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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야기/고향 추억

외날 썰매

 

  

 

 

  

6~70년대 시절만 해도 겨울은 지금보다 엄청 추었던 것 같다.

시골집 안방의 벽이 자고 일어나면 하얗게 성애가 낄 정도였으니 어린 나이에 이불속에서 나오기가 그리 쉽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었다.

우물에서 물긷는 일 부터 동네 앞 장풍물에서 빨래하는 일, 방에 군불 때려 늘 볏짚을 마당에 널고 때는 일, 땔감이 부족하여 뒷산에 솔잎을 모으고 잡초를 베어 오는 일까지 부모님들은 추위와 싸워야 했다.

추위는 어린아이들에게 고통이었지만 한편으론 좋은 추억거리들을 만들었다.

그 당시의 농촌은 천수답이 많아서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를 지어야했기 때문에 가을 추수가 끝나고 나면 바로 물을 논에 가둬 놓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 동네 앞 이곳 저곳의 강추위에 얼어 붙은 논은 아이들의 놀이 공간으로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몇 명이 얼음판위에서 놀다 보면 어느새 동네 아이들 모두가 나와 북새통을 이룬다.

고무신, 운동화에 새끼를 둘둘 말아 미끄러지지 않게 하고 얼음덩이를 이용해 공차기 놀이를 비롯, 팽이치기, 집집마다 있을 썰매를 들고 나와 타는 일은 기본, 동네 한 두명 있을까 말까하는 스케이트도 등장했다.

스케이트는 그 당시 신기하기도 했지만 소유할 수 없는 체념 때문이었는지 그리 관심도 없었고 모두가 즐기고 있는 썰매가 더 좋아 보였다.

그런데 썰매하면 두날이 달린 썰매만 생각하던 터에 방학을 맞아 김포 외가집에 놀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그 동네 어린이들은 스케이트와 같이 서서 거의 모두가 외날 썰매를 타고 있지 않은가!

만들기도 간단할 뿐 더러 무엇보다 외날 썰매의 기능이 두날 썰매와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우선 기동력에서 앞섰다. 빠르기도 할 뿐만이 아니라 아무리 좁은 수로에서도 두날 썰매와는 폭이 절반도 안되는 썰매 폭 정도만 되면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브레이크 기능이 있어서 빠른 속도로 달리다 앞에 장애물이나 기타 위험한 일을 만나게 되면 썰매를 뒤로 젖혀 직각으로 날이 선 부분으로 얼음을 제동하기 때문에 안전상으로도 뛰어났고 커브도 자유 자재로 할 수 있기에 신기하기만 했고 흥미가 더 있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배우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외날에 두발을 올려 놓으면 균형이 잡히질 않아 한발 자국도 못가 쓰러지고 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그러니 무슨일이 있어도 균형잡고 썰매를 타야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고 큰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수도 없는 시행착오 끝에 몇 미터 탔을 때는 온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뻤다. 나도 하면 된다는 생각을 그 때 처음 경험을 한 것 같다.

외가에서 집에 돌아와 바로 외날 썰매를 만들고 그걸 타니 동네아이들이 신기해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두 부러워하는 눈치로 내 어깨도 으쓱해졌다. 그후  당연히 다른 썰매는 유치원생이나 타는 물건으로 전락해 버렸고 동네에는 어느새 새로운 썰매가 유행하게 되었다. 

외날 썰매가 있는한 겨울 오기만 기다렸고 추위를 이기며 즐거운 날들을 보낼 수 있는 놀이도구였다.

요즘 가끔 보이는 썰매장에 혹여 외날 썰매는 없는지 눈여겨 보지만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있다면 옛 생각을 하며 한번 멋지게 타보련만...

스케이트에 익숙해져 있고 탈 것이 풍부한 요즘 눈 썰매장 등에는 많은 인원이 북적인다.

그 시절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일들이다.

자식들이 초등학교 다닐 시절 옛 추억에 두날썰매, 눈썰매를 타 보지만 그 때의 스릴과 즐거움만 못하다.

외날 썰매로 균형잡으며 스피드를 즐기고 추운 겨울을 건강으로 이기며 그 시절을 보냈던 추억을 더듬어 본다. 올 겨울도 그런 즐거움과 함께 건강하게 보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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