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30일(일)
8월도 하루밖에 안 남았다. 올해의 장마는 유례없는 54일간의 긴 기간으로 여름도 사실상 장마와 함께 가버린 셈이다. 덕분에 다른 해와는 다르게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은 그리 많지 않았고 후덥지근한 날도 있긴 했지만 무더위가 그리 극심하지는 않아서 비교적 시원한 여름을 보낸 것 같다.
장마가 끝났다는 오늘은 지난 8.15 광화문 집회로 더욱 창궐해진 코로나로 인해 산행을 자제하다가 꼭 가보고 싶었던 담양의 병풍산이 공지되어 부담을 안고 신청했다.
산악회도 버스 내에서 철저히 마스크 착용 등 감염 예방에 최선을 다하지만 그렇다고 감염자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고 산이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 가면 될 일인데 개인 건강은 물론 가족과 주변인들을 생각해서라도 자제해야 됨을 알면서도 산악회에서 감염자가 발생할 경우 비난 여론이 확산되기라도 한다면 정말 가보고 싶어도 아무 곳도 가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날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 늘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신청을 하게 된다.
내가 최선을 다해 감염 예방을 하고 감염 안되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없다. 2주 만에 떠나는 새벽의 공기는 왜 이렇게 상쾌한지, 기쁨으로 벅찬 마음은 죽을 만큼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그 기분이니 죽기를 각오하고 떠나는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침이다.
∥산행정보∥
♣ 소재지: 들머리-전남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 산 110-5, 정상-담양군 수북면 대방리, 주차장-담양군 수북면 대방리 산 24-2
♣ 산행코스: 한치재-투구봉-용구샘-병풍산-철계단-넙적바위-천자봉-전망대-송정-주차장
♣ 거리: 약 6.5km(들머리-10:25, 날머리-15:00)
∥병풍산 개요∥
병풍산은 전남 담양군과 장성군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서, 담양군의 최고봉이며, 담양의 진산(鎭山)이다.
전체적인 산세는 능선이 서남쪽에서 동북쪽으로 이어져 있으며, 남쪽에 드넓게 펼쳐진 호남평야를 바라보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정상부 능선에는 최고봉인 깃대봉과 함께 천자봉(옥녀봉)과 투구봉(신선대) 등의 암봉이 우뚝솟아 있어서 조망이 무척이나 뛰어나다.
일단 이곳에 오르면 남쪽으로는 드넓은 호남평야와 함께 광주의 무등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쪽으로는 추월산 뒤로 지리산 서북능선이 그림처럼 조망된다. 더불어 북쪽으로는 백양사가 있는 백암산과 내장산, 입암산의 여러 산군(山群)들이 강원도의 첩첩산중처럼 다가온다. 이처럼 뛰어난 조망으로 인해 옛날에는 이 산을 "강동8경"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투구봉 아래 바위밑에는 굴(窟)이 있는데, 그 안에 두평정도 크기의 '용구샘'이라는 샘(泉)이 자리하고 있다. 이 샘에서는 깨끗한 생수가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솟아오르고 있다고 한다.
병풍산이라는 이름은 "병풍 병(屛), 바람 풍(風)"자로서, "산세가 병풍을 둘러놓은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원래는 용구산(龍龜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버스가 들머리인 한치재에 이르자 도로 좌우로 엄청난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어 웬일인가 싶었다. 모두 산행하러 온 차량들은 아닐테고...알고 보니 불태산, 병풍산 일대의 편백나무숲 트레킹 코스가 있어 힐링하러 온 여행객들로 보인다.
이곳에서 반대쪽으로 오르면 불태산의 들머리가 된다. 병풍산을 그전에 올랐다면 불태산을 택했을텐데 병풍산에 더 마음이 가게 된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 병풍산은 암릉이 많아 숲이 없는 관계로 햇볕이 날 때면 정말 덥다. 전국적으로 때때로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이곳도 흐린 날씨기는 하나 간간히 파란 하늘이 보이는 날씨인데 습도가 높은데가 바람 한점 없는 30도의 기온은 40여분만에 이곳 바위 전망대에 오르면서 상의를 온통 땀으로 젖게 만들었다.
남서쪽으로 보이는 불태산은 이곳 병풍산보다 훨씬 까칠하다는데 그쪽으로 오른 회원들도 천봉을 지날 것으로 예상이 된다.
▼ 불태산에서 살짝 오른쪽인 북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불갑산으로 부터 방장산에 이르기까지 유명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투구봉에서 바라본 삼인산...
삼인산 왼쪽 아래 대방저수지 부근이 날머리 주차장으로 병풍산 산행코스는 대부분 저곳을 들머리로 해서 이곳 투구봉을 경유, 삼인산을 거쳐 대방저수지로 원점회귀하는 원형 코스로 진행을 하나 오늘은 삼인산을 제외하고 반대방향 코스로 반쪽 짜리 산행을 하는 셈이다.
▼ 투구봉에서 바라 본 병풍산 정상...
파란 하늘이 흰구름 사이로 보이는가 하면 금방 빗방울이라도 떨어질 듯 먹구름도 간간히 산을 넘실대는 풍경이 밋밋한 맑은 날씨보다는 다이나믹한 게 더 보기가 좋다.
▼ 뒤돌아 본 투구봉 바위군...
▼ 이곳에서 살짝 벗어나 만남재 방향으로 내려가서 용구샘을 봤어야 하는데 그냥 지나치게 되어 아쉽다.
▼ 만남재 이정표에서 올라와 뒤돌아 본 투구봉
▼ 정상 바로 직전에서 다시 한번 투구봉을 바라 본 풍경... 멀리 불태산 왼쪽 평야에 광주시내가 눈에 들어 온다.
▼ 1시간 40여분 만에 오른 병풍산 정상...
정상석이 아담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360도를 조망할 수 있는데 이렇게 많은 명산을 조망할 수 있는 곳도 드물다.
▼ 이번엔 북쪽 방향을 조망해 보기로 한다. 방장산으로 부터 고당산에 이르기까지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 2019년 4월 10일 올랐었던 방장산이 눈에 선하다. 비록 안개로 인하여 주변 조망을 못해 아쉬웠지만 쓰리봉으로 해서 벽오봉으로 하산했던 추억이 엊그제 일 같기만 하다.
▼ 방장산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올해 입암산을 신청했다가 성원이 되지 않아 아직 못 올라 본 산이 조망된다. 언제 기회가 있을런지...
▼ 입암산에서 오른쪽으로 2016년 가을에 올랐었던 백암산(상왕봉~722봉~백학봉)과 그 이듬해 올랐었던 내장산(서래봉~까치봉~신선봉)이 눈에 들어오고...
▼ 백암산에 올랐다가 남쪽 방향의 병풍산을 보며 100대 명산도 아닌데 언제 올라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겠다고 한 산인데 4년 뒤에 이렇게 오르게 됐으니 감개무량하다. 나와의 그러한 무언의 약속이 있었기에 오늘 불태산을 오르지 않고 이곳 병풍산을 오른 이유이기도 했으니 사람은 오래살고 볼 일이다. 왼쪽이 용구산(왕벽산),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진 능선이 이번 산행의 병풍산이고 오른쪽 잘록하게 들어간 부분이 한치재다.
▼ 정상에서 바라 본 진행방향의 암릉
▼ 2018년 11월 10일 다녀 온 북동방향의 내장산 오른쪽에 위치한 추월산 능선과 그 뒤로 여분산 및 회문산까지 조망해 보며...
▼ 2018년 추월산을 오르기 일주일 전에 올랐었던 강천산의 왕자봉과 산성산의 추억에 머물러 본다.
▼ 정상에서 바로 아래를 보니 날머리 지점인 대방저수지 윗쪽의 주차장이 보이고 그 아래 대방리와 궁산리 마을이 저수지에서 영산강쪽으로 흐르는 수북천 좌우로 평화롭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다.
▼ 멀리 남서방향으로 광주시내가 먹구름 아래로 눈에 들어오고...
▼ 잠시 간식을 먹으며 정상에서 진행 방향의 암릉들을 감상하며 땀을 식혀본다.
▼ 남동방향의 전경... 동쪽 동악산으로 부터 남쪽의 무등산까지 모두 가봤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니 반갑기만 하다.
▼ 당겨 본 멀리 곡성의 동악산과 오른쪽 대장봉(서봉) 최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 가운데 멀리 화순의 백아산과 오른쪽 순천의 조계산
▼ 화순의 모후산과 광주의 무등산
▼ 뒤돌아 본 병풍산 정상과 멀리 불태산
▼ 이름이 붙여질만한 바위인데...
▼ 다시 한번 북쪽 방향의 산군들을 조망해 보고...
▼ 저 앞쪽의 가운데 천자봉을 경유, 본격적인 하산길에 접어 들게 된다. 비록 짧은 거리의 산행이긴 하나 습도가 높아 정말 그 어느 때 보다 힘이 드는 것은 나만의 얘기가 아닌 듯 하다. 시간은 충분하게 주어졌으니 느긋한 산행이긴 하나 몸을 씻으려면 조금은 서둘러야겠다.
▼ 계단으로 이뤄진 암릉을 내려 오며 조금 전에 봤던 바위 반대편의 모습을 담아보고...
▼ 천자봉을 향하며 뒤돌아 본 병풍산 전경
▼ 천자봉에서 바라 본 병풍산과 멀리 불태산...지금쯤 불태산을 걷고 있는 회원들도 여러 봉우리를 넘으며 이곳 병풍산보다 3킬로 정도는 더 긴 거리이니 엄청 힘들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 드디어 마지막 봉우리인 천자봉에 올랐다. 살방살방 걸으며 뒤에 쳐져 있는데 이곳에서 곧바로 진행한 회원들이 길을 잘못 들어 알바하는 바람에 졸지에 내가 뒤쳐진 팀의 선두가 되었다.
▼ 올해 연세가 69세인 저 할머니는 국내 100명산은 물론, 백두대간, 정맥, 지맥, 그리고 웬만한 해외 원정산행을 마쳤다고 하니 엄청난 내공을 쌓은 분으로 몇 달전에 1,000산을 올랐다는 79세의 할아버지와 쌍벽을 이루는 분이니 산이 인생의 동반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 천자봉을 내려 오면서 전망대에서 마지막으로 정읍시내와 주변 풍경을 담아본다. 비록 구름이 오락가락 하며 산군이 가려지기도 했지만 비가 안 온 것만 해도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다.
▼ 하산하는 도중에 작은 계곡따라 있었던 등로도 잘려 나가는 등 엄청난 양의 비가 온 것임을 실감할 수가 있다.
▼ 온 몸이 땀으로 젖은 옷을 벗어 던지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폭포수인 이곳에서 알탕을 하니 언제 힘들었냐는 듯 그 시원함에 날아 갈 것 같은 기분이다.
▼ 대방 저수지 윗쪽의 주차장으로 올라가면서 이번 장마의 폭우로 강수량이 얼마나 많았던지 계곡물이 넘쳐 사방이 온통 복구작업으로 어지럽혀져 있는 것을 보면서 주민들에게 괜스레 죄송한 마음이 든다.
이번 산행은 6킬로미터 조금 넘는 거리에 4시간 반의 시간이 주어졌으니 너무도 수월한 산행일 수도 있겠으나 처서가 지난 날씨라고 하기엔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무더워 거리와는 상관없이 힘든 산행임은 모두가 인정한 날이었다.
불태산 날머리로 이동하여 그쪽의 회원들을 보니 몰골들이 말이 아닌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 병풍산 오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는데 불태산의 비경이 너무 좋았다는 후문에 입맛을 다시게 되니 미련이 남아 있는 건 사실이다. 병풍산에 대한 그동안의 궁금증이 풀린 것 같아 흐뭇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