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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경기도

[남양주]수락산 산행

2015년 6월 6일(토)

 

수락산...

한번 가보겠노라고 수도 없이 생각만했었을 뿐, 아직 가보지 못했던 곳...

불암산 밑에서 한 때는 군생활도 했었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으면서도 지금껏 오르지 못했던 산이다.

모든 것은 사람 마음 먹기에 달린 것, 근교산행을 틈만 나면 해보자고 결심하니 못가볼 곳이 없다.

이번 산행은 모두가 흔히 산행하는 코스가 아닌 청학리에서 내원암 방향에서 향로봉의 슬랩을 타고 오르는 코스를 택했다.

홀로 쉬엄 쉬엄, 풍경사진이나 찍으면서 자연과 벗하며 하루를 보내니 저절로 힐링이 된다.

수락산도 역시 멋있고 지루하지 않은 산이다. 계절이 바뀌면 다른 코스로 올라볼 생각이다.

 

♣ 행정구역: 들머리, 날머리-경기도 남양주시 순화궁로 945번길( 별내면 청학리)

♣ 코스: 수락산 유원지(청학리)-마당바위-옥류폭포-금류폭포-내원암-소리바위(사과바위)-향로봉-영락대-칠성대-기차바위-수락산정상(637m) -철모바위-코끼리바위-하강바위-치마바위-도솔봉-탱크바위-치마바위능선-청학리 원점회귀

♣ 거리: 9.5km(출발:07:30, 도착:16:20 거북이 걸음)

 

                          ▼ 수락산 정상석

  ▼ 등산로는 왼쪽으로 한참 들어가서 주차하고 산행해도 되는데 나는 초행이라 잘 몰라서 오른쪽에 바로 주차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 길을 따라 직진...   

   ▼ 500m쯤 올라가니 식당들이 즐비하고...   

    ▼ 곧 마당바위가 눈에 띈다.  

 ▼ 올라서 보니 넓은바닥의 공간이 나무 그늘만 있다면 누워자기 안성 맞춤이다.

 

   ▼ 주변에 어지럽게 걸려져있는 현수막, 골짜기를 뒤덮은 얼기설기 엮여진 가림막 천, 도대체 청학계곡이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등산로는 계곡 반대편으로 가야하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서성이게 된다. 아무곳이든 통로가 있으면 왼편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 평상이 계곡을 뒤덮고 있는 식당들을 비집고 계곡을 건너니 이와 같이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등산로가 있다.          마당바위를 보지않을 거라면 최초에 왼편으로 접어들었어야 했다.   

  ▼ 1킬로쯤 왔을까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향로봉 암릉이다. 그런데 나무가 갈색빛을 띠고 있는것이 아무래도 산불이 났었던 모양이다.    

  ▼ 경차가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는 오솔길로 접어들자 계곡을 넘는과 동시 계단이 나타나면서 본격적인 오르막의 산행이 시작된다. 그런데 분명 이쯤에서 은류폭포가 있어야 하는데 보이질 않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계곡을 건너기 전 방향을 틀어 왼편으로 좀 올라갔어야 했다. 옥류폭포도 어딘지 모른채 오르다 보면 있겠지 했는데 아직 보질 못했고 이 역시 나중에 알고보니 올라오면서 주변 음식점들에 가려서 보질 못했던 것이고 옥류폭포가 개인 음식점들에 의해 점령당해 있는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하긴 바짝 가문 계곡은 물 한방울 보이질 않는데 폭포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어 그냥 통과하기로 한 것이다.  

  ▼ 내원암을 경유, 수락산 정상을 가는 길이다. 돌을 잘 다듬어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 이색적이다.    

  ▼ 물 소리가 제법 나야 할 계곡은 말라 붙어 물기 하나 없다.     

수락산과 김시습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참에 알아보자!!

       

O 김시습은 어릴때부터 천재였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은 아홉번이나 과거시험에 장원을 차지했을 정도로 천재(天才)였다고 한다. 시습(時習)은 세상에 나온 지 불과 8개월 만에 스스로 글을 알았다. 최치운(崔致雲)이 이를 보고서 기이하게 여겨 이름을 ‘시습(時習)’이라고 지어 주었다. 시습은 말은 더디었으나 정신은 놀라워서 글을 보면 입으로 읽지는 못했지만 뜻은 모두 알았다.”'시습(時習)’은 유학의 최고 경전인 『논어(論語)』의 첫 구절인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에서 취한 이름이다. 김시습의 타고난 자질을 보고 유학을 크게 빛낼 대학자가 될 것임을 예견하고 붙여준 이름이다. 김시습은 세 살 때 시를 짓고, 다섯 살 때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통달하는 등 보통의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천재적 자질과 행적을 숱하게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신동(神童)이라고 극찬했다. 당시 이름 높은 명사(名士)들이 앞 다투어 이 어린 천재를 보기 위해 찾아왔고, 급기야 세종대왕(世宗大王)의 귀에까지 김시습의 명성이 전해졌다.

 

학문 잘 하는 사람을 누구보다 아끼고 귀하게 여겼던 세종대왕은 김시습을 승정원으로 불러 시(詩)로 시험해 보았다. 그런데 김시습의 시는 빨리 지으면서도 아름다웠다. 김시습의 재주에 탄복한 세종대왕은 크게 칭찬하면서 훗날 나라의 큰 재목으로 크게 쓰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리고 김시습에게 비단을 하사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내가 친히 보고 싶지만 세상의 풍속과 이목을 놀라게 할까 염려된다. 마땅히 그 집안에 권하여 재능을 감추어 드러내지 말고 잘 가르치고 기르게 하라. 그의 학업이 성취되기를 기다렸다가 장차 크게 쓸 것이다.” [『율곡전서』김시습전(金時習傳)]

 

세종대왕의 진심어린 충고에도 대궐을 다녀온 이후 김시습의 명성(名聲)은 이미 온 나라에 퍼져 ‘오세(五歲)’라는 별명이 생겨날 정도였다. 김시습의 이름은 몰라도 ‘오세(五歲)’하면 누구나 “아! 그 천재 아이” 하고 알아들었다. 어쨌든 임금의 칭찬과 훗날에 대한 약속까지 들은 김시습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자신의 재주를 펼칠 원대한 뜻을 품고 학업에 힘썼다고 한다.


김시습이 스물한 살 때 발생한 한 ‘사건’이 천재의 운명을 ‘광인(狂人)의 삶’으로 바꾸어버렸다. 그 사건이란 다름 아닌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옥좌에 오른 ‘왕위 찬탈 사건’이었다. 당시 삼각산(三角山:북한산)에서 글을 읽다가 이 소식을 들은 김시습은 즉시 방문을 닫아걸고 사흘 동안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크게 울부짖고 통곡한 다음 읽고 쓰던 서책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리고 광기(狂氣)를 일으켜 뒷간에 빠졌다가 도망 나와 곧바로 방랑길에 올랐다. 천재 김시습의 운명을 ‘광인(狂人)의 삶’으로 바꾸어버린 ‘왕위 찬탈 사건’의 주인공인 세조의 어진. 권력을 빼앗기 위해 자신의 친조카까지 죽인 것도 모자라 나라의 동량과 인재들이 모인 집현전의 학자들까지 몰살한 수양대군(세조)과 그 수하들의 패악(悖惡)에 분개하고 불의(不義)한 권력에 침묵하는 세상에 분노한 김시습은 스스로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침내 육신(肉身)에 구애받지 않고 평생 세속 밖을 떠돌아 다녔는데, 우리나라 산천(山川)치고 그의 발자취가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가슴 가득 쌓인 울분을 풀어내기 위해 글로 나타내고 드러낸 세상 만물 중에서도 김시습이 특별히 좋아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매화(梅)’와 ‘달(月)’이다.김시습은 이 두 가지 사물을 취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매월당(梅月堂)’을 자신의 호(號)로 삼았다. 그가 이 호를 사용한 때는 경주 금오산(金鰲山)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정한 31세(1465년. 세조 11년) 무렵으로 짐작된다.  

 

O 수락산과 매월당의 인연 

전국을 떠돌던 김시습은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1471년(성종2년) 37세에 서울로 올라와 이듬해 수락산 동봉(東峰)에 폭천정사를 짓고 10여년을 생활하였다 하나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 확인할 수는 없다. '간폭정기'라는 고서에 수락산 옥류동에 있는 옥류폭포 앞에 간폭정을 지었는데, 그 위 5리쯤에 매월당 김시습이 옛 살던 터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곳이 지금의 수락산 내원암 인근으로 추정된다. 주요 저서는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 매월당집(梅月堂集),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등이 있다.  

 

그러나 김시습이 정말로 사랑했던 산은 수락산이었다. 이것은 그가 수락산 동쪽 봉우리인 만장봉(萬丈峰)을 애호(愛好)하여 ‘동봉(東峯)’이라 부르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호를 ‘동봉(東峯)’으로 한 사실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김시습은 처음 수락산에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운둔하기로 결심한 배경을 금오산에서 지낼 때 지은 시들을 모아 엮은 「유금오록(遊金鰲錄)」의 끝부분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금오산에 거처한 뒤로 멀리 유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차가운 기운 속에서 질병이 잇달아 발생했다.  

 

다만 바닷가에서 하는 일 없이 한가롭게 지내며 시골 장터에서 거리낌 없이 놀다가 매화를 찾고 대나무를 물어 항상 시를 읊조리고 취해 스스로 즐거웠다. 신묘년(辛卯年 : 1471년. 성종 2년) 봄에 서울에 와달라는 청을 따라 한양에 들어갔다가 임진년(壬辰年 : 1472년. 성종 3년) 가을에 도성(都城) 동쪽의 폭천정사(瀑泉亭舍)에 은둔해 터를 잡고 집을 지어 일생을 마칠 마음을 먹었다. 계사년(癸巳年 : 1473년. 성종 4년) 봄에 쓴다.” [『매월당집』, ‘유금오록(遊金鰲錄)] 

 

수락산은 한양 도성에서 동쪽으로 30리 쯤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산은 삼각산(三角山 : 북한산)과 도봉산(道峯山)과 정족(鼎足 : 솥발)의 형세를 이루고 있다. 비록 깎아지른 듯한 산세는 삼각산과 도봉산보다 못하지만 수석(水石)의 아취는 두 산보다 더 빼어나다. 수락산이라는 이름 또한 이 때문에 얻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김시습은 수락산 폭천(瀑泉) 부근에 폭천정사(瀑泉亭舍)라 이름붙인 거처를 짓고 직접 농사를 일구며 살았다. 그리고 이곳에 유가(儒家)와 불가(佛家) 그리고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 등 5000여권의 서책을 쌓아놓고 뒤적이며 지냈다.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따뜻한 햇볕 아래 누워 한가롭게 낮잠 자는 것을 즐겼다. 또한 김시습은 자신의 호로 삼았던 ‘동봉(東峯)’, 즉 수락산의 만장봉에 자신의 다른 호인 ‘매월당(梅月堂)’이라는 이름을 붙인 처소를 짓고 거처하였다.  

 

김시습이 세상을 떠나고 200년이 흐른 뒤에 수락산에 들어와 그의 유지(遺祉)를 찾아 복원하는데 힘을 쏟았던 서계(西溪) 박세당은 “수락산 동쪽에는 예전에 매월당(梅月堂)과 흥국사(興國寺), 은선암(隱仙庵) 등 몇 개의 절이 있었다. 매월당은 곧 김시습이 거처하던 곳이다. 그런데 세월이 오래되어 이미 없어져버렸다. 김시습은 ‘동봉(東峯)’이라고 자호(自號)하였을 정도로 이 산을 매우 사랑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20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후에도 후세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졌을 만큼 김시습의 ‘수락산 사랑’은 유별났던 것이다.그러나 수락산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김시습은 자신의 방랑벽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수락산에 거처한 지 10여 년이 흐른 1483년(49세) 홀연히 두타(頭陀 : 머리를 깎은 승려)의 행색을 하고 다시 관동(關東) 지방으로 떠났다.  

[ 출처] '매월당 김시습 : 조선선비의 자존심⑬'- 한정주 역사평론가

     

  ▼ 김시습의 폭천정사 터라고 하는 길가샘 쉼터. 

                            ▼ 금류폭포...

                           물이 흐르질 않아 폭포라는 말이 무색하다.

                          ▼ 내원암으로 오르는 돌계단...                   

 

    ▼ 돌계단을 다 오르니 금류폭포 상단이고 금류동천이라는 음각의 글씨가 보인다.  

 

    ▼ 금류폭포 상단에서 앞을 보니 왠 물체가 공중에 떠 있다. 알고 보니 내원암에 물품을 나르는 케이블카다.    

 ▼ 내원암...이곳에서 수락산 정상을 오르는 정코스는 1km도 채 안되지만 너무 밋밋한 산행이라 다시 왔던길로 돌아 내려가서 향로봉으로 향한다.

   ▼ 앞에 보이는 케이블카 중간 기착지점을 찾으면 될 듯 하다.    

   ▼ 향로봉을 오르기 위해서 내원암에서 약 400m정도 하산하다가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왼편으로 접어 든다.  사진 아랫쪽을 좀 더 내려오면 쇠파이프로 된 난간부근에서 왼쪽길이다. 이 사진은 뒤를 돌아보고 찍은 것이기에 오른쪽이 된다.        

    ▼ 조금 오르자 바로 슬랩이 나타나고...     

   ▼ 오르는데 별로 어렵지는 않지만 자칫 미끄러져 중심이라도  잃는다면 실오라기 하나 잡을 것도 없고 황천행일 수 밖에 없다.       

 

 ▼ 다시 오르니 이번에는 친절하게도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로프가 낡아서 2015년 10월이전에 교체한다는 현수막도 진입전 걸려있었다.        

   ▼ 로프가 아무리 낡았어도 끊어질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찜찜해서 잡는둥 마는 둥 거의 그냥 릿지하다 시피 오른다. 20m이상은 될 법하다.   

 

 

    ▼ 다소 경사가 있는 이런 슬랩을 오르고 나면...    

  ▼ 이번엔 30여m는 될 법한 슬랩이 또 앞을 가로막고 있다. 이 역시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서 오르는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 드디어 소리바위에 도착, 소리바위는 바람이 강하게 불면 바위 주변의 구멍이나 모양새에 스치고 통과하는 바람소리가 피리소리등 괴이한 소리를 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 먹다 남은 사과 같아서 사과바위라고도 한다네요. 헐~~

 

 

  ▼ 보기만 해도 아찔한 대슬랩인데 이곳을 맨몸 릿지산행을 즐기는 이들이 있으니 대단들 하다.       

                           ▼ 혼자는 어려워도 남들과 함께 릿지한다면 도전해 볼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후덜덜~~  

 

   ▼ 아차! 진작에 내원암과 금류폭포가 어우러진 멋진 장면을 포착했어야 하는데 사방을 둘러보지 않은 불찰로 지나쳐 버렸다. 오른쪽 기차바위봉에서 왼쪽 수락산 정상을 거쳐 코끼리바위, 하강바위, 치마바위를 경유,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다.    

   ▼ 왼쪽 하강바위와 오른쪽 코끼리바위 

   ▼ 수락산 정상(637m)을 당겨보고...    

  ▼ 오늘의 산행끝 지점인 도솔봉(540m)도 당겨본다.      

   ▼ 향로봉 정상부근에서 보는 암릉들도 볼만하다.     

   ▼ 건너편 멀리 불암산도 당겨본다.      

  ▼ 향로봉 정상에서 소리바위아래로 이어지는 대슬랩...      

 

 

   ▼ 내원암을 당겨봤다. 가을이면 더 운치가 있을 듯...     

   ▼ 오른쪽 영락대와 중간 칠성대, 기차바위봉이 눈에 들어온다.    

   ▼ 칠성대의 거대한 미끄럼틀과 촉수가 잡혔다.    

   ▼ 당겨 본 영락대   

   ▼ 이건 뭐 헤엄치는 거대한 상어?   

 

    ▼ 전망바위에서 뒤돌아 본 향로봉(465m)  

  ▼ 오늘 본격적으로 걸어야 할 주능선이 일자로 펼쳐져 있다. 여기서 첫 봉우리가 기차바위봉인데 우측 능선으로 기차바위가 살짝 보인다. 기차바위를 경유하려면  칠성대에서 조금 오르다 오른쪽 도정봉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표지목에 안내된 기차바위 우회로를 따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차바위를 우회하게 되고 수락산 정상으로 바로 가게 된다.    

 

  ▼ 첫 산행이라 오른쪽에 보이는 암릉이 기차바위라는 사실을 몰라 그냥 기차바위봉 정상까지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기차바위를 타는 우를 범했다.    

  ▼ 영락대에서 바라본 오른쪽 도정봉...능선 안부 멀리 사패산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 당겨 본 도정봉(526m)     

  ▼ 당겨보니 사패산과 멀리 고령산 일부능선이 보인다.       

    ▼ 당겨 본 양주시 불곡산(465m)   

 ▼ 이런 곳에 약수터가 있다니...

     물 한모금 시원하게 축이고 우측으로 돌아 산행...  

    ▼ 칠성대...

    흐미~닮아도 너무 닮았다.

 

  ▼ 거대한 미끄럼틀...좀 더 다가갈껄, 사진이 어째 실감이 덜난다. 어떻게 저런 모습이 됐을까 의아하다.      

  ▼ 저 바위에 오른다는 것도 잊었다. 그곳에서 기차바위의 풍경을 담았어야 하는데...

다음에 또 오를 기회가 있겠지...      

  ▼ 바로 이 이정표를 이해 못해서 결국 알바를 하고 말았다. 이 길로 그대로 직진하면 기차바위가 있을 것이고 우회할 사람은 우회하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아래에 누가 덧붙여 놨는지 화살표방향은 바로 도정봉 또는 기차바위로 가는 길이고 기차바위가 있는 그곳에서 이쪽 방향으로, 또는 이쪽에서 그쪽방향으로 우회하는 길인 것이다.    

▼그대로 직진하여 산행한 결과가 이렇다. 기차바위 있는 곳은 표시가 없고 우회로만 있으니 당연 이 부근에 기차바위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는 얘기다. 

  ▼ 그래서 계속 올라보니 왠 헬기장이...도대체 지형적으로 봐선 기차바위가 될만한 슬랩이 있을 것 같지 않아 되돌아 내려간다.       

  ▼ 결국 기차바위라는 것은 도정봉방향에서 이어지는 암릉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도정봉 방향으로 무작정 계곡을 따라 질러 내려간다.     

  ▼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니 결국 기차바위 우회도로를 만나게 되고 그 끝지점에 이르니 이와 같이 기차바위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다.     

  ▼ 기차바위(홈통바위)입구에서 본 도봉산과 북한산의 주능선...    

 

                           ▼ 기차바위밑에 있는 또 하나의 상징물...용솟음 치듯 기운차 보인다.                    

 

    ▼ 저 바위에 올라서 이곳의 장면을 촬영했었어야 했다.   

                             ▼ 기차바위(홈통바위)의 멋진 슬랩...

                                 릿지로 그냥 올라 봄직도 하다.                 

 

 

      ▼ 기차바위봉 아래의 기암.   

 

                            ▼ 드디어 수락산 정상(637m)에 도착.                    

 

     ▼ 의정부 시내가 보이고 도정봉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능선...      

     ▼ 영락대로 부터 기차바위봉까지의 능선...    

     ▼ 멀리 불암산있는 방향으로  걸어야 할 주능선... 

 

    ▼ 왼쪽 북한산과 오른쪽 도봉산 그리고 서울 시내...  

   ▼ 도봉산 주능선과 오른쪽 의정부 시내...   

   ▼ 조금 더 내려가면 안부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 당겨본 북한산...

 인수봉 뒤로 백운대 왼쪽편으로 만경대등 총사령부...    

   ▼ 지난번 올랐던 도봉산의 다락능선과 포대능선, 그리고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과 신선대...     

   ▼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신선대, 오른쪽 Y계곡과 포대능선 정상...    

    ▼ 사패산은 뭐 할배 얼굴처럼 보이냥...  

                          ▼ 12시가 훌쩍 넘으니 산객인파에 시달린다.                    

 

   ▼ 점심을 대충 먹은 후 산행 시작...

  코끼리 바위와 하강바위가 보인다.   

   ▼ 철모바위...

   난 왜 자꾸 베레모로 보일까...     

 

    ▼ 기암들이 참 기묘하게 자리잡은 게 멋지다.     

    ▼ 배낭바위...

    반대방향에서 봐야 더 실감날 듯 하다.   

    ▼ 철모바위와 소나무의 대비가 그런대로 멋지다.     

  ▼ 되돌아 본 수락산 정상

                            ▼ 코끼리바위라는데...

                           코끼리 형상은 어디 있을꼬?                     

                            ▼ 하강바위의 옆모습                 

 

 

    ▼ 오늘 아침 올랐던 향로봉...어떻게 저런 암릉을 올랐을까? 내가 봐도 신기하다.    

   ▼ 영락대도 당겨봤다.     

     ▼ 내원암에서 뻗어 내려가는 청학계곡   

 

 

 

   ▼ 코끼리바위 앞 전망바위에서 되돌아 본 암릉.    

 

     ▼ 아항~ 저 꼭대기에 엎드려 있는 형상의 코끼리...    

   ▼ 당겨봤더니 누가 마치 조각해 놓은 듯이 코끼리 한마리가 앉아 있다.       

 

    ▼ 다시한번 배낭바위 주변 기암을 당겨본다.    

▼ 하강바위는 자일을 이용, 오르내리기를 즐기는 산객들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오늘따라 없다. 대신, 강심장의 산객이 개미처럼 올라선 풍경이 그런대로 멋지다.

 

  ▼ 하강바위 아래는 이런 모습이다.    

   ▼ 치마바위에서 당겨 본 도솔봉     

    ▼ 치마바위에서 당겨 본 바로 건너편의 불암산    

    ▼ 별내 신도시     

   ▼ 치마바위...그냥 내려오는 재미도 있다.     

 

   ▼ 도솔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배낭바위, 코끼리바위, 하강바위, 치마바위.       

 

   ▼ 여성의 그것과 닮았다고들 한다.   

  ▼ 당겨 본 하강바위...보는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이다.   

 

 

 

 

   ▼ 도솔봉에서 본 수락산 기암들의 총집합소     

   ▼ 도솔봉에서 깔딱고개 방향의 월매정을 당겨봤다.  

    ▼ 월매정 

 

    ▼ 도솔봉에서 본 불암산...기회된다면 이곳에서 바로 불암산으로 연계하여 산행하고 싶다.  

     ▼ 당겨 본 향로봉 

    ▼ 마치 정교하게 쌓은 석축같다.    

   ▼ 이 바위는 이름 없나? 사자바위라 부르리...    

  ▼ 탱크바위...내 눈이 잘못 된건지, 이름 붙인 이가  탱크 모양을 잘 모르는 건지...당최 모양이 안 나온다.      

 

    ▼ 다시 도솔봉 방향으로 뒤돌아 가서 치마바위능선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치마바위를 내려오며 바로 왼편으로 내려오면 청학리로 내려오는 길이다.    

 

 

                             ▼ 내려오는 길에 조망한 향로봉...미끈하게 빠진 암릉의 멋을 더해 준다.

                            오전에 물건 운반용 케이블카 중간기착점 철탑이 있는 저 암릉으로 오른 것이다.                 

 

 

 

  ▼ 아침에 산행하며 보지 못했던 옥류폭포...계곡물은 한방울도 흐르지 않는데 어디서 물이 퍼 올렸는지 이곳은 사유지가 되어 유흥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 마당바위쪽으로 원점 회귀...오늘도 수락산의 기암들을 자세히 음미하며 여유롭게 산행한 하루이다.

비록 마음에 썩 드는 풍경을 담을 수는 없었지만 첫 산행임에도 많은 정보를 얻고 오른 산행으로 별 어려움 없이 힐링한 하루였다. 수락산아, 다음 계절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