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광덕산
2017년 12월 10일(일)
어제 토요일은 지금까지 블로그나 기타 정보에 의해 입맛만 다시던 가평의 몽가북계(몽덕산~가덕산~북배산~계관산)를 종주하는 공지가 떠서 일찍 신청을 한 상태에서 산행하는 날이었다. 수년전에 야생화를 촬영하러 북배산 계곡을 갔다가 그냥 온 적이 있어 한번 오르고 싶었던 곳인데 하필 초교 동창회 송년회가 그날 있다는 연락에 망설이다 결국 산행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 이튿날인 오늘은 산악회의 깃수가 새로 출범하여 첫 산행지로 천안의 광덕산을 가게 되는데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산을 어찌하여 택했나 보니 블야의 100대명산에 포함되어 일부 회원들의 요구도 있었고 초겨울 아니면 공지할 기회가 없다고 판단한 것도 있지만 가까운 곳을 택했다는 후문이다. 어쨋든 송년회 때문에 못가게 된 산행을 이튿날인 이곳을 가려고 신청하려 하니 이미 기회를 놓쳐 버렸다.
44인승 버스로 4대가 만차인데 더 이상 증차는 하지 않은 상태이니 뭔 일인가 싶었다. 알고보니 참석자에게 기념품으로 코펠을 준다고 하니 너도 나도 신청을 하여 2대로 가려던 산행이 4대로 증차까지 한 상황이다. 산행이 목적이 아니라 기념품에 눈독들을 들여 난리법석이니 그저 나같이 아무것도 모르고 산행만 하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잘 아는 대장에게 사정얘기를 하니 조수석에라도 앉아 가면 된다고 무조건 나오라고 한다.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가게된 것인데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우중인 날씨다. 어제 술한잔 걸치고 아무생각 없이 대충 준비해 나선 길인데 비까지 오고 있으니 이 무슨 일인가! 다시 우산을 집어 들고 가까스로 시간 맞춰 차에 오르니 두자리가 비었다는 얘기다. 아마 날씨가 이러니 산행이 목적이 아닌 사람은 기념품이고 뭐고 다 집어칠 심산으로 불참한 것일테고 나는 그런 분들의 덕분으로 자리잡고 갈 수 있었으니 참으로 웃기는 일이다.
∥산행정보∥
♣ 행정구역: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 647-11(광덕사 주차장), 충남 아산시 송악면 마곡리(정상)
♣ 산행코스: 광덕사-김부용묘-장군바위-광덕산 정상- 팔각정- 광덕사
♣ 거리: 약 6.7m(들머리-10:40, 날머리-14:10)
∥광덕산 개요∥
높이는 699m이다. 아산시 송악면과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의 경계에 있는 천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예로부터 산이 크고 풍후(豊厚)하여 덕이 있는 산이라 하였다. 명산으로서 나라에 전란이 일어나거나 불길한 일이 있으면 산이 운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광덕산 부근에서 생산한 호두는 껍질이 얇고 알이 꽉 차서 천안시의 대표적인 명산물이다.
산에는 광덕사, 잣나무 군락지, 장군바위, 강당사 등의 볼거리가 많다. 광덕사에는 고려사경(보물 390)·광덕사 대웅전(충남문화재자료 246)·광덕사 삼층석탑(충남유형문화재 120) 등의 문화재가 있고, 이밖에도 호도나무 전래비와 조선시대 기생 김부용의 묘가 있다. [출처:두산백과]
▼ 들머리에 도착하자 마자 쏟아지는 빗줄기가 정말 산행을 망설이게 했지만 다행히 금새 그쳤다. 참석 인원이 176명이니 단일 산악회 치고는 대단한 인원이다. 그러나 절반이상은 짧은 코스 또는 아예 들머리 주변에 눌러 앉아 먹자판을 벌일 모양새다.
▼ 광덕사가 제법 규모가 큰 절인 것은 답사 후에 알았다. 어느 명산이든 사찰은 있게 마련이고 알려지지 않은 사찰도 많기에 그냥 그렇게 봤던 터였다.
▼ 이 불상은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하다. 광덕사방향으로 오르면 짧은 코스이고 오른쪽으로 오르면 긴 코스다.
▼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별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 광덕사 주변의 이곳 저곳에 그리 오래되지 않은 건물들과 불상, 석탑들이 놓여져 있는 것을 보면 사찰의 규모가 짐작이 간다.
▼ 천불전(千佛殿)
▼ 아쉽게도 조선의 여류시인 운초 김부용묘를 둘러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 진눈개비가 간간이 내리는 가운데 새벽부터 내렸는지 땅은 젖어 질퍽이고 낙엽과 함께 미끄럽기까지 하다.
▼ 주변 조망은 안개로 인해 꿈도 못꿀 판이다. 단풍나무로 봐서는 가을에는 제법 운치가 있을 듯도 하다.
▼ 어느덧 장군바위까지 올라왔다. 정상이 가까워진 모양인데 안개로 인해 가시거리가 100여미터나
되는가 싶다.
▼ 정상부위가 가까워 올 수록 눈이 쌓여있고 다져진 눈은 빙판이 져서 미끄럽다. 한손에 우산을 들고 있어 스틱도 안한 상태로 아이젠을 착용해야 되나 머릿속이 복잡해 진다.
▼ 어제와 같은 날씨였다면 하는 생각을 해 보지만 이런 날은 또 그런대로 느낌이 좋다.
▼ 대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정상석에 올라섰다. 정상석 밑에는 아산시와 천안시
가 함께 표시되어 있다. 이곳이 아산시와 천안시 경계지점인 모양이다.
들머리는 천안시인데 정상은 지도상에서는 아산시로 표기되어 있으니 말이다.
▼ 정상에서 가파른 능선을 타고 한시간쯤 내려오니 팔각정에 다다랐다. 이곳에서 원점회귀인 광덕사까지 20분이면 내려갈 거리다.
▼ 광덕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마곡사는 그 산너머 남쪽에 자리한다. 652년(진덕여왕 6)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불치(佛齒) 1과와 사리 10과, 금은자(金銀字) 《화엄경》 《법화경》 《은중경(恩重經)》 각 2부 등을 승려 진산(珍山)에게 주어 새 도량(道場)을 연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1464년(세조 10) 세조가 이 곳에 거동하였을 때 한계희(韓繼禧)에게 명하여 전지(傳旨)를 써 내렸는데, 위전(位田)를 바치고 각종 요역(徭役)을 면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 28방(房)에 부속암자가 약 89개, 9개의금당(金堂), 80칸의 만장각(萬藏閣), 3층으로 된 천불전(千佛殿)은 불교도의 구경거리가 될 정도로 번창하여, 경기 ·충청 일대는 물론 전국에서도 손꼽는 대찰이 되었다.
그러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버려, 가까스로 대웅전 ·천불전만 중건되어 큰 절의 명맥만을 유지하였고, 1981년 대웅전 ·천불전 등을 신 ·증축하였다. 광덕사 고려사경(高麗寫經)인 보물 제390호 《금은자 법화경》(6책)과, 천불전의 대형 후불탱화 3점, 《금자사적기(金字事蹟記)》 《세조어첩(世祖御帖)》 등 문화재가 있다.
그런데 1680년(숙종 6)에 안명로(安命老)가 쓴 이 《사적기》는, 이 절의 개창을 신라 흥덕왕 7년(832)으로 적고 있는데, 자장을 흥덕왕 때 사람으로 착각한 듯하다. 또 《태종실록》(28권)에 따르면, 1414년(태종 14) 가을에 왕명으로 《대반야경(大般若經)》(전부)을 일본의 승려 규도(奎籌)에게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출처:두산백과]
▼ 삼층석탑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이다. 본래 탑은 부처님의 사리나 유품을 모시기 위하여 만들어진 건조물이나 나중에는 가람배치상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1층의 지붕돌이 2층의 몸돌과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2층의 지붕돌도 3층 몸돌과 하나로 되어 있다.
지붕돌의 낙수면(落水面)은 경사도가 심하고 처마의 곡선이 경쾌하고 추녀 끝이 반전되어 있다. 전체적인 양식과 수법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광덕사는 사적기에 의하면 832년 (신라 흥덕왕7년)에 창건되어 고려 1384년(충혜왕 후(後)5년)에 고쳐지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여러차례 고쳐 지은 사찰이다. [안내문]
▼ 보화루와 범종각 그리고...호두나무
호두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이남 지역에 주로 분포하며, 약 20m까지 자란다. 꽃은 4~5월에 피고 9월에 둥근 열매가 익는다.
이 호두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8.2m이며 지상 60cm 높이에서 두 개 줄기로 갈라져 가슴높이의 둘레가 각각 2.62m, 2.50m 이다. 호두나무 3m 앞에는 이 나무의 전설과 관련된 '유청신 호두나무 시식지'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약 700년 전인 고려 충렬왕 16년(1290)9월에 영밀공 유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두나무의 어린 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어린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 선생의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의 나무가 그때 심은 것인지의 정확한 근거자료는 찾지 못하고 있다. 이곳 마을에서는 이것이 우리나라에 호두가 전래된 시초가 되었다 하여 이곳을 호두나무 시배지(처음 심은 곳)라 부르고 있다.
이 호두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 온 나무로서 문화적.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안내문]
지금까지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를 먹어 왔는데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로 이어져 온 호두로 지역 상품화가 이뤄졌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모른채 지내왔으니 한편으론 부끄럽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산행은 나에게는 의미있는 산행이다. 얼마전 한상자 사 놓은 호두를 까먹고 있는 실정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