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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해외

그랑 발콩 노르 트레킹(6일차)

2019년 8월 2일(금)

 

오늘은 몽블랑 트레킹 마지막 날이다. 그동안의 일정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 듯하다. 숙소 뒤로 첫날  안개에 가려 전혀 볼 수 없었던 에귀뒤 미디(Aiguille du Midi)가 둘째 날에 날씨가 개이면서 엄청난 높이에 놀랐고 그 장엄함에 인상 깊었던 모습을 지금까지 봐 왔었다. 

이제 그 전망대에 올라 그동안 트레킹 했던 모든 곳을 둘러보며 몽블랑 정상을 가장 근접한 곳에서 볼 수 있고 몽블랑 주변의 만년설과 침봉들 그리고 거대한 빙하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오늘, 유럽에서도 가장 멋진 전망대로 꼽는다는데 아침 일찍 눈뜨자마자 밖의 날씨를 살펴보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제와 같은 맑은 날씨는 꿈만 같고 잔뜩 흐린 데다가 숙소 앞뒤 산군의 중간쯤에 걸친 구름층은 두터운 채 언제 걷힐지 모르는 상황이니 첫날 아침을 맞았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 상황인데 혹시라도 전망대 오를 때까지 기적적으로 하늘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린다.

한 여름에 실감 나지는 않지만 전망대에 오르면 기온이 영하의 날씨여서 겨울 옷을 준비해야 하며 1,032m에서 생활했던 우리가 갑자기 20여 분 만에 3,842m를 오르게 되니 저기압과 산소분압으로 인해 고소증이 여러 가지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하여 두통약(타이레놀)을 케이블카 탑승전에 두 알씩 먹으라고 권한다. 

혹시 근거도 없이 고소증에 비아그라가 좋다 하여 먹는 사람도 있는데 절대 먹지 말라고도 가이드가 주의를 준다. 에귀뒤 미디 전망대에 오르는 케이블카 승강장은 멀지 않은 시내에 있으므로 이른 조식을 하고 서둘러 도보로 향하지만 내내 구름이 걷히기만을 기대하게 된다.

 

 ∥6일차- 그랑 발콩 노르(Grand Blalcon Nord)트레킹 및 얼음동굴 체험

 

♣ 일정: 06:30 조식

           07:00~07:45 <에귀뒤 미디> 전망대 케이블카로 시내버스로 이동                       

           08:06~08:25 <에귀뒤 미디> 전망대 케이블카로 이동

           08:25~09:50 <에귀뒤 미디> 전망대 도착 및 시설물 관람, <쁘랑드레귀> 산장 케이블카로 이동

           09:50~10:20 <쁘랑드레귀> 산장에서 커피타임 휴식

           10:20~13:40 <그랑 발콩 노르> 트레킹(6km)

           13:40~14:45  빙하 얼음동굴 체험

           14:50~15:50  열차로 시내이동 및 산악인 공동묘지 관람

           16:24~18:00 숙소 도착 및 스테이크 석식

            20:50~09:10 가이앙 호수 산책

 

♣ 코스: 에귀뒤 미디(Aiguille Du midi 3,842m) 전망대에서 전망 후 (플랑드레귀(Plan de l'aiguille 2,233m)→시그날 포비아(돌탑언덕  Signal Forbea 2,204m)→메르드 글라스(Mer de Glace)빙하의 얼음동굴체험→ 몽땅베르(le Montenvers 1,909m)         

 

 

▼ 에귀디 미디 케이블카 승강장...규모로 보면 케이블카 승강장이 아니라 마치 어느 역전에 와 있는 느낌이다. 케이블카를 두번 타게 된다. 이곳에서 한번 타면 다시 하차하여 옮겨 타야 한다.

탑승료는 68유로 (1유로는 출발시 한화로 1,340원)이니 우리 돈으로 9만원이 넘는 셈이다. 이곳에서 벌어 들이는 돈이 하루에 3억원이라고 가이드가 귀띰해 준다. 이 도시만 해도  관광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 쁘랑드레귀(Plan de l'aiguille 2,233m)에서 케이블카를 옮겨 타고 에귀뒤미디 전망대로 다시 향한다. 케이블카 아래 위로 펼쳐지는 풍경에 모두 탄복을 해야 하는데 탑승 인원 전체가 침묵이다. 정상에 오르면서 주변이 아무것도 안보인다.

 

 

 ▼ 전망대에 도착하자마자 세찬 바람과 추위가 엄습해 온다. 모두가 겨울옷을 입었는데 웬만해서는 추위를 타지 않는다는 나도 할 수 없이 바람막이 옷을 꺼내 입었다.

 

 ▼ 전망대는 의외로 규모가 컸다. 동굴이 곧곧에 뚫려 좌우상하를 오르는 수단이고 7개의 트라스가 있는 전망대가 곳곳에 위치해 있다.

 

 ▼ 암벽등반가 또는 전문 산악인들이 이용하는 통로라는데 군생활 시절에 낙하산 강하를 하기 위해 비행기 문이 열린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 올라서는 전망대마다 앞은 하얗고 맑은 날씨라면 펼쳐졌을 풍경이 안내판에 게시되어 있어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것은 트레킹하면서 볼 수 없었던 가운데 제일 고봉인 그랑드 조라스(Grandes jorasses 4,306m) 주변의 산군들이다. 이탈리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곳인데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다니...

 

 ▼ 이 전망대에서는 바로 앞에 몽블랑 정상이 보이는 듯하다. 숙소에서 까마득히 올려보던 산인데...

 

 ▼ 갑자기 구름이 걷히는 듯 살짝 암릉이 보이더니 몇 초도 안되 또다시 사라지니 애석한 일이다.

 

 ▼ 이곳 트라스에서 보는 풍경도 제법 좋아 보인다. 그러나 그림의 떡이다.

 

 ▼ 몽블랑 주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풍경...모두가 트레킹하면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모습들이다.

 

 ▼ 이러한 날씨에 망원경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전망대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인생도 그렇지 않던가! 욕심을 내려 놓으라는 뜻으로 생각을 접는다.

너무 아쉬워할 필요가 없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는 단계가 된 것이다. 그래도 현실은 9만원이 넘는 돈을 들여서 이곳까지 올라왔으니 기념 사진이라도 남겨야 되지 않겠냐는 것...

 

 ▼ 어라? 마음을 접는데 또 살짝 보여주는 전망대가 염장을 또 지른다.

 

  ▼ 눈이 내린다. 안내판에 게시된 사진속에 눈이 내리는 풍경으로 연출된 것이니 오히려 더욱 입체적인 느낌이 든다.

 

 

 ▼ 에귀뒤 미디 3,842m, 12,602 피트의 고도...난생 처음 올라보는 지상 높이다. 가만 앉아서 이렇게 올라보는 세상이니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 우리나라는 현재 습도 높고 한낮의 무더위에, 밤이면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철인데 여기서 눈을 맞고 겨울옷을 입고 있으니 이 무슨 변고인고?  아무튼, 피서는 확실히 하고 있는 셈이다.

 

 ▼ 아! 이쪽 지역은 세째날 브레방 전망대에 올라 봤던 스위쪽도 조망되는 낯 익은 풍경이다.  

 

  ▼ 전망대 안에는 암벽등반가들이 어떻게 등반하는지, 각종 장비도 전시되어 있고 또한 영상도  함께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몽블랑을 올랐던 과거의 역사를 한눈에 풍경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관이 있고 카페도 있어 차 한잔을 즐길 수도 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 전망대의 계획도

 

 ▼ 이번 트레킹에서 이런 일도 벌어졌다. 같은 일행이 모두 21명이고 다른 산악회의 9명이 합류하여 30명이 동행을 하게 되었는데 귀국시 항공편 사정으로 인해 5명이 8시간 늦게 이곳에서 출발하게 되었다는 것을 사전에 공지를 안해 주고  출국하는 날 공항에서 알게 됐다.

그 중에 우리 일행 중 부부가 따로 떨어져서 귀국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귀국하는 날 모두가 떠나고 5명만 남게 되어 시내구경을 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오늘 이곳에서 전망을 못하다 보니 내일 날씨가 좋으면 다시 이곳을 올라보겠다고 한 것이 정말 구름한점 없는 좋은 날씨로 다시 68유로를 내고 이곳을 오른 것이다.

부부 중 떨어져 오게 된 부인이 공항에서 대기하는 시간에 이곳에서 펼쳐진 풍경과 동영상을 스마트 폰으로 찍어 단톡으로 보내 준 것인데 너도 나도 늦게 출국하는 건데 아쉽다는 표정들이다. 그러기에 사람일은 한치 앞도 모른다는 것이다. 전문 산악인들이 이용하는 출구인데 빛이 있으니 위에서 내가 찍은 사진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 마치 항공사진을 보는 것과 같다. 샤모니 시내 전체가 눈에 들어 온다. 지난 닷새의 트레킹 중 네번의 트레킹 코스가 대략 눈으로 들어온다. 왼쪽 첨봉이 브레방이고 그 뒷편으로 해서 오른쪽 중간쯤의 지그재그로 된 길로 하산해서 원점회귀했고 그 건너편 왼쪽엔 살짝 보일듯 말듯 로쉬 피즈 트레킹 코스와 오른쪽 고봉쪽의 락블랑을 트레킹 코스, 맨 오른쪽 귀퉁이로 보이는 쪽 발므 트레킹 코스가 조망된다. 정말 귀한 사진 한장이다.

 

  ▼ 오른쪽 몽블랑 정상은 정말 깨끗하고 근접해 보이는 모습으로 눈 사태가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다.

 

 ▼ 그랑드 조라스 산군의 멋진 풍경이 이탈리아까지 이어진다. 그 아래로 등반을 하는 전문 산악인들의 이동하는 모습이 잘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그 이튿날 락블랑을 트레킹하면서 들려 온 소식으로는 몽블랑을 오르다 실종이 된 한국 여성 산악인 있다는 얘기였는데 그 후에 발견이 되어 병원에 후송됐지만 발가락 몇 개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소식이었다. 이곳이 과연 겨울인지, 여름인지... 말 그대로 만년설이다.    

 ▼ 에귀뒤 미디 전망대에서 다시 케이블카를 갈아 타야 하는 쁘랑드레귀(Plan de l'aiguille 2,233m)이다. 그 옆에는 산장인데 커피등을 마실 수 있는 휴게 장소이다. 케이블카 안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 이제 현실로 돌아왔다.  출국날에 찍은 풍경을 잠시 게재해 봤지만 오늘의 현실은 이러하니 어찌하랴! 내려 오는 케이블카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기로 한다.

 

 ▼ 쁘랑드레귀 산장... 케이블카에서 내려 이곳 산장에서 잠시 휴식을 하며 커피 한잔하며 몽블랑 주변산의 지명이 나오는 그림엽서를 두장 샀다.

 

                          ▼ 유명산의 거리를 표시해 놓은 표지목...

                          킬리만자로까지의 거리가  6,217km라네. 에구~ 

 

    ▼ 여기서 부터 본격적인 그랑 발콩 노르(Grand Blalcon Nord) 트레킹이 시작된다. 잔뜩 흐려 있어 어두워 보인다.

 

 

  ▼ 아내와 함께 한 트레킹...일행들과 포스팅을 한 것이 과연 몇 컷이나 될까...RAW와 JPG로 동시에 담아 왔으니 6일간 수천 컷은 되는 것 같다. 사진 정리하고 개인들에게 송부해 주며 카페에 올려주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리고 내가 훗날 추억으로 들춰볼 이 블로그 작성하기도 만만치가 않다.

어쨋든 남는게 사진이라고 이렇게 간추려서 후기를 작성해 보니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계속 그곳에 머물고 있는 듯 하여 즐거운 시간이기도 하다.

 

 

 ▼ 지금까지 나흘간은 저 건너편에서 이쪽을 바라보며 트레킹을 한 것이고 두번은 이쪽에서 반대편을 바라보며 트레킹을 한 셈이다.

 

 ▼ 구름층은 여전히 산등성이를 벗어날 줄 모른다. 그러면 그런대로 멋진 풍경이다.

 

 ▼ 브레방에서 자세히 지명을 살펴 본 첨봉들이다. 구름에 가려지고 너무 근접하여 어떤 첨봉인지 이름은 알 수가 없으나 트레킹 내내 보여지는 풍경이다.

 

 ▼ 암벽을 좀 했다는 옆지기가 아무데나 올라 포즈를 취하니 촬영하는 나까지 어느새 통째로 담기고... 

 

 ▼ 물끄러미 구경만 하는 일행들 모습도 재미있다. 

 

 ▼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걷히는 구름층...

 

  ▼ 뒤돌아 본 풍경

 

  ▼ 구들장과 같은 돌을 깔아 놓은 등로...

 

 ▼ 그 아래로 펼쳐진 샤모니 시내 풍경

 

 ▼ 이곳이 시그날 포비아(돌탑언덕  Signal Forbea 2,204m)란 곳이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그 언젠가 산 하나가 무너져 내려 이와 같은 돌산이 되었다는데...

 

 ▼ 돌이 징글맞게 많다.

 

 

 ▼ 누가 세워 놓은 돌탑들일까...국내 같았으면 탑 쌓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으니 이 산 전체가 탑으로 이뤄졌을 것이란 생각이다.

 

 ▼ 메르드 그라스 빙하 건너편의 산을 바라보는 곳 바위 한쪽 면에 이러한 한국 산악인의 추모비가 붙어져 있다. 빙하 안쪽 끝으로 구름에 가려서 보이질 않지만 그랑드 조라스(Grandes jorasses 4,306m)북벽이 위치해 있는데 그곳을 오르다 변을 당한 것 같다. 공교롭게도 10년전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엄청난 규모의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빙하...  

‘얼음 바다’라는 뜻의 메르 드 글라스는 길이가 7km, 폭이 1~2km인 거대한 계곡에 평균 두께 322m로 쌓인 얼음이 흐르는 곳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큰 빙하이다. 샤모니에서 빨간색 산악 열차를 이용해 몽탕베르에서 내리면 볼 수도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 빙하 왼쪽으로 레 드류(les Drus 3,754m) 첨봉이 자리잡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에귀디 그랑 샤모즈(Aiguille des Grands Charmoz 3,445m), 그 깊숙한 골짜기 끝으로 그랑드 조라스(Grandes jorasses 4,306m)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랑드 조라스 북벽은 스위스의 마터호른(Matterhorn 4,478m), 아이거(Eiger 3,970m)와 함께 알프스의 3대 북벽이라 할만큼 유명한 첨봉이다.

 

                           ▼ 마치 거대한 용이 움직이는 듯 하다. 1800년대의 역사에는 빙하가 마을까지 덮치는

                            사태가 자주 있었을 것이니 몽블랑 산군에서 눈사태와 더불어 감히 오를 수 없는 악마가

                            사는 산이라고 믿었던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 빙하가 녹아 이뤄진 폭포

 

 

 

 

 

 ▼ 다른 트레킹 코스에서 본 모습과는 전혀 달리 보이는 첨봉인 레 드류(les Drus 3,754m)가 송곳과 같은 모습으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 안개에 가려서 안보이는 에귀디 그랑 샤모즈(Aiguille des Grands Charmoz 3,445m) 첨봉 아래의 암봉들...

 

 ▼ 몽땅 베르의 열차를 제 시간에 타야하기 때문에 30분 밖에 남지 않았다고 얼음동굴 체험을 빨리 하고 이곳으로 집합해야 한다는 가이드 말에 따라 400여 계단 아래로 쏜살같이 내려간다.

 

 ▼ 이곳에 빙하 전망대가 생기기 전인 1820년대 때만 해도 빙하가 전망대 부근인 산 초목 밑의 까진 부분까지 차 있을때 인데 많은 세월동안 이제는 빙하가 녹아 저 아랫 부분까지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겉으로 봐선 흙으로 보이지만 밑에는 전부 얼음이기 때문에 얼만큼의 규모인지 가늠을 할 수 없다.

 

 

 

 ▼ 얼음 빛깔이 깊은 물속을 들여다 보듯 약간의 녹색을 띠고 있다. 이리 저리 터널을 만들어 놓고 얼음궁전을 만들어져 있어 기념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다. 한여름 피서로는 이곳 만한 곳도 없으니 시원함은 말할나위가 없다.

 

 

 

 

 

  ▼ 빙하가 녹으면서 이러한 자연적인 얼음동굴이 곳곳에 생겨난다.

 

 

 ▼ 30여분만에 허겁지겁 올라와서 보니 수정이 진열된 동굴로 된 크리스탈 박물관이 있다고 하길래 잽싸게 그곳까지 관람하기로 한다.

 

 ▼ 이곳 지역에서 발견된 수정도 있고 다른 나라의 수정도 있지만 쟈크 발마가 이런 수정채집가라고 하니 몽블랑 초등자로서 오른 것은 소쇠르가 초등자에게 현재 돈으로 20억원 주겠다는 상금보다 오히려 이러한 수정이 많이 있을 것이란 기대로 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 아늑한 분위기에서 커피 한잔을 기울이며 거대한 빙하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 몽땅 베르에서 열차로 20여분 이동하여 샤모니에 도착, 원하는 사람에 한해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시내에 있는 산악인 공동묘지로 향한다.

 

  ▼ 산악인 공동묘지 정문

 

 ▼  이 산악인 공동묘지는 1913년 조성된 이래 이 지역출신과 몽블랑을 등반하다 사고를 당한 2,300여 기의 무덤이 있는데 마터호른 초등자인 에드워드 윔퍼(Edward Whymper)와 가스통 레뷰파(Gaston Rebuffat), 리오넬 테레이(Lionnel Terray), 루이 나슈날(Louis Lachenal) 같은 알피니즘의 역사와 함께 한 전설적인 등산가와 이름 모를 수많은 알피니스트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 이곳에 유일하게 묻힌 한국의 알피니스트인 故 유재원 씨의 묘지를 찾아 추모하고  그에 대해 가이드가 자세히 설명해 준다. 1977년 7월 28일 에귀누와 프트레이 북벽을 등반하고 하산도중 눈사태로 조난사를 당했다. 그 당시 나이 30세였다.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는 순간 모두 숙연해지며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유재원은 1962년 경동고등학교 산악부에 가입하며 산악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1970년 경동고 동문산악회 회장을 지냈으며 같은 해 한국산악회에 가입했다. 이후 한국등반기술연구회(KCC) 간사와 한국산악회 편집문헌위원으로 활동하던 유재원은 알프스로 떠났다. 당시 넉넉지 못한 자금으로 떠난 그들은 교육이 끝난 뒤 코앞의 봉우리조차 오를 수 없는 형편이었다.

1972년 한국산악회 회보에 실린 김인섭 대장의 보고서에는 '오늘도 기다리는 생활비는 오지 않았다. 예산이 없어 맑은 하늘에 깨끗하게만 보이는 샤모니 침봉을 쳐다보기만 하는 우리들 신세가 안타깝기만 하다'며 당시 절박했던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독일 대사관까지 찾아가는 등 갖가지 노력을 했지만 결국 그들은 한꺼번에 귀국할 수 없는 상황임을 깨달았다. 먼저 김인섭 대장이 귀국하고 남은 세 명의 대원은 파리에서 귀국할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농장이나 공장 등지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곧 김항원 대원도 귀국했으나 유재원과 차양재는 돌아오지 않았다.

국내에서부터 유재원과 가까웠던 손경석(한국산악회)씨는 그를 두고 '진정한 산악인'이라고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여자도 모르고 오로지 산과 기타밖에 모르던 순박한 사람”이라고 유재원을 기억했다. 손씨는 '1975년 한국산악회에서 안나푸르나원정대를 꾸릴 당시 그를 초청했는데 '나는 어려움과 싸우며 올라가겠습니다. 히말라야도 좋고 산의 높이도 좋지만 샤모니의 침봉을 눈앞에 두고 갈 수 없습니다. 그 침봉을 하나하나 다 오를 때까지 돌아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다며 이미 그 시대에 등로주의를 추구했던 산악인이라고 말했다.

또 '1974년 여름 UIAA 총회 참석 후 들른 샤모니에서 유재원을 만났을 때 띠띠 할아버지의 산장에서 지내던 그의 방에는 벽면 가득히 커다란 태극기가 걸려 있었고 등산 장비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며 '샤를레 모제에서 일할 때도 자기가 만든 장비에는 꼭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을 만큼 자존심이 강했던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유재원은 단순히 행위에 그치는 산악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등반을 꼼꼼히 기록하고 미술학도로서의 재능을 살려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의 경동고등학교산악부 후배인 조성대씨는 '사고 이후 2주기를 맞아 추모 사진전을 열 때 그가 남긴 사진만 해도 수백여 장에 달했다”며 '본인이 돌아오면 영국의 <마운틴> 같은 등산잡지를 만들고 싶어 했다”고 증언했다. 조씨는 그가 남긴 산행노트를 정리해 등산잡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사진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대부분 유실됐다.

6개월짜리 단수여권 기한이 지나면서 유재원은 무국적자가 되었다. 이는 냉전시대를 살며 그 시대의 젊은이가 온 몸으로 견뎌야만 했던 현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국에서의 어려운 생활 가운데서도 등반에 대한 열정만큼은 식을 줄 모르고 뜨거웠다. 1973년 수기에는 '파리에서의 나의 생활은 상당히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다음 시즌의 알프스 등반을 위하여 몸을 굳혀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파리 근교에서 계속 클라이밍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고 나와 있다.

그해 2월 프랑스산악회(C.A.F)에 등록해 정식회원이 된 그는 클라이밍 강사인 크리스티앙 본네와 함께 매주 일요일마다 퐁텐블루 주위에 흩어져 있는 암장들을 돌아다녔다. 이때 유재원은 '이러한 벽들은 평야지대의 낮은 단애에 불과한 것이어서 나에게는 언제나 알프스에 가야만 한다는 충동이 일고 있었다'며 알프스행을 갈망했다.

여름이 되자 샤모니로 달려간 유재원은 훈련대 교육 당시 몽블랑 노멀 코스를 오른 것 외에는 알프스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었고, 차양재가 파리에 남아있어 같이 등반할 파트너도 없었다. 하지만 '나의 알프스 등반이 이렇게 두려움 속에서 시작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소한 부딪쳐 보지도 않고 포기한다는 것은 나의 주의에 알맞은 것이 아니다'라며 등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엄청나게 드는 생활비와 등반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나날을 일터에서 노동을 해야 하고 휴일이면 일에 지친 몸으로 산을 오르는 일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는 유재원은 낯선 타지에서 생활이 힘겨웠다고 전해진다. 손경석씨는 '재원이가 눈물로 밤을 새우며 내게 힘들게 지낸 생활에 대해 들려줬다”며 '부유한 집안의 4대독자이던 그가 접시닦이를 비롯해 푸줏간에서 일하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유재원의 삶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이후 유재원은 1974년 띠띠 할아버지와 당시 샤모니 시장의 도움으로 거주 증명과 노동증명을 받아 등반장비업체인 샤를레 모제에 취직할 수 있었다. 하루 8시간 꼬박 노동을 해야 하는 생활 속에서도 그는 그랑샤르모 북벽, 당 뒤 제앙 남벽 등을 단독 등반하는 등 눈부신 등반활동을 펼쳤다.

이 무렵 프랑스국립스키등산학교의 초청으로 1년여 간 샤모니로 유학을 떠났던 문남길씨는 '산 얘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등산 욕심이 유난하던 사람”으로 유재원을 떠올렸다. 또 '내가 알프스에 도착하자마자 마땅한 파트너가 없었기 때문인지 바위부터 하자고 끌고 가 밤낮 바위만 하러 다녔다”고 말했다.

유난히 단독등반 기록이 많았던 유재원은 76년 드류 북벽 등반기에서도 '이렇게 멋있는 등반을 우정을 나눌 수 있는 한국인끼리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이국땅에서 홀로 떨어져 외로운 마음을 비추기도 했다.

유재원은 75년 몽블랑 뒤 따귈 등반기에 '나는 언젠가는 등반을 하다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자신의 등반활동을 일컬어 '죽음의 국경 앞에서 비자를 내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언제나 죽음을 각오한 듯 샤모니의 침봉을 오르던 그는 로제 듀프라의 시 '만일 내가 어느 날 산에서 죽거든'을 기타 가락에 맞춰 자신의 삶과 같은 노래를 즐겼다.

결국 그가 말한 죽음 앞의 비자는 77년 7월로 기한이 만료됐다. 에귀 노아르 드 프트리에서 조난사하기 직전 한국에 보내온 편지에 '돌아오는 겨울에는 프랑스 국적을 얻을 자격인 5년을 경과하게 되므로 앞으로는 생활이 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등반 플랜 중에는 알프스 최난 루트의 초등반을 할 계획이 들어 있으며 8월에 아이거 북벽 등반 등이 끼어 있습니다'라고 밝힌 뒤였다.

조성대씨는 '한덕정(동국대산악부OB)씨와 마지막으로 오간 편지에 의하면 한씨가 미술디자인을 더 공부하라는 권유를 하자 뉴욕에 가서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며 '장례를 치른 이후에 노동 허가서와 영주권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마 미국으로 갈 생각이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모셔온 글]

 

  

                                                     그 어느 날/ 로제 듀프라(Roger Duplat)

 

                                                  그 어느 날 내가 산에서 죽게 된다면

                                                  오랜 나의 산 친구여 전하여 주게.

                                                  어머니에게 내가 행복하게 죽어 갔다고.

                                                  내 마음은 언제나 어머니의 곁에 있었기에 아무 고통도 없었다고.

                                                  아버지에게 전하여주게. 나는 어엿한 사나이였다고

                                                  아우에게 전하여주게 이제 바통을 넘긴다고.

                                                  다정한 아내에게 전하여주게.

                                                  내가 당신 없이 산에서 살아왔듯이

                                                  내가 없어도 꿋꿋하게 살아달라고

                                                  자식들에게는 내가 오르던 고향의 바위산에서

                                                  언젠가는 나의 손톱자국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그리고 나의 친구 그대에게 부탁이 있네.

                                                  내 피켈을 거두어주게.

                                                  이 피켈이 치욕스럽게 썩는 걸 바라지 않나니

                                                  어느 날 전망 좋은 비탈에 가지고 가서

                                                  오직 그 피켈만을 위한 조그만 케른을 쌓고

                                                  그 위에 피켈을 꽂아주게.

                                                  빙하를 비추는 아침 햇살에 빛나고

                                                  능선 위에 붉은 석양을 받아 나의 귀여운 피켈이 되쏘아 비칠 수 있도록.

                                                  나의 친구 그대에게 전할 선물.

                                                  나의 해머를 받아주게.

                                                  그리고 화강암에 피톤을 박아줄 것을.

                                                  그것은 몸서리 칠 만큼 나의 육체를 흔들 것이니

                                                  암벽이나 능선에 한껏 그 소리가 울리게 하여주게.

                                                  아아, 친구여 나는 그대와 함께 항상 있나니

 

                       *피켈(pickel) : 나무 자루에 쇠로 만든 ‘T’ 자 모양의 날이 달려 있는 등산 용구로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경사진 곳을 오를 때에 사용한다.

 

                         1951년 난다데비(Nanda Devi 7,817m)를 등반하다가 실종된 프랑스인 로제 듀프라는

                          " 피켈에게 내 뜻을 이루게 해달라" 라는 유작시를 남겼다.

                          오늘날 " 그 어느 날 " 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 샤모니 몽블랑 중앙역의 모습

 

 ▼ 잠시 샤모니 시내를 둘러보며 여성회원들은 마지막 쇼핑을 한다고 하여 먼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숙소로 향한다. 오늘 저녁식사는 스테이크를 샤브샤브로 먹는 특이한 식사자리다.

 

 ▼ 저녁식사 후 밖을 나와보니 흐렸던 날씨는 맑게 개이고 저녁 햇살이 몽블랑 산군에 드리웠다. 재빨리 카메라를 휴대하고 기회만 엿봤던 가이앙 호수(Lacs des Gaillands)로 달려간다.

 

 ▼ 잔잔한 호수가 지난번 아침에 봤던 명경지수 그대로다. 세계적인 사진 작가들도 찾는다는 호수인데 호수에 비친 몽블랑 산군의 반영을 이모저모로 담아 봤다.

 

 

 

  ▼ 마침 지나가는 빨간 열차...

 

  ▼ 귀국하는 날, 어제의 흐린 날이 너무 날씨가 좋아 출발 전에 다시 한번 담아 본 몽블랑과 주변의 산군 

 

  ▼ 스위스 제네바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밖을 내다 본 풍경...보는 풍경 하나 하나가 그림 같다.

 

 

 

     ▼ 제네바 공항 게이트 앞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이렇게 하여 6일간의 트레킹을 마쳤다. 7박 9일간의 여정이었다. 출발전 미리 준비한다고는 했지만 시간이 다 되어서야 허둥대고 막상 가서 보니 쓸데없는 물건도 많이 휴대했다. 입금한 여행비 외에 생각보다 많은 불필요한 비용이 지출됐다.

지금까지 국내의 많은 곳을 다녀 봤으나 장기간 해외여행을 다녀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 또 기회가 닿는다면 좀 더 간편하게 필요한 물건만 잘 챙겨가는 준비가 필요하겠고 과욕으로 쓸데없는 비용은 들이지 않도록 해야겠다.

이번 트레킹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또 배웠다. 자연은 나의 스승과도 같다. 때론 의사와도 같다. 자연앞에서 남은 인생에 배울 것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프랑스 계몽 사상가 루소는 " 자연으로 돌아가라" 고 했다.

물론, 나무나 숲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연이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는 너무도 크다. 언제 또 기회가 주어질런지 모른다. 다시 한번 대자연 앞에 나를 세우고 싶다. 지금까지 함께 한  몽블랑이여~ 아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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