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향이야기/교동 풍경

[강화] 교동도 화개정원 & 화개산 전망대 & 모노레일

2023년 5월 1일(월)

모처럼 3일간 연휴를 맞았다. 토요일 섬산행이 계획되어 있었으나 우천관계로 취소되고 어제는 고향집 텃밭을 가꾸기로 일정이 잡혀있어 일을 끝내고  오늘은 그동안 임시개장되었다고 말로만 들었던 화개산 스카이워크 전망대와 화개정원을 둘러 보자는 생각에  인파가 몰리는 시간을 피해 아침 일찍 모노레일 개장시간인 08:30분에 맞춰 입장권을 구매하기로 한다.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승용차들이 이미 많이 주차되어 있어 우리 보다 서두른 사람이 많은가 보다.

▽ 화개산 모노레일 승강장의 건물 

▽ 미화원이 실내청소를 하는 이른 아침... 전에 보이지 않던 어린이 실내놀이터도 생겼고 대형 화면에는 작년 11월에 방영되었던 1박 2일 예능프로그램이 선을 보이고 있다.

▽ 오늘 자세히 보게 될 화개산 스카이워크형 전망대는 군조(郡鳥)인 저어새의 긴 부리와 눈을 형상화해서 설계되었다.

첫 발매에 벌써 줄을 서게 되고 탑승 대기하는 분들이 많다.

2023년 5월 13일(토)까지는 화개정원이 무료개방되지만 전망대까지는 아직 공사중이어서  오르지 못하고 5월 14일(일)부터는 정식 개장이 되면서 입장료 5,000원을 지불하면 되므로 구태여 모노레일을 이용하지 않아도 화개정원을 산책하면서 전망대를 오르면 된다. 다만, 그냥 등산하는 등산객은 전망대를 이용할 수 없다.

거리는 왕복 2km, 편도 20분 거리로 5분마다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출발한다.

화개산 정상까지는 도보로 30분이면 충분히 올라간다. 전망대가 있는 곳은 정상으로부터 서쪽으로 직선거리로 약 330m 떨어져 있는데 모노레일로 20분 거리이면 걷는 속도보다 조금 빠른 정도이니 주변 풍광과 식물들을 관찰하며 여유롭게 오르내리는 코스이다.

오른쪽 레일이 진행 방향이고 왼쪽 흰 휀스 밖으로는 등산로가 있다.

모노레일은 화개정원 외곽으로 설치되어 전경을 살펴 볼 수가 있다.

당겨 본 화개산 스카이워크형 전망대

백합나무(이명:튜울립나무) 사이로 분홍색의 꽃잔디가 화려하게 펴 이색적인 느낌이다.

스탠드 해먹도 보이고 누워 편히 쉴 수 있는 의자도 마련되어 탁 트인 경치를 보면서 힐링할 수 있는 쉼터도 있다. 

일부 미진한 공사가 마무리 중으로 5월 14일 정식 개장이 되면 화개산 전망대를 가기 위해 모노레일 보다는 일부러 이 정원을 걷는 인파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멀리 해무 위로 북한의 산등성이들이 보인다.

화개산 정상의 높이는 259.6m인데  전망대까지는 그 보다 낮고 화개정원으로 오른다면 지그재그로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이런 저런 테마의 작품을 감상하며 오르게 되어 있어 어느새 정상에 가까워지게 되므로 남녀노소 누구나 편히 오를 수 있다.

롤라 코스터를 연상케 하는 최고의 경사도인 오르막을 넘게 되면 거의 다 오른 셈이다.

모노레일카에서 바라 본 전망대

전망대 전경으로 우리나라 전체 스카이워크 중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차하여 한반도 모형에 있는 망원경으로 북한지역을 살펴 보는데  500원짜리 동전을 넣어야만 하기에 아쉬운 점이 있다.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로 교동면 지석리에 있는 망향대 처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여러대를 설치해 놨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개산 정원에서 전망대로 이르는 산책로 끝부분의 풍경

바다 건너 북한지역이 해무로 인해 산 정상부위만 보여 베일에 가려진 북한의 실상을 보는 듯 하다.

모노레일로 올라와 데크로 연결된 전망대 입구

전망대 출입구

계단말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가 있는데  알프스 그림의 배경이 순간 고도감을 느끼게 한다.

▽ 2층으로 오르는 계단

▽  사실 모노레일카에서 내렸을 때는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 바람막이를 착용했는데 실내에 들어서니 난방이 잘 되어 있어서 포근했다. 전망대가 아닌 마치 호텔 로비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 전망대에서 남쪽을 조망하려면 남쪽 출입구인 발코니에서 보면 된다.

▽ 우선 동쪽인 정상에서 시계방향으로 주변을 조망해 본다.  왼쪽 끝으로 아스라이 보이는 것은 북한지역이고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되어 이곳으로 흐른다. 화개산 정상 바로 오른쪽으로 강화 본섬의 별립산과 고려산이 조망된다. 화개산이 온통 상수리나무의 연두빛깔로 물들여 가을의 단풍진 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공중에서 본 화개산 전망대와 남쪽방향의 풍경 (사진: 인천광역시 공식 블로그 굿모닝인천 캡쳐)

  전망대에 올라왔으니 지형을 살펴 보는 것에 의미가 있어 자세히 소개한다. 강화 별립산으로 부터 석모도 상봉상까지의 풍경으로 오늘은 날씨가 흐린 관계로 조망이 썩 좋지는 않은 편이나 그런대로 볼만하다.

▽ 2020년 7월 25일 시정거리 최고인 날 담았던 풍경으로 북한산까지 보인 날이다.

참고:  https://openwindow.tistory.com/7154546

▽ 렌즈로 당겨 본 별립산(399m)으로 정상은 군부대가 주둔해 있어서 앞쪽 뾰족한 부분까지만 등산이 가능하다. 오른쪽 멀리 김포의 문수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 왼쪽 군부대가 주둔해 있는 고려산과 가운데 낙조봉, 오른쪽으로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혈구산이고 그 오른쪽으로 퇴모산...

▽ 가운데 뭉뚝한 산이 덕정산, 가운데 멀리 뾰족 솟은 봉우리가 진강산, 그 앞쪽으로 덕산, 오른쪽 끝 멀리 초피산과 그 앞에 작은 봉우리가 외포리에 있는 국수산이다.

▽ 바로 앞에 석모도의 상주산 서봉과 동봉(264m)이  이곳 화개산 정상보다 4m 정도가 높고 그 뒤로 멀리 마니산, 왼쪽 멀리 유난히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는 초피산으로 전등사의 정족산과  멀지 않은 곳이다. 

▽ 왼쪽으로 석모도의 해명산(324m)과 낙가산이 보이고 능선을 따라 맨 오른쪽은 상봉산(316m)이다.

▽ 이곳 읍내리에는 조선 인조7년(1629)에 축조한 교동읍성이 현재도 흔적이 남아 있으며 남문의 유량루가 복원이 되어 있다. 1629년남양도호부 화량진(花梁鎭:현 화성시 송산면 지역)으로부터 경기수영(水營)을 교동 원권진(현 읍내리)으로 이전하면서 현을 부로 승격시키고 수군절도사 겸 부사를 두었고  인조11년(1633) 서남해의 방어를 더한층 강화하기 위하여 삼도통어영을 설치, 삼도통어사(三道統禦使)를 교동에 두고, 삼도, 즉 경기·황해·충청의 주사(舟師)를 통괄하게 한 곳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석모도 상봉산으로 부터 서검도까지 살펴 보기로 한다.

▽ 시정거리가 좋은 날은 자월도, 대이작도, 소야도, 덕적도 라인은 물론이고 백아도, 굴업도까지 조망된다.

▽ 렌즈를 더 당겨 보면 자세히 살펴 볼 수가 있다.

▽ 오늘만은 가까이 보이는 섬만으로 조망하는 것도 감사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교동대교 개통 전, 강화도의 창후리로부터 교동도의 월선포로 차도선을 이용한 교통수단이었던 훨씬 이전인 수십년 전에는 바로 이곳 남산포가 강화 외포리로 부터 여객선이 오가던 교동도의 관문으로 고려, 조선시대에는  사신들이 중국을 왕래했던 곳으로 남산에 사신당의 유적이 현재 남아 있고 삼도통어영(三道統禦營)의 전함정박항(戰艦碇泊港)인 곳이기에 지금도 함선을 정박하던 계류석이 남아있다. 바다 건너 왼쪽 멀리 미법도와 서검도를 오갈 수 있는 하리선착장이 보인다.

  바로 앞은 기장섬으로 현재 무인도이고 바로 뒤로는 석모도 서쪽 끝자락이며 그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섬이 <주문도>이다.

기장섬 오른쪽으로 인접한 가운데 섬이 <미법도>이고 그 뒤로 철탑에 세워진 <주문도>의 구봉산과 오른쪽 <아차도>가 겹쳐져 보인다.  오른쪽 끝 멀리 살짝 보이는 섬이 <볼음도>이다.

미법도 오른쪽은 <서검도>로  옛날 중국에서 사신이나 상인들이 황해로부터 한강 입구로 진입할 때 선박을 검문하던 검문소가 있는 섬이라는 데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특히 강화도의 서쪽에 있어 서검도라 하였고, 이는 강화도 남동쪽에 위치한 동검도와 대비를 이루는 지명이다.

그 뒤로는 볼음도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 인조 때 명나라로 가던 임경업(林慶業)이 풍랑을 만나 이 섬에 체류하다가 둥근 달을 보았다 하여 만월도(滿月島)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 둥근 달인 보름달의 발음대로 볼음도라 개칭하였으며, 발음에 따라 한자화가 이루어졌다. 지금도 임경업에게 제사를 지내는 당집이 있다.

말도의 풍경이다. 강화군 '서쪽 끝에 있는 섬’이라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현재는 강화도 및 주문도 등 주변 섬 등에서 정기적으로 출발하는 여객선이 없어서 여행 및 출사 목적으로는 방문하기 어렵다. 말도 방문시에는 반드시 방문 목적을 알려줘야하며 현재는 강화군 행정 공무, 학술연구, 보건의료, 경찰 및 소방 공무 등의 한정으로 방문이 가능하므로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외지인의 일반적인 여행 및 사진촬영 목적의 방문은 금지하고 있다. 오른쪽 끝 멀리 희미하게 우도가 자리하고 있다.

이번에는 북쪽 방향을 살펴 보기로 하여 스카이워크 전망대로 향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난간 가까이 가기를 꺼려할 정도로 고도감이 있다. 날씨가 해무로 인해 북한지역이 산봉우리만 보이는 가운데 교동도 북쪽 전체가 바라다 보인다.

전망대 동쪽 방향의 모습

전망대 서쪽 지역의 모습

저어새 눈을 형상화한 설계로 남쪽방향의 모습이다.

스카이워크 전경

다른 지역에서 스카이워크를 이용하려면 유리바닥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덧신을 신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이곳은 그러한 불편함이 없어서 좋다.

북쪽 지역의 풍경으로 오른쪽 정상에 산불감시탑이 희게 보이고 바다 건너로는 별립산이 보인다. 서쪽 방향인 왼쪽 끝으로 중고등학교가 있는 대룡2리(대명부락)이 보이고 가운데 전망대 아래로 화개정원과 대룡리 시장이 보이며, 고구리 저수지가 보인다. 여름이면 녹색, 가을이면 황금물결로 아름다운 넓은 들판을 보는 것도 전망대에서 즐길 수 있는 볼거리이다.[사진: 인천 공식 블로그 굿모닝인천 캡쳐]

왼쪽 무학리(舞鶴里)의 선월산(璇月山)과 가운데 지석리(芝石里)의 율두산(栗頭山)고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OP(Observation Post: 최전방 관측소)가 있는 인사리(仁士里)의 인산(仁山)이 보이고 바다 건너는 6.25전쟁 전에 연백군이었던 것을 연안군과 배천군으로 분리한 지역이다. 가운데 보이는 산아래 연안읍이 위치해 있다.

고구리(古龜里) 저수지가 보이고 바다 건너로는 왼쪽으로 남한의 관측소와 불과 직선거리 3.3km의 북한의 관측소가 위치해 있는 아주 작은 봉우리가 봉화산이고 그 바로 뒤로 오라산이 자리하고 있다. 가운데 솟은 봉우리는 비룡산이며 같은 선상의 오른쪽으로 마라산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 멀리 개성의 송악산이 자리하고 있다. 마라산과 송악산 사이로 예성강이 흘러 이곳 교동도 북쪽과 동쪽으로 임진강과 한강과 합류하여 흐른다. 고구저수지 오른쪽에 있는 마을이 조선 인조7년(1629)에 읍내리의 교동읍성이 축조되기 전만해도 교동의 중심지였다. 고구려 때 고목근현으로 불리웠고 토성의 흔적이 현재도 남아 있다.

가운데 멀리 개성의 송악산이 보이고 오른쪽 끝은 강화 철산리의 평화전망대가 있는 곳이고 임진강, 한강이 흘러 배천군과 개풍군 경계에 있는 예성강이  합류하여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흐른다. 교동은 황해에서 예성강 벽란도로, 임진강 고랑포로, 한강의 마포로 진출하는 교통의 요충지이기 했고 고려 개성과 조선의 한성을 방어하는 국방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교동의 화개산성은 내, 외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 때 고구려의 광개토왕과 백제의 아신왕의 격전지였던 관미성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고구려가 관미성을 차지한 후 패권이 고구려로 넘어가는 계기가 됐다. 

무학리(舞鶴里)의 선월산(璇月山)은  옛 고려말에는 선월산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서월산이라고 한다. 서월산((얼레빗 소))이라고 개칭한 연유는 산 형상이 반달모양과 흡사하고 또 반달 모양인 얼레빗같다고 하여 후세 사람들이 서월산이라고 개칭한 것이고, 이 마을에서 많은 문장 배출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문필봉이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선월산 너머 북한지역은 연안군에 속한다. 5월 모내기 전 물을 댄 논에 석양이 반사되면 장관이 연출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된다면  또 다른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2012년 5월 18일  석양 풍경...올해는 다음 주면 보내기가 시작되니 모내기철을 잘 고려해야 한다.

앞쪽 마을은 삼선리(三仙里)마을이고 뒤쪽은 지석리(芝石里)의 율두산(栗頭山)으로  교동망향대가 있는 곳이다.

가운데 남한의 군부대가 주둔한 관측소가 있는 인사리(仁士里)의 인산(仁山)은 바로 건너 북한과의 거리가 불과 2.3km 밖에 되지 않는다. 왼쪽 멀리 자봉산 아래로 연안읍이 위치해 있고 가운데 뾰족 올라온 두개의 봉우리가 있는 산이 비봉산이다.

바다 건너 왼쪽의 작은 산이 봉화산으로 북한군 관측소가 있다. 가운데 솟은 봉우리는 배천군의 오라산이다.

고구리 마을 일부와 바다 건너 비룡산과 맨 오른쪽 끝의 마라산

개성의 송악산이 톱날처럼 봉우리가 솟아 있고 예성강 줄기가 살짝 보인다.

북동쪽으로 가운데 멀리 강화군 양사면 철산리에 위치한 평화전망대가 보인다.

대룡리 시장 전경...1950년  6.25전쟁 발발 후 1953년 7월 27일 정전이 되면서  황해도에서 교동도로 월남하였던  실향민들이 휴전 이후 북으로 갈 수 없게 되자, 생존을 위해 보따리 장사를 대룡리에서 하게 되고 황해도를 추억하는 마음으로 황해도 연백군에 있는 연안시장을 본따서 만든 재래시장이다. 

▽ 화개정원 전경

공사를 거의 완료하고 2023년 5월 13일까지 무료로 개방하지만 5월 14일 부터는 5,000원의 입장료를 내야한다.

▽고구리 생결 부락과 뒷쪽 너머의 구산 부락 

송계동에는 송계, 상현, 중현, 하현 마을이 있었는데 송계는 소나무가 무성하고 마을 앞에는 시내가 흘러간다 하여 송계(생결)라 전해지고 상현, 중현, 하현 마을 중 지금 남아 있는 마을은 중현이다. 이 중현은 중머루라 전해지고 있다.상현, 하현은 빈터만 남아있다. 구산리에는 양지동(陽地洞)과 고양동(皐陽洞), 송계동(松溪洞), 영산동(靈山洞)이 있다. 양지동에는 양지편 기름재, 고랑멀이 있고 고양동은 가장골을 말하며 영산동은 그대로 영산을 말한다. 영산을 연산골이라고도 한다. 영산이 바로 화개정원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고구리 마을은 본래의 교동군은 동,서,남,북면 및 송가면이 있었으나 1911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2개면으로 되었을 당시 동면 고읍리(古邑里)와 구산리(龜山里)를 합쳐서 고구리로 명칭하였다. 인조7년(1629)이전만 해도 옛 읍임을 말해 주는 고읍(古邑)으로 고구려 장수왕23년 (475) 처음으로 현(縣)의 지위로 고목근현(古木根顯)이라 불리웠다. '오래 묵어 키가 큰 나무의 뿌리(古木根)'라는 뜻이니 현재 지명인 '높은 나무 교(喬)', '오동나무 동(桐)'으로 교동(桐) 지명과 무관치 않다. 현재 토성의 흔적과 고목근현 지(址)가 있다.

 

▽ 왼쪽 출입구로 올라왔으니 오른쪽 출입구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전망대 출구로 나가기 전 뒤돌아 본 풍경

전망대 서쪽으로는 이와 같은 야외 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다. 이 방향으로 날씨가 좋은 날이면 연평도가 보이고 과거 말도 주민들이 오가며 조업을 했던 함박도가 어느날 갑자기 북한군이 주둔하면서 통탄하게 빼앗긴 섬도 보인다.

 왼쪽이 남쪽 방향, 오른쪽이 북쪽 방향인데 소연평도는 함박도 보다 위도상으로 남쪽에 위치해 있다.(2020.07.25촬영)

함박도에는 북한군 초소가 깃발과 함께 보인다. 화개산 정상과의 거리는 약 26km이다.  2019년 8월경 북한군 주둔 논란으로 시끌했던 함박도가 화개산 정상에서는 말도 오른쪽 위치로 망원렌즈에 잡혔고 육안으로도 관측할 수 있다.

함박도는 말도에서 서쪽 방향으로 약 8km 떨어진 섬으로 우리나라 행정구역상 인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97로 부동산등기로 되어 있고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산림청 소속 국유지로 절대보전지역으로 되어 있다는데 카카오맵에는 NLL(북방한계선)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나 국방부는 NLL 이북에 위치하고 있어 북한땅이라고 주장하여 논란이 된 바 있다.

2층에서 바라 본 풍경

꼭대기 층에는 이와 같은 고정 쇼파가 제작되어 있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 윗층에서 내려다 본 휴게 장소

전망대 건축물이 보기 좋아 이모저모 담아 봤다.

다음 주면 화개정원에서 이 길로 전망대를 오르게 된다.

전망대에서의 조망을 즐기고 다시 탑승장으로 이동...

올랐던 길로 다시 하산...

급경사 레일을 뒤돌아 본 풍경

이러한 평탄한 레일도 지나가게 되고...

인공폭포가 시원하게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하산...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을 모노레일 및 전망대에서 즐기고 하차, 화개정원을 둘러 보기로 한다.

화개정원 입장권 매표소 부근에 계절마다 꽃 폭포가 눈길을 끈다.

화개정원은 5월 13일(토)까지 무료개방한다. 14일(일)부터 입장료 5,000원

화개정원 안내도

입장권을 구매하여 이곳 정문에서 입장권 코드를 태그하고 입장하게 된다.

갖가지 꽃들이 식재되어 있어서 봄을 만끽할 수 있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계곡의 물도 시원하게 흐르고...

아기자기한 조형물들도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 윷놀이, 활쏘기, 투호놀이, 곤장때리기, 주리틀기 등 다양한 놀이가 있어 가족들이나 연인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길 수가 있다. 

▽ 연산군 유배지...

화개정원이 조성되기 전 부터 있었던 연산군 유배지 장소이긴 하지만 교동도 내에 정확한 위치 선정에 있어서 논란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연산군 적거지는 현재도 연산군 사당과 우물터가 있는 읍내리 교동읍성 안에 있고 그 당시로 군사들이 성안에 주둔하여 감시했을 것으로 보여 역사적 근거로 보면 그곳이 타당하지만 사유지여서 문화재 지정시 재산권행사 등 문제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성사되지 못해 결국 국유지인 이곳으로 정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교동도유배 문화관에는 역사적으로 교동에 유배되었던 임금, 폐군과 왕족들이 소개되어 있고 유배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의 희종(21대왕), 강종(22대왕), 충정왕(30대왕), 우왕(32대왕), 창왕(33대왕)이고 조선시대에는 안평대군(1418~1453), 능창대군(1599~1615), 영창대군(1606~1614), 광해군(1575~1641 조선15대왕), 경안군(1644~1665), 숭선군(1639~1690), 낙선군(1641~1695), 임창군(미상~1724), 임성군(1665~1690), 복평군(1648~1682), 은언군(1754~1801), 영선군(1870~1917)이 유배되었다.

제주도등 멀리 유배를 보내는 신하들과 달리 왕족들을 교동도로 유배지로 정하는 이유는  가까운 한성에서 관리감독하기에 용이하고 교동도는 강화도와 함께 물살이 세기로 유명하여 탈출하기가 쉽지 않은 지리적 특성도 갖추고 있고, 감시하게 할만한 군사들도 있어 유배지로 적당한 곳이었지 않나 생각이 든다.

▽ 연산군이 유배현장으로 가는 모습을 재현해 놨다. 연산군은 조선10대왕으로 가장 패악한 군주로 알려져 있다. 연산군의 학정으로 인해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이 일어났고, 연산군은 바로 그날 폐위되어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되었다. 9월 2일 한양 도성을 나와 첫째 날 김포, 둘째 날 통진에서 유숙하고 네째 날 강화로 들어와 유숙, 다섯째 날인 9월 6일 유배지인 교동에 도착했다. 

 연산군 유배형은 위리안치(圍籬安置)로 죄인을 배소에서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귀양간 곳의 집 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돌리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두는 형벌을 말한다. 연산군이 안치된 울타리는 좁고 높아서 해를 볼 수 없으며, 작은 문 하나가 있어 음식을 간신히 넣을 수 있고, 연산군이 안으로 들어가자 시녀들이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 연산군은 9월 6일 교동에 유배된 후 역질에 걸려 물도 마시지 못하고, 눈도 뜨지 못하다가 그해 11월 8일에 죽었다. 장사를 지낸 후 강화 교동에 분묘와 사당을 짓고 1508년(중종3)에 3명의 백성을 선정해 지키도록 했으나 1512년(중종7) 12월에 폐비 신씨의 상언으로 1513년 3월에 연산군을 양주 해촌(지금의 도봉구 방학동)으로 이장했다.

▽ 거대한 고목의 밑둥으로 보면 몇 백년 수령이었을 나무가 죽어서도 작품이 되었다.

▽ 화려함을 뽐내는 꽃잔디가 화개정원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포토죤이 되고 있다.

▽ 나무뿌리를 모아 만든 의자도 고풍스럽기까지 하다.

▽ 하트모양의 작품도 포토죤이 될 수밖에 없고...

▽ 물고기를 낚아 비상하려는 군조(群鳥)인 저어새의 모형도 생동감있게 표현해 놨다.

▽ 교동에는 청정지역이어서 그런지 제비집이 많다. 대룡리 시장안에서도 처마밑의 제비집을 해마다 볼 수 있었는데 올해는 어떨지 모르겠다. 

▽ 화개산은 솥뚜껑을 엎어 놓은 형세와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는데... 솥뚜껑이 많은 이유를 이해할 것 같고 솥뚜껑 마다 있는 스탬프를 찍어가는 분들이 있는데 내가 모르는 뭔가 있는 것 같다. 

▽ 이 경사로는 다른 식물을 식재하지 않고 쑥대밭이다. 아직 공사가 덜 된 곳인줄 알았는데 물호스가 놓여져 있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강화의 특산물인 사자발약쑥이다. 안내문이라도 있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그냥 지나치기 쉬워 아쉬운 대목이다.

▽ 사자발약쑥은 잎이 사자발 모양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약재외에도 뜸쑥과 쑥환, 쑥분말, 쑥차, 쑥음료 등으로 상품화되어 일반인들에게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오절에 수확되는 강화 약쑥의 품질이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사자발약쑥의 효능은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여 체온을 올려 면역력을 키우며 , 간기능 향상, 혈액순환에 좋아 각종 성인병(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예방, 위와 장기능 및 변비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참쑥이 옆에 몇 포기 자라고 있어 쉽게 비교 할 수가 있다. 참쑥은 우리가 흔히 쑥국으로 먹거나 떡을 이용해 먹는다.

인공 폭포의 물줄기가 오늘따라 시원해 보인다.

화개정원 위로 쉴새 없이 운행되고 있는 모노레일카

화개정원!! 아직 미진한 부분은 있는 것 같지만 부단히 관리해 나간다면 스카이워크형 전망대와 함께 전국에서 손꼽히는 볼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구나 고향에 가지 못하는 연세 드신 실향민들이 편히 전망대에 올라 향수를 달랠 수 있는 화개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점심식사 시간에 이르러 하산하니 이미 주차장은 만차가 되었다.  모처럼 고향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지붕없는 박물관이라는 이곳에서 다시 한번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즐거운 한 때를 보내서 흐믓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