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2일(일)
유구색동정원의 수국을 본 후에 이왕 공주에 왔으니 전부터 가 보고자 했던 공산성을 둘러 보기로 한다.
∥ 공산성 트래킹 정보 ∥
♣ 소재지: 충남 공주시 금성동 17-1(주차장)
♣ 코스: 매표소-금서루-공산정-공북루-잠종냉장고-영은사- 임각류-광복루-영동루-진남루-쌍수정-백제왕궁지-금서루-체험관-매표소
♣ 거리 및 시간: 약 3.5km(2시간)
∥ 공산성 개요 ∥
백제가 서울 한성에서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웅진도성 안에 있었던 왕성이다. 북쪽으로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 공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천연의 요새로, 성벽의 전체 길이는 2,66m에 이른다. 백제시대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과 돌로 쌓은 석성이 함께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 성이 이름은 처음에 웅진성(熊津城)으로 불렀다가 고려시대 초에는 공산성,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雙樹山城)으로 불렀다.
백제 무왕31년(630) 사비(부여)의 궁궐을 수리할 때 5개월 동안 머물렀으며, 660년 백제멸망기에 의자왕이 일시적으로 머물렀다. 이후 웅진도독부, 통일신라시대 웅천주의 치소가 있었으며, 조선후기에는 충청감영이 설치되기도 하였고, 이괄의 난(1624) 때에는 인조가 이 성으로 피난하였다.
성 안에는 백제시대 추정 왕궁터를 비롯하여 임류각과 연지 등 백제왕궁관련 유적과 4곳의 문지(금서루, 진남루, 공북루, 영동루), 쌍수정, 쌍수정사적비, 명국삼장비, 영은사, 연지 및 만하루 등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 있다. 2015년 7월 8일,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안내문]
▽ 금서루에서 시계방향으로 트레킹을 하기로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계 반대방향으로 트레킹 하는 것이 힘이 덜 든다는 것을 지형상으로 알게 됐다.

▽ 주차장은 무료이고 일반 성인은 입장료가 3.000원(지역별 할인, 공주시, 부여군 거주자 및 65세 이상은 무료)이다.





▽ 금서루 입구 비석군
공주와 관련된 인물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들이다. 공주시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송덕비와 제민천교영세비 등 47기가 있다.
대다수는 인물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새긴 송덕비인데, 여기에는 "영세불망비, 청간선정비, 거사비, 만세불망비, 유애불망비, 청덕선정비" 등의 글이 새겨져 있다. 우의정, 도순찰사, 관찰사, 암행어사, 목사, 판관, 군수, 우영장, 중군 등 주로 충청감영과 공주목 관아에 배치되었던 관리의 송덕비가 많다. [안내문]

▽ 공산성 금서루(錦西樓)는 공산성 4개 성문 가운데 서쪽 문루이다.
성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지만 1859년에 편찬된 공산지(公山誌)의 문헌 기록과 지형적 여건 등을 고려하여 1993년에 복원하였다.
현재의 문루는 본래 서문에 있던 자리에서 약간 남쪽으로 이동하여 지은 것이다. 금서루는 비록 새롭게 복원된 것이지만 조선시대 성문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내문]


▽ 마침 그 당시를 재현한 군사들과 기념 촬영.

▽ 공산성의 깃발
공산성 성벽의 동서남북에 배치한 깃발은 송산리 6호분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한 것이다. 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상징적인 동물로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신의 개념이나 형상이 표현된 것은 삼국시대에 중국 문화의 전래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송산리 6호분 벽화의 사신도는 당시 왕성했던 백제와 중국 남조와의 국제교류를 보여준다.
깃발의 바탕색은 황색이다. 이것은 백제의 나라색이며 백제시대 사람들은 황색을 우주의 중심이 되는 색으로 생각하여 중히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깃발의 테두리는 사신도의 각 동물이 상징하는 색을 반영한 것이다. 깃발의 배치는 송산리 6호분에 그려진 사신도의 위치를 그대로 따랐다. 따라서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를 각각 배치하였다.[안내문]

▽ 우선 북쪽의 공주시가지를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오른다.

▽ 금강 북쪽의 공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백제큰다리와 바로 앞의 금강교 아래로 어제까지 내린 폭우로 인해 황토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 공산정(公山亭)

▽ 공산정(公山亭)은 현재 보수 중인가 보다.

▽ 공북루(拱北樓) 내려가기전 바라 본 금강...

▽ 성벽을 따라 공북루 부근에는 수령이 수백년은 됐을 듯한 이와 같은 느티나무가 몇 그루 있어 눈길이 간다.

▽ 깃발 사이로 보이는 공북루 (拱北樓)...


▽ 왕궁관련 유적지
'공북루(拱北樓) ' 남쪽의 넓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백제시대 대규모 왕궁관련유적이다. 2011년~2017년까지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통하여 현재 지표면에서 약 300~700cm아래에서 백제가 웅진에 천도한 475년 이후부터 만들어진 약 70여 동의 기와건물지와 도로, 축대, 배수로, 저수시설, 석축 연못, 철기 공방지 등 다양한 시설이 확인되었다.[안내문 일부 발췌]
백제가 멸망한 뒤, 북문인 공북루 인근의 땅에 마을이 조성되었고, 이 마을은 '성안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 성안마을은 백제, 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1997년까지 같은 곳에 있었으며, 마을은 이후 진행된 문화재 발굴 및 관광지 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 공북루(拱北樓)의 이모저모

▽ 공북루(拱北樓)
공북루는 공산성의 북쪽 문루로 금강의 남쪽과 북쪽을 오가는 남북 통로의주 출입문이다. 본래 공북루 자리에는 망북루(望北樓)가 있었는데 허물어져 터만 남아 있었다.
충청감영을 충주에서 공주로 이전하면서 1603년(선조36)에 공산성을 크게 고쳐 쌓고, 이때 공북루와 그 옆에 월파당(月波堂)을 함께 지었다. 여러 차례 고쳐 지었으며, 월파당은 1954년에 철거되었다.
공북루의 아래쪽은 성으로 통하는 통로로, 위쪽은 마루를 만들어 금강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장소로 이용하였다. 문루 안에는 여러 편의 글과 시를 걸어 두었다.
※ 문루: 문 위에 세운 높은 건물


▽ 성곽을 따라 자란 우람한 느티나무의 위용이 옛 정취를 고조시킨다.

▽ 잠종냉장고
충남에 있는 잠업 농가에 누에 씨를 보급하기 위해 만든 지하 저장 시설이다.
1914년 충남잠업강습소가 공주에 생기면서 누에를 치는 보관소와 뽕밭이 새로 조성되었다. 누에의 먹이인 뽕잎이 나는 5월까지 누에의 부화를 늦추기 위해 잠종냉장고가 공산성에 만들어졌다.
겨울철 금강의 얼음을 왕겨에 싸서 잠종냉장고에 넣어 두면 여름 내내 녹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를 이용하여 누에의 부화 시기를 늦추었다.
공산성 내의 잠종냉장고가 있는 지역을 '빙고재'라고 하는데 공산지(公山誌)에는 공산성 안에 빙고 (氷庫)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이 조선시대 빙고 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 만하루(挽河樓)와 연지(蓮池)
금강과 연못 사이에 자리 잡은 만하루는 공산성을 방비하는 군사적 기능과 금강의 경승을 즐길 수 있는 누각으로 1984년 복원됐다.
연지는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방형의 연못으로 금강과 연결되어 있다.
연지는 가까이 있는 금강의 물을 가둬 성 안의 물을 확보하기 위한 시설로 만들어졌다.
연못이 무너지지 않도록 돌로 층층계단 형식으로 쌓았고 연못에 접근하기 쉽게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9층탑을 거꾸로 세운 듯한 특별한 모습이다. 그리고 연지 위 든든한 제방 위에 세워진 만하루 정자가 연지와 금강 사이에서 더욱 아름다운 경치와 휴식공간을 만들어 낸다.

▽ 만하루와 연지는 현재 보수 공사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영은사(靈隱寺)
조선 세조4년(1458)에 세워진 사찰이다. 묘은사로 불렀다가 이괄의 난(1624) 때에 이 절에 피신한 인조가 은적사라 하였다가 다시 영은사로 고쳤다.
광해군 8년(1616)에는 이곳에 승장(僧將)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관할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승병의 합숙소로 사용되었고, 여기서 훈련된 승병은 영규대사의 인솔 아래 금산전투에 참여하였다.
영은사 부근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불상 6구가 출토되어 조선시대 이전에도 이곳에 사찰이 존재했었음을 짐작케 하는데, 백제시대부터 사찰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규모가 작으나 단아한 모습의 원통전 내부에는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으며, 청동범종, 아미타후불탱화, 칠성탱화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문]

▽ 금강 북쪽 공주시 풍경

▽ 가파른 능선을 따라 성벽은 이어지고...

▽ 이곳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르면서 주변을 조망...

▽ 금강은 전북특별자치도이 장수군(뜬봉샘)에서 발원하여 충청남도의 논산시에 있는 강경읍에서부터 충청남도·전북특별자치도의 도계를 이루며 군산만으로 흘러드는 유로연장 397.79㎞의 강이다. 대한민국의 국가하천 중에서 본류 기준, 길이와 유역면적 공히 3위의 강이다. 대청호에서 대전, 세종시를 거쳐 이곳에서 아래쪽 부여 방향으로 흐른다.
▽ 가까운 쪽의 다리가 공주대교, 멀리 보이는 다리가 신공주대교이다.

▽ 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
명국 삼장비는 정유재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8년(선조31년)에 명나라의 세 장수 이공, 임제, 남방위가 왜군에게 피해를 많이 받은 공주에 들어와 머물면서 주민들을 보호한 업적을 기린 송덕비이다.
명국삼장비는 1599년 금강변에 세웠으나 홍수로 매몰되자 1713년(숙종39년)에 다시 세웠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비석에 쓰여 있던 왜구라는 글자를 지우고 공주읍사무소 뒤뜰에 묻어버렸지만 1945년 광복이 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 정유재란: 임진왜란 이후 왜군이 다시 침략한 사건(1597년)
※ 송덕비: 벼슬에 오른 관리의 업적을 칭찬하고 기억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 [안내문]

▽ 임류각(臨流閣)

▽ 광복루(光復樓)

▽ 광복루 인근에서 바라 본 남쪽 방향 공주시내 일부

▽ 공주시내 일부

▽ 영동루(迎東樓) 도착전 서쪽 방향 공주시내 모습

▽ 영동루(迎東樓)의 이모저모




▽ 진남루(鎭南樓)의 이모저모

▽ 진남루(鎭南樓)
공산성의 출입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진남루는 성의 남문에 해당되며, 조선시대에는 삼남의 관문이었다.
원래 토성(土城)이었던 것을 석축성(石築城)으로 고쳐 세운 것은 조선 전기의 일이다.
진남루도 그 때 세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뒤에도 여러 차레 고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71년에 전부 해체하여 원래대로 복원한 것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장식한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 쌍수정(雙樹亭)
공산성 쌍수정은 충청도 관찰사 이수항이 1734년(영조10)에 인조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자다.
조선의 제16대 왕인 인조는 1624년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에서 6일간 머물렀는데 당시 인조는 두 그루의 나무 알에서 난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인조는 난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자신이 기대었던 두 그루의 나무, 즉 쌍수(雙樹)에 정3품의 벼슬을 내렸다. 그 후로 공산성을 '쌍수산성'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수항이 관찰사로 부임하여 나무가 있던 자링 삼가정(三架亭)을 세웠는데 이 건물이 쌍수정이다. 오늘날의 쌍수정은 1970년에 해체한 후 다시 세운 것으로 조선시대의 쌍수정과 다소 차이가 있다.

▽ 쌍수정 사적비(雙樹亭 史蹟碑)
쌍수정 사적비는 조선의 제16대 왕인 인조가 1624년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에 머물렀던 일을 기록하여 세운 비이다.
비에는 이괄의 난과 인조가 공산성으로 피하게 된 사실, 공산성에 머물렀던 6일 동안의 행적, 공산성의 모습 등이 적혀 있다.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신흠이 비문을 짓고, 숙종 때 영이정을 지낸 남구만이 글씨를 썼다.
쌍수정 사적비는 1624년 인조가 공주를 떠난 직후 세우려고 했으나 84년이 지난 1708년(숙종 34)에 지금의 비석이 세워졌다.
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과 목조 지붕 모습의 머릿돌을 갖춘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 이괄의 난: 이괄(1587~1624)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가 왕이 된 인조반정의 보상 과정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난 [안내문]

▷ 1604년 2월 어느 날의 일기
나 유근은 지난 번 충청도관찰사 첫 부임 때도 감영의 설치를 건의해 왔다.
그리고 작년 다시 충청도관찰사가 되어 군사적 요충지인 공주로 감영을 옮겼고, 공산성에 감영 청사를 짓게 되었다.
성문을 만들고, 청사를 짓는 공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남쪽에 왜적들이 다시 쳐들어와 조정에서 나를 찾으니 내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제 감영 청사를 다 짓고 이곳을 더나게 되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모두들 수고했다. 그대들의 노고는 잊지 않겠다.
언젠가 반드시 이곳은 중요하게 쓰이게 될 것이다. 공주 충청감영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길 바라겠노라.
※ 감영: 관찰사가 일하던 관청
▽ 백제 왕궁지(王宮址)
백제 왕궁지는 백제가 한성(서울)에서 웅진(공주)으로 수도를 옮긴 475년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왕궁 터이다
공주 시가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높은 지대에 있는데 1935년에 기마병 훈련장으로 사용하면서 크게 훼손되었고, 그 후로 1985년까지는 전국자전거대회를 여는 등 운동장으로 사용되었다.
1985~1986년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왕궁 터 주변을 평평하게 만드는 큰 토목공사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백제시대 기와와 토기, 청동거울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안내문]

▽ 백제 연못 (百濟 蓮池)
백제 연못은 공산성 왕궁 터에서 확인된 백제시대 인공 연못이다. 빗물을 받아 저장하여 연못으로 사용하기도 하였고, 화재가 났을 때는 소방용으로도 사용하였다.
연못은 지름 약 9.5m 정도로 땅을 판 후 다듬지 않은 돌을 쌓아 만들었으며, 바닥에는 너비가 40~50cm 정도 되는 얇고 평평하게 다듬은 돌을 깔았다. 연못 벽 뒤에는 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하여 1m 너비로 점토를 두껍게 채웠다.
연못 안에서는 많은 양의 백제시대 토기와 기와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안내문]

▷ 인절미의 고향 공주
인절미는 찹쌀을 시루에 익힌 다음 그것을 절구에 찧어 조그맣고 네모지게 잘라 콩고물에 묻혀 먹는 떡이다.
그런데, 왜 인절미라 불렀을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인조는 이괄의 난을 피해 1624년 잠시 공주에 피난 온 적이 있었다.
피난 중에 우성면 목천리 근처 임씨 댁에서 콩고물에 무친 떡을 진상하였다.
왕은 시장한 참에 연거푸 몇 개를 먹더니,
"맛이 있구나. 그런데, 떡은 떡인 모양인데, 대체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으니,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떡 이름이 있을 텐데 아무도 모르니, 그것참 기이한 일이오. 근데, 이 떡은 어느 댁에서 만들어 왔소?"
"임씨 댁에서 만들어 진상했습니다." 왕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임씨라...임씨라... 그것참 맛이 절미(絶味)로다." 그리하여, 임씨가 진상했다 하여
이때부터 임절미(任絶味)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임절미"는 발음하기 편하게 "인절미"로 바뀌고, 공주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져 "공주떡"이 되었다.
▽ 성벽 위 산책로는 계속 이어지고...

▽ 다시 내려다 보이는 성안마을 터와 공북루.

▽ 다시 도착한 금서루(錦西樓)

▽ 금서루에서 내려다 본 공주시내와 매표소.

▽ 성안에서 담아 본 금서루


▽ 잠시 성안마을 있었던 곳을 둘러보고...

▽ 체험관이 있는데 방문해 보진 못했다.

▽ 마침 백제 병사들의 교대식을 재현한 행사가 있어 담아 본다.



▽ 무령왕 동상
공주시는 무령왕릉 발굴 50년, 갱위강국 선포 1500년을 맞아 공산성 금서루 앞 연문광장에 무령왕 동상을 건립하고 2021년 9월 18일 제막식 행사를 가졌다.
백제 중흥을 이끈 제25대 무령왕이 1500년 만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공주 공산성 앞에 웅장한 모습으로 부활한 것이다. 총 9.5m에 달하는 동상은 무령왕이 중국(양나라)에 갱위강국 선포 국서를 보내는 모습으로 제작됐다.

▽ 백제 무령왕릉 연문
이곳 연문에서 700m 정도 가다 보면 오른쪽을 무령왕릉과 무령왕릉원이 있는데 오늘은 시간관계상 들러보질 못해 아쉽다.
무령왕릉 연문은 자세히 관찰해 보면 백제유물의 여러 장식들을 볼 수가 있어 흥미롭다.
건립기 내용에는"백제 25대 무령왕릉(단지2856년)의 진입로에 찬란했던 웅진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뜻을 같이한 전 조합원은 백제왕도의 후예로서 웅진문화의 재조명과 공주 발전의 효시가 되기를 바라면서 성심껏 연문 건립을 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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