄한 길을 걷게 된다.

▽ 성벽을 따라 걷게 되는 지점에서는 고구려 시대의 성이 얼마나 견고하게 잘 쌓아져 있으면 1,500년 이상의 세월속에서도 이렇게
온전하게 남아 있을까 경외감 마져든다.
고구려인들이 쌓은 성의 특징은 품(品)자로 쌓으면서 돌을 쐐기돌로 옥수수알처럼 다듬어 쌓고 그 뒷쪽으로 잡석을 넣어 견고하게 쌓았다고 하는데 오늘날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 천년왕성이란 표지석을 지나고...

▽ 민속힐취(民俗撷趣)라고 쓰여있는 표지석 이곳은 고구려 민족들의 흔적을 볼 수 있도록 해 놓아 흥미를 끄는 곳인가 보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앞서 내달리는 회원들 쫓아 가느라 둘러볼 시간이 없어 그냥 패스하게 된다.

▽ 남문 셔틀버스정류장에서 탑승, 내려와 박물관에서 하차하여 상점안으로 해서 박물관을 빠져 나온다.

▽ 박물관을 나와 다시 한번 바라 본 오녀산성 박물관, 이곳에서 졸본성이란 말은 찾아보기 힘들어 고구려의 역사도 중국화 되어 가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발길을 돌린다.

▽ 음식점으로 이동하는 중 차창밖에 비쳐진 졸본성은 아까와는 달리 구름이 싹 걷혔다. 모처럼 방문한 우리에게 졸본성이 그 모습을 다 보여 주지 않은 것은 아마도 다시 한번 와 달라는 소리없는 외침인지도 모르겠다.

▽ 졸본성에사 버스로 5분 거리의 취흥주점(聚兴酒店) 음식점에 들러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 실내는 손님 한명 없이 깔끔하다. 에어컨을 켜지 않고 창문을 열어두어 후덥지근하다.

▽ 돼지 수육에 상추를 보니 눈이 번쩍 뜨인다. 모처럼 단백질 섭취로 체력이 보강될 것 같다. 점심을 먹은 후는 또 어디로 이동할 것인지 궁금한 가운데 식사를 잘 마쳤다. 꿩대신 닭이라는데 오늘 고구려 졸본성을 탐방한 것은 역사 공부도 될겸, 트레킹도 곁들여 했으니 단봉의 봉화산을 못가서 섭한 마음은 사라졌다.

※ 백두산 여행(압록강 쾌속 보트로 북한) 이어서 보기:https://openwindow.tistory.com/7154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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