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곶리(乭串里)와 건지암리(巾之岩里) 일부를 합쳐서 지석리라고 하였는데 1911년 면 리의 통폐합으로
개칭된 것이다. 之자에++를 더하여 芝자를 만들고 乭자에서 乙자를 빼고 石자로 하여 지석리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건지암리 일부는 삼선리로 편입하였다.
■ 돌곳리(乭串리): 돌구니
이 마을은 곶(串)으로 된 곳이 많아서 돌곳리라 전해지고 있다. 돌곳리에는 화양동(華陽洞), 선양동(仙陽洞), 오미동(鰲尾洞), 소현동(蕭峴洞)이 있다.
⊙ 화양동
화양동에는 절편(건너편이라고도 함), 절너머, 당메, 뚜무리, 발아테 등 5개 마을이 있다.
▼ 당메
⊙ 절편: 절너머
화양동 절병산에 화양사가 있었는데 이 절이 있는 쪽의 마을을 절편 건너편이라고 했고 산등성이 너머쪽을 절너머로 불렀다고 한다. 절터에는 절우물이 남아 있다.
▼ 선양동: 선암골
1945년 이후 돌곳리 일부를 따서 선양부락이라 하였다.선양동의 선암골로 와전되었고 선암골이
선앙골로 와전되어 전해지고 있다.
⊙ 뚜무리
이 마을이 있는 근방에서는 우물을 파는 곳마다 탁수가 나와 뜨물같다고 해서 뚜무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 발이티(發夷티): 바라테
옛날에는 인근 마을끼리 돌싸움, 활싸움을 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곳 두 마을이 나지막한 능선을 끼고 있는데 이 능선을 경계로 하여 양쪽을 동네간에 활싸움을 한 곳이라 해서 발이티로 전해지고 있다. 발이라는 뜻은 활을 잘 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 율두포(栗頭浦): 밤머리, 바머리
율두산 북록에 있는 포구로 황해도 연백군과 연결되는 나루터를 율두포라고 한는데 글자 풀이로 밤머리가 바머리로 불린다. 객주집이 한두집 살고 있었다.
▼ 오미동: 오미
이곳 지형이 가재꼬리 형국이라 하여 오미라고 전해지고 있다.
⊙ 딴오미
오미동 건너편에 있는 자그마한 마을인데 오미 본동과 떨어져 있다고 해서 딴오미로 전해지고 있다.
⊙ 황산(黃山)
이 마을에는 교동황(黃)씨 문중의 인(寅)자 행령에서 18대조 안악공의 묘소가 있음으로 해서 그 일대가 전부 황씨네 산이기에 황산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 염주동
일명 황산을 염주동이라고도 말하는데 작은 골짜기 지형들이 겹겹이 있고 염주골 황산에는 묘를 쓰는데 선친 묘위에 후손묘를 써도 무방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그 내용으로는 중이 목에 건 염주를 돌려본다면 모두가 위로 아래로 자리바꿈을 한다는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 잠두(蠶頭): 눼머리
이곳은 율두산 서쪽 능선인데 그 산형이 잠두(蠶頭, 누에머리)같다 하여 눼머리로 와전되어 전해지고 있다.
■ 건지암리(巾之岩里) 일부 기현동(麒峴洞)
⊙ 기현동: 기재
이 마을 기재는 웃기재, 아랫기재가 있는데 마을이 산밑으로 길게 자리잡고 있어서 그 형상이 기린같다 하여 기린麒字에 고개峴字를 써서 기재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기린은 동물중에 가장 영특한 동물이라는 뜻도 담겨있어 동물중에서 왕도를 걷고 있는 동물이라한다. 그리고 아랫기재는 면리 통합(1911)시에 삼선리로 편입되었다.
⊙ 수건바위의 전설
지석리 건지암리(지금의 건재 또는 기재)에 수건바위가 있었다 한다. 사람이 수건쓴 모양같다 하여 수건바위라고 하였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부자로 살았으나 마음이 인색하여 서로 돕고 살 줄을 몰랐다. 어느날 이 마을을 지나가던 스님이 저 바위를 깨뜨려 버리면 더 잘사는 마을이 된다고 하였더니 동네사람들이 모두 나서 수건바위를 부수어 버렸고 그 때 바위에서 피가 나왔다고 하며 동민이 모두 방탕해져 빈촌으로 몰락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 건재(巾峴)
이 마을은 기재에 속하는 마을인데 수건바위가 있는 산고개 밑에 자리잡은 마을이라고 해서
건재라고 전해지고 있다.
⊙ 소현동(蕭峴洞): 쑥대
이 마을에 쑥이 많은 고개라고 해서 쑥대로 전해지고 있다.
⊙ 개어귀
선양동에 개어귀라는작은마을이 있다. 절병산 서쪽 자락인데 교동섬이 3도(島)로 되어 있을 당시는 이곳까지 바다 갯골로 되어 있었다고 하여 개어귀라고 불려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향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