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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경상북도

[칠곡] 유학산

2023년 12월 3일(일)

오늘은 군위군에 있는 아미산을 오르고 14: 20분에  버스로 1시간 거리인 팥재주차장에 도착, 유학산을 또 오른다. 1일 2개의 산행은 같은 거리를 걷더라도 더 힘이 들게 마련이다. 더구나 겨울철 낮 시간이 짧아 산행 시간이 촉박하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지난 주에 대구 남쪽에 있는 앞산을 올랐다가 조망해 본 산으로 6.25전쟁 당시 피아간 치열한 격전지로 유명하여 평생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생겼다. 그 당시의 역사적 현장을 답사하는 의미있는 산행이 될 것 같다.

∥산행 개요∥

♣ 소재지: 들,날머리-경북 칠곡군 석적읍 성곡리 2-2, 정상- 칠곡군 가산면 학상리 산 66-1

♣ 코스:팥재주차장-도봉사-조망터-헬기장-유학산-도봉사-팥재주차장

♣ 거리: 3.5km(출발:15:25, 도착:16:50)

▽ 예상거리 3km에 주어진 시간은  17:00시가 마감시간으로 1시간 30분이 주어졌다. 오전에 이어 2개의 산을 오르는 것이니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그리 넉넉한 시간은 아니다. 

대형카페 엠비언트 주차장에서 하차, 산행에 곧바로 돌입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곳 주차장은 공용주차장이 아닌, 카페 주차장이어서 하산 후에는 그 아래에 있는 공터에 차가 세워져 있었다.

도봉사 입구까지 700m거리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오르게 된다.

도봉사 입구로 하산하면서 둘러 보기로 하고 패스...

진행방향인 도봉사 입구 반대편으로 통나무계단이 있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바위와 등로에 돌이 많아 그리 순탄한 등로가 아니어서  힘 좀 써야한다. 

조망터마다 산객을 위한 배려로 의자가 놓여있고...

잠시 남쪽 방향 조망...왼쪽 황학산과 가운데 소학산 그 가운데로 아스라이 비슬산이 보인다. 

서쪽으로 해 아래로 어렴풋이 가야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선석산, 영암산, 맨 오른쪽으로 금오산으로 이어지는 풍경이다. 6.25 전쟁 당시 다부동전투의 전선이 328고지, 수암산(숲데미산 518고지), 유학산(839고지)로 이어지는 가파른 경사와 병풍을 두른듯한 횡격실 능선으로 형성된 이곳에 전선을 이루고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이제 공제선이 보이니 거의 다 올라 온 모양이다. 

넓은 헬기장이 나오고 저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서 다시 한번 북서쪽 방향을 조망해 보기로 한다.

왼쪽부터 선석산, 영암산, 가운데가 금오산으로 구미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낙동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구미시내의 풍경이 옅은 개스층으로 선명하질 못해 아쉽다.

북쪽 방향으로 앞쪽 왼쪽이 천생산(408.1m), 멀리 냉산(694m), 바로 그 뒤로 청화산(701m)과 겹쳐 보인다. 

유학산 정상(839m)에 올랐다. 다부동전투로 유명한 산이다. 

지금은 행정구역 명칭이 '다부동(洞)'이 아닌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里)'이지만 전투 당시의 지명을 그대로 따라 '다부동 전투'라 부른다. 경상북도에서는 1988년까지 읍·면의 하위 행정구역 단위로 '동'을 쓰는 곳이 많았다.

∥다부동전투 (多富洞戰鬪)

북한군은 국군과 유엔군을 추격해 1950년 8월 1일 진주∼김천∼점촌∼안동∼영덕을 연결하는 선까지 진출했다. 북한군 전선사령부는 수안보에, 제1군단과 제2군단은 김천과 안동에 각각 사령부를 두고 있었고, 당시는 7월 20일 김일성이 수안보까지 내려와 “8월 15일까지는 반드시 부산을 점령하라.”고 독촉했던 직후였다. 따라서 북한군 전선사령부는 매우 초조한 상태였다.

7월 말 국군과 유엔군의 낙동강방어선을 공격하게 된 북한군의 작전개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부도로를 따라 대구를 공격, 둘째, 동해안 도로를 따라 포항∼경주 방향으로 공격, 셋째, 창녕 서쪽의 낙동강 돌출부를 공격해 유엔군의 병참선 차단, 넷째, 남해안을 따라 마산∼부산 방향으로의 공격 등이었다. 이는 4개의 공격축선에서의 동시 공격으로 낙동강방어선을 돌파하고 부산을 점령한다는 것이었다.

1950년 8월 초 낙동강방어선을 공격하는 북한군은 가용부대의 절반에 해당하는 5개 사단을 대구 북방에 배치했다. 따라서 8월 공방전의 승패는 대구 북방의 전투결과에 따라 결정될 정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면 그 지역의 아군 방어병력은 총 3개 사단(국군 제1·제6사단, 미 제1기병사단) 뿐이었으며, 그나마 인접 사단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한 상태였다. 적의 주접근로를 담당한 국군 제1사단은 낙동리 부근으로 도하하는 적을 몇 차례 격퇴시켰으나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제6사단은 북한군과 공방전을 반복하다가 결국 용기동에서 위천으로 물러났다. 왜관일대의 미 제1기병사단은 역습을 전개해 낙동강을 도하하려는 적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무렵인 8월 11일 육군본부는 국군의 방어선을 303고지(작오산, 왜관 북쪽)∼다부동∼군위∼보현산을 잇는 선으로 축소 조정했다. 이에 따라 국군 제1사단과 제6사단은 다부동∼군위 선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미 극동공군사령부는 8월 16일 낙동강변에 이른바 융단폭격을 단행했다. 이는 대구정면이 위태롭다고 판단한 미 제8군사령부가 낙동강 대안의 적 주력부대를 제압하기 위해 유엔군사령부에 건의해 실시된 폭격이었다. 융단폭격의 성과는 명백하게 확인되지 않았으나, 북한군 지휘관들에게 대단히 큰 심리적 충격을 준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 18일 가산에 침투한 적이 사격한 박격포탄이 대구역에 떨어지자 대구의 위기가 고조되었다. 그 충격으로 정부가 부산으로 이동하고 피난령이 하달되는 등 대구일대가 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 후 미 제1기병사단 정면의 적은 강을 건너오는 동안 많은 손실을 입고 접촉을 단절함으로써 소강상태가 유지되었고, 국군 제6사단 지역에서도 유엔 전폭기의 지원을 받아 이를 격퇴함으로써 적의 대구 공격은 국군 제1사단 방어지역인 다부동 축선에 집중되었다.

국군 제1사단은 유학산∼다부동∼가산선에서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을 끝까지 저지 격퇴함으로써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또한 다부동 방어전투를 승리하게 된 배경에는 미 제8군의 적절한 예비대 투입도 큰 기여를 했다. 마침내 8월 20일 적은 더 이상 다부동 전선을 돌파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유학산 정면을 공격했던 제15사단을 영천 방면으로 전환했고, 이로써 8월의 다부동 위기는 해소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존망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최후의 저지선으로 다부동은 대구북방 22km 밖에 되지 않은 최단거리로 방어선 붕괴시 대구사수가 불가하고 부산까지 파죽지세로 밀려 국가존망의 기로에 섰던 전투였던 점에서 1950.08.01~08.24기간에 걸친 다부동전투의 승리는 결국 반격(북진)을 위한 여건이 조성되고 인천상륙작전(9.15)성공에 계기를 마련해 준 중요 전투라 하겠다. 적의 8월의 공세를 저지하고 대구를 사수한 이 전투에서 적전차 30대 격파, 전사상자 17,500여 명의 전과를 올렸으나 아군 피해도 전사상자 1만여 명에 달하는 치열한 전투였다.

아래 사진은 유학산을 완전히 점령한 국군이 만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출처: 위키백과]

정상에는 언제 전쟁이 있었냐는 듯,  유학정이란 팔각정이 멋스럽게 세워져 있다.

동쪽으로 멀리 팔공산이 보이고 유학산은 동쪽 방향으로 길게 이어져 있으며 불과 몇 미터 차이의 높이로 봉우리가  두 세개 더 있는 셈이다. 6.25전쟁이 발발한지 올해로 7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흔이 가시지 않은 듯하여 마음속으로나마 호국영령들에 대해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다.

당겨 본 팔공산의 비로봉과 오른쪽 앞쪽은 가산

남동방향으로 왼쪽 멀리 대구시내가 보이고 가운데 황학산, 오른쪽 멀리 비슬산이 보인다.

▽ 남쪽으로 다시 한번 살펴 본 황학산과 오른쪽 소학산

▽ 당겨 본 비슬산

왼쪽 소학산과 가운데 멀리 태양 아래 가야산, 그리고 낙동강 물줄기가 보인다.

당겨 본 가야산

서쪽방향으로 다부동전투의 전선인 숲데미산이라고도 불린 수암산, 멀리 선석산으로 부터 금오산과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 사이로 구미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오전과 같지 않고 개스층으로 인해 선명하지 못해 아쉽다.

당겨 본 선석산과 영암산

당겨 본 금오산

북서 방향으로 가운데 앞쪽이 천생산(408.1m), 멀리 냉산(694m) 보인다. 

북쪽 방향의 풍경으로 오늘쪽 멀리 경북 군위군에 속하나 오전에 올랐었던 아미산 외에는 알려진 산이 없다.

북쪽으로 경북 의성군의 금성산~비봉산은 아직 미답사 지역으로 기회되면 가볼 산이다.

오전에 올랐던 아미산에서 조망했던 산군을 이곳에서 다시 보게 된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계속 이어지는 유학산 능선을 타고 다부리로 종주하게 되며 다부동전적기념관으로 하산하게 되는데 오늘은 시간관계상  바로 오른쪽 도봉사로 하산할 수밖에 없다.

 뒤돌아 본 유학산 정상으로 유학산은 횡격실로 지형이 이루어져 있고 급경사로 이뤄져 있음을 산행을 해 봄으로서 알 수가 있었다. 6.25 전쟁시 적군이 주간 7회, 아군이 야간 8회에 걸쳐 빼앗기고 뺐는 전투를 했다고 하니 결국 7전 8기로 고지를 탈환한 셈이다. 

그래도 많은 산객들이 찾는 코스이기에 통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안전상 문제가 없다.

잡목사이로 바라 본 암릉 절벽 아래에 자리한 도봉사 전경

도로에서 바라 본 도봉사 전경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비구니들만 거주하는 절로 1962년 2월 임진왜란 때 소실된 신라시대의 고찰 천수사의 옛 터에 건립되었으며, 1998년 4월 대웅전과 요사채, 산신각을 증축하였다.

도봉사로 하산하지 않고 바로 하산 능선상에서 주차장으로 향하는 등로가 있다는 것을 후에 알았다.  도봉사를 경유하여 원점회귀로 주차장에 도착하면서 산행을 마친다. 산행 내내 격전지였었다는 생각을 잠시도 잊지 않고 그 당시 전투 상황을 상상하면서 걸어 본 시간이다. 그 당시에 태어났더라면 초개와 같은 목숨을 던질 상황이었을텐데 이 시대에 태어나 취미로 산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다시 한번 호국영령들에 대한 넋을 위로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산행한 시간을 가져봤다.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설치된 백선엽 장군 동상(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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