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4일(토)~5일(일)
눈꽃, 상고대를 제대로 보지 못한 올 겨울산행은 한라산에서는 반드시 보고 오리라는 기대를 안고 한달전 부터 항공권 예매를 하고 기다려왔다.
사실 2015년 1월 14일에 성판악~관음사 코스로 백록담은 올랐었고 어리목~윗세오름~영실코스도 2013년 1월 25일 회사 직원들과 오르다 직원 한분이 더 이상 오르지 못해 포기하고 1/4지점인 사제비동산에서 다시 하산했던 사례가 있다. 이번 산행은 두개의 코스를 이틀에 나눠 한꺼번에 오르는 길이기에 완주하지 못한 코스도 밟아보고 특히 파란 하늘에 흰눈이 대비된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볼까 큰 기대를 하고 나선 길이다.
그러나 일주일 전부터 일기예보는 비가 온다는 소식이어서 과거 두번에 걸쳐 걸었던 날씨와 같거나 더 안 좋을 것이란 생각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구라청의 예보였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제주에 도착한 날씨는 놀랍게도 구라청이 아닌 기상청의 예보였다. 거기다 안개까지 자욱이 끼어 조망은 말할 것도 없고 쌓여 있어야 할 눈이 없으니 너무 의아했다. 버스운전기사의 얘기를 들어보니 올 겨울 처럼 눈이 오지 않은 해도 없었다는 것...
이틀간을 안개비와 싸우면서 혹은 바람과 맞서면서 오직 앞사람만 보며 걸었다. 첫날 저녁 흑돼지 삼겹살과 제주동문시장에서 떠온 횟거리를 먹은 즐거움이 더욱 추억거리로 남은 산행이었다. 징크스란 표현을 이러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섬산행은 한번도 날씨가 좋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먼거리의 통영시 사량도는 세번을 갔었으나 정말 모두 좋은 날씨였다. 제주도 한라산 산행만큼은 세번을 눈비 맞으며 산행을 하게 됐으니 다 사람 마음먹은 대로 되질 않는다. 요즘은 당일치기로도 얼마든지 한라산 산행은 가능하다. 다음 기회가 있다면 또 도전해 보기로 한다.
∥산행정보∥
♣ 2월 4일
-코스: 영실탐방지원센터-영실휴게소-윗세오름-만세동산-사제비동산-어리목탐방지원센터
-거리: 약10km (출발: 10:45, 도착: 15:00)
♣ 2월 5일
-코스: 성판악탐방지원센터-속밭대피소-진달래대피소-백록담-삼각봉대피소-관음사
-거리: 약16.5km(출발: 06:34, 도착: 14:00)
▼ 2월 4일 첫날 들머리인 영실탐방지원센터로 부터 산행은 시작된다. 반대편 날머리인 어리목탐방지원센터로 부터 이곳으로 코스를 이용하는 등산객도 많다. 어느 방향으로 들머리를 잡는 것이 더 좋은지는 판단이 서질 않는다. 5월말 철쭉산행을 계획하고 있으니 그때 대략 알 수 있을 것 같다.
▼ 눈이 쌓여 아이젠을 해야만 할 것이란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고 오늘이 입춘이란 사실로 날씨가 포근해서 다 녹아 내린 줄만 알았다.
▼ 가랑비에 옷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안개비에도 옷은 젖기에 모두 우의를 착용했다. 그래도 호젓한 길을 오르니 쉬는 날 집안에 틀어 박혀 나뒹구는 것 보다는 훨 낫다는 생각에 기분은 좋다.
▼ 고도가 높아질 수록 안개는 더욱 짙어진다. 카메라도 습기에 젖어 작동이 멈출 수 있다는 우려에 제대로 꺼내 쓸 수가 없다.
▼ 남의 카메라에 의존해 한 컷 담아 봤다.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왠만한 100명산 정상의 높이다.
▼ 한라산은 지피(地皮)식물로 봐도 좋을 듯이 전체가 제주조릿대로 덮혀있다. 한국의 특산종이고 상록활엽관목으로 잎색은 녹색인데 겨울철에는 잎가가 말라서 흰색의 테무늬처럼 보인다. 멋진 모습 뒤에는 다른 식물은 자랄 수 없는 자연생태계의 문제점도 있으리란 생각이 먼저 든다.
▼ 어디쯤 왔을까... 병풍바위도 어디쯤에서 보일텐데 알 수가 없다. 바람이 몹시 불어 우의로 바람막이를 해 보지만 땀이 배출되지 않아 이래 저래 옷이 젖기는 마찬가지다.
▼ 이러한 풍경들에 눈꽃으로 덮혀있거나 상고대가 형성되었다면 얼마나 멋진 풍경일까 상상해 본다. 애들 주먹만한 눈이 간간히 머리에 내려 앉는다.
▼ 드디어 오늘 코스의 최정상인 윗세오름에 올랐다. 바람이 몹시 불어 이곳에서 점심 먹기도 버겁다.
▼ 하산하던 중 만세동산 부근일까, 전망대로 보이는 데크에서 카메라를 꺼내 몇 컷 담아봤다. 흰눈으로 덮혔을 대지를 상상해 본다. 정말 멋진 풍경이 그려졌을 것이다.
▼ 2013년 1월 25일 어리목에서 출발하여 사제비동산인 이곳까지 왔다가 다시 하산했던 곳이 기억난다.
▼ 저녁은 제주 특산물인 흑돼지 삼겹살 맛이 역시 일반 돼지고기와 다르다. 도톰하게 썰어 노릇 노릇 구어낸 삼겹살은 고소하고 감칠맛이 난다.
▼ 제주 재래전통시장은 깔끔하고 규모도 제법 크다. 한바퀴 돌아보고 숙소에서 먹을 횟거리를 떠서 술 한잔으로 무료한 밤을 보낸다.
▼ 2월 5일(일요일)
이튿날 헤드랜턴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로 캄캄한 06:34분 새벽에 성판악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 정확히 1시간쯤 속밭대피소에 도착하니 날이 좀 밝았는데 그곳에서 2시간 30분을 더 걸어 진달래 대피소까지 도착했다. 안개는 여전히 걷힐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 09:43분 진달래 대피소에서 30분쯤 오르자 안개가 많이 걷힌 듯 하다.
이대로라면 백록담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 한라산의 구상나무가 많이 고사했다. 기후탓인지 모른다. 고사한 구상나무 역시 안개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해 준다.
▼ 상고대가 피었다면 정말 멋진 풍경들이었으리라.
▼ 정상에 가까우면서 때론 구름사이로 해도 나긴 했지만 안개는 점점 더 짙어지고 걷히긴 글렀다.
▼ 10:50 정상에 도착했다. 들머리에서 이곳까지 4시간이 좀 더 걸렸다. 정상의 바람은 걷기가 불편할 정도로 세고 영하의 기온에 안개는 물체에 부딪치면 바로 상고대로 변해 카메라 렌즈가 바로 얼어 붙어 촬영하기가 만만치 않다.
2년전 왔을때는 눈이 정상석 2/3까지 차 올랐는데 바닥의 데크까지 깨끗하니 겨울산행에 1,950m까지 올라왔나 의구심이 갈 정도다.
▼ 정상에서의 매서운 바람에 상고대는 순간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주변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 젖어 든 몸에 순간적인 영하의 강추위에 몸도 움추러 든다. 그래도 주변 풍경이 좋으니 눈이 즐거워진다.
▼ 이쯤 되니 마치 굶주린 늑대처럼 그동안 제대로 담지 못한 카메라를 꺼내들어 수없이 셔터를 눌러댄다.
▼ 용진각 현수교
▼ 삼각봉대피소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후 본격적으로 하산하는데 오르막이 없으니 속도가 빠를 수 밖에 없다.
▼ 개미등이 가까워 온 지점에 내 눈에 띤 안내간판이 들어온다. 읽어보니 그동안 또렷이 기억하고 있던 한가지 사건의 궁금증이 풀렸다. 과거 군시절 대통령 경호를 위해 특전사령부 예하 정예 1개부대가 제주로 가다가 한라산에 추락한 사건인데 그 장소가 어디쯤일까 궁금했고 2년전 이 등로를 지나갔지만 그냥 스쳐 지났기에 몰랐다가 이번에 자세히 안내문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이다.
▼ 그곳으로 달려갔더니 초라하게 세워진 충혼비가 세워져 있고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는 가운데 누군가가 모자를 한개 걸어놨다. 참배를 하고 나서 글을 읽어보니 바로 내가 근무했던 부대에서 쓴 묘비가 세워져 있어 가슴이 더 뭉클했다.
하늘과 땅과 바다를 누비며 오직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한 그들이다. 군 본연의 임무수행 한번 제대로 못하고 군이 경호에 나섰다가 참변을 당했으니 현시대에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이 사고 이후 4개월만인 6월1일 공수훈련 첫 강하하기 위해 이륙했던 수송기가 청계산에 추락하여 순직한 인원이 공교롭게 53명으로 같았다. 작년 1월 청계산에 올랐다가 충혼비에 참배했는데 일년 뒤 한라산에서 이렇게 또 참배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때 유가족들의 슬퍼하던 모습이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다.
▼ 이틀 연속에 걸친 이번 한라산 산행을 마쳤다. 기대했던 눈꽃, 상고대 산행은 아니었지만 영실~어리목코스를 밟아 본 의미가 있고 그 분위기를 읽어 볼 수 있었다. 또한 먼저간 특전용사들의 충혼비를 발견하고 참배할 수 있어서 의미가 더 깊은 산행이었다.
이젠 철쭉 산행을 한번 해 보려고 실천에 옮겨 본다. 눈꽃이 아닌 야생화와 어우러진 철쭉을 담아보기 위함이다. 그날만은 화창한 날씨에 화려하게 장식된 꽃들을 맘껏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오늘의 아쉬움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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