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경상남도

지리산 천왕봉

갯버들* 2019. 1. 27. 22:19

2019년 1월 26일(토)

 

올해는 눈다운 눈을 보기는 글렀다. 혹한의 1월이 겨울답지 않고 눈이 내리지 않으니 열흘도 안남은 입춘에 눈산행을 기대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하긴 4월에도 눈이 내리긴 하지만 철지난 눈은 반가운게 아니다. 단순히 추위가 오길 기다리는 것도 아니요, 폭설이 내려 피해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으니 그것도 생태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하여, 한달전 부터 그 기간 동안은 눈이 올 것이란 예측하에 제대로 된 눈산행을 해 보자는 취지로 지리산 천왕봉을 택했다.

물론 눈산행 보다는 일출산행에 촛점을 맞춘 공지여서 더 호감을 갖게 됐다. 천왕봉을 오른 것은 5년전 얘기다. 칼바위에서 유암폭포, 장터목대피소을 경유, 천왕봉을 오르고 로타리대피소로 하산했으니 가장 짧은 코스로 갔다 온 것인데 이번에는 그보다 훨씬 긴거리를 오르게 됐으니 체력이 얼마나 뒷받침 될지 옆지기와 함께 하게 되면서 더 염려가 된다.

 

♣ 산행코스: 중산리탐방지원센터-로터리대피소-천왕봉-제석봉-장터목대피소-연하봉-촛대봉-세석대피소-거림주차장

♣ 거리: 16.5km(들머리-03:50, 날머리-14:20)

 

 

 ▼ 중산리탐방지원센터에서 로타리대피소까지 오르는 등로가 만만치 않다. 5년전 이쪽으로 하산길이었는데 캄캄한 밤에 헤드랜턴에 의지해 올라오는 길이 과거에 이렇게 가파른 길을 내려갔나 싶었다.

천왕봉에서 어떻게든 일출을 보기 위해 출발 3시간 반만인 7시 30분까지는 올라야 하는데 옆지기가 너무 힘들어 한다.

할 수 없이 도중에 일출을 보자는 생각으로 천천히 오르니 7시쯤되어서 여명이 밝아 오며 동녘 하늘이 뻘겋게 달아 오른다.  

 

 ▼ 로타리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의 거리는 2km의 거리인데 선두팀은 벌써 천왕봉 정상에 올랐을 것이고 30분 거리를 앞두고 일출을 보게 된다. 음력 12월 21일의 새벽달이 밝고 별도 총총한 파란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북쪽에서 밀려드는데 마치 산불이 난 것 처럼 맑은 하늘을 심란하게 휘젓는다.

 

 ▼ 망원렌즈로 일출을 당겨보니 옅게 낀 구름층의 띠가 아름답게 너울진다. 과연 지리산 10경중 제1경인 천왕일출에 속할 만도 하다.

 

 

 ▼ 먹구름으로 보게 된 것은 일출의 역광으로 인해 검게 보였을 뿐 흰구름이 지리산을 덮친 것이다. 구름이 지나가는 속도가 바람의 속도이니 순간적으로 변하는 구름의 모양새가 뭔가 일을 낼 것만 같다.

 

 ▼ 일출도 여기까지...구름은 이내 해를 덮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기를 쓰고 일출을 보기 위해 선두로 달린 팀들은 천왕봉을 덮친 구름으로 인해 볼 수 없었으니 옆지기 아니었으면 일출 보기 위해 산행한 의미도 상쇄되었을 것이란 생각에 세상사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음을 새삼 느껴 보는 순간이다.  

     

 ▼ 렌즈로 당겨 본 천왕봉 일대의 빨갛게 물든 모습을 측광으로 담아봤다.

 

 ▼ 천왕봉 오르기전 잠시 쉬면서 일출을 본 조망터다.

 

 

 ▼ 과거에 없던 목재데크 계단이 놓여졌다. 그 당시 너덜길로 하산할 때 한눈 팔다가 돌부리에 넘어져 한바퀴를 굴러 순간 정신을 잃었는데 다친곳은 한군데도 없었고 특히 카메라가  멀쩡하여 그저 천왕봉 산신께서 돌봐주셨다고 생각하며 하산한 길이다.

 

 ▼ 정상석위로 올라가니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지금까지 소백산과 한라산 백록담의 칼바람만 기억에 남는데 이곳 천왕봉의 바람도 균형을 잡기가 어려울 정도다. 항상 사람들로 바글대던 정상에도 오늘은 한산해서 인증샷 담는다고 시간 지체하는 일 없이 곧바로 하산할 수 있었다.

 

 

 ▼ 이 바위에 통천문이란 한자가 새겨져 있다. 통천문을 하산길에 따로 있는데 이곳을 통천문이라고 한 표현은 아마도 천왕봉이 하늘과 통하는 길로 여겼던 모양이다.

 

 ▼ 구름이 천왕봉을 덮쳤으니 조망은 제로이고 더 이상 볼 것 없으니 선두팀을 쫒아 부지런히 하산하는 길 밖에 없다는 일념이다.

 

 ▼ 올라 올 때는 컴컴해서 주변을 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눈이나 상고대가 없이 밋밋한 산행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자칫 아이젠 없이는 도저히 다닐 수 없는 빙판길과 눈길이다. 갑자기 낀 구름으로 인해 상고대가 형성이 되었으니 조망이 없는 대신에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 준 것이다.

 

 

 ▼ 능선을 거칠게 넘는 구름층은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세찬 바람소리와 함께 지리산을 삼킬 듯 넘실대는 모습과 매서운 추위에 온 몸에 한기를 느끼며 자연앞에 인간의 나약함을 다시 한번 느껴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 상고대는 영하의 온도에서도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물방울이 나무 등의 물체와 만나 형성된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접하는 상고대이기에 별천지온 것 같다.

 

 ▼ 적설량이 어느 정도 있었더라면 더 멋진 풍경을 연출했겠지만 이런 풍경만이라도 볼 수 있는 것도 수고로움에 보답을 받는 특혜이다.

 

 

  ▼ 5년전에도 보았던 고사목이 그대로 서 있다. 구상나무로 추측되는데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란 말이 새삼 떠오른다.

 

 ▼ 해가 살짝 드러나기만을 기다렸지만 쉽게 열리지 않는다. 살짝 비춰진 풍경이 신비함을 더해 준다. 

 

 ▼ 통천문을 지났다. 1/3 지점도 못왔을테니 선두팀과는 많이 떨어진상태고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 아까 보여주지 않던 풍경이 이쯤에서는 훤히 드러났다. 구상나무 군락이 있는 지리산에서나 주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 이 계곡의 풍경은 가을단풍에도 멋진 곳이다. 상고대가 덜 형성이 되어 아쉽다.

 

  ▼ 바위를 배경으로 상고대가 도드라졌다. 수 많은 잔가지의 모습이 눈의 결정체와 같이 흉내낼 수 없는 예술작품을 만들어 놨다.

 

 

 

 ▼ 제석봉 주변의 고사목도 새롭게 자라는 나무와 어울려 조화를 이뤘다.

 

 

  ▼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 일출봉을 당겨봤다. 일출봉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변덕스런 날씨다.

 

 ▼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은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새벽에 햄버거를 먹고 출발했는데 공복으로 인해 뱃힘이 없으니 속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슈퍼에서 산 햇반을 꺼내 온수를 부으려는데 밥이 모두 얼어 손으로 비비니 가루가 되어 버린다.

꼼짝없이 굶을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는데 마침 후미를 위해 동행해 준 리딩대장이 버너에 커다란 만두봉지를 꺼내 끓이면서 같이 먹자고 해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다시 한번 겨울산행의 준비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 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오니 구름에 휩쌓였던 일출봉이 말끔히 가셨다. 파란 하늘도 간간히 드런난다.

 

 ▼ 뒤돌아 본 장터목대피소

 

 ▼ 연하봉에 도착했다. 내가 아는 지인은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지리산을 200번은 더 다녔을 것이라 하는데 이 연하봉 이름을 따서 닉네임을 연하라고 졌단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적든, 많던 연하일 수 밖에 없다. 난생 처음으로 접하는 연하봉은  참 아름다운 암릉을 가진 봉우리란 느낌이다. 

        

 

 

       

 ▼ 지리산은 육산이라 해도 간간히 눈길이 가는 바위들이 있어 즐겁다.

 

 

 ▼ 바위와 고사목이 어우러진 풍경

 

 ▼ 연하선경은 지리산 10경에 드는 좋은 풍경으로 어느 계절에 와도 좋을 듯 하다.

 

 ▼ 좀 전과는 달리 언제 조망이 없었냐는 듯 왼쪽 촛대봉이 보이고 영신봉으로 해서 멀리 반야봉, 노고단까지 보이는 날씨다.

 

  ▼ 뒤돌아 본 풍경...멀리 천왕봉으로 부터 제석봉, 연하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 당겨 본 풍경

 

 ▼ 이곳 지리산은 특히 구상나무가 많다. 한국 고유 특산종으로 고산지대의 추운 곳에서 자생한다. 이젠 온난화로 점차 자연 고사목이 증가하는 추세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외국에서도 알아주는 품종인데 잎 뒷면이 흰색을 띠고 있어서 비슷한 침엽수와 구별이 된다.

 

 

 ▼ 가까워진 촛대봉

 

 

 

 

 ▼ 촛대봉을 오르면서 뒤돌아 본 풍경

 

 ▼ 천왕봉의 남벽

 

  ▼ 연하봉

 

 ▼ 촛대봉

 

 ▼ 촛대봉 정상에서의 주변 풍경 

 

 

 

 ▼ 세석대피소와 영신봉, 멀리 반야봉과 노고단이 보인다. 작년에 화엄사로 부터 노고단을 거쳐 이곳 촛대봉을 거쳐 천왕봉, 중봉을 경유, 대원사까지 45km를 무박으로 종주한 팀들이 있으니 도대체 인간으로 보이질 않는다. 그것도 비오는 날 아무것도 조망되지 않는 날이니 말이다.

 

 

 

 

 ▼ 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좀 쉬었다 가기로 한다. 

 

 ▼ 세석평전(細石平田)...세석의 철쭉이 지리산 10경에 든다는데 철쭉이 피는 계절에 바래봉이 아니더라도 나름의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될 것만 같다.

 

 ▼ 세석대피소...총 수용인원이 190명으로 1996년에 건립한 지리산 대피소 중 가장 규모가 큰 현대식 대피소란다. 숙박을 할 수 있고 매점이 운용되고 있으니 지리산 종주를 꿈꾸는 사람들은 필히 이곳을 이용하게 된다.

 ▼ 이곳에서 거림주차장까지의 거리가 6km이다. 계곡의 돌로된 등로로 십리 반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야 하니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다.

 

 ▼ 세석대피소에서도 한참을 지나 하산길에 본 지리산 남부능선.

 

 ▼ 하산길이 얼음이 얼어 아이젠을 계속 착용하다 어느지점 부터 아이젠을 벗게 되었는데 발바닥의 피로가 누적됐다. 물집이 잡힌 회원도 더러는 있다더라.

 

 

※ 이렇게 해서 두번째로 오른 천왕봉 산행을 마쳤다. 지리산은 지금껏 이곳 저곳 찔끔 찔끔 다니긴 했다. 다만 종주를 못해서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도 남아있다. 1,500m가 넘는 고봉만도 10개, 1,000m넘는 고봉은 20여개, 전체 봉우리 80여개, 유명계곡만도 20여개가 되는 엄청난 크기의 산이니 감히 다 알 수는 없다.

오늘 지리산 10경 중 제1경인 천왕일출을 안본 듯 봤고, 제8경인 연하선경을 답사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언제 또 기회가 올런지는 예단할 수 없지만 그런 날은 또 오리라는 희망속에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