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경상남도

[창원] 적석산

갯버들* 2020. 5. 31. 20:30

2020년 5월 30일(토)

 

코로나 사태가 좀 진정되는가 싶더니 다시 기승을 부린다는 소식이다. 개인적인 위생수칙은 잘 지켜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및 모임등을 자제해야 하는 일들은 불가분하게 인간관계로 살아가는 세상살이에 있어서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일상 생활은 물론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고 있으니 불편해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러한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세계적으로 치료 백신개발을 경쟁적으로 하고 있고 정부에서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발에 힘쓰고 있으니 오로지 그것에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과연 취미생활의 하나인 산행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의 경우 감염이 된다고 하면 그로 인한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비난을 감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 끝날지 모를 이런 사태에 마냥 우려하여 집 울타리에만 머물러 있기에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일주일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는 그동안 습관화된 산행이기에 이번 주 역시 가까운 주변 산을 오를까 망설이다 신청해 놓은 원정산행을 결정하고 철저한 대중교통에서의 감염예방을 마음속으로 단단히 하고 집을 나선다.

 

산행정보

♣ 소재지: 들머리-경남 창원시 진전면 일암리(성구사), 정상-경남 창원시 진전면 일암리, 날머리-일암리(적석산주차장)

♣ 산행코스: 성구사-전망대-국수봉-적석산-구름다리-칼봉-음나무재-선동치-깃대봉 -382봉-연화사-적석산주차장

♣ 거리: 9.5km(들머리-11:28, 날머리-16:10)

 

적석산 개요

적석산은 경상남도 창원시와 고성군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서, 창원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산이다.

전체적인 산세는 북서쪽에 있는 깃대봉과 함께 능선이 "ㄷ"자모양을 하고 있으며, 산 전체가 커다란 바위인 암반(巖盤)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로인해 벼락바위, 마당바위, 양산바위, 벽바위, 문바위, 알봉 등 각종 기암괴석과 기기묘묘한 여러개의 암봉이 즐비하며, 산의 하단부에는 울창한 숲이 형성되어 있다. 정상은 각기 특이한 모양의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동쪽에 있는 봉우리는 "적삼봉"이라고 하고, 서쪽의 봉우리는 "칼봉"이라고 한다.

이 이름의 유래는 아주 오랜옛날 큰 홍수가 났을때 정상부에 적삼 하나와 칼 한자루 놓을 자리만 남기고 모두 물에 잠겼다고 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중 적삼봉의 정상은 약 40평 정도 되는 평탄한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泉)이 있다.

조망도 무척이나 우수하여 각각의 암봉과 정상부에 오르면 먼저 남서쪽으로는 수많은 마루금사이로 고성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동남쪽으로는 푸른물결의 진해만(灣)과 함께 다도해(多島海)가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정상에는 2005년에 설치한 52m길이의 현수교가 설치되어 있으며, 과거 바다였다는 증거로서 조개껍질과 공룡 발자국의 화석도 남아있다.

적석산이라는 이름은 "쌓을 적(積), 돌 석(石)"자로서, '산전체가 마치 돌을 쌓아올린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들머리인 성구사(誠久祠)에서 바라본 적석산 정상부위

 

성구사(誠久祠)

    고려말 충신 변빈(卞貧)선생과 임진왜란 때의 의장병 변연수(卞延壽)장군과 그의 아들 변입(卞笠)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다. 변빈선생은 고려 공민왕조(1351-1374년) 문하평리(정2품)로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성만용 정몽주, 홍재, 이색, 조열, 김성목, 이오 등 많은 충신들과 함께 망국의 한으로 슬퍼하다가 기약없이 스스로의 뜻에 따라 행동키로 결의하고 선생은 두문동(개성서쪽 15리)에 들어가 고려에 대한 불사이군(不事二君: 두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뜻)의 절의를 다하고 죽으니 두문동 72현의 한분이시다.

변연수 장군은 조선 중종 33년(1538년) 이곳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 주부의 벼슬에 올랐으나 휴관으로 향리에서 쉬고 있을때 임진왜란(1592년)을 맞게 되자 아들 변입에게 나라에 목숨을 바칠때라 이르고 즉각 격문을 내어 원근에서 의병을 모아 인근 장병골에서 훈련, 연해의 출몰 왜적을 격퇴하고 이순신 장군 휘하에 합류하여 당포와 옥포해전에서 적을 크게 무찔러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1597년)때 당포해전에서 아들 변입과 함께 사력을 다해 적과 싸우며 용전하다 순국하셨다.

아들 변입은 전사한 아버지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며 父命에 따라 마지막까지 분전하다 그도 또한 아버지의 뒤를 따라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나라에서는 변연수 장군에게 증 병조판서 아들 변입에게 증 좌승지의 첩지를 내리고 고향에 정려(삼강려)를 내려 후세에 귀감으로 삼게 하였다.

세상에서는 이 세분을 일러 변씨삼현(卞氏三賢) 또는 삼충(三忠)이라 일컫는다. 성구사는 후손들과 전국 유림에 의하여 1914년 인근 서제골에서 이곳에 이축하여 세워졌으며 매년 제향을 올린다. 그리고 경내에는 도산서원과 일신제 존양제 등 부속건물이 있다. [안내문]

 

성구사 건물 울타리 왼쪽으로 산행 들머리가 있다.

 

▼ 감시초소가 있는 첫 조망터에서 바라 본 북쪽 풍경, 한바퀴 돌아 왼쪽 뾰족한 깃대봉을 경유, 하산하게 된다.

 

▼ 진해에서 진주로 뻗은 2번국도 왼쪽으로 창원시 진전면 입암리, 오른쪽으로 양촌리 마을이 자리잡고 있고...

 

▼ 맞은편 인황산의 국사봉 줄기 아래로 오른쪽에 동산리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 12시가 거의 될 무렵 일찌감치 점심식사를 하고 12시 37분에 옥수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이정표에 도착, 소나무 숲이 있는 육산은 꽤나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진다.

 

▼ 드디어 475m인 국수봉에 도착, 주변을 조망해 보고...

 

▼ 서쪽 진행방향의 적석산 정상이 눈앞에 보인다.

 

▼ 당겨 본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는 적석산 정상 

 

▼ 왼쪽 바다 건너편에 경남 고성의 거류산(571m), 그 뒤로 통영의 벽방산(651m)가 조망되고 앞쪽으로 고성군 회화면사무소 소재지가 보인다. 멀리 오른쪽 능선 끝으로는 도산면에 있는 사량도 여객선터미널이 있는 위치다.

 

▼ 당겨 본 고성의 거류산과 뒷편으로 통영의 벽방산, 앞쪽으로 회화면사무소 소재지가 있는 마을

 

▼ 적석산 정상을 오르는 당겨 본 암릉

 

▼ 적석산 정상부위에는 벌써 많은 산꾼들로 북적인다.

 

▼ 정상 오르기전 이런 바위가 가로막고 있어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오르게 된다.

 

▼ 바위 전망대에서 뒤돌아 본 국수봉

 

▼ 일암리의 1, 2저수지가 보이고 모내기를 위해 물을 댄 논들

 

▼ 당겨 보니 주차장에는 우리가 타고온 버스가 주차되어 있다. 개별적으로 등산하기 위해 온 승용차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저곳을 들머리로 해서 이곳 정상까지 왔다가 하산하는 분들고 꽤 있는 듯 하다.

 

▼ 사진으로 본 마을은 번듯한 주택들로 모두 부유해 보이는 것은  좋은 지세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다.

 

▼ 옥수골저수지와 일암저수지로 갈라지는 안부에 도착...

 

▼ 기이한 바위 오른쪽으로 돌면

 

▼ 낑겨진 바위를 하나 만나게 되고

 

▼ 가까이 가 보니 석문이란 이름을 붙이기엔 좀 그렇지만 저렇게 걸쳐 있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 본격적으로 정상으로 오르는 이러한 계단이 없을 때는 릿지 아니면 로프로 올랐을 암릉이다.

 

▼ 정상가까이에는 책을 포게 놓은 것 처럼 층을 이룬 암릉

 

▼ 들머리에서 3.5km지점인 정상에 도착, 정상석은 주변 경관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인다. 도상으로는 이곳 정상이 고성 회화면에 속하는 것 같은데 창원의 진전면과 경계선상에 있다보니 창원의 적석산으로 알려져 있어 고성군의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 정상에서 바라본 동쪽 방향의 왼쪽 깃대봉과 대봉마을

 

▼ 당겨 본 깃대봉

 

▼ 깃대봉 아래에 자리 잡은 대봉마을... 산골짜기 마을이지만 폐가 하나 보이지 않는 마을이다.

 

▼ 오른쪽 방향의 남동쪽 지나온 능선과 국수봉과 멀리 마산 앞바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 오른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 남쪽 방향의 바다건너 가운데 고성의 구절산과 오른쪽 거류산, 앞쪽으로 고성 회화면의 삼덕저수지를 조망해 보고...

 

▼ 당겨 본 마산 앞바다의 풍경

 

▼ 정상에서 칼봉방향으로 향하면서 만나는 바위들...

 

▼ 적석산에서 빠질 수 없는 명물인 칼봉으로 이어진 구름다리...

이 구름다리는 길이 52m, 높이 35m로 2005년 12월에 개통이 됐다는데 요즘 전국에 걸쳐 설치된 많은 다리등에 비하면 고참에 해당한다.

 

 

 

▼ 칼봉과 적석산의 암릉을 연결한 다리로 2005년 전만 해도쉼터바위, 통천문, 문바위등 볼거리가 많아 마산 9경에 들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제외됐다고 한다. 

 

▼ 뒤돌아 본 구름다리 전경

 

▼구름다리를 지나면 칼봉능선인데 특별히 담을 풍경이 없어 보여 그냥 통과, 바로 나타난 통천문이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개구멍 같다고 해서 개구멍바위, 아래에서 보면 할머니가 허리를 굽히고 있는 모습 같다고 해서 할머니바위라고도 부른단다.

 

▼ 가까이서 본 통천문

 

▼ 한사람이 통과할 공간이다. 내려갔다가 오른쪽 통로로 빠져 나가게 된다.

 

                           ▼ 반대 방향에서 올라오면 이러한 통천문이 되겠다. 통과하면서 뒤돌아  찍어 놓은

                              장면은 마치 탱크도 지나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보인다.  (카페에서 퍼온 사진)

 

▼ 통천문을 나와서 뒤돌아 본 풍경으로 ㄱ자로 꺽여 나오게 된다. 이곳에서 보면 마치 계단처럼 보이지만곧바로 나오게 되면 절벽이므로 철제난간으로 막아 놓은 모습이다. 올라갈 때는 왼쪽 모퉁이로 돌아서 위로 올라가게 되는 구조이다.

 

▼ 통천문에서 진행방향의 바위 모습

 

                        ▼ 이 바위도 어딘가에 있을텐데 그냥 지나친 듯 하다. 아쉬움에 카페의 사진을 담아본다.

 

▼ 사진한장 담으려다가 타 산악회 여성들이 저 바위에 올라 사진을 찍겠다고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후미로 쳐지고 만다.

 

▼ 소나무 쉼터 삼거리에서 오른쪽을 하산하면 바로 주차장으로 가는 코스다. 조금 더 가면 또 방화산6km, 선동치로 가는 이정표가 나오게 되는데 방화산으로 표시되어 있는 쪽에서 올라오는 산객이 있어 깃대봉으로 가는 코스가 맞냐고 물으니 맞다고 하여 한참을 400여 미터쯤 내려가다 산 지세와 방향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트랭글로 확인해 보니 알바임을 알고 다시 되돌아 깃대봉 방향의 선동치로 향한다. 회원들 꼬리를 물지 못하면 홀로 남았을 때는 늘 GPS를 확인해야 하는데 귀찮음으로 인해 더 큰 손해를 입게 되는 일이 많아진다.

 

▼ 선동치 방향으로 직진을 하니 웬 가축농장 같은 건물이 나오고 울타리를 따라 반바퀴를 도니 도상에 표시되어 있는 음나무재가 나온다. 이곳에서 깃대봉으로 올라가는 등로에 접어들면 이젠 더 이상 알바할 곳도 없다.

 

▼ 깃대봉에서 바라 본 풍경...

깃대봉이 두개라는 사실을 산행 후에 알게 됐다. 저 앞쪽으로 뻗은 능선의 봉우리도 깃대봉이라는데 79세된 현재 1013개 산을 올랐다고 하는 회원중 한 노인은 저곳까지 갔다가 이곳으로 다시와서 하산했다고 하니 혀를 내 두를만 하다.

 

▼ 깃대봉은 조망이 없지만 20m쯤 진행하면 조망처가 있고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와 오른쪽으로 본격적인 하산길로 접어 들게 된다.

 

                              ▼ 백선이라는 식물의 꽃이다. 한방에서는 봉삼이라고 부르는 약초 중 하나다.

 

▼ 하산 중 맞은 편의 지나온 적석산 전경을 담아봤다.

 

▼ 왼쪽의 국수봉, 가운데 적석산 정상, 구름다리 넘어 칼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 당겨 본 구름다리...

 

▼ 연화사를 지나 하산하다 보니 임도가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마을로 접어 든다. 

 

▼ 넓고 쾌적한 적석산 주차장을 보니 산객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승용차가 많은 것을 보니 이곳을 들머리로 개인적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꽤 많아 보인다.

 

적석산은 전형적인 육산이긴 하지만 국수봉, 적석산 정상, 칼봉으로 이어지는 암릉과 바위를 즐길 수 있는 산으로 조망도 시원하게  펼쳐진다. 구름다리를 걷는 스릴과 풍경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어린아이들과 손잡고 마치 소풍나온 것처럼 많은 이들이 찾는 것을 보면 이 지방의 명산임을 느낄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