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4일(토)
북한산을 오르고 2주 만에 산행에 오른다. 지난주 일요일에 충남 금산군에 있는 200대 명산인 진악산이 예약되어 있었으나 전날 송년회 모임에 밤늦도록 과음하는 바람에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과음으로 인해 이튿날 산행을 포기해 보기는 처음이다. 모처럼의 기회를 술로 인해 놓쳐 버렸으니 후회막급이다.
이래저래 12월은 행사가 많아 산행하기도 쉽지 않은 달인데 오늘은 이곳저곳 저울질하다가 경북 안동에 있는 학가산을 선택하기로 한다.
안동은 김행(金幸)이 고려 개국공신으로 태조 왕건이 권세 權의 성씨를 하사하여 권행(權幸)이 되면서 권 씨의 시조가 되니 안동에서는 역시 고려 개국공신인 김선평, 장정필과 함께 같은 본관으로 "삼태사(三太師)" 가 되어 현재까지 태사묘에 위패를 모시고 있는 곳이다.
나의 본관이기도 한 그러한 안동을 태사묘에 한번 들러본 이래 지금까지 가본 적이 없다. 어떤 도시든 대표할 만한 산들이 있는데 안동에서는 학가산으로 나에게만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다 싶어 택한 산이다.
∥산행정보∥
♣ 소재지: 들머리-경북 안동시 서후면 재품리(천주마을), 정상-경북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 날머리- 경북 안동시 서후면 재품리(광흥사 일주문)
♣ 산행코스: 천주마을-마당바위-신선약수-삼모봉-유선봉-국사봉-어풍대-임도정상-당재-복지봉-광흥사-광흥사일주문
♣ 거리: 10.8km(들머리-10:30, 14:30)
∥안동 학가산 개요∥
학가산은 경상북도 안동시와 예천군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서, 안동의 진산(鎭山)이다. 이 산은 안동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문수지맥 중에서도 매우 우뚝솟은 산이다. 전체적인 산세는 능선이 동서로 뻗어 있으며, 정상부는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바위와 흙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최고봉은 국사봉인데, 현재 이곳에는 예천에서 세운 정상석(어풍대)과 안동에서 세운 정상석(국사봉)이 각각 세워져 있어서 2개의 정상석을 지닌 산이다.
조망은 무척이나 우수하여 정상부에 오르면 동쪽으로는 멀리 영양의 일월산(日月山)이 바라다 보이고, 북쪽으로는 발아래로 휘돌아 흐르는 내성천 위로 영주시내와 소백산이 웅장하게 다가오는 등 사방으로 영남의 북부지방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산정상부에는 소나무숲과 참나무숲이 울창하고,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와서 쌓았다는 '학가산성(鶴駕山城)'이 동서(東西)로 남아있다.
또한 신비로운 능인굴, 삼모봉의 거북바위, 상사바위, 신선바위, 적섭탑 등 각종 기암괴석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에 봄이오면 매화꽃이 붉게 물들고, 군락을 이룬 함박꽃 향기가 은은하다. 더불어 북쪽기슭에는 자연휴양림이 있고, 남쪽기슭에는 과거 화재의 흔적을 간직한 광흥사(廣興寺)가 고즈넉히 자리하고 있다.
학가산이라는 이름은 "학 학(鶴), 수레 가(駕)"자로서, 산의 모양이 "학이 수레를 타고 날아가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영주에서는 정상이 평평하게 보인다고 하여 '선비봉'이라 하고, 안동에서는 정상이 울퉁불퉁하게 보인다고 하여 '문둥이봉', 예천에서는 산세가 수려한 인물로 보인다고 하여 '인물봉'이라고도 한다.
▼ 수년간을 산행을 하면서 오늘처럼 알바를 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내 생애 전무후무한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들머리에서 올라 학가산 정상인 국사봉을 지나 어풍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하산길에서 느리티란 이정표로 하산했어야 하는데 버스 안에서 리딩대장의 산행 설명에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지명이고 또 상사바위 쪽으로 이동하라는 말만 듣고 하산하다 보니 고개가 나오는데 임도 정상인 곳이 당재일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고 앞서 가던 회원이 있기에 무작정 첫 번째 R지점으로 따라갔던 것이 잘못이다.
결국 귀찮아서 안 보던 트랭글 앱을 살펴보니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내려 온 것을 알고 앞서 가던 회원을 불러 잘못 왔음을 알리고 함께 임도를 따라 하산하는데 임도 삼거리쯤에서 우리쪽으로 내려오는 회원이 있어 당연히 오른쪽 길인 줄 알고 두 번째 R 지점으로 접어 든 것이 큰 착오였다. 직감으로 방향이 이상하다 싶어 앱을 살펴보니 한참을 알바한 후 였다.
다시 두 회원과 함께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임도에서 산길을 오르는데 조금 앞서 가던 두 회원을 따라 오르던 중 세 번째 R지점에서 잘못 길을 접어들었음을 알때쯤에 산악회 후미팀이 우리 뒤를 따라왔다. 오늘 걷는 총거리는 6km나 될까 한 거리로 아는데 거의 두배를 걷고도 후미와 합류하였으니 애당초 빠른 걸음이었다.
본관인 안동에 모처럼 와서 아마도 조상님들이 너무 빨리 가길 원하지 않아서 발목을 붙들지 않고서는 그리 큰 산도 아닌 곳에서 이렇게 헤맬 수가 없었다는 생각까지 든다. 하긴, 한 시간 이상을 빨리 도착했었던들 광흥사 일주문인 날머리 부근엔 민가가 없어 쉴만한 곳도 없으니 알바로 인한 적당한 거리를 운동한 셈이다.
▼ 들머리인 천주마을 부근까지 버스가 오르니 해발 400여 미터 지점이다. 정상이 882m이기는 하나 절반은 올라 온 셈이고 산행거리 6km에 주어진 시간이 4시간 30분으로 달팽이 산행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바로 위로 보이는 정상을 향해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산간 마을은 많다. 이곳까지 올라오는 시멘트 길은 버스의 양방향 통행이 쉽지 않음에도 이렇게 높은 곳까지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보면 강원도 지역만 산간 마을이 아니다.
▼ 마을 이정표 오른쪽 소로길로 접어 들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 10여분 쯤 올라오니 마당바위가 있는데, 이 정도가 마당바위라면 왠만한 산에는 운동장바위가 있는 셈이다.
▼ 나중에 알고 보니 마당바위 근방에서 신선바위 쪽으로 암벽을 로프로 올라야 하는 코스가 있음을 알게 됐다. 안내문 없이 신선약수란 곳인데 물은 찾아볼 수 없고 있다 하여도 식수로 가능한지 모르겠다.
▼ 동학가산성(東鶴駕山城)
안동의 유명한 향토지인 영가지의 기록에 의하면 학가산에는 두 개의 산성이 있다고 하였다. 누가, 언제, 무엇을 위하여 쌓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편의상 천주산 뒷산에 있는 이 산성을 동학가산성이라 부른다.다만 고려말 공민왕의 안동 몽진과 관계이 있다는 설이 있을 뿐이다. 이 성은 최대한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쌓아진 옛 석성이지만 흙과 돌을 함께 사용한 부분도 있다. 성 내부에는 무수한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기와지붕을 이은 건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쪽의 신전리 방향으로 6조 터와 성문 터가 있었다는 말은 있으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안내문]
▼ 산세는 제법 가파른 편이다. 전형적인 육산으로 안전을 위해 로프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산행이 수월하다.
▼ 첫 조망터에 올라와 내려다 보니 미세먼지로 조망이 되질 않아 아쉽다.
▼ 안동지역의 제일 높은 산이어서인지 방송국 송신탑들이 즐비하다.
▼ 드디어 능선을 다 올라 첫 봉우리인 삼모봉(三矛奉)에 도착했으나 진행방향에서 반대방향에 있어 혼산을 하다보니 삼모봉인 줄은 모르고 바위가 기이해 보여 촬영만 해 놓은 것인데 후에 보니 세개의 삼각형 형태의 바위를 뒷쪽으로 돌아가야 제대로 볼 수 있는 봉우리가 있음을 알게 됐다.
삼모봉-정상의 바위들이 날카로운 창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하여 송암 권호문(權好文:1532~1587)선생이 지은 이름이다. 송암은 퇴계 이황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일대를 풍미했던 서애, 학봉, 백담등과 교분이 두터웠고 학행과 덕망이 높았던 문인이며 선비였다.
평생 벼슬길을 거부하고 자연을 벗하며 살았다하여 스승 퇴계는 그를 '소쇄산림지풍(瀟灑山林之風)이 있다'는 인물평을 남겼다. 송암은 청성산 아래의 무민재에서 학가산을 드나들며 학가산의 3봉(峯)과 3대(臺)의 이름을 지었고 일생동안 학가산 사랑에 힘쓴 인물이다.
삼모봉은 학가산의 제2봉으로 안동, 영주, 풍기와 동쪽으로 청량산과 일월산 그리고 북쪽으로는 백두대간의 준령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안내문]
▼ 삼모봉과 바로 마주하고 있는 유선봉(遊仙峯)
유선봉은 국사봉과 삼모봉 사이에 있는 바위와 소나무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봉우리이다. 유선이란 신선들이 흥겹게 놀고 있다는 뜻으로 송암 권호문 선생이 지은 이름이다. 학가산의 제3봉으로 사방으로 보이는 조망의 아름다움이 가히 일품인 곳이다.[안내문 요약]
▼ 유선봉에서 뒤돌아 본 삼모봉
▼ 유선봉에서 바라 본 학가산 최고봉인 국사봉
▼ 정상석에서 서쪽 방향을 바라 본 풍경
▼ 정상석에서 동쪽 방향을 바라 본 풍경
▼ 국사봉(國祠峯)
산 모양이 '날아가는 학과 같다'하여 학가산(鶴駕山)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이 국사봉은 '학의 머리'혹은 '학 위에 탄 신선'의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다. 국사봉은 학가산의 7개 봉우리 중 해발 882m인 최고봉이다.
서학가산성의 중앙에 위치하여 장군의 지휘소로 쓰였고 정상의 우묵한 바위는 난공불락의 자연 보채(堡砦) 역할을 하였으며 나라(임금)에 제사를 올렸던 곳이기도 하다.
영가지 산천 조에는 학가산 국사봉의 아름다운 조망을 기록으로 남겼으며, 사실 국사봉에 올라보면 사방이 낮은 언덕처럼 보이는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국사봉은 능인굴과 함께 신라시대 능인대사가 수행하던 불교성지로 알려져 있고 학사산 사랑이 지극하였던 송암 권호문 선생은 이 봉을 적성봉(適星峯)이라 고쳐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국사봉은 2005년 경북도민 체전의성화 채화지였다.[안내문]
▼ 국사봉에서 바라본 유선봉과 송신탑 부근의 삼모봉
▼ 당겨 본 유선봉과 삼모봉
▼ 서쪽의 진행방향
▼ 북쪽 방향으로 시계만 좋다면 소백산까지 조망이 될텐데 오늘 같은 날은 꿈 같은 얘기다.
▼ 능인굴(能仁窟)
능인굴은 신라 신문왕 때(680년경) 능인대사가 이곳에서 수행과 포교를 하였던 기거처다. 능인은 의상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학가산 남쪽 봉정사와 개목사의 창건주이며, 천등산의 천등굴에 얽힌 전설과 석탑리의 석탑 설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승려이다.
능인는 국사봉 아래인 이 굴에서 생활하며 수행과 포교에 힘써 학사산 주변의 아홉 개의 절을 이루어 오늘날까지 '8방 9암자'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니 가히 학가산의 개산조라 할 수 있다. 능인굴 안쪽에는 늘 마르지 않는 신비한 샘물이 솟아 등산객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안내문]
▼ 버스안에서 설명을 들은대로 상사바위 쪽으로 하산을 한다.
▼ 이곳에도 학가산의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경북 예천과 경계선에 있다 보니 이러한 현상이 있게 된다. 마치 원주의 감악산과 제천의 감악산이 그렇듯 지방의 여러곳이 산 정상을 놓고 경쟁을 벌이듯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 어풍대(御風臺)
어풍대란 송암 권호문 선생이 지은 이름이다. 어풍이란 바람을 크게 거느린다는 뜻으로 안동팔경 제5편 학가귀운(鶴駕歸雲)에서는 몰려오는 바람과 구름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쓰여 있다. 어풍대에 오르면 예천읍과 영주시, 풍기읍이 한 눈에 보이고 언제나 시원한 바람을 맞이 할 수 있는 곳이다.[안내문]
▼ 하산하다 보니 이러한 바위도 나오고...
▼ 이곳까지 산소를 쓴 것을 보면 풍수에 밝은 조상님들이 많은 것 같다. 역시 안동은 김씨가 많아서 인지, 김씨 묘가 많이 눈에 띈다.
▼ 김씨 묘를 지나 이곳 이정표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모른다. 리딩대장이 산행코스 설명 중 임도정상 쪽으로 절대 가면 안된다거나 느리티로 하산하라는 말 한마디만 있었더라도 오늘과 같이 알바하는 일은 없을 터인데 상사바위 쪽으로 가야 한다는 말만 듣고 계속 직진하다 보니 지자체에서 설치한 안전로프와 데크 계단이 나오고 앞서 간 이들의 발자국이 있어 한치의 의심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내달리게 되었다.
▼ 후에 알고 보니 이러한 안전 로프는 사실 휴양림 쪽으로 향하는 길로 가야할 반대 방향으로 낙엽이 무릎까지 차오르는 길을 열심이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 저 아래 능선으로 가야 상사바위가 나올까...아무리 상사바위를 찾아도 보이지는 않고...
▼ 어느 안부쯤에 도착하니 데크로 된 쉼터가 나오고...조금 내려가니 임도가 나오는데 그곳이 하산 포인트 중 하나인 당재인 줄로 알고 있던 중 마침 앞서 가던 회원이 임도 건너편 능선에서 마치 그쪽 길이 맞는 것처럼 얘기하여 의심없이 따라 가는데 등로가 영 아니다 싶어 배낭에 넣어 둔 스마트폰을 꺼내 앱을 살펴보니 알바를 해도 한참을 했다.
그 회원을 불러 길을 잘못 들어섰음을 알려주고 함께 뒤돌아 오는 길에 임도 정상에서 또 한 회원을 만났는데 잘못 길을 들어섰다고 하니 우리를 의심하는지 따라오지 않고 임도 반대길로 가는 것으로 봐서 휴양림 쪽으로 가는 듯 하다.
▼ 구불 구불 임도를 따라 한참을 내려와 느리티 마을 부근에 도착하여 위를 올려다 보니 상사바위가 보인다. 여기서 다시 올라 가봐도 될 거리이건만 다시 올라갈 생각은 없다.
상사바위는 사천의 와룡산을 올랐을 때도 봤듯이 작은 바위가 아닌 커다란 암릉과도 같았는데 이곳에도 풍경이 돋보일 만큼 멋진 곳을 둘러보지 못해 눈을 떼지 못한다.
▼ 임도를 따라 부지런히 내달리는데 느리티마을의 당재가 얼마남지 않은 거리에서 우리쪽으로 오는 회원이 있으니 당연히 그 분이 가는 길이 맞는 줄 알고 마을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셋이 한참을 걷고 있는데 직감으로 이상하다 싶어 다시 앱을 살펴 보니 또 다시 알바하고 있음을 알고 뒤돌아 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임도가 시멘트 포장길이라 피로가 금방 오기 때문이고 두번씩이나 알바를 하고 나니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훌쩍 13시가 지났으니 말이다.
▼ 다시 마을로 올라와 당재쪽으로 향하던 중 학운사를 보게 되고...지금까지 알바한 거리를 보면 저 상사바위까지는 가고도 남을 거리다. 이쯤에서 또 한 회원이 우리가 알바한 방향으로 오다가 우릴 만나 합류해서 제대로 걷게 되고...
▼ 당재인 이곳을 넘지 않고 오른쪽 비포장 임도를 따라 가다 보면 폐가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산길을 접어 들면 된다. 그러나 앞서 가던 세사람이 오솔길 삼거리에서 100여 미터 다른 방향으로 가는 중 그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외쳐대니 주춤 하는 사이 산악회 맨 후미가 그제서야 리딩대장과 함께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고 합류하게 되어 그 시간부로 알바는 접게 됐다.
▼ 작은 능선을 하나 넘으니 이러한 임도와 만나면서 다시 건너편 산길로 접어 들어야 하고...
▼ 마지막 봉우리인 이곳 복지봉에 오른 시간이 14시 10분... 정해 준 하산 시간은 15:00까지 인데 2km정도 밖에 남지 않아 시간은 충분한 것 같아 그동안 참아왔던 공복에 준비해간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꺼내 폭풍 흡입을 해대고 나니 겨우 살 것만 같다.
▼ 하산하면서 바라 본 학가산...들머리인 천주마을도 보이고 방송국 송신탑을 지나 삼모봉, 유선봉, 국사봉, 그리고 맨 왼쪽으로 상사바위가 살짝 보이는 등 얼마되지 않은 거리를 이렇게 헤맨 것이 마치 귀신에 홀린 듯 하다.
▼ 광흥사로 내려 오는 길에 만난 소나무들의 쌈바 춤...
▼ 드디어 광흥사로 접어드는 안부를 만나고...
▼ 고즈넉한 곳에 자리한 광흥사
학가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광흥사는 신라 신문왕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뒤 수차례 중수(重修) ·중창(重創)하여 대찰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946년에는 학서루(鶴棲樓)와 대방(大房)이 퇴락되어 무너져 예전의 풍모를 갖추고 있지 않다.
보물 제314호와 제315호로 지정되어 있는 취지금니묘법연화경과 백지 묵서묘법연화경이 보존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중이다. 응진전을 중심으로 명부전·종루·산령각·요사채 등의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응진전은 2009년 현재 광흥사의 주전(主殿)으로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다. 화재로 소실된 대웅전에 있던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어 있다.[대한민국 구석구석]
▼ 광흥사 일주문에 자리한 400년 수령의 은행나무에 도착하는 것으로 오늘의 산행을 마치게 됐다.
※ 오늘 산행은 당연 주제가 <알바>다. 알바는 아르바이트의 준말이다. 산행에 취미가 있기전에는 들머리니, 날머리니 하는 얘기도 그렇고 알바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제대로 된 코스를 밟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에서 헤맨 것이 주 업종이 아닌 부업을 한 것으로 산행에 비유해서 알바라는 우스게 소리로 지어낸 말일 것이다.
웬만해서는 알바를 하지 않은 내가 이렇듯 하고 나니 우습기도 하고 내가 왜 그랬나 하는 생각을 여러번 하게 된다. 그나마 버스를 타지 못할 분들이 있었는데 나로 인해 버스를 타게 되어 고맙다는 얘기까지 들었으니 다행이다.
이곳 학가산은 혼산을 하면 스마트폰에 앱을 깔고 자주 보면서 다니지 않으면 낭패를 보게 된다. 그만큼 등로가 많아 헷갈리기 쉽다는 얘기다. 주변 조망을 하면서 빤히 보이니 우습게 생각을 해서 더욱 그렇다.
하산길에는 임도와 작은 야산으로 접어 드는 소로길도 방향유지가 힘들 수도 있다. 결국 5명이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고 15분이 지나 버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합류하게 되었다. 그 분들도 우리와 같이 약 11km를 걸었다고 하니 비슷하게 알바한 셈이다. 이렇게 해서 안동의 학가산은 평생 잊지 못할 알바 천국으로 남을 만한 산행으로 추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