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적상산
2018년 10월 21일(일)
어제 오대산에 이어 오늘은 무주의 적상산을 오르기로 한다. 오고 가는 시간이 산행시간보다 더 길때가 많아 피곤하긴 하지만 그 정도의 체력은 되기에 가능한 일이고 한번 기회를 놓치면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는 이유로 연일 산행하게 된다.
적상산은 군생활하면서 1984년 11월 2일에 안국사에 올랐던 추억이 사진으로 남아 있기에 그 추억을 더듬어 보고자 하는 마음도 크고 산림청이 지정한 100대명산에도 든다고 하니 단풍철을 맞아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오늘도 옆지기와 함께 하기로 하고 제대로 떠지지 않은 눈을 비비며 반사적으로 일어나 산행길에 오른다.
∥산행정보∥
♣ 소재지: 전북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169(서창공원지킴터), 전북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정상)
♣ 산행코스: 서창공원지킴터-장도바위-향로봉삼거리-향로봉-적상산정상-안렴대-안국사-적상호-주차장
♣ 거리: 7.4km(들머리-10:10, 날머리-13:40)
∥적상산개요∥
높이 1,029m이다. 소백산맥에 솟아 있으며,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에서 북서쪽으로 약 10㎞ 지점에 있다. 덕유산국립공원 북동부에 있으며, 주위에는 백운산·대호산·단지봉·시루봉 등이 있다. 산정부는 비교적 평탄하나,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암벽을 치마바위라고도 하며, 가을철이면 온 산이 빨간 옷을 입은 것 같다 하여 적상산이라고 했다.
동안·서안·북안에서는 금강의 지류인 무주남대천이 발원하며, 계곡이 방사상으로 발달했다. 적상산에는 단풍나무뿐만 아니라 소나무도 많아 주위의 바위와 잘 어울리고, 인근 마을에는 어디에나 감나무가 많아 가을의 경관이 특히 뛰어나다.
적상산성(사적 제146호)이 있으며, 조선 후기 성내에 적상산사고가 세워졌다. 성내에는 안국사와 호국사가 있다. [다음백과]
▼ 들머리 초입의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문제가 생겼다. 카메라를 촬영하고 나면 화면이 나와야 하는데 먹통이다. 분명 촬영은 되는데 화면을 볼 수 없으니 황당한 일이다. 사진이 찍히는 것인지 안찍히는 건인지 알 수가 없는 가운데 무작정 찍어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촬영이 되든 안되든 카메라로 일단 셔터 눌러대고 휴대한 핸드폰으로 한번 찍는 방법으로 풍경사진을 건져 보자는 생각이니 머리가 복잡해 진다.
▼ 첫 조망처에서 바라본 풍경...들머리로 부터 오르는 등로에는 단풍나무는 없고 참나무 종류가 많아 아직은 푸른색을 띠고 있다.
▼ 중간쯤 오르자 단풍나무가 보이기 시작하고 단풍이 제대로 들었다. 역시 그 어느해 보다 단풍이 곱게 들었음을 느낄 수가 있다.
▼ 두번째 조망처에서 보는 풍경...정상쪽으로는 오늘이 절정이다. 적상산이란 말 그대로 붉을 적(赤)자에 치마 상(裳)으로 붉은 치마를 두른 듯한 산이란 뜻이니 단풍이 얼마나 잘 들면 산명(山名)이 그러하겠냐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 들머리에서 쉬엄 쉬엄 올라온지 1시간여만에 장도(長刀)바위에 도착했다.
고려말 최영 장군이 민란을 평정하고 개선(凱旋)하던중 이곳에 이르러 산 전체의 붉은 단풍과 깎아
세운 암벽에 띠를 두른 듯한 아름다움에 이끌려 산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절벽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 절벽같은 바위가 길을 막고 있어 더 이상 산을 오르지 못하게 되자 정상을
앞에 두고 발길을 돌릴 수 없었던 최영 장군은 허리에 차고 있던 장도를 뽑아 바위를 힘껏 내리쳤다.
그 순간 바위가 양쪽으로 쪼개지면서 길이 열렸다하여 장도바위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안내문]
▼ 적상산성 서문에 도착...
무주군 적상면에 있는 적상산(1,034m)은 사방이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산 위의 안국사가 있던 너른 분지에 무주양수발전소 상부 댐인 적상호가 자리를 잡았고 이 산정호수를 에워싼 능선을 따라 길이 8,143m의 적상산성이 있다. 고려 때 거란의 침입이 있었을 때마다 인근 수십군의 백성들이 난을 피해 목숨을 보전했고, 고려말 왜구들의 침입때는 삼도안렴사가 병사들을 이끌고 들어와 진을 쳤던 고성(古城)이다.
고려 말 공민왕 23년(1374) 삼도도통사 최영(崔瑩)장군이 제주를 토벌하고 서울로 오르는 길에 이곳을 지나다가 사면이 깎아 세운듯한 암벽으로 둘러싸여 천혜의 요새를 이룬 준험함에 감탄하고 훗날을 대비하여 성을 쌓을 것을 왕에게 건의한 바 있었다. 그 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산성을 수축하고, 5대 사고 북쪽 요향산사고가 북쪽 지방이 위험해지자 천혜의 요새인 적상산에 적상산 사고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국사(國史)를 지켜왔던 유서깊은 사적지이다.
무주 적상산 서문지
서문은 일명 용담문이라고도 하였으며, 규장각에 소장된 (적상산성조진성책)의 기록에 의하면 2층 3칸의 문루가 있었다고 전한다.
성문밖의 서창과 고경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서창은 미창과 군기창이 있었으나 지형이 험하여 성내까지의 운반이 어려워 조정에 상서하여 성내 사고지 옆으로 옮겼다고 전하며, 지금도 마을 이름을 서창이라고 한다. [안내문]
▼ 오늘에서야 제대로 된 가을단풍을 만끽하게 된다. 은은한 색감의 단풍의 황홀감에 별세계에 와 있는 듯하다.
▼ 정상능선으로 접어 들어 향로봉으로 향하는 등로는 올라오는 동안의 그 화려함도 이곳에 이르러서는 황량함만 남았다.
▼ 내 카메라를 믿지 못해 남의 카메라로 인증샷을 남기려 했더니 이 모양이다. 몇 분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찍은 사진인데 뷰파인더로 봤더니 이상해 보여 카메라 주인에게 여쭤봤더니 그렇게 설정해 놓은 거라고 해서 믿었더니...ㅠㅠ
▼ 뷰파인더에 나타나지 않고 셔터만 눌러댄 내 카메라가 나중에 보니 메모리에 제대로 저장된 것이다. 이런 줄 알았으면 더 많은 사진을 남겼을 것인데 아쉽다.
▼ 내 카메라는 거의 제쳐두고 인증샷을 남의 카메라에 맡겼는데 제대로 나온 것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적상산에는 정상석이 없어 이 표지판으로 대신한다.
▼ 안렴대 쪽으로 가다가 조망처에서 바라본 북서쪽 풍경
▼ 안렴대에서 바라본 남쪽 풍경
적상산 남쪽 층암절벽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사방이 낭떠러지로, 이곳을 오르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한다. 고려시대 거란이 침입했을 때 삼도(三道) 안렴사(按廉使)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로 불려지고 있다. 또한 병자호란(1636~1637년)때는 적상산사고실록을 안렴대 바로 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고 한다.
▼ 안렴대에서 바라본 남쪽 방향의 풍경
▼ 안렴대에서 바라본 남서 방향의 풍경
▼ 안렴대에서 바라본 북쪽 방향의 풍경
▼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단풍이다. 한때는 푸른 빛으로 시원한 그늘을 선사했던 단풍도 이렇게 세월앞에 물들지 않으면 안되니 우리네 인생도 다를 바가 없다.
▼ 안국사에 도달했다. 군생활 시절 이곳에 작업을 하러 1개 부대가 갔었던 일이 있다. 그 배경에는 지휘관의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니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말하기조차 그렇다.
아무튼, 34년이 지난 그 시절의 추억을 더듬을 만한 것은 거의 없다. 새 건물들이 들어서고 지형이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 당시 초라하기 짝이 없었던 사찰이 이렇게 번창해 있을 줄은 몰랐다.
▼ 안국사는 이곳 저곳 신축으로 공사중에 있다.
▼ 34년전 이 극락전 앞에서 촬영한 사진 한장이 유일하게 추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단서로 남아 있는데 지붕은 낡고 단청도 안되었던 그때와 비교하면 정말 화려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적상산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찰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에 월인화상이 지었다고 전한다. 광해군6년(1614) 적상산성 내에 사각이 설치되고, 인조 19년(1641)에 선운각이 설치되어 적상산 사고로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족보인 선원록이 봉안되었다. 이때 사고를 방비하기 위하여 호국사를 지었으며, 안국사는 그 전부터 있던 절이었으나, 호국사와 더불어 이 사각을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되어 안국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적상산 양수발전소 건설 때문에 이 사찰은 호국사지의 위치로 옮겨져 안국사가 호국사지에 있다.
전각 15여 개로 1995년 이건, 중창되었고 산 정상에 산정호수가 조성되어 있다. 가을철 단풍이 절경이며, 산 정상까지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할 수 있다. 인근에는 무주리조트와 라제통문 구천동 계곡이 있다.
주요문화재는 보물 제1267호 영산회상괘불과, 유형문화재 제42호 극락전, 제85호 호국사비, 사적 제146호 적상산성, 기념물 제88호 사고 등이 있으며, 세계의 불상을 수집하여 모신 성보박물관이 있다.[대한민국 구석구석]
▼ 안국사 일주문...안쪽에서 촬영해 봤다.
적상산 사고터에서 굽이돌아 오르는 안국사의 초입에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목조 맞배건물인 일주문이 있다. 낮은 단층기단 위에 다듬지 않은 2개의 기둥을 일렬로 세운 뒤 창방과 평방을 얹고 그 위에 화려하기 그지없는 다포로 장엄하였다.
일주문에는 1992년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이 쓴‘적상산 안국사(赤裳山安國寺)’라는 편액과 1995년 여산(如山) 권갑석(權甲石)이 쓴 '국중제일정토도장(國中第一淨土道場)’이라는 2기의 편액이 걸려 있다.
특히 권갑석(權甲石)이 쓴 편액 ‘國中第一淨土道場’은 무학대사가 이곳을‘국중제일의 길지'라고 한 설화에서 유래한 편액으로,안국(安國)과 정토(淨土)를 바라는 안국사의 염원을 담고 있다.
▼ 일주문을 지나 임도를 따라 하산하는데 단풍이 너무도 운치가 있다. 내장산의 경우 도로를 따라 식재해 놓은 단풍은 아무리 물이 잘 들었다해도 자연미가 없어 그저 단풍으로만 보일 뿐인데 이곳 같은 분위기의 은은하게 물든 단풍이 보기 좋다.
▼ 하산해서 적상호에 도착했다. 적상호 주변의 단풍은 그야말로 내장산의 단풍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호수 주변의 도로를 따라 적상산전망대까지 갔었어야 했으나 시간이 지체되어 포기하고 말았다. 옆지기가 무릎이 안좋다하여 발맞춰 걸어야 하는 상황도 그렇지만 사진을 찍는다고 너무 시간을 소비했기 때문이다.
▼ 무주양수발전소 상부 댐인 적상호 풍경...
▼ 수량이 줄지 않았다면 단풍의 반영도 멋졌을 것이란 생각이다. 푸른하늘과 푸른 호수가 만나 마음이 푸르고 단풍을 만나 오색이 된다.
♣ 이렇게 해서 무주의 적상산을 34년만에 올랐다. 그 당시 이 지방 근방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올랐던 산이고 이번엔 옆지기와 함께 올랐으니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인가! 카메라가 속을 썩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건질 수 있어서 또한 기쁘다.
적상산이 왜 적상산인 줄을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고 가을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이었음을 알게된 계기가 되었다. 비록 그리 알려지지 않은 듯 하지만 역사적인 유적지와 유명 사찰, 그리고 양수발전을 하는 댐인 적상호의 풍경도 즐길 수 있는 그 어느 곳보다 좋은 곳에서 힐링할 수 있어서 보람이 있다.
마지막으로 버스를 타고 10분거리의 머루와인동굴에 들러 한잔 하는 것으로 오늘의 산행일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