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4일(월)
5일간의 설날 연휴를 맞았다. 그제 그럭저럭 보내고 일요일 어제는 비가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려 또 방콕할 수 밖에 없어 이틀을 무료하게 보내니 집안 행사만 아니라면 이런 황금 연휴인 설날에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지난번 우연히 남산 트레킹을 하면서 한양도성길을 탐방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설을 쇠기 위해 썰물처럼 빠져나간 도심의 한가로운 이 때가 가장 적당하겠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된다. 사실, 서울 지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필요시 찾아 갈 곳만 가보면 되기에 생활터전이 아니면 굳이 알 필요도 없다는 생각으로 관심이 별로 없어서다. 그러나 역사와 문화 등에 관심을 돌린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한양도성길을 탐방을 통해 미약하나마 서울의 역사와 지리공부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산악회에서 추진한 인천대간 34km종주 계획을 포기하고 서울로 향한다.
♣ 트레킹코스: 숭례문-돈의문 터-인왕산-창의문-북악산-숙정문-와룡공원-혜화문-낙산공원-흥인지문-광희문-남산-백범광장-숭례문
♣ 거리: 21km (출발: 08:10, 도착: 15:50)
※ 서울 한양도성은 서울의 주위를 에어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都城)으로, 도성의 둘레는 약 18㎞이다. 남대문과 동대문 등의 성문과 암문(暗門), 수문(水門), 여장(女墻), 옹성(甕城) 등에 방어시설을 갖추고 있다.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건국 초에 태조는 한양 천도를 위하여 일차적으로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다음, 1395년(태조 4) 9월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고 정도전(鄭道傳)에게 명하여 성터를 측정, 조사하게 하였다. 정도전은 백악(白岳)을 비롯하여 인왕(仁旺), 목멱(木覓), 낙산(駱山)에 올라 실측하여 사산(四山)을 연결하는 5만 9500척의 성터를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정월부터 전국의 민간인 장정이 무려 11만 8,000명이나 동원되어 600척을 한 단위씩으로, 축성구역을 97구(區)로 나누어 정하였다. 구역마다 천자문의 자호(字號)를 표시하여 백악산 동쪽에서부터 천자(天字)로 시작하여 낙산, 남산, 인왕산을 거쳐 백악산 서쪽에 이르러 조자(弔字)까지 구획하였다.
공사는 매 글자 구간 600척을 6등분하여 각 공사 구간에 판사(判事)·부판사·사(使)·부사·판관(判官) 등 12명씩을 임명하여 민정을 독려하여 견고하게 축성하도록 책임을 맡겼다. 책임진 부분에 해당하는 성벽에 관직과 군명(郡名)을 새겨 넣어 책임을 분명하게 하도록 하였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숭례문
조선시대 서울 성곽의 정문이며 1398년에 완성되어 1448년에 개축되었다. 현존하는 서울의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1962년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예를 숭상한다’는 의미로 숭례문이라 하였다. 1934년 일본이 ‘남대문’으로 문화재 지정을 했으나 1996년 ‘숭례문’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2008년 2월 10일 방화 화재로 석축만 남긴 채 누각 2층 지붕이 붕괴되고 1층 지붕도 일부 소실되었다. 5년여에 걸친 복원 공사 끝에 2013년 5월 4일 준공·공개되었다.
전철을 이용, 서울역에 도착하여 숭례문으로 부터 시계방향으로 트레킹하기로 한다. 오전에 가능한 인왕산과 북악산을 올라야 체력을 덜 소진할 것 같아서이다.
▼ 서울시에서는 한양도성순성길을 4개코스로 나누어 1코스는 백악구간으로 창의문~혜화문까지, 2코스는 낙산코스로 혜화문~광희문까지, 3코스는 남산구간으로 광희문~숭례문까지, 4코스는 인왕산구간으로 숭례문~창의문까지로 정했다.
그런데 도성이 실제 시내에는 끊겨있는 곳이 있어 사전에 코스를 도상연구하지 않으면 주변을 헤맬 수도 있어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도성이 아래 사진과 같이 건물 석축이나 울타리로 사용하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 이곳은 성벽의 흔적이 전혀 없는 곳으로 아펜젤러기념공원 쪽으로 접어 들어야 한다. Daum지도 검색으로 한양도성길을 확대하여 핸드폰에 저장해 둔 것이 정확하여 많은 도움이 됐다.
▼ 덕수궁돌담길이 보이고 덕수궁길 로타리에서 왼쪽 정동길로 접어 들어야 한다. 올 가을쯤에는 반드시 전체 고궁을
둘러볼 예정이니 그때 이곳을 다시 찾을 수도 있겠다.
▼ 정동극장은 1908년, 신극과 판소리 전문 공연장으로 문을 열었던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圓覺社)의 복원 이념을 담고 있는 유서 깊은 극장으로 2015년 서울 미래 유산으로 등재됐다.
▼ 보구여관 터
보구여관은 1887년 미국 북감리회에서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용 병원으로 여성의사와 간호사를 양성한 곳이며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의 전신이라고 한다.
▼ 정동 캐나다 대사관 앞에는 나무둘레가 516cm로 높이 17m의 수령이 520년이나 되는 회화나무가 눈길을 끈다. 서울시에서는 1976년 11월 17일 보호수로 지정하였다.
우리나라 과거 만원짜리 화폐에도 그려질 만큼 회화나무는 우리 민족과 함께한 나무인데 우리 어릴때는 이런 나무가 있었는지 조차 몰랐다. 요즘은 가로수로도 심겨져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는데 한 여름에 아카시아꽃과 비슷한 연노란 색의 꽃을 피우고 잎도 비슷해서 금방 구별해 낼 수 있다.
▼ 돈의문(敦義門) 터
돈의문은 서울 성곽의 4대문(四大門) 가운데 서쪽 큰 문으로 일명 ‘서대문(西大門)’이라고도 한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일제의 도시 계획에 따른 도로 확장을 핑계로 철거되어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처음 세워진 것은 1396년(태조 5)으로 도성(都城)의 제2차 공사가 끝나고 8문(門)이 완성되었던 때이다.
태조 때인 1413년에 폐쇄되어 사용되지 않고 대신 태종 때에 서전문(西箭門)을 새로 지어 도성의 출입문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세종 때 다시 서전문을 헐고 그 남쪽 마루에 새 성문을 쌓고 돈의문이라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1711년(숙종 37) 9월에 고쳐 지으라는 왕명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숙종 때 고쳐 지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서울 서북쪽의 관문(關門)으로 사용된 중요한 사적인데, 일본인들에 의해 함부로 철거된 것은 애석한 일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도로 반대편 벽에 돈의문 터라는 글귀가 유일하게 이곳이 돈의문이 있었던 자리라는 것을 말해 준다. 강북삼성병원 근교이다. 혹시나 자세한 내용이 쓰여져 있는 안내문이 있는가 살펴봤지만 보이질 않는다.
이곳의 위치를 몰라 두번이나 지나는 분들에게 물어봐도 돈의문 자체를 모르고 있어 횡단보도 건너다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 강북삼성병원 출입구 맞은편의 돈의문 박물관마을과 전시관을 잠시 둘러보긴 했지만 시간상 이곳 저곳 살펴보지는 못했다.
▼ 월암근린공원입구로 진입하여 인왕산 방향으로 가게 된다. 축대 윗쪽으로 성벽은 잘 복원되었다.
▼ 인왕산을 오르는 들머리에 도착,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 이곳으로부터 창의문까지 1시간이 소요됐다. 인왕산 넘어 창의문까지 1개코스를 진행하는 중이니 북악산 넘어 12시까지는 청운대쯤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것으로 부지런히 움직인다.
▼ 과거에 성 안쪽으로 돌아봤는데 중턱쯤에서는 외순성길로 들어섰다. 바깥 성벽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도성을 높고 험한 산에는 15척 높이의 돌로 쌓게 하였는데, 총 석축길이는 1만 9,200척이었다. 석재는 자연석을 약간씩 다듬어 쌓되, 기초석은 길고 큰 돌을 수직으로 쌓아올렸다.
평지는 흙으로 쌓았는데 너비는 아랫부분이 25척, 윗부분이 18척, 높이 25척이다. 그 단면은 사다리꼴을 이루는 성토판축(盛土版築)을 하였는데, 토축의 둘레는 4만 3,000척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인왕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
▼ 뒤돌아 본 풍경
▼ 남쪽 시내를 바라보니 아침에는 몰랐던 미세먼지가 답답할 정도로 시야를 가렸다. 이런 맑은 날, 이런 공기를 마시며 살아야 하는 세상에 점점 회의를 느끼게 한다.
▼ 벌써 4년전 얘기지만 백련산으로 부터 안산을 경유, 인왕산으로 해서 북악산을 오른 적이 있어 저곳 안산의 추억도 간직하고 있다.
▼ 세번째 올라보는 인왕산...정상의 바위는 볼 때마다 점점 작아지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너무 큰 바위들만 보아와서 그런 모양이다.
▼ 북악산도 드러났다. 저곳을 넘어 낙산을 거쳐 반대편에 보이는 남산을 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과연 오늘 16시까지 트레킹을 마쳐야만 집을 방문하는 친척들을 맞이 할 수 있는데 가능할까 조금은 긴장이 된다.
▼ 앞쪽 능선으로 기차바위가 조망된다. 이제 하산길에는 속도를 높여야 한다. 설 전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으니 트레킹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 기차바위를 둘러볼까 순간 망설이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기에 이번 기회가 아니면 가 볼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왕복 700m는 될 거리인데 가 보기로 한다.
▼ 기차바위 능선에서 본 인왕산
▼ 기차바위...길게 뻗은 암릉이라서 붙여진 이름같다. 이왕 왔으니 저곳까지 일부러 내려갔다가 올라온다.
▼ 이곳에서 보는 북한산 주능선이 확연히 드러난다. 맨 아래 족두리봉부터 향로봉, 비봉이 보이고...
▼ 비봉부터 사모바위, 승가봉, 나월봉, 나한봉, 716봉, 문수봉, 보현봉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 당겨본 나한봉, 716봉, 문수봉, 맨우측 보현봉
▼ 윤동주 시인 기념관이 있는 이곳까지 2시간이 걸렸다. 이 속도라면 목표로 한 시간 안에 트레킹을 마칠 것 같다. 그러나 혹시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진다면 예상과 빗나갈 수 있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시인의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어서인지 마음까지 차분해 진다.
▼ 학창시절 부터 외워 왔던 시지만 오늘따라 또 곰씹어 보게 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란 대목에서는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어찌 한 점 부끄러운 일이 있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많은 생각을 하면서도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라는 부분에는 앞으로 사는 날까지는 따뜻한 가슴을 품고 늘 살아 가자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 창의문(자하문)
1396년(태조 5) 도성을 쌓을 때 북서쪽에 세운 문으로, 돌로 쌓은 홍예 위에 정면 4칸, 측면 2칸 구조의 문루가 있다. 4대문 중 북대문인 숙정문이 항상 닫혀 있었으므로 경기도 양주 등 북쪽으로 통행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문을 거쳐서 왕래했다.
인조반정 때 능양군을 비롯한 의군이 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반정을 성공시킨 유래가 있는 곳으로서, 누문 다락에는 인조반정 때의 공신의 명단을 적은 게판이 있다. 1958년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다음백과]
▼ 창의문 안내소에서 신분증을 제출하고 표찰을 받아 한참을 오르던 중 전화가 온다. 왠일인가 싶어 받았더니 표찰을 안내소에 그냥 놓고 가서 반드시 휴대를 해야 한다며 다시 내려 오라고 한다.
안내소에서 표찰을 받고 잠시 배낭안의 지갑에 신분증을 넣고는 그냥 서둘러 나오는 바람에 표찰을 받긴 했지만 휴대를 하지 않아 4년전 북악산 이 계단의 악몽을 떠오르며 어렵게 오른 계단을 다시 내려 갔다가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부아가 난다. 진작에 알려 줬으면 좋으련만...
▼ 급한 마음에 숨이 턱에 차 오르도록 북악산(백악산)에 올랐다. 예전에 올랐을 때 그냥 지나쳤던 표지석인데 오늘은 반드시 표지석을 담아오겠다고 다짐한 터이다.
▼ 1.21사태 소나무 (총탄 자국)
▼ 맞은 편의 남산을 보니 절반 거리를 온 듯 하다. 점심은 와룡공원쯤에서 하기로 하고 계속 진행하기로 한다.
▼ 촛대바위
▼ 숙정문
숙정문(肅靖門) 또는 숙청문(肅淸門)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문(大門) 중의 하나로 북쪽의 대문이다. 북대문(北大門)이라는 속칭이 있으나, 이는 근대에 와서야 불린 이름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三淸洞) 산 2-1번지(북악산 동쪽 고갯마루)에 있다. 한양도성의 나머지 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해 실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았다. [위키백과]
▼ 전망대에서 바라본 성북구 성북동 일대
▼ 이곳에서 와룡공원으로 가는 표시대로 성벽 바깥쪽으로 나와 데크계단을 이용, 계속 진행한다.
▼ 이렇게 잘 정비되고 아늑하기까지 한 도성길을 걷노라면 지금까지의 피로가 다 풀리는 듯 하다.
▼ 와룡공원에 도착했다. 이 공원의 안쪽으로 트레킹을 하지 않고 바깥 외순성길로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이곳 정자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출발한다.
▼ 와룡공원에서 혜화문으로 가는 도중의 도성길
▼ 이러한 암문도 눈에 띈다. 안쪽으로 걷는 내순성길이 있는지 모르지만 외곽으로 돌기로 한다.
▼ 도성길이 끊겼다가 이곳 경신고등학교 담벼락으로 사용되는 성벽이 눈에 띈다. 언제부터 훼손되었는지 이미 훼손되거나 사라진 성벽은 복원이 불가능할 것 같다.
▼ 경신고등학교부터 일정 거리는 성벽 자체가 없다.
▼ 도성 윗 부분에는 빌라나 주택이 들어섰다.
▼ 혜화문 부근에 도착, 출입문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 혜화문
혜화문(惠化門)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소문(小門) 중의 하나로 동쪽의 소문이다. 숙정문을 대신하여 한양의 북쪽 관문 역할을 하였다. 동소문(東小門)이라는 속칭이 있는데, 이는 조선 초기부터 불린 이름이다. 혜화문은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다.
1592년문루가 불타 1744년에 재건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고 1994년에 복원되었다. 본래 홍화문(弘化門)이라고 하였는데, 나중에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발음이 같다 하여 혜화문으로 이름을 고쳤다. 1592년(선조 25년)에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1744년(영조 20년) 8월에 문루를 세우고 현판을 걸었다. [위키백과]
▼ 혜화문에서 큰 도로를 건너 계단으로 진행하면서 담은 혜화문
▼ 혜화문에서 낙산공원으로 가던 중의 외순성길
▼ 장수마을을 지나면 낙산의 낙산공원에 이르게 된다.
▼ 동대문 성곽공원에서 흥인지문 방향으로 진행하면서 바라본 창신동 일대
▼ 동대문성곽공원에서 바라본 흥인지문
▼ 흥인지문
조선 초부터 창건하기 시작해1398년(태조 7)에 완성되었다. 지대가 낮아 땅을 돋운 후 건설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성문을 건립할 때보다도 오래 걸렸다고 한다. 축조 당시 성문의 이름은 흥인문(興仁門)이었다. ‘흥인(興仁)’이란 어진 마음을 북 돋운다는 뜻으로, 유교사상의 덕목인 ‘인(仁)’을 의미한다.
그러나 1868년(고종 5) 흥인문이 크게 손상되어 정비할 때에, 풍수지리상 한양의 동쪽이 비어있다고 하여 ‘지(之)’자를 넣어 무게감을 주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 등 현판이 세 글자인 다른 도성의 사대문과 달리 네 글자 현판을 달게 되었다.
완성된 지 50여 년이 지난 1451년(문종 1)과 1453년(단종 1)에 일부 보수작업이 진행되었고, 그로부터 400년이 지난 1868년(고종 5)에 1년 동안 전면적인 개수 공사를 진행해 1869(고종 6)에 완공되었다. 한편, 일본이 1934년에 본래의 이름인 흥인지문이 아닌, 동대문으로 문화재 지정을 하면서 동대문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1996년 역사 바로세우기 사업의 하나로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에 대한 재평가작업을 하면서 '흥인지문'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다음백과]
▼ 흥인지문 이모저모
▼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 광희문
서소문과 함께 시신을 내보내던 문으로 수구문 또는 시구문이라고도 한다. 1396년(태조 5) 도성을 쌓을 때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인 남동쪽에 세운 것으로, 1711년(숙종 37)에 고쳐 쌓았다.
1719년(숙종 45) 석축 위에 문루를 짓고 '광희문'이란 현판을 걸었다. 그후 언제 무너졌는지 알 수 없으며 석축으로 된 기단부만 남아 있었는데 1975년 복원시 홍예석축을 해체해 남쪽으로 15m 옮기고, 문루 12평을 새로 짓고 주변의 200평을 녹지화했다. [다음 백과]
▼ 성벽의 돌은 세월이 흐르면서 풍화작용으로 인해 훼손되고 있어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줄 역사적인 유물로서 꾸준한 보수가 이뤄져야 보존이 가능할 수 밖에 없다.
▼ 골프연습장을 끼고 돌면 반얀트리호텔이 나오고
▼ 호텔정문 앞에 국립극장으로 진입하여 왼쪽으로 접어 들면
▼ 우측으로는 남산 숲길 산책로가 나오고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남산타워로 이어지는 도성길이 나오게 된다. 지난번 남산트레킹을 하면서 걸었던 길이기에 익숙하다.
오르다가 왼쪽으로 가면 남산산악회 건물이 나오면서 성벽을 따라 남산을 우회하여 걷게 되고 그냥 오르면 안내된 순성길로 남산타워로 곧바로 오르게 된다.
▼ 성벽을 넘어서 남산타워로 이르는 통로가 계단으로 만들어져서 뒤돌아 본 남산순성길
▼ 남산의 상징인 타워를 담아보고...
▼ 전망대에서 마지막으로 지나온 코스를 보면서 시내 풍경을 담아 본다. 좌측 안산, 가운데 인왕산 우측 북악산
▼ 북쪽 방향으로 사진을 담으니 미세먼지가 덜해 보인다. 멀리 북한산 자락이 오전보다는 조망이 한결 깨끗해 보인다.
▼ 왼쪽 도봉산과 가운데 왼쪽 수락산, 오른쪽으로 불암산이 조망되고...
▼ 나무에 가려진 아차산까지 조망이 그런대로 만족스럽다.
▼ 설 명절 전에 이곳에 놀러 온 동남아시아인들의 모습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들이 우리 처럼 명절을 보내든 안보내든 5일간의 연휴이니 좋을 수밖에 없겠다.
▼ 남산 봉수대
▼ 안중근 의사상
▼ 백범광장
▼ 남산공원내의 숭례문 방향으로 세워진 도성길
▼ 남산공원 입구를 지나...
▼ 오전 8시 10분에 출발했던 숭례문에 15시 50분에 도착했다. 내가 목표로 했던 시간내에 완주했으니 알아 주는 이는 없어도 뿌듯하다. 도상거리는 18킬로인데 실제 트랭글에 찍힌 거리는 20킬로가 좀 넘는다.
기차바위 또는 순성길외에 둘러본 거리가 있어서 좀 길게 나온 것 같다. 실제 걷고 역사공부를 해 보니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몰랐던 부분을 조금씩 알게 된다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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