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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전라남도

[장흥] 수인산

2020년 12월 13일(일)

 

일주일이란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른지...월요일인가 했는데 수요일이고 수요일인가 했는데 금요일이다. 아마도 나이가 점점 먹어 가고 있다는 증표일 것이다. 오로지 이제는 한가지 취미인 산행이 일주일에 한번씩 다가오지만 산행지를 정하는 것도 여러가지로 신경이 쓰인다.

오늘은 몇 년전 올랐던 보성의 제암산~사자산~일림산 철쭉 산행을 마치고 장흥읍에서 전통시장을 둘러보던 중 주변에 기암이 있는 멋져 보이는 산을 보면서 언제 공지가 되면 올라보겠노라고 생각했던 일이 장흥에 수인산이라면 바로 그 산일 것이란 생각에 공지된 기암의 멋진 암릉 사진에 매료되어 신청을 하게 됐다.

일기예보를 3일전에 보니 수도권은 눈이 내리지만 아랫녘은 흐린 정도이고 기온도 괜찮은 편이어서 아침 집을 나오면서 눈을 맞아도 별로 게의치 않고, 여전히 고개 숙일 줄 모르는 코로나 예방을 위해 마스크착용을 철저히 해야겠다는 일념속에 어둑한 새벽길을 나선다.  

 

산행정보

♣ 소재지: 들머리-전남 장흥군 부산면 구룡리(수미사입구),  정상(노적봉)-전남 장흥군 유치면 대리, 날머리-전남 강진군 병영면 상낙리(상림마을표지석앞 주차장)

♣ 산행코스: 수미사입구-수미사-수리봉-수인산성-노적봉-북문-서문-병풍바위-수인사-홈골제-상림마을표지석앞 주차장

♣ 거리: 10km(들머리-11:20, 날머리-16:10)

 

  ▼ 버스에 하차하여 마을 초입 들머리에서 본 산지세가 작지만 범상치 않아 엄청 기대가 되는 가운데 발걸음을 옮긴다.

   ▼ 당겨 본 바위군...마치 인위적인 조경을 해 놓은 것 같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 마을 삼거리에서 수미사 방향으로 우틀...대나무 숲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오늘도 날은 살짝 흐렸지만 포근한 날씨에 바람도 간간히 불어 초겨울 보다는 늦가을 분위기다.

   ▼ 수미사에 도착, 이곳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수미사(修美寺)는 2004년 5월, 정각(正覺. 호 峰山) 스님이 자미마을의 유씨문중과 유담씨, 그리고 박석봉씨로부터 진입로 땅을 승낙받고 장흥군으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아 진입로 포장과 함께 병풍바위 바로 밑에 이 사찰을 건립했다고 한다.

   ▼ 수미사에서 조금 오르니 거대한 바위의 작은 굴속에 불상이 놓여져 있고 작은 암자도 지어져 있어 마치 심심산골에 와 있는 느낌마져 든다. 

    ▼ 굴속의 불상을 보고 오른쪽으로 돌아 접어드니 연결되 거대한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바위인데 오른쪽으로 더 가야 볼 수 있는 것을 눈에 잘 띄질 않아 그냥 패스하게 되어 감상하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장흥 구룡리 마애여래좌상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구룡리 자미 마을 뒤편 높이 20m가량 되는 병풍 바위에 새긴 마애불로 전라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193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상에서 약 6m 높이에 선으로 새겨 표현하였는데, 바위면이 평평하지 않아 전체 윤곽을 파악하기 힘들다.
민머리의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높이 솟아 있고, 얼굴에는 콧등만이 유난히 돌출되어 있어 인상적이다. 옷은 양 어깨에 걸치고 있는데 무릎 밑으로 옷주름이 흘러 내려와 있다. 아랫부분으로 내려오면서 마모가 심해 정확한 윤곽을 알 수 없다. 오른손은 손등을 보이며 손끝이 땅을 향하게 하고 있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한 채 무릎 위에 얹혀 있다.
이 마애불은 고려시대의 원감국사 충지(1226∼1292)를 새긴 것으로 전해진다. 충지는 바로 이 고장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한 후 출가하였으며, 당시 일본과 원나라를 다녀온 적도 있다.『원감국사집』에 의하면 장흥군 부산면 구룡리에 국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바위면에 국사의 상을 조각했다 한다. 충지가 입적한 후 그를 따르는 문하생들이 국사를 숭상하는 마음에서 조각하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충지와 관련된 내용과 더불어 조각 기법이 형식적인 점으로 보아 고려 후기인 13세기경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 문화재청 인용]

  ▼ 마애여래좌상 바위에서 능선으로 접어드니 왼쪽으로 제암산이 보이고 조망이 좋다.

    ▼ 좀 더 렌즈로 당겨 보니 장흥읍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 흐린 날씨긴 하지만 남쪽 멀리 천관산까지 보이는 시계가 괜찮아 보이는 날씨다.

   ▼ 갑자기 나타난 요사스럽게 생긴 바위가 눈길을 끈다.

   ▼ 계관바위(계관암(鷄冠岩))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봐야 닭벼슬 모양일까... 닭벼슬만 생각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닭 모양으로 봐야 할 듯 하다.

                                  ▼ 측면에서 봐도 닭 모양새이다.

     ▼ 바위를 우회하는 등로상에서 보니 점점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 능선을 다 올라왔나 싶은데 수인산 정상까지 오르려면 4.2km로 겨우 30여분 지난 1.2km 왔으니 갈 길이 멀다.

    ▼ 수리봉이 보인다. 마치 오지산행 같은 느낌이다.

   ▼ 육산 같지만 바위들이 의외로 많아 까칠한 구간도 더러 있다.

   ▼ 진행할 방향의 암릉의 모습들이 그리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 뒤돌아 본 수리봉과 멀리 제암산이 눈에 들어온다.

   ▼ 나뭇가지 사이로 제암산이 보이고 가운데 사자산과 사자산의 사자두봉이 볼똑 솟아나 있고 장흥읍 뒷편으로 억불산이 시원하게 펼쳐져 보인다.

   ▼ 2016년 5월 초 올랐었던 사자산에서 사자두봉을 바라 본 모습...바로 앞 시내는 장흥읍이고 오른쪽 멀리 월출산이 보이고 그 바로 앞쪽으로 내가 걷고 있는 수인산의 능선을 오르며 이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 남쪽 방향으로 100대 명산인 천관산이 조망되고...

   ▼ 남쪽 방향으로는 산군 가운데쯤에서 왼쪽으로는 장흥군이고  오른쪽은 강진군에 속할 듯 한데 오른쪽 멀리  강진만이 살짝 보일 듯 하다. 

    ▼ 장흥군청이 자리잡고 있는 장흥읍으로 한우구이가 유명하다. 특히 삼합으로 표고버섯과 키조개 관자와 함께 곁들이면 최고의 맛이다.

장흥읍에서 기암이 보이고 한번 올라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산은 수인산이 아닌 장흥읍과 가까운 억불산이란 걸 이곳에 올라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

   ▼ 장흥읍 전통시장 풍경

     ▼ 렌즈로 당겨 본 멀리 천관산

   ▼ 장흥군 부산면 내안리 마을이 평화로워 보인다. 도심속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건물속에서 살아 온 삶은 이러한 시골 풍경을 볼 때마다 동경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 진행방향의 풍경을 보니 오른쪽 뾰족한 봉우리가 수인산 정상인 노적봉인데 높이가 서울 불암산 높이가 비슷한 561m밖에 되지 않으나 능선상이 크고 작은 봉우리가 많아 업다운이 심해 힘든 산행임을 직감할 수가 있다.  

                                   ▼ 이러한 암봉(450봉)을 우회하여 지나게 되고...

                       ▼ 탕건바위라고도 한다는데...탕건(宕巾)이란 조선시대 성인 남자들이 망건의덮개로

                          쓰거나 갓 아래에 받쳐 쓰던 의관을 말하는데 어째 괴물같다.

    ▼ 옆에서 본 탕건바위

   ▼ 지나온 등로를 뒤돌아 본 풍경... 

  ▼ 장흥군 장흥읍 성불리로 퍼진 멋진 부채살의 햇살도 눈부시다.

   ▼ 진행 방향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암봉...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른쪽 방향으로 진행해서 노적봉을 오르고 다시 내려와 왼쪽 방향으로 하산하면 이러한 멋진 풍경의 암릉 풍경을 전체적으로 담을 수가 있었는데 이쪽으로 이동하는 코스가 아니어서 전혀 볼 수 없어 마치 반쪽짜리 산행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 다시 한번 뒤돌아 본 왼쪽 수리봉과 450봉, 그리고 오른쪽 탕건바위를 담아봤다.

                       ▼ 지나온 탕건바위에 소나무들이 독야청청 그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다.

                          수인산은 거의 소나무들을 볼 수가 없는 잡목들로 우거진 산이어서 소나무  

                          몇 그루가 독특해 보이기 까지 하다.

     ▼ 북쪽 방향으로 수인산 동쪽능선 봉우리와 오른쪽 멀리 탐진호가 보인다. 시간을 보니 벌써 1시 30분이 되었다. 이쯤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기로 한다.

                                       ▼ 동문방향으로 이어진 수인산성의 일부

       ▼ 장흥댐이 있는 당겨 본 탐진호

     ▼ 성안으로 입성했다. 수인산성은 장흥군과 강진군 경계를 이루고 있는 수인산은 표고가 561.2m이지만 그 높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웅장하고 오묘한 산세를 지니고 있는 산이다. 높이 561m의 천혜의 요새로 고려시대부터 수인산성이 자리 했던 곳이다.

산 꼭대기에 자연그대로의 평탄지가 있고 샘이 많으며 산세가 험하다. 동쪽의 절벽이 천혜의 요새를 만들기에 병마절도사영에 소속되었던 수인산성이 자리하였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위해 축조했다는 수인산성은 능선을 따라 자연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쌓아져 있다. 총 길이는 6km에 달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수인산성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돌로 쌓았다. 둘레가 3,756척이고 높이가 9척이다. 고려말에 도강, 탐진. 보성. 장흥, 영암의 백성들이 모두 이 곳에서 왜구의 침입을 피하였다> 라고 되어 있다.[대한민국 구석구석]

    ▼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 본 수인산 정상인 노적봉... 두개로 갈라진 암봉 모습이다. 마치 왕관 모양의 암릉으로 이뤄졌다는 표현을 한다.

     ▼ 마치 축소판 마이산을 보는 듯, 기암의 모습들이 다소 험한 산세임을 느껴 볼 수가 있다.

    ▼ 수인산 정상을 오르는 것은 곧바로 오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성벽을 따라 우회하여 올라야 한다. 이곳까지 오른 거리가 5.5km 지점으로 2시간 30여분 올라왔는데 저곳 정상을 쳐다 보며 오를 것을 생각하니  하품이 나온다.

    ▼ 누군가가 쌓았을 성벽...수많은 세월이 흘러 지금까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마치 그시절로 돌아간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무명 한복차림에 짚신을 신고 망치와 끌, 장대 하나의 장비에 의지하여 이곳에 숙식을 하며 수없이 돌을 날라 쌓은 피와 땀이 서린 성의 한자락만 봐도 남녀노소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었을까 그 당시의 사회상을 그려 본다면 현 세대에 사는 우리들의 시련은 그저 행복에 겨워 우는 사람들일 뿐이다.

    ▼ 야생 녹차 꽃이 피었다. 오랜만에 보는 꽃이다.

   ▼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정상은 생각보다 넓은 평지를 이루고 있는데 정상석이 다른 곳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 없다. 정상석 부근 잡목 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지로 난간이 없어 자칫 한눈을 팔다가는 황천행일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이처럼 왕관 모양의 노적봉은 주변이 절벽으로 병풍처럼 둘러 싸고 있어 천연적인 요새로 선조들이 이러한 지형을 이용하여 고려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위해 주변 6km에 걸쳐 산성을 쌓았고  전란 때는 장흥, 보성, 강진, 영암, 해남의 주민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했다고 한다.

정상 부근에는 그때의 흔적으로 봉수대가 남아 있으며 산성안에는 수인사 옛터와 함께 우물과 수로 등이 남아 있으며 현재 전라남도 기념물 제59호로 보호되고 있다고 한다.

    ▼ 모자를 쓰지 않고 산행해 보기도 처음이다. 버스에다 놓고 그냥 내렸으니 별 수가 없다. 흐린 날씨라 햇빛을 보지 않게 되고 그리 차가운 날씨가 아니기에 다행이다.

수인산이란 이름은 닦을 수(修), 어질 인(仁)자 인데, 병풍바위 아래에 수인사(修仁寺)라는 절이 있어서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현재는 한국전쟁 때 빨치산을 토벌하면서 소각되었고 그 흔적만 남았다고 한다.  

    ▼ 날씨가 점점 흐려져 시계가 오전보다 좋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조망이 좋은 편이다. 왼쪽 수리봉 아래부터 시작해서 이곳까지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느라 리딩대장이 서울의 불암산 높이 밖에 안되는다는 말에 산행이 수월한 줄 알았다가 뒤통수 맞은 느낌인데 정상에 오르니 모든 걸 잊게 되고 조망 하나로 보상 받는 느낌이다.

    ▼ 다시 한번 당겨 본 지나온 능선...

     ▼ 멀리서 왕관처럼 보인다는 것은 암봉이 두개로 나눠져 있어 그리 보이는 것인데 그 갈라진 절경이 바로 이 부분이다.

    ▼ 정상을 오르려면 가파른 지름길로 오르거나 우회하여 완만히 성벽을 따라 오르게 되는데 그걸 모르고 지름길로 올랐다가 하산할 때는 완만한 산성을 따라 북쪽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 뒤돌아 본 정상

   ▼ 이곳은 북쪽 끝의 내성인데 지휘부가 있었던 터로 보인다. 이곳을 벗어나서 하산하면 동문쪽으로 해서 원점회귀 산행이 되니 좌틀하여 산성을 따라 계속 하산한다.

    ▼ 진행방향의 봉우리인데 오른쪽 봉우리를 넘어 하산하게 된다. 사실 제대로 된 암봉을 감상하려면 왼쪽 봉우리를 넘어 481봉을 경유 능선을 타고 하산해야 하는데 시간이 30분 정도 더 걸리는 시간이다.

애당초 계곡으로 하산하지 않고 능선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으면 멋진 경관을 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산행 뒤에 안 사실이다.

   ▼ 갑자기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이 당혹스럽게 한다. 집을 나설 때 함박눈이 내렸는데 아마도 이곳까지 미쳤는가 싶어 비상용 깔판을 뒤집어 쓰고 빠른 걸음으로 하산길을 재촉한다.

   ▼ 병풍바위쪽의 이정표를 보고 이동 중 만난 우물터와 연자멧돌이 놓여 있는 사람이 거주했던 집터가 나왔다. 옛 군사들이 쓰던 거주지인지 민간인이 거주했던 곳인지는 안내문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잠시 생각을 하게 된다.

   ▼ 이정표를 보고 병풍바위 방향으로 앞서 가던 분들이 다시 반대방향으로 가야 한다길래 따라 내려왔더니 이것이 병풍바위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이정표는 왜 반대로 해 놨는지...

이정표 방향대로 가면 더욱 멋진 절경들이 보이고 진짜 병풍바위를 못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곳이 병풍바위가 맞다면 수인사 절터도 이곳이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며 곡식을 찧는 절구통과 우물터 등이 남아 있어 사람이 거주했던 장소임을 알 수가 있다.

   ▼ 병풍바위라고 하는 바위에는 많은 벼슬을 했던 선조들이 이름 석자 남기기 위해 새겨 놓았다. 다 부질없는 일이거늘...

    ▼ 광양현감이니, 절도사이니...

   ▼ 하산하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암릉에 눈이 쏠린다. 진안의 마이산에서 볼 수 있는 타포니라고 불리는 바위의 구멍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으니 같은 지질인 역암인 것 같다.

더 자세히 보려면 이쪽 코스가 아닌 능선 코스를 타야 볼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 애당초 공지에 올려서 아래와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사진을 올렸으면 그 코스로 가야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다른 코스를 정해 놓으므로서 전혀 볼 수 없는 산행이 되었다면 이런 풍경을 보기 위해 신청한 사람들에 대한 기만일 수밖에 없어 실망이다.

그렇다고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두가 주어진 시간보다 40분이나 빨리 하산하여 일찍 귀가하게 되었지만 일찍 귀가하는 목적이 아닌 산행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 중 하나가 병풍바위일 듯 하다. <공지된 카페에서 퍼온 사진>

   ▼ 잠시 수인사에 들렀다.

<하멜표류기>로 유명한 하멜이 1656년~1663년까지 7년동안 머물렀다는 집터가 자리하고 있어 이곳 수인사인 절집이라고도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는 듯 하다.

   ▼ 홈골제에 다다랐다. 안개와 비바람에 의해 정상 부근에서 북쪽 방향의 월출산은 조망도 못하고 이곳 저수지에서도 뒤돌아서 수인산 방향의 풍경을 담지 못했다. 날씨가 조금만 참아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의 연속이다.

    ▼ 홈골제인 저수지길을 따라 상골마을 주차장에서 산행을 마친다.   

수인산을 올라보니 업다운이 심해 산행이 만만치 않은 산이고 예상보다 멋진 산임을 알게 되었는데 하산시 날씨 관계는 어쩔 수 없더라도 코스만 능선쪽으로 정했으면 더욱 멋진 산행이었을 것이란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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