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경상북도

[김천] 황악산

갯버들* 2018. 11. 25. 17:23

2018년 11월 24일(토)

 

얼마나 기다렸던 황악산이던가! 물론 백두대간팀들이 이곳을 경유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 팀들과 올랐어야 하는데 그 기회를 잡지 못해 놓쳤던 산이다. 그러나 산행정보를 보면 높이만 높을 뿐 조망도 없고 볼거리가 있는 구석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는데 아마도 계절적으로 안 좋은 시기에 와서 더 그런 느낌일 것이란 생각이다. 영월의 태화산을 갔을 때 똑 같은 일기에 딱히 찍을 사진이 없어서 정상만 찍고 내려온 추억만 머리에 떠올랐다.

다만, 직지사가 눈에 들어오는데 3개 싸이트에서는 모두 100대 명산에 포함시킨 것은 직지사 때문일 것이란 추측이다. 유명한 사찰이라도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남들이 다 가봤을 산을 오늘 오르게 된 것인데 마침 첫눈이 내린다. 사실은 오늘이 내 생일이기도 하다.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을 가져야 함에도 굳이 산을 올라야 하는 것은 단순히 산을 좋아하기 때문인데 식구들도 이해를 하고 옆지기와 오르기로 한 것이다.

집을 나서자마자 눈이 아니라 비가 쏟아졌는데 이곳은 기온이 낮아서인지 함박눈이 펑펑 내리다가도 진눈깨비로 바뀌었다가 싸래기눈으로 금방 변하는 변덕스러운 날씨기도 하다. 옆지기는 아침에 슬그머니 빠지고 홀로 집을 집을 나선다.

 

산행정보

♣ 소재지: 주차장-김천시 대항면 향천리 308-3, 정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충북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

산행코스: 주차장-직지사매표소-직지사-운수봉 3거리 안부-백운봉-황악산정상- 직지사-황악산정상-원점회귀

거리: 왕복 13.6km (들머리:10:20, 날머리:14:35)

 

황악산 개요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代項面)과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梅谷面상촌면(上村面)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111m이다.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黃鶴山)으로 불렀다고 하며 지도상에도 흔히 그렇게 표기되어 있으나, 직지사(直指寺)의 현판 및 택리지(擇里志)에는 황악산으로 되어 있다.

서남쪽에 연봉을 이룬 삼도봉(三道峰:1,176m)·민주지산(珉周之山:1,242m)과 함께 소백산맥의 허리부분에 솟아 있다. 주봉(主峰)인 비로봉과 함께 백운봉(770m)·신선봉(944m)·운수봉(740m)이 치솟아 있으며, 산세는 평평하고 완만한 편이어서 암봉(岩峰)이나 절벽 등이 없고 산 전체가 수목으로 울창하다.

특히 직지사 서쪽 200m 지점에 있는 천룡대로부터 펼쳐지는 능여(能如)계곡은 대표적인 계곡으로 봄철에는 진달래, 벚꽃, 산목련이 볼 만하고 가을철 단풍 또한 절경을 이룬다. 그밖에 내원(內院)계곡과 운수(雲水)계곡의 경관도 뛰어나다.

북쪽의 괘방령(掛傍嶺)과 남쪽의 우두령(牛頭嶺)을 통해 영동군과 김천시를 잇는 지방도가 지난다. 정상에서는 서쪽으로 민주지산, 남쪽으로 수도산과 가야산동쪽으로 금오산, 북쪽으로 포성봉이 보인다. 등산시에는 직지사와 운수암을 거쳐 주능선에 도달하는 3~5시간 정도 되는 산행을 하게 되는데, 계곡길은 가파르지만 능선길은 경사도 완만한 편이다. 겨울의 설화(雪花)와 가을의 단풍이 아름다운 산으로 알려져 있다.

 

 ▼ 첫눈 치고는 장난이 아니다. 이런 날에는 카메라 휴대가 고민이다. 우의를 입자니 카메라 사용은 불가능한 일이고 우산을 쓰자니 스틱을 사용 못하는 불편함이 있다.

아이젠은 생각도 못한 일이고 우산을 써야 할 것 같은데 우산을 챙겨 오지 못했으니 고속도로 휴게소 노점상에서 우산을 사서 카메라를 휴대하기로 한다.

 

 ▼ 주차장에서 직지사를 지나야 포장길 임도를 벗어나 본격적인 들머리에 접어들게 된다. 함박눈은 내리는데 도로면에서는 녹으니 쌓이질 않아 다행이다.

 

 

  ▼ 도로가에 붙은 몇 마디가 눈길을 끈다. 살다보면 어쩌다 사람을 잃는 경우가 있다. 죽어서 잃고 신뢰가 깨져 잃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그런 일들이 없으면 좋으련만...

 

 ▼ 피라칸사 나무 열매에도 소복히 눈이 내려 앉았다. 흰눈과 대비되니 색깔도 더욱 선명하다.

 

 ▼ 직지사 일주문

 

 ▼ 직지사 금강문

금강문에는 남편을 그리워하다 죽은 한 여인의 애절한 전설이 전해 온다. 옛날 떠돌이 승려가 경상남도 합천 땅의 마을 촌장 집에 시주를 받으려고 들렀는데 그 집의 무남독녀 딸이 승려에게 반해 상사병에 걸려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딸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는 승려를 거두었고, 승려 역시 마음에는 없지만 여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혼인을 하여 처가살이를 했다. 그런데 아들이 태어나자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아내는 아들과 자신을 두고 떠나지 않을 것으로 믿고 깊숙이 감추어 두었던 목탁과 가사, 장삼을 내주었다.

이를 받아 쥔 승려는 다시 불심이 발동하여 야반도주를 했고, 전국을 수소문하던 아내는 남편이 김천 직지사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아들을 업고 합천에서 여러 날을 달려 지금의 금강문 자리까지 왔으나, 결국 아들과 함께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 매년 부인이 죽은 날이 되면 직지사 승려들이 한 사람씩 불려 나가 부인이 죽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 갔다. 이에 다급해진 절에서는 부인의 원한을 위로하고자 그 자리에 사당을 지어 해마다 기일에 맞추어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해, 도력이 높은 고승이 직지사를 찾았다가 제사 지내는 광경을 목격하고 크게 나무라며, 금강역사를 모신 금강문을 지어 여인의 원귀를 쫓아내라고 하여 지금의 자리에 금강문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직지사는 일주문과 금강문은 지나치게 멀고 반대로 금강문과 천왕문은 지나치게 가깝게 지어진 것이 다른 사찰과 차이가 나는데, 여인이 죽은 자리에 금강문을 짓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향토문화전자대전]

 

 ▼ 직지사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이다. 이름은 신라시대인 418년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를 창건한 후 황악산 직지사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절을 지으라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과 무염대사가 머물렀던 심묘사에 부속된 절로 남종선의 가르침인 '직지인심'을 표방한 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 능여대사가 이 절을 세울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량하였다고 해서 직지사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645년 자장율사가 중창한 이래로 930년, 936년에 천묵대사와 능여대사가 각각 중창하여 대가람이 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사명대사가 출가하여 득도한 절로도 유명하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비로전·약사전·극락전·응진전·명부전 등이 남아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금동6각사리함(국보 제208호), 석조약사불좌상(보물 제319호), 대웅전앞3층석탑 2기(보물 제606호), 비로전앞3층석탑(보물 제607호), 대웅전삼존불탱화 3폭(보물 제670호), 청풍료앞삼층석탑(보물 제1186호) 등이 있다.

 

 

직지사 경내에는 수백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감나무가 많은 것이 또 다른 특징인데, 이 감나무의 진상을 둘러싸고 조선왕실과 일촉즉발의 위기에까지 이르렀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직지사에서 궁중에 감을 진상하는 ‘직지사반시진상법’이 있었는데, 이것은 해인사 주지로 있던 학조대사가 직지사 주지를 겸하게 된 후 대군으로 있을 때부터 친분이 있던 세조에게 직지사에서 딴 감을 몇 개 진상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10대 연산군 때까지 직지사 감 진상이 이어져 왔으나, 연로해진 학조대사가 상소를 올려 차후에는 궁궐에서 관리를 보내 직접 감을 따서 갈 것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연산군은 학조대사를 벌주려고 했으나 왕비 신씨가 편지 한 장으로 학조대사의 뜻을 거두게 했다고 한다. 절에 보관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는 왕비 신씨의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존경하옵는 학조대사께

해마다 감을 따 머나먼 서울까지 보내는 직지사의 노고야 짐작을 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스님이 요청하신 바와 같이 궁궐에서 보낸 사람이 김천 땅까지 내려간다면 감나무의 풍흉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전년도의 양만큼 윽박질러 채워 오려 할까 심히 걱정됩니다. 선대 왕 때부터 맺어진 인정으로 받을 것이니 힘드시더라도 사찰의 형편껏 올려주심이 어떨까요.” [향토문화전자대전]

 

 

 ▼ 직지사 경내를 둘러보는 회원은 없고 외곽으로 난 임도를 따라 모두 올라갔다. 부지런히 따라 잡으려 오르지만 쉽질 않다. 별 볼거리도 없는데 무작정 정상은  올라서 뭣을 하려는 것인지...

 

 ▼ 어차피 회원 중에는 뒤로 쳐진 사람이 있게 마련, 20여분 부지런히 올라가니 꼬리가 잡혔다. 그리고는 금방 중간 선두에 자리 잡았다. 눈은 계속 내리고 스틱없이 경사진 등로를 오르자니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니다.

 

 ▼ 백두대간길인 운수봉에서 황악산 방향의 안부인 삼거리의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곳서 부터는  완만한 능선길이 될 것 같다. 그동안 없던 바람이 반대편에서 불어 오는데 잽싸게 바람막이로 보온을 유지해야했다.

 

  ▼ 첫 눈의 눈꽃이니 이정도로도 봐 줄만 하다. 이제 주야로 영하기온이 되면 눈은 녹지 않고 계속 축적되면서 이곳도 1,000봉이 넘으니 설산이 될 것이다.

 

 ▼ 조망만 된다면 민주지산도 보일텐데 바로 앞의 능선도 제대로 보이질 않으니 좀 답답한 산행이다. 그나마 첫 눈으로 인해 세상이 다른 모습으로 보이니 그것으로 만족이다.

 

                                   ▼ 꼬불 꼬불 난 소로길을 걷는 동안 힘든 것도 잠시 쉬는 타임이기도 하기에 산행을 이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 깔끔한 이정표가 중간 중간에 나 있고 힘을 내라는 문구를 세워 놓아 지자체에서의 등산객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 정상을 찍고 형제봉, 신선봉, 망봉으로 코스를 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등산코스인데 애당초 갔던길로 되돌아 오는 코스는 거의 못봤다.

하긴 그런 코스라 하더라도 오늘같은 날은 의미도 없었을 것이지만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산악회에서 정한 2년여에 걸친 100명산을 오늘로서 마지막으로 장식하는 날이라 쫑파티를 한다고 서둘러 하산하려고 한 일이니 어쩔 수도 없는 일이다.

 

▼ 올라가면서 못봤던 직지사의 건물들을 다시 한번 둘러 보는데 이렇게 큰 규모의 사찰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않겠냐는 생각을 해 보게 될 정도로 컸다.

 

 

 

▼ 하산을 해서 일부 회원들이 쫑파티를 위해 준비해 온 음식을 야외 공간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날씨가 좋지 않고 기온이 떨어져 식당에 장소만 빌려 먹기로 했단다.

산악회에서 정한 100명산을 제일 많이 한 회원 중 3위안에 든 회원은 3박 4일간의 백두산 산행 티켓을 준다고 했는데 80만 원 상당을 현금으로 지원해 준다고 하니 처음부터 100명산을 이 산악회에서 시작했더라면 상품을 떠나 내가 순위 안에 들었을 것이란 생각도 해 봤다.

어쨌든, 혜택을 본 회원들도 가세를 하여 이번 쫑파티에 포항에서 공수해 온 푸짐한 과메기에 홍어회무침, 돼지머리 편육에 양념족발, 갓김치에 어묵 국물을 직접 끓이고...막걸리에 소주, 모두 회원들이 직접 찬조한 것들이니 이런 포식이 또 어딨냐는 생각이다. 거나하게 한잔 하고 차에서 눈을 붙이고 떠 보니 벌써 상경을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첫눈이 내린 오늘 생일을 제대로 치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