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섬/인천

[인천 옹진군] 연평도 기행

갯버들* 2011. 5. 29. 22:16

평생 가보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연평도를 우연히 가게 됐다. 아는 지인이 연평도가 고향이고 별장도 있기 때문이다.

벌써 계획되어 있었지만 출발 일주전에 북한의 도발로 인하여 취소되었었다. 내 학창시절만 해도 연평도는 조기생산지로 교과서에 그 내용이 실렸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때의 연평도에 대한 이미지가 아직도 남아 있기에 이것 저것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섬이다. 특히 이번 북한의 예기치 못한 도발로 그 현장을 가보고 싶은 마음 또한 숨길 수 없다.

내 고향이 그러한 환경에 위치하기에 그 분위기와 느낌을 받고 싶어서다. 역시 한 국가의 국력이란 나의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와 국가, 국가와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 의미있는 일정이었다.

 

※ 연평도 개요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延坪面)에 딸린 섬.
위치: 인천 옹진군 연평면
면적:대연평도 7.01㎢, 소연평도 0.24㎢
인구: 대연평도 1,176명(1999), 소연평도 88명(1999)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이루어져 있다. 대연평도는 면적 7.01㎢로, 1999년 12월 말 현재 450세대에 1,176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소연평도는 면적 0.24㎢로, 39세대에 8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북서쪽으로 38선과 인접하며,북한 해안포 진지와 불과 12km 떨어져 있다.

지명은 평평하게 뻗친 섬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출토된 토기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938년 황해도 벽성군에 편입되었다가 1945년 경기도 옹진군으로 편입되었고, 1995년 인천광역시로 통합되었다.

196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조기 어장이었으나 현재는 꽃게잡이로 유명하다. 병자호란때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를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중 선원들의 부식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배를 대고 나뭇가지를 꺾어 개펄에 꽂아두었더니 물이 빠진 뒤 가지마다 조기가 걸려 있었으며, 이것이 조기잡이의 시초가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섬에는 임경업장군각(林慶業將軍閣)이 있어 주민들이 출어에 앞서 풍어제를 지내는 관습이 있다.

대연평도의 동쪽에는 방파제(856m)가 설치된 2종항인 연평도항이 있고, 남쪽 끝에는 등대가 있다. 한편, 소연평도에서는 함철품위(含鐵品位) 50.4%인 타이타늄자철광상이 발견되었다. 1999년 6월 북한 어선이 계속 이곳 앞바다를 침범함으로써 6·25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의 해군 함정이 최초의 교전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연평도는 한동안 뉴스의 초점이 되었고 꽃게잡이가 금지되면서 주민들이 생계를 위협받기도 했다. [네이버]

 

 

 ▽ 신분증 지참은 필수, 인천시민은 50% 할인, (편도44,400*0.5=22,200원)

 

▽ 연안부두에서 연평도까지 가는 시간은 고속훼리로 2시간이 좀 넘게 걸렸다.

 

▽ 대청도, 백령도행과는 달리 좌석번호가 별도로 없다. 아무데나 앉으면 본인 좌석이다.

 

 

▽ 인천항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갖가지 선박들도 눈요기감이다.

 

 

▽ 인천대교...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 소연평도에 다다랐을 때 지인이 알려줘서 잽싸게 촬영한 얼굴바위이다.

 

▽ 확대를 해서 보니 우연히 얼굴이 두개이다. 한개는 남자얼굴 같고, 작은 한개는 여성얼굴로 보인다.

 

 

▽ 소연평도에서 바라본 대연평도 전경

 

▽ 소연평도 선착장과 마을

 

 

 

▽ 드디어 대연평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북한의 포격에 의한 도발이 얼마나 무차별 이뤄졌는지를 황폐해진 야산의 모습에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 연평도 마을 모습- 거의 한곳에 집중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동서로 큰도로가 나있고 작은 샛길이 역시 골목마다 동서로 길게 나있다.

 

 

 

 

▽ 폐허로 변한 주택등 각종 공사 착공을 위한 행사가 있을 예정이라는데, 현재 수백명의 공사인부가 들어 와 있다는 후문이다.

 

 

 

▽ 내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하고 현장에 가보고 싶었던 장소이다. 첫 포탄이 낙하될 시점에 한 주민이 어디로 피해야할지 몰라 어쩔 줄 모르는 모습과 이곳 면사무소 간판이 붙어있는 정문기둥에 몸을 숨기고 움추린 모습이 충격적으로 뇌리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 면사무소 주변에 포탄이 떨어지는 장면은 아마 이 전봇대에 붙어있는 가로등 바로 밑의 무인카메라였을 것이다.

 

▽ 면사무소 바로 왼편에는 연평초등학교가 아름답게 위치해 있다.

 

 

 

▽ 면사무소에서 우측으로 조금만 가면 연평중고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 학교내에도 대피소가 있다.

 

▽ 카메라를 든 관광객들의 발길도 부쩍 는것 같다.

 

▽ 해양경찰 파출소

 

▽ 중심가에는 농협이 있고 바로 앞에 큰 대피소가 있다.

 

▽ 팔각정에서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 숙소에서 내려다 본 마을

 

 

▽ 숙소

 

 

 

 

▽ 군부대를 노려 야산에 1차의 집중적 포격은 동서로 길게 흔적이 남아 있고 화재로 인해 벌목이 되어 흉물스럽다. 

 

 

▽ 마을 중심가에 무차별 포격으로 소실된 주택, 상가, 아직도 그 때의 긴박함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듯하다. 아직 복구가 안된 상태로 남아있다.

 

 

 

 

 

 

 

▽ 마을 주변에는 이와 같은 대피시설이 되어있었다.

 

 

▽ 피해 가구에 대한 임시주택을 마련된 곳 30채

 

 

▽ 육용사 충혼탑 가는 길

 

 

 

 

▽ 연평해전 추모공원

 

 

 

 

 

 

▽ 군터널관광시설로 터널 안에는 서해5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더불어 안보의식을 갖도록 하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 해안포 전시물

 

 

 

▽ 망향을 달래는 전망대로 망향비가 세워져 있다.

 

 

 

 

▽ 망향공원에 올라보니 북한이 한눈에 들어오고 코앞에 보이는 바닷가에는 중국어선이 벌집같이 운집하여 조업을 하고 있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NLL(북방한계선)북한쪽에서 어업을 하니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 반하

 

▽ 조기역사관으로 가는 오솔길

 

 

 

▽ 조기역사관은 수리중이다.

 

 

 

 

 

▽ 조기역사관 부근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해변모습

 

 

▽ 빠삐용 바위

 

▽ 등대공원에서 바라본 소연평도 전경

 

▽ 구지도- 지금은 중단된 과거 아군 포사격훈련 장소이기도 하다.

 

▽ 구리봉 해수용장-주말 오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병사들...성급히 바다에 뛰어 들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 약수터

 

▽ 임원진, 현지주민과 함께 한컷.

 

▽ 마을 앞 바다풍경

 

 

▽ 귀가준비...

 

 

 ▽ 눈물의 연평도 노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