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2일(토)
청수사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의 니조성에 12:20 도착, 안내도와 같은 코스로 관람을 하게 되는데 단체로 표를 예매하고 출입구로 향한다.
∥니조성의 역사∥
축성 후 400년 동안 일본 역사상 매우 중요한 사건들과 함께 해온 니조성.
니조성은 에도막부(1603~1867)의 창시자이자 초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으로 1603년에 완성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랜 전국시대를 거쳐 일본을 통일하고 260년 동안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이룩했다. 이에야스 이후 15대까지 이어진 에도막부는 일본 역사상 가장 안정되고 번영한시대였다.
1600년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가문이 일본을 통일했고 1603년에이에야스는 천황의 명으로 쇼군이 되었다. 그 후 이에야스는 니조성에 모인 영주들에게 이 사실을알렸다.
니조성은 일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무대가 된 것이다. 가끔 이에야스가 교토를 방문했을 때 니조성은 이에야스의 주거가 되었다. 이에야스가 없을때는 에도(도쿄)에서 파견된 니조성 경비병이 배치되었다.
1614년 이에야스는 니조성을 나와 오사카성을 포위하고 다시 니조성에 복귀했다.
오사카성에서 거둔 이에야스의 승리로 도쿠가와 가문 이전에 일본을 통치했던 도요토미 가문의명맥은 완전히 끊어지게 되었다. 이 사건은 정치적 통치자의 지위가 도쿠가와 막부에 있음을확고히 했다. 1624년 에도막부 3대 쇼군 이에미쓰는 2년 후의즈노 천황 행차를 맞이하기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천황을 니조성에 맞이하는 것은 에도막부의 지배가 안정적임을 상징하는것이었다.
1867년 니노마루 궁전 대형실에서 15대 쇼군인 요시노부가 천황에게 정권을 반납하고 영주들앞에서 도쿠가와 막부가 끝났음을 선언했다. 이로써 메이지시대가 시작되고 일본은 봉건제에서근대 민주국가로 급속한 변화를 이루었다. 니조성은 봉건제의 마지막 무대이자 근대 일본 시작의무대가 된 것이다.
400년 전에 만들어진 니노마루 궁전, 당문, 니노마루 정원은 일본의 건축과 디자인의 황금기인에도시대 초기의 귀중한 유적으로 199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안내 책자 인용 ]
※ 쇼군이란? 4세기에 시작된 천황의 조정 통치는 694년 본격적인 도성이 나라에 만들어진 이후에도 형태를 바꾸면서 계속되었다. 천황은 국가원수의 지위를 유니하고 있었으나 실권은 무사가 쥐고 있었다. 무사의 우두머리는 나중에 쇼군이라 불리게 되었다. 쇼군의 기원은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최고사령관이나 대원수 같은 직책이다. 쇼군은 본래 동북지강의 반란을 억제하기 위해 임명되었으나 1192년 이후 일본의 정치적 실권자에게 주어지는 직책이 되었다. 일본에는 가마쿠라막부(1185~1333), 교토에 거점을 둔 무로마치막부(1336~1573), 에도막부(1603~1867)등 3대 막부가 존재했다. 니조성은 에도막부의 강력한 권력이교토에도 미치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
※ 대정봉환 [大政奉還] 1867년 에도막부의 통치가 끝나고 천황에 대한 주권 이양이 니조성에서 표명되었다. 18세기 말에 외국인 사절단이 쇼군에게 요구한 약200년간의 쇄국정책 폐지 요구와 통상 요구로 인해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남쪽 지방의 무사들은 무력으로 에도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에게 주권을 넘길 것을 계획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15대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1867년 10월 13일 니조성에 40개 번의 중신을 불러 의견을 구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천황에 대한 주권 반환을 표명하고 1867년 10월 15일 천황이 이를 승낙했다. 다소 무력 충돌은 있었으나 1868년 봄에 평화롭게 에도성이 조정으로 인도되면서 에도막부가 끝나고 근대 일본이 시작되었다.이를 주권이 천황으로 돌아가고 메이지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에서 메이지유신이라 부른다. |
▽ 니조성 안내도
▽ 니조성(二条城)의 동대수문(東大手門)으로 입장하게 된다.
▽ 니조성(二条城) 동대수문(東大手門)
니조성의 정문으로 1662년경에 만들어졌다. 축성당시는 지금과 같이 망루 아래문(2층)이었으나 간에이(1624~1644년)시대 니조성 행차 당시는 천황을 2층에서 내려다 보지 못하도록 개조되었다고 한다.
▽ 외성해자[外城垓字], 해자(垓字) 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를 둘러서 판 못을 말한다. 니조성에는 외성해자와 혼마루 어전을 방어하기 위한 내성해자가 있다.
▽ 안에서 바깥쪽으로 본 동대수문(東大手門)
▽ 당문(唐門)
당문은 니노마루 궁전의 정문이다. 문의 형태는지위를 나타내는데 가장 높은 지위가 바로 당문이다.
지붕 전후는 곡선 양식을 띠고 있다. 지붕에는 동・기와가 아닌 노송나무 껍질이 사용되었다. 문에는 4개 기둥이 있고 장수를 의미하는 학과 송죽매가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사자 조각은 궁전을 지키는수호신이다. 2013년에 이루어진 복원 공사로 당시의 화려한 모습을 되찾았다.
▽ 당문 맞은 편에 있는 남문(南門)
▽ 당문으로 들어가 니노마루 궁전과 정원을 둘러봤어야 하는데 가이드가 왜 외곽으로 안내했는지 아쉽다.
▽ 내성해자(內城해垓字)로 혼마루 궁전을 방어하기 위해 성 외곽을 둘러 연못으로 만든 장애물이다.
▽ 왼쪽은 내성의 혼마루 어전이 자리하고, 오른쪽은 니노마루 어전이 위치하고 있다.
▽ 혼마루 동교(東橋)에서 바라 본 내성해자
▽ 내성으로 진입하는 혼마루 야구라몬(本丸櫓門)
▽ 혼마루 야구라몬(本丸櫓門) 안으로 들어와 뒤 돌아 본 풍경
▽ 혼마루 정원(本丸庭園)
▽ 천수각(天守閣) 옛터에 올라보니 시야가 탁 트인다. 주변의 조경이 잘 되어 있고 내성해자로 둘러싸인 성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북쪽 방향의 풍경이다.
▽ 보수중인 혼마루 궁전(本丸御殿)이 한창 공사 중이어서 그곳은 둘러 볼 수가 없다.
▽ 서쪽방향
▽ 천수각에서 본 동쪽 풍경
▽ 남쪽 방향
▽ 혼마루 궁전은 내부 수리 중이어서 관람할 수가 없었다.
▽ 빈틈없이 견고하게 쌓은 돌로 쌓은 축성
▽ 서교(西橋)에서 바라 본 북쪽 방향의 풍경
▽ 서쪽 방향의 풍경
▽ 내성에서 외성으로 나와 키타 나카시키리 몬 (北中仕切門) 방향으로 이동...
▽ 왼쪽 혼마루 궁전이 있는 내성에서 서교를 건너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담은 풍경으로 왼쪽끝으로 천수각 터가 보인다.
▽ 키타 나카시키리 몬(北中仕切門)을 나와서...
▽ 가무칠석(加茂七石)을 감상...
▽청류원(淸流園)
교토의 거상 스미노쿠라 가문의 저택에 있던 건축부재와 정원석, 나무를 제공받아 1965년에조성되었다. 향운정과 다실 와라쿠안이 있는 일본식 정원과 서양식 잔디 정원이 잘 조화되어 있다.
▽ 니노마루 어전(二の丸御殿 :니노마루고텐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거처로 사용된 곳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교토에 머물 때 묵었던 거처로 소테쓰노마(蘇鉄の間), 오히로마(大広間), 시로쇼인(白書院), 도사무라이(遠侍), 시키다이(式台), 쿠로쇼인(黒書院)의 6개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침입자를 대비해 복도를 걸을 때 새 울음소리가 나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각 방의 용도에 따라 다른 벽화를 그려 놓았다.
니노마루 궁전의 6개 건물은 남동~북서 방향에기러기떼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33개에 이르는방과 800개 이상의 다타미를 비롯하여 소나무, 매,호랑이, 표범 등 도쿠가와 가문의 위엄을 상징하는그림과 벚꽃 등 사계절을 대표하는 가노파의 꽃 그림(복제)이 장식되어 있다.
▽ 당문을 나오면서 니조성 관람을 마친다.
▽출구 앞쪽에 세워진 史蹟 舊二條離宮 二條城 (사적 구니조리궁 니조성) 안내입석
▽ 점심 식사 후 다음 장소인 도케트교와 치쿠린 대나무숲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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