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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수도권

북한산(비봉능선~의상능선)

 

2019년 11월 30일(토)

 

주말, 휴일이면 이런 저런 일로 해서 산행하기도 쉽질 않아 3주만에 산행을 한다. 이번 주는 200대 명산의 눈독을 들인 곳이 성원이 되질 않아 무산되어 어디를 갈까 망설이던 중 단톡방에 솔담님과 즐풍님이 북한산을 간다는 얘기에 양해를 구하고 함산하게 됐다. 4년전 봄에 코스다운 코스를 처음으로 홀로  비봉능선~의상능선을 탔는데 이번이 같은 코스를 두번째로 오르는 셈이다. 그때 무려 10시간을 넘게 쉬엄 쉬엄 걷기는 했으나 너무 힘들게 걸었다는 생각에 이번 산행도 만만치 않겠다는 부담이 앞서면서 나름 각오를 다져 본다. 그래도 홀로 걷는 것 보다 함께 걷다보면 대화를 나누며 보조를 맞추게 되어 좀 더 수월하게 산행하지 않을까 기대가 됐다.

처음 이 코스를 밟으면서 봄철에 식수를 충분히 휴대하지 않아 애를 먹었던 기억을 되살려 식수와 먹거리를 간단히 챙겨 가방을 가볍게 하고 지난번 설악산 용아장성을 나설 때 보다 더 신중을 기해 전철에 몸을 실었다.

 

산행정보

♣ 산행코스: 불광역- 대호아파트-족두리봉-김신조굴-향로봉-관봉-비봉-사모바위-승가봉-통천문-연화봉-문수봉-715봉-나한봉-나월봉-증취봉-용혈봉-용출봉-의상봉-탐방지원센터-만석장 두부집

♣ 거리:약 11km(들머리-08:00, 날머리-16:20)

 

  ▼ 등산로 입구는 도상에서 표시한 대호아파트 뒤로 가면 자칫 처음부터 헤맬 수가 있다. 불광역에서 하차하여 남해그린힐 아파트 뒤의 삼환그린파크 빌라 골목으로 진입해야 정확하다. 골목에서 5분 정도 올라오면 이와 같은 둘레길과 만나게 되고 50m 정도 오르다 둘레길 데크 난간에서 왼쪽으로 빠져 나와 능선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 30여분 올라오자 아침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고 첫 조망처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은평구 일대를 조망해 본다. 

 

 ▼ 족두리봉....사람의 고무재질 발길이 이렇게 바위를 닳도록 만들어 놨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랐을까 상상을 초월한다.   

 

 ▼ 족두리봉을 살짝 뒤돌아 보면 이와 같은 모습이 여근석과도 같다는데...

 

 ▼ 족두리봉에서 바라본 진행할 방향의 비봉능선...멀리 오른쪽 보현봉의 왼쪽 작은 봉우리가 문수봉으로 그곳까지 일단 가야한다.

 

▼ 당겨본 향로봉...향로봉은 아직 오르지 못했다. 과거 첫 산행에서 직벽으로 오르지 못해 향로봉을 우회하고 나서 올랐어야 하는데 바로 관봉으로 향하는 바람에 헛발질을 했기 때문이다. 

 

 ▼ 이번에는 향로봉을 오르는데 곧장 오를런지, 오른쪽 차마고도 코스를 이용할런지 논의 끝에 처음 가 보는 김신조굴이 있는 코스가 좋겠다 여겨 왼쪽으로 다시 하산, 기자촌 능선방향으로 이동한다. 화살표가 목표지점인 김신조굴이 있는 위치다.

 

 ▼ 족두리봉의 바위...먹다 남은 사과가 저 모양일까...

 

 ▼ 왼쪽 족두리봉 능선과 오른쪽 선림봉 사이의 불광동 모습

 

 ▼ 이와같은 잣나무 숲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북한산은 암릉으로 이뤄져 수목관리의 어려움이 있긴 하겠지만 안부등의 공간에 알맞은 수목을 식재하면 좋은 쉼터를 많이 제공할 수도 있으리라 본다.  

 

 ▼ 화살표가 있는 저곳까지 바로 향하는 코스를 잡기가 쉽지 않아 지름길을 놓치고 기자촌능선 방향으로 우회하여 저곳까지 오르게 됐다. 즐풍님이 200번을 넘게 오르내리면서 손금 들여다 보듯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김신조굴로 향하는 길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어느 곳 하나 만만한 길이 없다.

 

 ▼ 드디어 도착한 굴...시커멓게 연기에그을린 내부 색깔이 으시시한 분위기와 함께 한바탕 전투를 벌인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 이 굴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고 열댓명 쯤은 충분히 은거할 수 있는 공간이라 앉아 있노라면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실제 김신조 일당이 은신해 있었던 굴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그만큼 은밀한 곳에 있는 굴이라 불려진 것이 아닌가 추측이 된다. 내부는 연기에 그을려서인지 시커멓고 빨간 십자가도 그려져 있어서 기도처로도 쓰여지기도 한 모양이다. 앉은 모습이 공비를 꼭 닮았다.

 

  ▼ 능선에서 바라본 향로봉...

 

 ▼  의상능선과 북한산 지휘부의 봉우리 주변을 두루 살펴보며 복습해 본다. 앞쪽으로 응봉능선이 자리잡고 있다.

 

 ▼  향로봉 정상

 

 ▼ 향로봉에서 올라왔던 족두리봉과 철탑을 지나 오른쪽 계곡으로 하산했다가 기자촌능선을 경유, 김신조굴로 해서 이곳까지 온 것이다.

 

 ▼ 기자촌 능선으로 맨 왼쪽 아래 기자봉과 진관봉, 삼각점봉으로 이어진다.

 

 ▼ 향로봉에서 뚜렷이 보이는 김신조굴

 

 ▼ 향로봉에서 당겨 본 비봉과 오른쪽 잉어바위...신라 진흥왕순수비가 세워진 곳으로 실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고 이것은 같은 크기의 모형을 세워 놓은 곳으로 비봉이라 불린다.

 

 ▼ 원경으로 봐야 족두리 같이 생겨서 족두리봉이란 걸 실감할 수가 있다.

 

 ▼ 다시 살펴 보는 의상능선과 북한산 지휘부

 

 ▼ 아래 사모바위와 위로 연화봉과 문수봉

 

 ▼ 보현봉

 

  ▼ 사모바위...옛 벼슬아치들이 쓰는 사모(紗帽)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

 

 ▼ 그 아랫쪽 부근의 바위에는 무장공비가 실제 은신해 있던 곳이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 있다.

 

▼ 혹서기인 한 겨울,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부대 소속 31명이 사모바위 밑 V자형 동굴에서 청와대 습격과 정부요인 암살을 위해 무장을 점검하며 최종 은거한 장소로 한국군 복장과 수류탄 및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휴전선을 넘어 야간을 이용하여 수도권까지 잠입하여 세검정고개의 자하문을 통과하려다 비상근무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고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자 검문경찰들과 교전하던 중 경찰과 일부 시민들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군.경의 비상경계태세 발령으로 현장을 지휘하던 종로경찰서장 총경 최규식이 무장공비의 총탄에 맞아 순직하였고, 그날밤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는 그동안 김일성의 허위선전에 속아 살아왔음을 깨닫고 한국으로 귀순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북한의 비정규전에 대비하기 위한 향토예비군을 창설하였다.[안내문 발췌]

 

 ▼ 사모바위 전경

 

  ▼ 사모바위 뒷편의 모습, 지탱되어 있는 바위가 신기하다.

 

 ▼ 비봉과 사모바위

 

 ▼ 비봉을 오를 수 있는 방향에서의 풍경, 오르기에 난이도가 좀 있지만 많은 산객들이 즐겨 찾는다.

 

 ▼ 승가봉을 오르는 홈통과 같이 생긴 바위

 

  ▼ 승가봉은 넘어 내려서는 바위

 

 ▼ 통천문

전국의 산에는 통천문이 꽤 있지만 문 같은 느낌은 별로 없다. 북한산의 이 통천문이야 말로 인위적으로 만든 것처럼 실감이 난다.

 

 ▼ 연화봉을 오르는 등로, 암릉에 철봉 난간을 박아 안전하긴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 경사로는 더욱 심해지고...

 

  ▼ 경사로를 빠져 나갈 때는 스릴이 느껴진다.

 

 ▼ 난간 설치 암봉을 올라 지나 온 비봉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쯤이면 오늘 산행의 절반은 왔을 것 같다.

 

 ▼ 연화봉에 있는 명물인 두꺼비바위, 또는 횃불바위...난 공복이 있어서인지 자꾸 만두 생각에 만두바위라고 되뇌이게 된다.

 

 ▼ 문수봉을 배경으로...

 

  ▼ 문수봉과 연화봉

 

 ▼ 715봉에서 바라본 의상능선과 오른쪽 북한산 지휘부(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 나한봉, 복원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하다.

 

  ▼ 나월봉을 지나 에스컬레이트바위를 통과하게 된다.

 

   ▼ 증취봉...증취(甑炊)란 시루에 불을 땐다는 뜻이니 시루를 엎어 놓은 모양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뒤돌아 보니 참으로 많이도 걸어왔다. 멀리 비봉능선의 향로봉, 관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통천문 부근이 한눈에 들어오니 말이다. 

하얗게 보이는 암릉은 웨딩슬랩이라고 한단다. 바로 앞에 강아지바위라는데...세번째 보면서도 얼른 이미지가 떠 오르지 않는다.

 

 ▼ 아하! 왼쪽 접힌 귀를 보면 강아지 머리부분과 눈코입 부분이 어림 짐작이 된다. 오른쪽 눈도 있었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떨어져 나갔단다. 바위에 붙어 있는 식물은 이끼종류 일테고...

 

  ▼ 용혈봉에서 바라본 용출봉과 의상봉

 

 ▼ 당겨 본 용출봉...용이 어디서 나왔을꼬?

 

 ▼ 왼쪽 동자승바위

 

  ▼ 해가 짧아졌다. 3시 밖에 안됐는데 해가 뉘엿 넘어가고 노을이 져간다.

 

▼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자명해인대 紫明海印臺」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자명은 산자수명(山紫水明), 즉 산은 자줏빛이며 물은 깨끗하다는 뜻으로, 경치가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하며  해인은 해인삼매(海印三昧), 바다에 풍랑이 쉬면, 삼라만상이 모두 바닷물에 비치는 것 같이, 번뇌가 끊어진 부처님의 정심(定心) 가운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법이 명랑하게 나타나므로 해인정(海印定)이라 한다.

온갖 물듦이 깨끗이 사라진 진실된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가 일심법계이다. 즉, 마음의 바다에서 지혜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보지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번뇌의 파도라 하였으니 그 원인은 어리석음이라는 바람 때문이다.

어리석음이라는 바람이 잦아들고 그로 인해 번뇌의 파도가 잠잠해지면 지혜의 바다(海)에 도장을 찍듯이(印) 한없는 시간, 끝없는 공간에 삼라만상 일체의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나타난다.

이것이 해인삼매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깨달음이라 했다. 아름다운 경치가 있고 깨달음을 얻는 곳이란 뜻이리라.

 

 ▼ 의상봉

 

 ▼ 의상봉에서 바라본 왼쪽 원효봉, 염초봉, 그리고 북한산 지휘부를 마지막으로 조망해 본다. 

 

  ▼ 코뿔소, 또는 쌍토끼바위

 

 세번째 의상능선을 타 보지만 마치 처음 오는 것 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오랜만에 와봐서 그런 것 같다. 지금까지 걸어 온 것이 별로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데 의상봉을 지나 하산길에서 지치게 된다.

거의 다 왔다는 심리작용에 의외로 긴 하산길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거의 끝까지 바위길을 걸어 다리에 오는 피로가 상당하다. 

무릎 뒷편의 오금쪽이 시큰거리고 통증이 와 한발 한발 내딛기가 부담이 되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어떤 산행보다 쉽지 않은 코스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도 수도권에 이만한 산이 있어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즐풍님의 탁월한 리딩으로 오늘도 북한산을 제대로 걸어 본 기회가 됐다. 언제 기회가 되면 또 접하지 못했던 흥미로운 코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기대로 북한산을 바라보게 될 것 같다. 이 지면을 통해 함산한 두분에 대해 감사드리며  하산식까지 제공해 주신 즐풍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