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2일(일)
옹성산 산행 후에 적벽투어를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하여 화순 4대 적벽인 물염적벽, 창랑적벽, 보산적벽, 노루목적벽(장항적벽) 중에 망향정에서 볼만한 노루목적벽은, 같은 곳에 있는 보산적벽과 더불어 출입이 통제되어 볼 수 없는 상태여서 통제를 하지 않는 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을 둘러 보기로 한다.
∥화순적벽 개요∥
화순 적벽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위치해 있는 경승지(景勝地)로서, 1979년에 전라남도 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된 곳이다.
이곳은 화순 동복호(湖)가 있는 창랑천 주변 약 7km에 결쳐 발달해 있는데,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 등 4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고(太古)의 신비를 간직하며 깍아지른 수백척의 수려한 단애(斷崖,절벽)가 동복호(湖)의 잔잔한 푸른물결과 어울려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처럼 신비로운데, 조선후기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은 이곳의 절경에 빠져 이곳에서 생(生)을 마치는 등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더욱이 1985년 동복댐이 건설되면서 2014년까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무려 30년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않아 천혜의 자연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
적벽이라는 이름은 "붉을 적(赤), 바람벽 벽(壁)"자로서, "붉은 절벽"이라는 뜻인데, 1519년 기묘사화로 인해 이곳에 유배중이던 신재 최산두가 중국의 양쯔강 중류에 있는 적벽과 비슷하다고 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화순 4대 적벽의 위치
▼ 창랑적벽
무등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광주방면으로 광주호를 만들고, 화순 방면으로는 동복호를 만든다. 광주호는 영산강 수계이고 동복호는 섬진강 수계이므로 무등산은 동서로 남도의 2대 강인 영산강과 섬진강을 이루는 산이라 할 수 있다.
동복댐은 광주시가 1971년에 건설하였으나 1982년 11월 확장공사를 착공하여 1985년 7월에 준공하였다. 이 확장공사로 인하여 화순군 이서면 10여개 마을과 일부 지역이 수몰되고 관광명소였던 적벽 일대가 물에 잠기게 되었다.
창랑적벽은 동쪽의 창랑리에서 바라보면 웅장한 느낌을 준다. 잔잔한 강 위로 화순적벽의 바위 빛이 서로 교차되어 투영되는 광경은 마치 푸른 비단 폭에 동양화를 그려 놓은 것 같다. 여름에는 송림이 우거져 푸르름과 조화를 이루고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어울려 더욱 아름다운 경치를 자아낸다. 근처의 북면에는 수질이 좋은 화순온천(和順溫泉)이 있어 적벽과 연계해서 관광할 수 있는 곳이다.
▼ 렌즈로 당겨 본 창랑적벽
▼ 물염적벽
물염적벽(勿染赤壁)은 규모나 주위의 경치면에서 노루목적벽에는 미치지 못하나 언덕 위에는 물염(勿染) 송정순(宋庭筍)이 ‘티끌 세상에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세운 물염정(勿染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 적벽은 김병연(金炳淵, 김삿갓)이 최후를 마친 절경지로 유명하다.
▼ 김삿갓(김병연)시비
김병연(1807~1863)이 다섯살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고 당시 선천부사였던 조부 김익순(金益淳)은 홍경래 군에게 항복한 죄명으로 이듬해 처형 당하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그후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영월군 와석리 깊은 산중에 숨어 살게 되었는데 김삿갓은 20세가 되던 1827년, 영월 동헌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조부의 행적을 모른 채 조부 김익순(金益淳)의 죄상을 비난하는 글을 지어 장원급제를 하게 된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어머니로부터 숨겨져 왔던 집안 내력을 들은 김삿갓은 자신이 역적의 자손이라는 것과 조부를 비판하는 시를 지어 상을 탄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 아내와 아이 그리고 어머니를 뒤로 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
삿갓으로 하늘을 가린채 세상을 비웃고 인간사를 꼬집으며 정처없이 방랑하던 그는 57세 때 전남 화순땅에서 객사하여 차남이 와석리 노루목에 모셨다 한다.
▼ 물염정(勿染亭)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라는 뜻의 물염정은 물염공 송정순(宋庭筍)[1521~1584]이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던 중 경치가 좋아 띳집을 지은 데서 연유한다. 송정순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중립(中立), 호는 물염정(勿染亭)이며, 담양 출신인 송구(宋駒)의 아들이다.
1558년(명종 1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조 정랑·구례 현감 등을 지냈다. 성질이 충후(忠厚)하고 효성이 뛰어나 재직 중에 청렴결백하고 덕으로써 정사를 살펴 이름이 높았다. 유희춘(柳希春)과 함께 경사를 강론하였고 송징(宋徵) 등의 문인을 배출하였다. 동복(同福) 창랑(滄浪)에 정자를 세워 거기서 여생을 마친 뒤 담양의 구산 서원(龜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정내에 김인후, 이식, 권필, 김창협, 김창흡 등 선비들의 시문이 즐비하며, 23개의 현판이 있다. 또한 이곳 물염정은 김병연 일명 김삿갓 시인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누정이다. 현재 물염정 주변에는 그와 관련한 시비와 기념비들이 줄을 지어 서 있어, 마치 그의 평생을 늘어놓은 듯한 풍경을 만든다. [화순군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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